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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권 2년, 우군은 떠나고 갈길은 멀고

  • 김만흠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정치학 박사

DJ정권 2년, 우군은 떠나고 갈길은 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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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집권세력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는 정치권력적 차원에서 핵심 정책이자 김대중 정부의 성격과 운용방식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권력 구성 과정에 거국내각을 제안할 정도로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방향을 선택했다. 그 대상은 구지배세력과의 통합, 비호남 지역과의 통합이었다. 이같은 시도의 성과 여부를 떠나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전략과 국내 정치전략에서 모두 포용전략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DJP 연합정권이었다는 점에서 출발점에서부터 구지배세력과 연계돼 있었다. 따라서 집권세력 구축과정에서 구세력을 중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정권교체의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김대통령이 이같은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구세력을 중용한 것은 지역갈등을 위시한 분열과 대립의 정치로부터 통합과 포용의 정치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처음 집권해보는 소수파 세력이 갖는 한계에서 초래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김대통령은 집권세력의 외연확대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이같은 전략은 한마디로 실패작으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 정부의 정체성만 훼손시킨 채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세력 인사의 중용은 새로운 정부의 명분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김대통령을 지지해온 전통적 우군에게 심리적·실질적 박탈감도 주었다. 등용인사가 부적절한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사실 그동안 국정운영에 문제를 야기해온 정부 인사 대다수가 구세력에서 영입된 사람들이었다.

반면 야당과 구세력 일부는 김대중 정부가 상대세력을 포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마치 혁명을 요구하는 세력과 구지배세력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던 장면 정부의 과도기적 상황을 보는 듯하다.

특히 지역주의 문제와 관련해 이런 상반된 비판이 뚜렷하게 전개되어 왔다. 대통령은 지역편중 인사라는 비판에 매우 신경을 썼다. 굳이 출신지역으로 따지자면 집권 초기 국무총리(김종필, 충청), 대통령 비서실장(김중권, 경북), 국정원장(이종찬, 서울) 등 이른바 빅3은 모두 비호남권이었다. 그런데도 모든 요직은 호남 출신이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이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비호남권 일부에서 제기되었다.



김대중 정부에 호남 출신 인사들이 많이 등용된 것은 사실이다. 사회 각 부분에서 이른바 호남 출신 줄대기 현상도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의미있는 지표인지 모르겠지만, 장관의 경우 호남 출신이 30%에 가깝게 급증했다. 그러나 과거 특정 지역출신이 집권세력의 40% 이상을 독점했던 것에 비교하면 인사편중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한 수십년간 고착돼온 한국의 지배엘리트 구조가 어느 한 정권의 인사정책으로 바뀌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차관급이나 1,2급 공무원의 경우 여전히 구지배집단 출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대기업을 포함한 경제 엘리트 구조 역시 여전히 과거 그대로다.

또한 그동안 지역적 인사편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은 단지 한 정권에서 특정지역 출신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특정지역 출신이 수십년간 장기집권하면서 그 지역 출신이 독점하는 지배엘리트 체제를 ‘구조화’시켰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여기에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경계하고 배제하는 구조가 형성됐던 것이다.

권력투쟁의 현실논리로 보더라도 소수지역에 기반한 김대중 정부로서는 정치적 경쟁구도가 지역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절대 불리하다. 따라서 정권 차원에서도 김대중 정부는 탈지역주의나 지역연합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감정과 지역주의 구도가 강고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에 대응하는 김대중 정부의 인식과 전략에는 문제가 있었다. 집권과정에 보여준 지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집권 이후 상당히 안이해진 것이다. ‘지역등권론’으로까지 발전했던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은 다시 ‘지역감정 해소론’으로 회귀해 버렸다. 지역화합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과 의지도 필요하지만, 지역감정의 특성상 객관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현실적인 대응정책과 전략이 필요했다. 최소한 지역화합을 중재하는 객관적 기구 정도는 설치했어야 한다. 객관적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지역문제가 제기되면 청와대나 집권당은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지역주의의 특성상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이슈로 확산시킬 뿐이었다. 물론 과거 정권에서는 이러한 해명 자체도 없었지만.

