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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1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영국 너무 까다로워!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1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영국 너무 까다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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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영국인, 복잡한 절차

그러나 친절한 영국인 개개인과는 달리,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은행계좌 개설하는 것부터 얘기해보자. 영국에서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차도 집도 아닌 은행계좌다. 은행계좌가 없으면 전화회선을 신청할 수 없고 차를 살 수도 없으며, 설령 차를 샀다고 해도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렵다(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은행계좌가 없으면 모든 절차가 엄청나게 복잡해지고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도착하는 즉시 은행계좌를 여는 방법부터 알아봐야 했다.

10년 전에는 어떠했더라? 그때는 역시나 간단했다. 한국에서 사온 파운드 여행자 수표를 들고 아무 은행에나 들어간다. “계좌를 새로 열고 싶은데요” 하고 여권과 수표를 보여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를 열고 가져온 수표를 계좌에 예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은행계좌를 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입학할 학교가 ‘이 사람은 우리 학교의 학생임을 증명함’이라고 명시한 편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정식으로 등록하기 전이라 등록 관련 서류를 찾는 데 2~3일이 걸렸다. 학교에 찾아간 지 1주일이 지나서야 예비 등록 절차가 끝났고, 은행에 낼 편지를 학교 사무국에 신청했다. 이 편지가 내 손에 쥐어지는 데 또 3일이 걸렸다. 마침내 편지를 손에 넣고 은행에 가 계좌를 열고 싶다고 하자 2주 후에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영국에 도착하고 3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은행계좌를 열 수 있었다.

그 3주 동안 나는 전화와 인터넷 회선을 신청할 수도 없었고, 차를 샀지만 자동차보험을 들지 못했다. 전화와 인터넷과 자동차보험이 없는 생활, 생각해보라. 그건 말로는 쉽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온 외국인으로선 정말이지 숨 막히는 생활이었다. 3주가 지나서 비로소 은행계좌를 열고, 인터넷을 신청하러 갔는데 신청한 지 21일이 지나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 대체 이 기나긴 ‘영국 정착 프로세스’는 언제나 끝이 날까? 결국 자동차보험을 들기 위해 엄청 비싼 가격을 감수하며 은행계좌 없고 영국 면허도 없는 외국인을 받아주는 보험회사를 찾아가야 했으며 인터넷 회선은 도착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개통됐다.



불법체류자에게 꿈의 땅

솔직히 이 모든 절차는 굉장히 놀랍고 의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10년 전만 해도 영국은 ‘서로 믿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굳이 서류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 않아도 설명만 잘하면 의심 없이 그 자리에서 비자를 내주고 은행계좌를 터주었으며 아이의 학교 입학을 허락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위기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이의 학교 입학만 해도 그랬다. ‘아이와 부모의 여권, 비자, 가족관계 증명서, 출생증명서, 부모의 직장이나 학교 등 합법적 체류증명, 학교 근처 주소지에 거주한다는 증명서(집 계약서나 주민세 납부증명서 등)를 모두 원본으로 제출하며, 이 서류들과 함께 아이 본인이 부모와 함께 와야 전학수속을 시작할 수 있음.’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받은 전학 서류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10년 전에는 비자 없이 입국한 아이들도 영국 공립학교에 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합법적인 비자와 체류 증명이 있어도 외국 아이들이 영국 학교로 쉽사리 전학할 수 없는 제도적인 장벽이 세워졌다.

무엇이 이런 상전벽해를 만들어낸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불법 체류. 지난 10년간 영국은 계속된 경기 호황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집권한 이래 경기는 한 번도 꺾이지 않고 계속 상승했고, 런던의 집값과 금융 중심지인 시티지구와 카나리 워프에서 일하는 금융인들의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억대 연봉은 기본이고, 연말에 받는 세금을 물지 않는 보너스는 연봉의 몇 배나 됐다. 이렇게나 경기가 출렁이니, 유럽과 아시아의 불법체류자들이 영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영국은 유럽에서 인건비가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이고, 특히 단순 노동에 대한 인건비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다. 이래저래 영국은 모든 불법체류자에게 ‘꿈의 땅’일 수밖에 없다.

동유럽과 중국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은 브로커들로부터 여권을 사서(위조여권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4000만원을 호가한다) 상대적으로 입국 심사가 느슨한 기차역이나 항구 등으로 입국하거나 배의 짐칸, 심지어 기차 바닥에 매달려 목숨을 건 밀입국을 시도한다. 2000년에는 영국 남부 도버항에 도착한 화물선의 냉동창고에서 무려 58구의 중국인 시체가 쏟아져 나와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인원이 배 냉동창고에 타고 밀입국을 시도하다 질식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 같은 불법체류자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은근히 눈감아주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들 불법체류자들이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면서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는 측면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런던에서는 호경기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대규모 건축 공사가 벌어졌는데, 이런 데서 막노동하는 일꾼들은 대개 불법체류자들이었다. 여성 불법체류자들도 일할 곳이 많았다. 영국 어디에나 차고 넘치는 양로원에서 노인을 수발하거나, 맞벌이 부부의 가정부 겸 보모로 일하면 되었다.

런던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친구 하나는 집을 고칠 때마다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아주머니를 고용하곤 했다. “한번은 그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중국에서 영국까지 건너왔는지 물었어.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세상에, 중국에서 유럽까지 걸어왔다는 거야. 1년이 걸렸대.” 그 아주머니는 브로커로부터 위조여권을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을 벌기 위해 영국에서 꼬박 2년간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10년 이상 허드렛일을 하며 중국에 있는 아들딸을 대학원까지 공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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