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사건 ‘축소·은폐’ 의혹의 주인공 박주선 전청와대 법무비서관. 유·무죄를 떠나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여론재판의 성격이 강하다. 그와 사직동팀 간에 벌어지는 진실게임은 옷사건 최후의 미스터리다. 그는 과연 결백한 것일까. 》
내용을 읽어본 박비서관은 사직동팀 팀장 최광식 총경을 호출했다. 최총경이 법무비서관실에 나타난 것은 오전 11시30분께. 박비서관이 문서를 손에 들고 물었다. “이거 우리 것 아니지요?” “예. 아닙니다.” 최총경이 부인했다. 박비서관이 다시 물었다. “확실히 아닙니까?” 최총경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이날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비밀이 아니었다. 현장에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청와대 파견검사 A씨였다. A씨는 보고 사안이 있어 우연히 그 방에 들렀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그는 이날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자술서 형식으로 작성해 수사를 맡은 대검 중수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A씨의 증언을 비중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씨와 최총경의 ‘짜고 치는 고스톱’쯤으로 여겼다. 박씨의 결백을 입증하는 유력한 정황증거일지도 모르는 A씨의 증언을 검찰은 왜 무시했을까. ‘박주선 미스터리’에 대한 추적은 이 의문에서 비롯된다.
옷사건 최후의 의혹인 박씨와 사직동팀의 진실 게임. 박씨는 법정에서의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한쪽이 살면 다른 한쪽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숨막히는 생존 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박씨는 구속 전 주변사람들에게 “대법원에 가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며 결백을 호소한 바 있다. 과연 그는 억울한가. 취재 결과 박씨의 결백 주장엔 상당한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지난해 12월23일 새벽 서울구치소로 향하면서 “편견과 선입견의 늪이 너무 깊다”며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에 따라 일부 검사들은 “마지막까지 그토록 항변하는 걸 보면 혹시 수사가 잘못된 것 아니냐”며 혼란스러워했다. 그가 구속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연정희씨도 이형자씨도 김태정씨도 아니었다. 바로 한때 자신의 지휘를 받았던 경찰청 조사과, 이른바 사직동팀 팀장 최광식 총경과 그 직원들(옷사건 내사에 관여했던)이었다.
“표적사정을 하고 있다”
박씨는 사직동팀이 모든 혐의를 자신에게 뒤집어 씌웠다며 펄쩍 뛰었다. 그는 자술서에서 “최초문건이 조사과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조사과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조사과 직원들에 대한 형사처벌 및 문책이 불가피하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찰의 조직적인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수사팀에 대한 분노도 숨기지 않았다. “검찰이 표적사정을 하고 있다. 내가 검사일 때도 이런 식의 수사를 했는지 회한이 든다”고까지 말했다. 결사항전이 아닐 수 없다.
검찰 공소장에 나타난 박씨의 죄목은 세 가지. 공무상 비밀누설과 공용서류 은닉 및 증거 은닉이다. 그중 핵심 혐의점은 공무상 비밀누설. 옷사건 관련자들의 초기 내사 결과가 담긴 사직동팀 최초문건을 김태정씨에게 건넨 혐의다. 김씨에게 사직동팀 최종보고서를 넘긴 일도 이 혐의에 포함됐다. 공용서류 및 증거 은닉이란 연정희씨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는 몇 개의 문서를 빼돌리라고 사직동팀에 지시해 지난해 5월 검찰 조사 때와 11월 특검 수사 때 제출하지 않은 혐의다.
