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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1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영국 너무 까다로워!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1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영국 너무 까다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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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에서 산다고 하면 시쳇말로 ‘있어’ 보인다. 같은 영어를 써도 왠지 미국보다 절도 있게 들리고, 유럽에 쉽게 뭉뚱그려지지 않으려고 하는 고집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감상은 그야말로 영국을 잘 모르고 하는 막연한 짐작일지 모른다. 오늘날 영국은 어떤 나라인가?
  • 구체적으로 한국 사람이 지내기에 어떤가? 아이 둘 딸린 아줌마 유학생이 몸으로 부딪쳐 쓰는 한국인의 영국살이가 생생한 답을 알려줄 것이다.
2009년 9월초, 영국으로 건너올 때만 해도 나는 ‘영국에 정착하기’가 이토록 어려울 줄 꿈에도 몰랐다. 사실 나는 10년쯤 전, 영국에서 3년간 살았다. 그러니 10년 전에 거쳤던 정착 프로세스를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하면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외국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리는 일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다. 집 구하기, 은행 계좌 열기, 자동차 구입하기, 아이들 학교 전학 수속하기, 전화와 인터넷 회선 깔기 등. 물론 그전에 그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 비자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영국은 6개월 체류까지는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지만, 6개월 이상 체류하기 위해서는 영국 홈 오피스에 속한 UK Border Agency로부터 비자를 받아야 한다. 출국하기 전, 비자 수속 단계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2009년 초에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 문화정책연구센터(Centre for Cultural Policy Research)로부터 박사 과정 입학 허가를 받았다. 영국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은 미국보다 짧아서 원칙적으로 석사는 1년, 박사는 3년이 걸린다. 그래서 박사 과정 합격 서류와 함께 비자를 신청하면 UK Border Agency는 3년간 유효한 학생 비자를 내준다.

10년 전에도 나는 학생 비자로 영국에 입국했다. 당시 학생 비자를 받는 절차는 절차랄 것도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우선 학교 측으로부터 ‘이 학생은 우리 학교로부터 풀 타임(Full time) 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음’을 명시한 레터를 한 장 받는다. 그리고 영국 공항 입국 심사대에 이 비자 레터를 제시하면 여권에 비자 도장을 찍어준다. 이게 전부였다.

비자 받기까지 석 달 노심초사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학생 비자를 받는 절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했다. 학교에서 받은 비자 레터, 재정보증서, 1년 생활비와 등록금에 해당하는 돈이 28일 이상 들어있는 통장(반드시 보통예금이나 정기예금이어야 하고, 적금이나 펀드, 보험 등은 인정하지 않는다), 재정보증인의 세금납부 증명, 공증 받은 가족관계 증명서, 경력 증명서,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비자신청서 등 준비해야 할 서류가 백화점 쇼핑백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비자 신청인들은 서울의 주한 영국대사관 비자센터에서 지문을 찍고 사진을 촬영해야 했다. 1인당 비자 심사비는 무려 33만원이다. 4인 가족이 비자를 신청하려면 서류와 함께 130만원을 현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아시아 지역의 비자 심사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신청서류는 마닐라로 간다. 그 결과가 다시 마닐라에서 날아올 때까지 3주나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만 한다.

말이 한 달이지, 나와 우리 가족이 비자를 준비하고 받는 데 걸린 시간은 6월부터 8월까지 무려 3개월이었다. 그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은 차치하고 주위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비자를 받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아 계속 마음을 졸여야 했다. 내 딴에는 꽤나 어렵게 결심하고 실행한 유학인데 비자 문제로 유학을 못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더 어이없는 건, 주한 영국대사관 비자센터에 있는 직원들이 서류를 접수하면서 하자를 발견해도 신청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센터 직원들이 비자에 대해 신청자에게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이 아예 금지돼 있다. 그렇다고 미국 비자를 신청할 때처럼 영사와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니니 비자 신청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그 점에 대해 설명할 기회조차 없다.

무더운 여름 내내 비자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고(사실 나 역시 아이들의 비자가 거절되어 다시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거절당하고 다시 서류를 꾸미면서,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언가 달라진 기운을 감지했다. 지금 내가 상대하는 영국은 내가 알던 10년 전의 영국이 아니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돈 싸들고 온다고 해도 안 반가우니까 오지 말아줄래?’ 하는 기운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막상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내리면 좀 달라질까? 히드로 공항에서 장장 세 시간이나 입국심사에 시달리고, 다시 국내선을 탈 때는 가방에 든 아이들 젓가락까지 뺏기면서(쇠붙이라는 이유로) 어렵게 글래스고에 도착했다. 영국 이웃들은 10년 전에 그랬듯이, 아니 그전보다 더 상냥하고 친절했다. 글래스고는 인구 60만의 제법 큰 도시이지만, 런던이나 에든버러처럼 국제적인 분위기의 도시는 결코 아니다. 한마디로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도시, 약간은 촌스럽고 지역적인 색깔이 강한 도시다. 자연히 외국인의 수도 적고 동양인은 더욱 찾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글래스고 사람들은 외국인, 특히 동양인을 보면 ‘우와, 신기해!’ 하는 호기심과 함께 ‘우리 동네에 온 외국인이니까 내가 친절하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거리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있으면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옆으로 다가와 “어디를 찾나요? 내가 가르쳐줄게요” 하고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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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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