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세계화 5대파도 넘어야 일류국가 보인다

  • 박세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석좌교수

    입력2006-12-15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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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정부시절 청와대 정책기획 및 사회복지 수석비서관을 맡아 ‘개혁정책’을 입안했던 박세일씨가 2000년을 맞아 장문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 글은 ‘세계화의 도전’이란 문제제기와 ‘자주적 세계화의 모델’이란 해법으로 구성됐는데 여기서는 전반부를 소개한다.<편집자>》
    2000년이라는 새로운 천년을 맞아 온 인류가 희망과 우려, 기대와 걱정을 함께 하는 요즈음이다. 이러한 시대의 대전환점에서 한반도는 하나의 거대한 문명사적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태평양으로부터 거세게 몰려오는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거대한 파도가 그것이다. 이 거대한 파도가 한반도를 단숨에 삼켜 우리나라를 초토화시키며 다시 후진국으로 전락시킬 것인지, 아니면 이 큰 물결을 타고 우리가 욱일승천(旭日昇天)하여 진정한 의미의 세계 일류 국가로 거듭날 것인지, 우리는 지금 이러한 강요된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다.

    세계화 정보화라는 새로운 시대적 도전은 단순히 양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19세기나 20세기의 근대 세계질서나 근대 문명의 단순한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인류역사의 고대 중세 근대라는 세번의 단계가 끝나고 탈(脫)산업주의 탈(脫)민족국가 탈(脫)근대라고 하는 역사의 네번째 단계로 이행하는 문명사적 대변혁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마디로 인류가 종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문명 속으로 들어가는 대전환기인 셈이다.

    세계화라는 변화에 올바로 대처하여 우리가 역사의 승자가 되기 위하여는 세계화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도전이 어떠한 것인지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도는 우리에게 다음의 5가지 도전을 강요하고 있다. 이 5가지 난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우리 운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첫째 도전은 세계금융자본시장의 대변화라는 도전이다.

    소위 금융혁명이라는 도전이다.



    세계금융자본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거대화하고 있고 그 이동은 초를 다투며 지구촌을 돌고 있다. 1일 평균 금융자본 총거래의 80%인 8000억달러의 단기 투기 자본이 지구촌에서 거래되고 있다. 동시에 주요 의사결정이 미국 월스트리트의 소수 자연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경제외적 요인 특히 정치적 요인과 집단심리적 요인들이 세계자본이동에 끼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이들의 투자 방향이 한번 선회함에 따라 개별국가의 실물경제에 엄청난 파괴력을 줄 수 있다. 하루아침에 경제를 파탄과 불황의 늪으로 곤두박질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최근의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생생한 실례를 경험하지 아니했던가? 제2, 제3의 금융위기가 언제 다시 아시아에 혹은 지구의 다른 지역에 올지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 가지 차원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첫째 글로벌 차원에서는 소위 신금융질서기구(New financial architecture)의 구축을 위하여 경제·외교적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세계금융자본시장에서 단기 투기자금의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자본주의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다. 따라서 전지구적 차원에서 특히 헤지 펀드(Hedge fund)를 중심으로 하는 단기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가 시급한 과제다.

    둘째 아시아나 동북아라는 지역적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지역적 차원의 대비책 가운데 하나로 일본이 소위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 아이디어를 주장한 바가 있다. 세계금융위기에 대하여 아시아지역 나름의 제도적 장치를 가지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셋째 개별국가 차원에서 자구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단기투기자본의 움직임에 대하여 예치금의 요구나 조세부과 등을 통하여 단기투기자금의 이동비용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단기형 자본의 이동규모를 줄이고 장기형 투자로 유인해야 한다. 칠레의 성공사례나 말레이시아의 최근 예를 참고하여 우리에게 맞는 구체안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해외 단기투기성 자금에 대한 국내수요를 가능한 한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자본의 국내외 움직임에 대해 신속 정확한 정보수집 분석체계를 갖추어야 하고 긴박한 상황의 발생에 대비한 단기 비상대응책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노력과 더불어 대단히 중요한 것은 금융산업의 구조개편이다. 금융산업의 투명화와 건전화, 그리고 적절한 금융감독의 강화이다. 금융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지 않고는, 현재와 같은 부실구조를 건전화하지 않고는, 그리고 고도의 금융감시와 금융 감독체제를 구축하지 않고는 우리 금융이 세계적 금융혁명의 시기에 살아 남을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 진행중인 금융개혁은 훨씬 강도높게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도전은 최첨단 신기술 혁명이다.

