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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북한 민주화운동하다 中안전부서 고문 김영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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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내가 체포된 뒤 北 반체제 인사 중국으로 탈출
  • ● 북한 내 혁명 조직 점검하러 중국 간 것
  • ● 전기막대로 고문하고 때린 남자, 지금도 기억
  • ● 김일성은 딱 한 번 돈을 줬다. 금액은 40만 달러
  • ● 이석기파, 내게 민혁당 돈·조직·북한연락망 요구
“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젊은 시절, 그는 강철과 같은 신념과 의지로 살고자 했다. 1980년대 대학가를 붉게 물들인 ‘강철서신’의 저자다. 1990년대 후반 혁명의 타깃을 바꿨다. 주체사상의 본영을 타격했다. 동지들은 전향하려면 ‘선’(북한 접촉망)과 ‘돈’(자금)을 넘기라고 대들면서 교도소로 갔다. 변절자, 배신자라는 낱말이 따라붙었다. 김영환(49)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지금도 혁명을 꿈꾼다.

그는 서울대 82학번이다. 1986년 ‘강철서신’이란 팸플릿을 통해 주체사상을 한국에 전파한 인물이다. ‘주사파의 대부’로 불렸다. 운동권 전반에 반미친북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1991년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1992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창당했다. 북한 정권에 환멸을 느껴 1997년 민혁당을 자진 해체했다. 북한 민주화 및 인권 문제에 천착해왔다.

남조선 혁명을 꿈꾸던 그가 타깃을 바꿔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다 중국 국가안전부에 붙잡혀 114일 동안 중국에 억류됐다. 21세기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다. 7월 20일 가까스로 석방돼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늘 음지에 서 있었다. 1980년대부터 온몸으로 격랑과 맞부딪치면서 한반도의 현대사를 관통해왔다. 8월 6, 9일 그를 만났다. 귀국 직후부터 수차 e메일, 전화통화도 주고받았다.

혁명가의 삶

그는 자신을 혁명가로 규정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혁명가의 삶을 시작했다. 이윽고 주체사상을 공부했다. 가장 핍박받는 사람에 대한 연대의식이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나의 동력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는 그렇게 심하게 고통을 받거나 핍박받는 이들이 없다. 북한의 실상을 알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영향을 줬던 수많은 이에 대한 부채 의식도 적지 않다. 직업으로 북한 민주화운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북한 혁명가’다.”

▼ 반미·친북적 분위기가 운동권에 널리 확산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나의 치명적 오류다. 북한 주민이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독재국가라는 말로는 북한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극단적 고통에 시달린다. 북한을 자유화해야 한다. 인간적인 삶을 되돌려줘야 한다. 세계의 진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북한 민주화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일부러 삐딱한 질문을 던졌다.

▼ 소영웅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

“적절한 비판이 아니다.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다. 언론에 나온 것도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던 것이 대부분이다.”

▼ 1990년대 전향했을 때 좌파에서는 소아병적 사고를 가졌다고 비판했다.

“나의 결함을 거꾸로 본 것이다. 지나치게 신중한 게 문제다.”

그는 중국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마음의 상처는 가시지 않는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나를 추적한다는 소문을 들어 신경이 쓰였지만 그런 끔찍한 일을 겪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김영환 고문대책회의가 8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옥인교회 앞에서 ‘김영환 고문대책회의 발족 및 고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국 국가안전부 조사실은 26년 전 우리나라 국가안전기획부 조사실과 비슷했다. 손발이 묶인 채 비명을 질러대야 했다. 고문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협박이다. 중국 안전부 수사관이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4월 15일이 김일성 생일이다. 너를 보내면 최고의 선물로 여길 것이다.”

북송(北送)해버리겠다는 협박을 15차례 넘게 들었다. “사건과 관계없는 친척, 친구도 안전국으로 소환하겠다”는 겁박도 했다.

북한은 ‘김일성 교시’를 어긴 그를 배신자로 여긴다. 김일성 교시와 ‘김정일 말씀’은 헌법 위에 군림한다. 그는 1991년 강화도에서 북한 잠수정을 타고 월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민혁당을 조직했다. 민혁당은 1997년 그의 주도로 해체됐다. ‘수령님의 교시’로 만든 조직을 ‘제멋대로’ 해산해버린 것이다.



살갗에 벌레가 기어 다녔다

“북한 보위부가 나를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북송됐더라면 굉장한 고문을 당했을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안전부 요원은 “북한 보위부에서 당신들에 대한 정보를 줬다. 오랫동안 추적해 당신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3월 23일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점검하러 방중했다. 베이징에서 지인을 만난 후 3월 27일 다롄(大連)으로 이동했다.

“다롄에서 활동가들의 체력을 측정했다. 중국 현지 활동이 고되다. 우리 활동은 강한 체력을 요구한다.”

3월 29일 오전 호텔에서 회의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또 다른 활동가를 만나고자 제3의 장소로 옮긴 것이다.

“북한이 나를 쫓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보안에 각별히 신경 썼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합승이었다. 택시에 합승한 승객이 내리는 순간 안전부 요원들이 택시를 둘러쌌다. 호텔 앞부터 나를 미행한 것으로 보인다. 혁대로 나를 결박했다. 두려움이 일었으나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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