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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춤추는 순간 난 ‘강철 나비’가 돼요”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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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발레 택한 것 두 번 후회, 그러나 다음 생에도 발레 택할 것
  • ● 취미생활? 그건 연습 별로 안 하는 사람들이나 누리는 호사
  • ● 나뭇조각에 발 짓이겨져도 무대에선 통증 못 느껴
  • ● 정상의 자리에 선 동력은 유달리 센 고집
  • ● 은퇴 후엔 나를 필요로 하는 나라에서 코치로 활동할 생각
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姜秀珍·37)이 2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섰다. 존 크랑크가 안무한 러시아 문호 푸슈킨 원작의 ‘오네긴’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간판 레퍼토리. 이 작품에서 주인공 타티아나 역을 맡은 수진은 49㎏의 몸으로 종달새처럼 날아오르고, 나비처럼 파닥이고, 꽃잎처럼 흩날렸다.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에는 정원식 전 국무총리,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김영수 전 문화부 장관 등 발레를 애호하는 명사가 여럿 눈에 띄었다. 공연 시작 직전 로비에서 수진의 아버지 강재수(67)씨를 만났다. 잘생긴 멋쟁이 신사였다. 수진은 아버지를 빼닮았다.

아름다운 백조가 호수에 그 자태를 드러내려면 두 발은 어둡고 차가운 물 밑에서 끊임없이 물갈퀴질을 해야 한다. 발레에서도 환상적인 춤동작이 만들어지기까지 토슈즈 안에선 두 발이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발레리나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직선을 만들려면 토슈즈 안에 덧댄 나뭇조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발레리나가 새처럼,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가 사뿐히 내려앉는 동작을 하는 동안 두 발은 나뭇조각에 짓이겨진다. 수진은 20여년 발레를 했지만 지금도 공연이 끝나면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발에 심한 통증이 온다.

수진의 발은 한센병 말기 환자의 발처럼 흉측하다. 뼈가 튀어나오고 발톱이 뭉개지고 살은 찢어지고 갈라졌다. 그러나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위대한 발’이란 칭송을 듣는다.

‘오네긴’에서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몽환적인 뒷걸음질춤, 구애가 받아들여질까 초조해하는 소녀가 남자의 손에 이끌려 추는 꼭두각시춤 장면에서 관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인터뷰를 준비하며 발레의 비밀을 알게 된 필자는 그녀의 발에 몰려올 통증을 생각하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연습벌레 수진이 신은 토슈즈는 무려 250켤레. 남들이 2, 3주 신는 토슈즈를 하루에 네 켤레나 갈아신은 적도 있다.

‘위대한 발’

수진은 5박6일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리허설과 공연이 있는 날은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출국하는 날 새벽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겨우 그녀의 시간을 빼앗았다. 약속시간인 오전 7시보다 20분 가량 일찍 도착해 방으로 전화를 했더니 곧장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 라운지는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수진을 알아본 호텔 직원이 불을 켜주고 차를 내왔다.

-월요일(10월25일) 세종문화회관 공연장에서 수진씨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미남이시더군요. 수진씨 얼굴이 아버지 붕어빵이에요.

“다들 그러세요. 어머니도 미인이세요.”

-이틀 연속 공연해 발이 아프겠군요.

“공연 막간에도 발이 몸의 무게를 못 견딜 때가 있어요. 공연 끝나면 걷기가 힘들어요.”

-막간에 그렇게 힘들면 공연을 어떻게 합니까.

“발레는 참 희한한 매직(마술)이에요.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서면 통증을 못 느끼는데 무용이 끝나면 발이 아파요. 연습할 때도 통증을 느껴요. 공연할 땐 집중하고 몰입하느라 아픈 걸 잊어버리죠. 분장실에 들어가서 기다릴 때, 혹은 막간의 휴식에는 통증이 와요.”

-진통을 해야 할 텐데요.

“아이스 팩(얼음주머니)을 항상 들고 다녀요. 집 냉장고에 아이스 팩이 몇 개씩 들어 있죠. 공연 끝나면 아이스 팩으로 찜질을 하지만 피부가 벗겨진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픔을 참아야죠, 까짓 거…. 날씨가 더울 때는 피부가 소프트해져 몇 시간씩 토슈즈 신고 연습하면 살갗이 까져버리죠. 똑바로 서지 않고 옆으로 서게 되니까요.”

같은 예술분야지만 지휘는 나이 칠십에도 할 수 있다. 고전무용을 비롯해 다른 분야도 수명이 길다. 하지만 발레는 무한의 고통을 요구하면서도 무대 위에서 빛을 발산하는 시간이 짧다.

-발레리나가 마흔을 넘겨 무대에 서긴 어렵겠죠.

“발레리나는 할 수 있어요. 발레리노(남자 무용수)가 힘들죠. 여자 무용수를 들고 춤을 추기 때문에 허리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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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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