무기력한 청와대 보좌진과 집권여당

이런 가운데 집권세력은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에서 지역주의에 대한 배려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끌려갔다. 이로 인해 여타 정치적 과제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렇게 될수록 정권교체 세력이 보여주어야 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약화되었다. 여당 대표를 구성할 때도 출신지역을 배려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정치개혁과 여권의 신당창당 과정에서도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전국정당화가 강조되는 가운데, 실질적이고 우선적인 정치개혁 과제인 정당정치의 민주화와 정치세력의 쇄신은 멀어지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이는 집권세력의 정치개혁 의지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같은 구조적 딜레마와 맞물린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의 한계는 집권세력의 무기력, 무원칙, 불투명성을 초래했다. 집권 2년에 이르는 동안 새로운 집권세력은 대통령 혼자인 것 같았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은 크게 청와대 보좌진, 집권여당, 관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체제에서 청와대 참모진은 특히 집권세력의 이미지 강화와 협력체제 구축에 별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통령은 과거 청와대 참모진의 폐해를 반성하면서 비서진은 그야말로 비서 기능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인적 구성도 이런 방향에서 이루졌다. 이에 따라 정부의 국정 이념이나 방향이 대통령의 발언이나 선언 이상으로 구체화돼 국민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그랬고, ‘제2건국론’도 그랬다. 구체적인 기능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국민들에게는 청와대 보좌진이 집권세력에 힘을 보태는 집단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집권세력의 주요 축인 국민회의는 최근 신당 창당에 이르기까지 아주 무기력한 2년을 보냈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대통령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한국 정당정치의 기본적 한계도 작용했다. 당을 이끌던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이 되면서 당의 자율적 지도체계에 공백이 생긴 것이고, 그것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결국 대통령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집권여당과 정부, 즉 당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채널과 기능도 매우 취약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비서 기능에 초점을 둔 청와대 비서진이 당정 관계를 유기적으로 구축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상대적인 힘을 발휘했다고 하는 김중권 비서실장 등은 당의 세력이나 조직과는 무관하게 구 세력에서 영입된 사람이었다.

무원칙, 불투명한 정국운용

집권여당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은, 집권 초기 여소야대 구조의 재편 시도에서 시작해 합당 논란, 그리고 최근의 신당 창당에 이르기까지 2년여 동안 국민회의가 과도기적 정당으로 인식되어 왔다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지역주의 구도를 포함한 한국 정당정치의 고질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존 정당체제의 해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야박하게 말하자면, 그 동안 자신이 만들고 이끌어 왔고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그 정당으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현 지역주의 구조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 집권여당이 조직적 힘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자명했다.

관료는 기본적으로 정치 세력이라는 성격이 약하다. 더구나 구세력의 영입으로 집권세력과 관료 간 괴리가 두드러진 김대중 정부하에서 관료들은 정권교체 정부의 세력으로 기능하기가 어려웠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관료제에 대한 정권의 장악력도 떨어지고 그렇다고 제도적인 중립성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의 관료 중 일부는 점차 무사안일로 때우고 일부는 정권의 정책에 저항하는 경향마저 보였다.

집권 초기부터 줄기차게 제기돼온 ‘정권 주체세력’ 또는 ‘개혁 주체세력’을 구축하고 강화하라는 제언과 비판들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지적이었던 것이다.