검찰 수사 결과 사실관계가 확정된 것은 사직동팀이 최초문건을 작성했다는 점 하나뿐이다. ‘박주선 미스터리’의 핵심은 사직동팀 팀장인 최총경이 이 문서를 박주선씨에게 전달했는지 여부다. 만약 전달하지 않은 사실이 입증되면 박씨가 김태정씨에게 이를 유출한 혐의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검찰이 물증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문서보고대장. 사직동팀에서 압수했다는 이 대장엔 최초문건과 관련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임검사였던 박만 대검 감찰1과장에 따르면 옷사건 관련 문서뿐만 아니라 조사과에서 작성한 모든 문서에 대한 기록이 담긴 것으로, 보고일시 보고대상자 주무책임자 조사과장의 평점 등이 적혀 있다고 한다. 박만 검사는 “이 문서대장을 보면 최총경이 최초문건을 박주선씨에게 보고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서대장은 그 형식에 비춰 내부보고용일 가능성이 크다. 문서대장 어디에도 청와대 법무비서관 또는 박주선씨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경찰 정보부서의 한 직원은 이와 관련, “문서보고대장은 첩보문서들의 제목만 기록된 내부보관용으로 외부보고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를 근거로 청와대에 문서를 보고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사직동팀의 진술은 여러 차례 바뀌어서 그 신빙성을 의심받고 있다. 최총경은 지난해 12월1일 특검을 찾아가 최초문건과 관련한 조사를 받았다. 조사가 끝난 후 기자들이 최초문건에 대해 묻자 “그런 문건을 만든 적이 없다. 사직동팀 컴퓨터에는 그런 약물이 없다”고 부인했다. 최총경의 말을 믿어서였는지 특검은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최초문건에 대해 ‘사직동팀의 보고에 터잡아 법무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엉뚱한 해석을 내놓았다.
최총경이 특검 조사를 받는 동안 대검 중수부는 사직동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다음날인 12월2일 그는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문서 작성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그가 말을 바꾼 것은 12월4일. 최초문건을 박주선씨에게 전달했다고 자백한 것. 박씨의 요청에 따라 12월5일 밤 1시30분께 두 사람의 대질신문이 이뤄졌다. 그 자리에서 최총경은 자신의 말을 또 뒤집었다. 박씨에 따르면 최총경은 대질신문에서 “검사의 협박으로 허위자백했다”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최총경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어쨌든 최총경의 진술 번복으로 검찰 수사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와 함께 12월2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사직동팀 관계자 4명은 문서 작성 사실을 부인하다 다음날 귀가했다. 그 후 이들은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고 잠적해버렸다. 12월8일 최총경이 다시 검찰에 불려갔다. 다음날 그는 박씨에게 최초문건을 서면으로 보고했다고 자백했다.
잠적했던 사직동팀 관계자 4명이 검찰에 나타난 것은 그 다음날인 12월10일. 그들은 12일 새벽 문서 작성 사실을 시인하고 자신들의 상관이었던 박씨의 목을 죄었다. “관련자 조사상황을 일일보고 중간보고 등 수시로 최과장에게 보고했으며 최과장이 이를 취합해 박비서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박씨는 이들과의 대질신문에서 “내사 중간보고는 구두로만 받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최총경은 왜 대질신문 때 말을 바꿨을까. 사직동팀이 잠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5일 동안 잠적했을 때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이처럼 최총경과 사직동팀의 자백 과정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그러나 검찰의 시각은 한가롭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사직동팀이 초기에 문건 작성사실을 부인한 것은 박비서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또 최총경의 진술이 여러 차례 바뀐 데 대해서는 “원래 그런 과정을 거쳐 진실에 다가서는 것 아니냐”며 대수롭잖게 여겼다.
이제 박씨의 결백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증거를 살펴보자.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글머리에 언급한 대로 최초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지난해 11월22일 법무비서관실에서 박씨와 최총경이 대화하는 걸 들었다는 청와대 파견검사 A씨의 증언. 매우 중요한 증인인데도 검찰은 별도의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수사책임자인 신광옥 대검 중수부장(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30일 옷사건 최종수사결과 발표 직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 아니냐”며 “당시 박비서관이 최총경에게 물어본 것은 다짐을 받기 위한 것이었지 진짜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즉 “이게 우리 것이냐”와 “이게 우리 것 아니지”라고 묻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박씨는 철저하게 ‘이중 플레이’를 펼친 셈이다.
