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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고려 통일 역사를 복원하라

광복 70년! 100년 국가전략을 세우자

  • 홍면기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hongmkey@hanmail.net

통일은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고려 통일 역사를 복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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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대국 ‘밀당 게임’에 휘말리면 생존 위험
  • ● 중국 동북공정은 과거 아닌 미래 전략
  • ● ‘북한 붕괴’라는 ‘희망적 사고’ 벗어나라
  • ● 개성에 남북한 문화역사센터 만들자
통일은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고려 통일 역사를 복원하라
사가(史家)들이 20세기를 어떻게 기록할지 알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 전개된 질곡의 반(半)세기와 성취의 반(半)세기는 분명‘위대한 반전(反轉)의 역사’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숨 가쁘게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을 달려온 한국의 추동력이 20세기 말 이후 둔화되고, 안팍의 도전 앞에 우리의 미래는 심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

적잖은 심리학자는 “50대 후반 이상의 한국인은 그동안 성취해온 것들이 다음 세대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다”고 진단한다. 사회학자들은 우리의 현실에서 불길한 ‘망국’의 조짐을 읽어내며 참담한 심정으로 대안을 호소한다. 다음은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의 진단이다.

‘오늘날 한국 상황은 구한말 망국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 오히려 덧붙이고 싶다. 그때보다 더 열악하다고. 한국을 두고 벌어지는 극동 정세가 그렇고, 그와는 아랑곳없이 터지는 내부 분열이 그렇다. 누군가는 항변할 것이다. 그래도 백 년 동안 힘을 길렀는데 오늘의 한국은 구한말 조선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4강은 한국이 커진 것보다 더 커졌고, 북한 변수가 돌출한 이 시대 역학구도에서 한국의 입지는 한없이 쭈그러졌다고. 내부 분열? 당시에는 분열상이 조정(朝廷)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시민사회 전반을 갈라놓고 있다고 말이다.’

불길한 데자뷰

광복 70년을 목전에 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성취에 대한 자부와 눈부신 미래를 향한 강한 기운을 느끼기 어렵다. 국민의 얼굴에서는 한반도에서 해양과 대륙세력이 치열한 힘겨루기를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묻어난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불길한 역사가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어른거리는 것이다.

내외의 정세가 격동하자 1592(임진왜란), 1894(청일전쟁), 1904(러일전쟁), 1950(6·25전쟁), 심지어 백강전투(백제·왜 연합군과 신라·당 연합군의 전투)가 벌어진 663이라는 연대가 난수표 처럼 유포되며 불길함을 부채질한다. 역사에 대한 ‘데자뷰’가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틈새에 고조선과 고구려사를 비롯한 우리 역사의 위대함을 그리려는 ‘회고주의적 심리’도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망국론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한반도 위기론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냉전질서 해체 이후 지구적 차원의 지정학적 변동이 한반도에 들이닥쳤지만, 대륙과 해양세력의 이음새에 있는 남북한은 이 균열선을 넘어설만한 화해와 협력의 결합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G2의 대치가 첨예해지는 가운데 중국의 한국 껴안기, 북일의 관계 개선, 북러 간 접근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동아시아의 앞길을 예측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각국에서는 대중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그 나라 정치에 깊이 개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의 자만, 일본의 초조함, 한국의 두려움이라는 대중심리가 등장한 것이다. 이 대중적 심리가 동아시아 역사 인식이라는 문제를 놓고 정서적인 충돌로 발전한다.

한국인은 중국의 대국적 민족주의와 일본의 호전적 민족주의가 충돌한 불행했던 역사를 기억해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100년의 역사적 설계도는 물론이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갖지 못한 지금 남북관계의 긴장과 갈등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험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

‘거대한 전쟁’ 피해갈 수 있나

“거대한 전쟁이 닥쳐왔다. 희생자가 수백,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될 것이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 앞에 선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겔레테이의 절규다. 이 절규가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두 가지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여전히 힘의 논리가 정의와 도덕의 논리를 압도한다는 점과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약소국의 생존문제를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밀당’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제국 아테네가 복종을 거부하는 소국 멜로스를 위협하는 장면을 생생히 그린 ‘멜로스의 대화’를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제국에 대한 의무를 갖는다는 식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당신들이 스파르타를 돕지 않았다거나 우리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식의 말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 잘 알겠지만 이런 문제들이 실제적으로 논의될 때 정의의 기준은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의 질에 달려 있다. 사실상 강자는 그들이 할 힘이 있는 것을 하는 것이며, 약자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국의 상황을 멜로스의 그것으로 환치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역사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과 국력이 뚜렷이 상승한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거대한 전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과 국가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전쟁은 패권국과 신흥강국 사이에 일어난다”고 한 투키디데스의 명제는 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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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면기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hongmke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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