    소위 정보혁명과 유전자혁명의 도전이다.

    현재 세계에서는 21세기 발전을 주도할 5대 선도핵심기술분야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전자, 정보통신, 신소재, 생명공학, 그리고 에너지 기술분야가 그것이다. 이중 특히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 분야의 기술혁신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도 가장 크다.

    이들 신기술의 급속한 개발이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과학과 기술격차를 더욱 벌려 놓을 뿐 아니라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우리 삶의 전 시스템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다. 그리고 각국의 산업과 무역의 기존 비교우위구조를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특히 인터넷과 이-비즈니스(e-business)를 축으로 하는 기업부문의 정보혁명은 엄청나게 가속되고 있다. 이미 작년 11월 현재 세계 인터넷 인구는 약 2억 5900만명을 넘어섰으며 우리나라도 568만명을 상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증가율은 한마디로 기하급수적이다. 우리나라도 PC 보급률, 인터넷 인구수 등 양적 측면의 정보화는 상당히 빠른 수준이다. 인터넷 인구수로는 이미 세계 10위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하드웨어 중심이고 소프트웨어의 개발은 낙후되어 있으며 정보산업 자체의 진전은 있으나 재래산업과의 결합이 대단히 미흡하다. 따라서 산업구조전반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꾀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세 분야에서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교육개혁과 노사개혁이다. 이 두 가지 개혁의 궁극 목표는 우리의 학교와 직장과 가정, 이 3자를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평생학습의 장으로 만드는 데 있다. 교육개혁과 노사개혁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만큼 새로운 정보와 지식과 기술을 쉽게 배우고 쉽게 익힐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국부와 개인행복의 수준이 축적되고 활용되는 지식과 정보 기술의 양과 질에 의하여 결정되는 지식정보사회, 지식기반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번영하는 길은 국민 모두의 지식정보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둘째는 소위 기업개혁이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기업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기업문화를 바꾸어 오너의 권한과 책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 이사회 구성이 개혁되어야 하고 이사회의 경영감독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문경영인들의 역할이 제고되고 기술자와 기능인들이 존중받는 기업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소액주주, 근로자, 채권자, 소비자들의 의견도 균형있게 경영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정부의 새로운 산업기술과학정책이 나와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자유방임적 경제사상의 영향을 받아 국가의 산업기술과학정책에 대한 부정적 내지 소극적인 견해가 만연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국가의 산업기술과학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화는 약육강식의 시장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 적나라한 자본의 논리, 효율중시의 시장 논리가 경제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을 무한경쟁 내지 무차별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소위 메가 경쟁(Mega competition) 시대이다. 그 결과 부와 소득의 분배는 크게 악화되고 공동체적 연대는 파괴되며 배금주의가 팽배하고 정신적 가치는 멸시되고 있다. 부와 소득의 분배악화는 세계화시대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IMF 금융위기 이후 부와 소득의 배분악화는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바다. 최하 20%에 속하는 계층의 실질소득이 1997~98년 1년 사이에만도 23.7% 하락했다 그런데 동기간에 상위 20% 계층의 실질소득 하락은 6.5%에 불과했다.