과연 그럴까. 당시 A씨는 보고를 하기 위해 우연히 법무비서관실에 들렀다. 그렇다면 적어도 박씨가 A씨를 의식해 쇼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두 사람은 최초문건과 관련해선 공범이었다. 서로 짜고 거짓말을 계속해왔던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문건을 들이밀며 맞느냐 안 맞느냐를 새삼 확인할 필요가 있었을까. 공범끼리 굳이 그런 낯 뜨거운 쇼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만약 최총경에게 다짐을 받기 위해서였다면 그런 ‘위험스러운’ 방법말고도 더 적절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 않았을까.
다음으로 작가 전옥경씨의 증언을 꼽을 수 있다. 연정희씨와 함께 의상실을 돌아다닌 전씨는 지난해 11월1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가 사직동팀 조사를 받은 직후 연정희씨가 내 진술 내용을 알고 있었다”며 “조사받은 지 2∼3일 후 연씨가 전화를 걸어와 진술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섭섭하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전씨의 증언은 박주선씨에게 유리하게 해석된다. 박씨는 사직동팀 내사가 거의 마무리되던 시점인 지난해 1월27일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1월31일 저녁에 귀국했다. 인권법 연구와 관련한 출장이었다. 박씨가 출근한 것은 2월1일. 그런데 전씨가 옷사건과 관련해 사직동팀의 조사를 받은 것은 1월28일이었다. 전씨 증언대로라면 박씨가 국내에 없는 동안 누군가 조사 내용을 연씨(또는 김태정씨)에게 알려줬을 개연성이 높다. 박씨가 귀국하자마자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전씨 조사 내용을 챙겨 ‘허겁지겁’ 연씨나 김씨에게 알려줬을 가능성을 빼면 말이다. 게다가 1월31일은 일요일이었다.
전씨의 증언은 물론 최초문건과 직접 관련은 없다. 그러나 ‘박주선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누가 거짓말쟁이인지를 밝히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정황증거다. 박씨에게 적용된 공용서류 및 증거은닉 혐의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최초문건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으므로 연씨에 불리한 내용이 담긴 몇몇 문건을 당연히 감췄을 것이라는 예단이 작용한 것이다.
전옥경의 증언
지난해 12월30일 최종수사결과 발표 때 검찰은 전씨의 증언과 관련, “불확실한 증언이므로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며 비켜갔다. ‘조사받은 지 2∼3일 후’라는 전씨의 증언이 기억에 의존한 것이어서 정확하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해 전씨의 말대로 ‘2∼3일 후’라면 박씨가 국내에 없었던 때지만 4일 후라면 2월1일 이후, 곧 박씨가 귀국한 이후에 해당하므로 박씨의 알리바이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박씨가 줄곧 결백을 호소하는 마당에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줄지도 모르는 사안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덮어버린 건 납득하기 힘들다. 전씨는 ‘내일신문’ 기자에게 “며칠 후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조사받은 지) 4일까지는 안 됐다”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사실 사직동팀의 최초문건은 지난해 11월22일 배정숙씨가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 초 옷사건에 대한 서울지검 수사가 시작될 즈음 ‘조선일보’는 옷사건 관련자들의 조사 내용이 담긴 것이라며 모종의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뒷날 배씨가 공개한 것, 특검이 확보한 것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만약 ‘조선일보’에 최초문건을 넘긴 사람이 배씨라면 더 따지고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배씨가 아닌 제3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검찰은 마땅히 이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어야 했다.