사실 김대중 정부는 정권교체 정부의 정당성만 훼손한 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구세력과의 통합전략보다는 정당성과 명분을 기치로 한 ‘국민전략’을 택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 국민전략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주체세력이 있어야 한다. 즉 국민전략은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구체화시켜 실행하는 집단적 주체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같은 집권세력의 국정운영 구조와 체계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결정과 정치적 향방의 대부분이 직접 대통령을 통해서만 확인되고 또 그가 책임지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을 제외한 집권세력 인사 대부분은 정권의 장기적 프로그램과 원칙에 입각해 창조성을 발휘하고 현실에 대응하면서 집권세력에 힘을 보태기보다는 대통령의 ‘의중 읽기’에 충실한 경향을 보였다. 이런 국정운영구조는 대통령과 여타 집권세력, 궁극적으로는 정권과 국민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쌍방채널의 활성화를 제약했다. 또 그것은 정국운용의 불투명성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내각제 논란, 선거구제 문제, 합당론 등의 전개와 처리방식은 정국운용의 불투명성과 무원칙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문제들을 결정하거나 처리하는 데에는 상황에 따른 변수가 빚은 불투명한 요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에 상응하는 원칙과 방향들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사회적 비판세력의 여론 수렴해야

결국 ‘정권교체’와 ‘준비된 대통령’, 그리고 ‘국민의 정부’를 표방했던 김대중 정부는 집권 2년에 이른 현 시점에 보았을 때 준비된 대통령의 일부만 구현했다. 준비된 대통령의 능력은 주로 대외정책, 대북문제, 그리고 기업구조조정 등 대통령과 정부권력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발휘되는 부분에서 성과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정권교체의 취지는 최소화했고, 대다수 국민들은 국민의 정부라는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 의미를 잊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준비된 대통령의 정부’를 넘어 이름 그대로 ‘국민의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각종 조사결과들이 말해 주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현재 여야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살아있는 전·현직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꼽힌다. 또한 집권 이후 가장 낮은 여론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요즘에도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는 야당보다 2~11% 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집권 여당의 이러한 상대적 우위도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의 총체적 비판 앞에서는 결코 내세울만한 게 못 된다. 또한 집권 초기의 높았던 지지가 점차 낮아지면서 지역구도로 회귀하게 된 요인이 상대 세력의 성장보다는 집권여당 자신의 국정 운영 전략과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에 따른 결과가 구집권 세력에서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별다른 쇄신 없이 여전히 지역주의에만 의존하면서도 총선 승리의 가능성을 바라보기도 하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기대와 지지의 조건이 각기 다를 수 있었겠지만, 그 핵심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였다. 정권교체는 이전과는 다른 정권이 등장하여 새로운 정치를 주도하고 스스로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사실 요즈음 정치개혁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무슨 제도를 개혁하기 이전에 집권세력 스스로가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굳이 정치개혁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바로 그것이 정치개혁에 출발이 되어야 했다.

집권여당은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의 새로운 정당정치를 주도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새로운 집권여당, ‘새천년 민주당’을 창당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새천년의 새로운 정당정치보다는 점차 당선 가능성 위주의 인적 구성을 강조하면서 구세력 중심의 인물 포진이 두드러져 ‘새천년의 신당’이 아니라 ‘새천년의 구당’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그 동안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의 영역이 정당과 의회보다는 대통령과 이를 둘러싼 세력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집권세력 스스로 그 동안의 정치를 반성하고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가려면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운영 방식에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정 운영과 관련하여 반드시 지적돼야 할 대목은 소수정권의 한계를 구 세력과 연합하는 것으로 극복하려 하지 말고 사회적 비판세력의 여론을 수렴하면서 이들을 집권세력의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비판적 여론에 귀를 기울이면 자연히 이들은 우군이 된다.

김대중 정부는 특히 신문언론의 지지로부터는 거의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야당 시절부터 한국의 언론은 반DJ 노선이 주도해왔다. 그나마 기득권 세력과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해왔던 일부 언론이 동지이고 우군이었다. 그런데 집권 이후에는 이런 신문들의 비판여론을 정부가 수렴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이들 언론마저도 멀어지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나머지 집권 3년에는 김대중 정부가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이는 무엇보다 지난 15대 대선에서의 정권교체가 역대 집권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일시적 실수에 따른 이변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갈길은 멀지만 낙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국정운영의 원칙과 전략을 새롭게 짜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떠나간 우군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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