    문제는 부와 소득배분의 악화, 사회적·계층적 갈등의 증대 등이 빚는 공동체의 붕괴 현상을 어떻게 막으면서 세계화의 파도를 넘어갈 것인가이다. 우리는 세계화가 요구하는 시장의 논리, 경쟁의 논리를 거부할 수는 없다. 이를 수용하고 이 큰 흐름을 타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붕괴를 그대로 둔 채 진정한 국가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이 극단의 시장개인주의(Market individualism)를 추구하면서도 공동체적 연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미국의 법률제도는 대기업과 대자본의 횡포와 타락의 가능성에 대하여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소송비용의 본인부담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서 일반 국민들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대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독일과 같이 패소자부담제도다.

    미국에서는 칼빈주의(Calvinism)적 금욕정신과 직업관 내지 노동관이 아직 광범위하게 살아 있다. 한마디로 미국에서는 부를 도덕적 성취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신들이 쌓은 부를 자식들에게 세습하지 않는다.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공익증진을 위한 각종 활동기금, 자선단체 등에 기부한다.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으로 이러한 공익기금(foundation)을 만든 것만도 현재 4만개가 넘는다.

    이러한 기금들은 공공정책을 연구하는 민간연구단체 지원 (각종의 싱크탱크 지원 ), 소비자보호활동 환경보호활동 등의 비정부기구(NGO)활동 지원, 그리고 장애인 노인 영세민 등을 위한 복지활동 지원 등등에 활용된다. 이러한 금욕정신과 기부문화 때문에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존경을 받는다.

    소위 벌런터리즘(voluntarism) 이라고 불리는 자원봉사정신 혹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이웃사랑운동도 공동체적 연대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전국민의 51%가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평균 주당 4.2 시간을 자원봉사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단체가 전국에 약 140만개나 된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는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물밀 듯이 들어오는 미국의 시장주의와 개인주의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세계화가 빚어내는 공동체의 해체라는 도전에 대하여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세계화의 파도 속에서 급속히 약화되고 있는 공동체적 연대를 다시 복원하고 강화할 우리 나름의 법적·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는가. 사상적·정신적 자산은 있는가. 문화적 전통은 과연 있는가.

    넷째 도전은 전사회 시스템에 총체적

    구조조정(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이 재창조되어야 한다. 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 정부와 공공부문의 개혁, 정치개혁과 사법개혁, 교육개혁과 노사 및 복지개혁 등 사회 전 분야에 구조조정과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금융과 산업, 그리고 공공부문에는 시장 원리와 경쟁 원리가 과감히 들어와야 한다. 동시에 정치와 노사 그리고 복지개혁에는 공생의 원리와 협력의 원리가 보다 확실하게 들어와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분야에 따라 영미식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필요한 분야도 있고 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사회 각부문의 제도와 법, 의식과 관행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개혁 주체인 국가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서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물론 그 정부의 기본 정책 그리고 그 사회의 기본 제도 (공무원제도, 삼권분립, 교육제도 등)에 대한 국민적 믿음, 신뢰가 중요하다. 그래야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과 개혁을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다.

    둘째는 개혁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발달해 있어야 한다.

    정책결정이 소수의 관료들에 의하여 독점적으로 수립되고 집행되던 시대는 갔다. 이제는 구조조정정책, 개혁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구조조정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이를 위하여 정부가 국가정책을 수립할 때는 공개적인 절차와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상응하여 시민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학계, 연구기관, 그리고 시민단체, 언론들 사이에 정부정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 분석과 연구, 그리고 제대로 알고 하는 토론(Informed discussion)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비판의 예리함도 중요하나 정책대안을 만들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이러한 쌍방의 노력을 전제로 민관합작의 정책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각종 싱크탱크, 시민단체와 언론 등이 함께 참여하는 정책토론 네트워크가 상설화하고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일, 즉 공공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을 수많은 독립적 싱크탱크(Independent think tank)들이 해내고 있다.

