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솟아오르는 궤적을 따라, 온 지구촌의 사람들은 저마다 새 천년의 첫 해오름을 보면서 가족과 사회와 국가를 위한 소망을 빌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첫 해오름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는 해일 뿐이다. 또한 어제의 태양에 비해 오늘의 태양이 다를 것도 없다.
다만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의 연속선 위 한 시점에 마음의 다짐이 있을 뿐이다. 이런 마음의 다짐은 대개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벗어나려는 의도적인 노력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의 다짐이 그저 불만투성이의 현실을 뛰어넘고 싶은 동기에서 비롯된 한 순간의 헛된 꿈이나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캠페인성 기획기사(예컨대 동아일보의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라는 연재기사)를 제외하고는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기관이든 냉철한 자기 반성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오직 화려한 미사여구로 분식된 미래에 대한 허망한 청사진만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무력감과 위기감이 상당한 정도로 팽배해 있다. 부정부패의 문제,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다시 말해 부의 재분배 문제, 그리고 구조조정 내지 개혁, 특히 정치권 개혁 문제 등에 있어서 이른바 국민의 정부가 이루어 놓은 실적은 무엇인가. 또한 이런 점들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수긍할 만한 가시적 실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냉철하고도 솔직한 반성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계속하여 금년 봄에 치러질 총선을 의식한 내용 없는 껍데기뿐인 미사여구나 자화자찬만 있을 뿐이어서 일상의 삶을 더욱 짜증나게 한다.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점들에 대해 나름대로 개혁의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뉴밀레니엄의 국가적 청사진을 펼쳐 보여야 할 시점에도 과거의 업보에 발목이 잡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인사 정책의 실패에 있다고 본다. 외불피구 내불피친(外不避仇 內不避親)이라는 고사도 있고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도 있다. 즉 인재이기만 하면 원수의 아들이든 친자식이든 가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등용하여야 하고, 그러한 인재는 가까운 주변에서만 찾을 일이 아니고 먼 곳에서라도 손수 찾아가 성심성의로 모셔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인사는 만사라고 외쳐대면서 이른바 문민정부라는 YS정권 때부터 국민의 정부라는 DJ정권에 이르기까지 과거 야당 시절 함께 옥살이한 사람부터 대선 때 슬그머니 끼어든 사람까지 제 패거리끼리 자리 나눠 먹기에 정신이 팔렸고, 이 과정에 소외된 기득권 세력은 무슨 빌미만 생기면 이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뒷다리 잡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나라의 인사 정책이 바르게 될 턱이 없었고, 이러한 집단이 추진한 일련의 개혁정책이 바르게 집행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억지논리로 밀어붙이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만이 판칠 뿐이다.
다음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공권력, 특히 공명정대한 검찰권 행사의 문제다. 구랍 그믐날 서울구치소에 찾아가 두 수감자를 접견했다. 한 분은 과거 검사 시절 상사로 모셨던 김태정 전 장관이고, 또 한 이는 대학동기면서 지난날 검찰 특수부에서 함께 일했던 박주선 비서관이다.
엊그제까지 국민의 정부 내에서 사정의 양대 축을 이루며 세인의 각광을 받던 그 모습은 간 데 없이, 초라한 수의를 입은 초췌한 모습을 보고는 그만 가슴이 찡해오고 목이 메어옴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이 구속에 이르게 된 범죄사실을 보면 과연 이것이 범죄가 되는 것인지, 또 범죄가 된다 하더라도 구속수사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법률가적 양심에 비추어 의문이 가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구속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검찰의 속사정은 무엇인가. 바로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이다. 수사해본즉 누구나 공감이 가는 범행동기에서 비롯되었고, 누구라도 그 위치에서는 다른 선택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변명해본들 믿어줄 사람 혹은 동정해줄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믿거나 말거나, 동정해주거나 말거나 사실은 사실이다’라고 밀어붙일 용기도 없음은 더 큰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의 상실, 용기의 상실 과정에는 바로 이 두 수감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한없는 연민을 느끼면서 이들에게 ‘비굴할 이유도 없지만 죄송스러운 표정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만 남기고 구치소를 뒤로 했다.
우리 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 천년의 원년을 맞이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부디 청와대는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대선 당시의 공약대로 측근인사의 끼리끼리 나눠먹기식 행태를 과감히 탈피하고 ‘천하의 인재’를 삼고초려의 자세로 모두 불러 모으길 바란다.
아울러 검찰은 정권에 부담이 되는 것을 피해가기 위한 ‘축소 은폐’나 여론 무마 내지 언론 보도를 의식한 ‘억지 끼워 맞추기식 수사’ 등 과거 검찰의 적폐로 지적되었던 것들을 과감하게 불식하고, 공명정대한 평상심을 기반으로 하여 상식인이 공감하는 검찰권을 행사함으로써 ‘국민의 검찰’ ‘정의로운 검찰’로 다시 태어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분명 밝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