또 하나의 의문은 이미 언론에 알려진 대로 ‘김총장’과 ‘金총장’의 차이점. 배정숙씨가 공개한 문서와 검찰이 사직동팀 컴퓨터에서 확인한 문서의 내용은 같다. 그런데 배씨가 공개한 문서엔 김태정씨가 한자인 ‘金총장’으로 표기된 반면, 검찰이 압수한 사직동팀 디스켓에서 출력한 문서엔 ‘김총장’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박씨에게 문서가 전달될 당시 완성본이냐, 작성 단계에 있는 것이냐의 차이일 뿐 대세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박씨는 이 차이점이야말로 자신이 김태정씨에게 문서를 전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즉 사직동팀이 디스켓에 있는 최종본 작성 전에 한자로 기록된 상태의 문서를 출력해 외부에 유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씨의 사법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의문 가운데 하나는 그가 곧 드러날 사실을 왜 그토록 완강히 부인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박씨와 사직동팀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입을 다물면 영원히 진실이 묻히리라고 판단했던 것일까. 검찰은 이를 두고 “처음에 대통령에게 문서 작성사실이 없다고 허위보고하고 이를 언론에 공표했기 때문에 그 후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의 언행을 살펴보면 거짓말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로만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지난해 11월17일 특검팀이 사직동팀 최초문건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박씨는 문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이어 11월22일 베일에 가려져 있던 문서 내용이 배정숙씨를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박씨는 기자들에게 “황당무계한 얘기”라며 “사직동팀 문건에 반드시 들어가는 작성일자가 없으며 양식도 다르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청와대 인사들에게도 같은 주장을 폈다.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의 기억을 들춰보면 최초문건에 대한 박주선씨의 태도는 확신범과도 같은 것이었다.
“최초문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박씨에게 물어봤다. ‘그게 어떤 것이냐, 사실이냐’고. 그러면서 ‘사직동팀을 한번 체크해볼 필요가 있지 않으냐’고 조언했다. 그런데 박씨는 ‘절대 받은 것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굉장히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 줄 믿었다. 그 뒤 언론에 내용이 공개돼 다시 물어봤는데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 번 챙겨보지 그러냐’고 권했는데 그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박씨는 11월22일 오전 최총경을 만난 후 점심식사 때 김중권 당시 비서실장에게 최초문건은 사직동팀과 관련이 없다고 보고했다. 또 법무비서관실 소속 직원들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의 지휘를 받는 직원들은 내심 불안했다. 양식이나 내용에 비춰 사직동팀에서 작성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에게 “(사직동팀을) 너무 믿지 말라”는 건의도 했다. 그러나 박씨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사직동팀에서) 아니라는데 어떻게 하냐”고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와대 관계자 중에는 그가 최초문건에 나타난 이혜음씨(라스포사 종업원) 관련 기록을 가리키며 “이혜음은 조사 안 했다고 들었는데…”라고 말한 것을 들은 사람도 있다. 이쯤되면 ‘이중 플레이’가 아닌 ‘삼중 플레이’라 할 만하다.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박씨가 최종보고서에 대해선 순순히 시인했다는 점. 지난해 11월26일 박시언씨가 최종보고서를 공개하자 그는 곧바로 김태정씨에게 이를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박준영 공보수석에게도 “이거 우리한테서 나간 건데”라며 유출 사실을 시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문건은 최종보고서 보다 나흘 먼저 공개됐다. 박씨가 거짓말을 하기로 작정했다면 뒤에 공개된 최종보고서 유출 사실도 잡아뗐어야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어차피 최종보고서 문제로 비서관직에서 물러나고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마당에 최초문건은 모른다고 우겨 그가 얻을 이익은 뭘까.
박씨의 혐의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최초문건 유출이 최종보고서보다 더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내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문서를 유출시킨 것과 내사가 끝난 뒤 건넨 것은 차이가 있다는 시각이다. 그럴 듯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 또한 다른 각도에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당시 관련자 조사기록과 문서내용을 보면 최초문건이 연정희씨에 대한 조사가 끝난 후 김태정씨에게 넘겨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씨의 변호인 박선주 변호사는 “최초문건이나 최종보고서나 둘 다 당사자 조사가 끝난 다음 유출됐는데 무슨 차이가 있냐”고 말했다.
최초문건의 양식이 보고용으로 적절치 않다는 점도 사직동팀의 진술 내용을 의심케 한다. 최초문건 3개는 상부 보고용으로 믿기 어려운 몇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데다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문장도 보고용으로 적합지 않다. 그중 2개의 문서는 첩보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팀장에게 보고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보고하기엔 너무 ‘거친’ 문서들이다. 게다가 일부 문서엔 작성 날짜도 잘못 적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정보 부서의 한 직원은 이에 대해 “첩보 수준의 문서를 청와대에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문건 수준의 문서라면 내부 보고용일 가능성이 높고 청와대에 보고했다면 팀장이 보고서 형태로 ‘손질’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한층 심각한 논쟁거리는 박씨가 최초문건을 김태정씨에게 전달한 혐의. 이는 박씨가 사직동팀으로부터 최초문건을 보고 받았다는 점과는 별개의 문제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특수한 친분관계와 최종보고서를 전달한 점에 비춰 최초문건도 박씨가 유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사람 관계를 잘 아는 사직동팀이 박씨를 젖혀두고 김씨측에 직접 전달하는 일이 가능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부분에 관한 한 검찰의 공소유지는 위태로워 보인다. 문서를 받았다는 사람이나 줬다는 사람 어느 쪽도 이를 시인하지 않은 탓이다. 증인도 없다. 박선주 변호사는 이에 대해 “최초문건을 (사직동팀으로부터) 받았다는 혐의는 그렇다 치자. 최광식의 진술이 있으니까. 하지만 김태정에게 문서를 건넸다는 혐의는 뭘로 입증할 것인가. 아무런 증거가 없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박주선에게 안 받았다”
사실 김씨가 입을 열면 ‘박주선 미스터리’의 핵심은 거의 풀린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댄다면 법정 공방은 검찰의 완패로 끝날 것이다. 박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공용문서 및 증거 은닉 혐의도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씨는 알쏭달쏭한 얘기를 되풀이해왔다.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박주선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는 게 그 요지. 구치소에 찾아온 수사검사에게도 똑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김씨의 한 측근은 “그토록 중요한 문서의 전달자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에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나. (전달자가) 박주선은 아니라고 하면 증거가 없으니 (박씨를) 잡아넣지는 못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월6일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전화통화에서 박씨가 전달자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박주선은 아니다. 이제 와 내가 누군가를 거론하면 새로운 파장이 일지 않겠는가. 그것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고 나라가 그 사건으로 다시 시끄러워지지 않겠는가. 내가 그만큼 아니라고 그랬는데도 박주선을 잡아넣었으니….”
김씨의 침묵에 대해 옷사건 특검수사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최초문건 유출자가) 박주선씨가 아니라면, 김태정씨는 자신의 여죄가 드러날까봐 입을 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만약 김씨와 사직동팀이 박씨를 젖혀두고 직·간접으로 접촉했다면, 김씨로선 이 사실을 절대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 주임검사인 박만 검사는 이런저런 의문점에 대한 기자의 확인 요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리 조직원이 관련된 사건이어서 말하기가 몹시 불편하다. 재판을 앞두고 증거에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검찰의 입장을 이해해달라.”
박씨의 변호인단에 참여한 변호사 수는 80여 명. 개인 변호인단 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씨의 변호인인 박선주 변호사는 “법조인들은 다 말도 안 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많은 변호인들이 무료 변론을 자청한 것은 검찰에 대한 집단 항의 표시로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린 검찰이 김태정·박주선씨 두 사람을 사법처리하지 않고선 옷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으며 그렇게 해야만 국민들에게 투명한 수사로 비친다는 압박감 속에 수사를 진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검찰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울며 마속 베기’를 한 검찰의 고민이 법정에서 당혹감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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