    셋째 개혁과정에 나타나는 분쟁과 갈등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분쟁조정기구가 발달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개혁과정이란 본래가 구(舊) 재산권관계(구 권리의무관계 내지 이해관계)를 신(新) 재산권관계로 바꾸는 과정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이해의 상충과 득실의 반전이 일어나며 그 결과 사회경제적 갈등과 분쟁이 공공연히 발생한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구조조정과 개혁을 위하여는 구조조정과 개혁 과정에 발생하는 각종 경제·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분쟁해결제도를 잘 발전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야 원활한 구조조정이 가능해진다.

    넷째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의 확충이다. 구조조정과 개혁과정에 발생하는 비용과 고통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개혁의 이익은 장기간에 걸쳐 모두에게 고르게 배분되지만 개혁의 비용과 고통은 소수에게 단기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공동체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적정수준의 보상이 따라야 한다.

    다섯째 도전은 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간

    경제적 안보적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문제다.

    동북아는 방대한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있는, 시장의 잠재적 가능성이 대단히 큰 지역이다. 일본의 첨단기술과 자본, 한국의 중간기술과 개발경험, 중국의 노동집약기술과 체제전환경험 등을 잘 결합시키고 여기에 서구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경영자원을 잘 유인해 오면 앞으로 이 지역이 21세기 세계경제성장의 새로운 메카가 될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개발은 IMF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새로운 비전이 될 수 있고 북한에는 경제회생의 결정적 호기가 될 수 있다.

    동북아에 구축된 경제협력체제는 현재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영미식 세계화에 대한 일종의 견제 내지 쿠션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 주도의 일방적 세계화에 대하여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이 적절한 견제기능을 하듯이 동아시아에서도 그러한 쿠션 기능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그러한 기능이 전무하다. 개별국가가 항상 1 대 1로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만일 아시아 경제권이 나름대로 긴밀한 협력체제를 마련하고 있었더라면 과연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이렇게 허망하게 왔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앞으로 아시아 금융기금(AMF), 아시아만의 결제수단(Asian Currency Unit)개발, 동북아 개발은행 내지 개발기금 설립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 민족의 남북한 통일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동북아에 새로운 다자간 경제적 군사적 협력의 지평을 여는 구도 속에서 남북문제의 해결을 구해야 비로소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당분간은 미일간의 2자협력체제인 신안보협력체제(New Guideline)가 동북아 평화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장기적으로는 어떤 형태든 독자적 역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도 세계질서가 미국 중심의 1극체제(uni-polar system)로 가는 것은 분명히 반대하고 있고 가능한 한 다극체제(multi-polar system)로 가기를 원할 것이다. 한국도 한미간의 2자협력체제만으로는 한반도평화와 통일을 위한 장기전략이 불완전함을 알고 있다. 요컨대 장기적으로는 냉전시대의 2자협력체제를 끝내고 탈냉전시대의 다자간 협력체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에서 경제적 협력체제와 군사적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인가는 우리나라가 세계화의 파도를 넘고 21세기 통일된 단일 민족국가로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동북아 협력구상이 성공하기 위하여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하나는 미국 중국 일본 중 어느 한 나라도 이 지역에서 어떠한 형태의 패권주의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다른 하나의 조건은 한국이 이 지역의 군사적 안보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성공적인 조정추 역할을 해내야 하고 동시에 이 지역에 경제적 협력관계를 윈 윈(Win-Win)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도 역시 성공적인 조정자 노릇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화라는 문명사적 파도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5대 국가 과제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을 지구적 공간적 차원에서 살펴본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들 과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을 역사적 시간적 차원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환언하면 세계화가 제기하는 과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음에 있어 외국의 제도 경험 등에서 배울 것이 많으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우리나라의 역사 전통 의식 문화의 맥락 속에서 해결책을 구하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정책이라도 국민적 가치나 정서에 어긋나거나, 아무리 선진국의 제도라 해도 국민적 의식과 문화수준에 맞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화도 한국에 맞는 자주적 세계화여야 한다. 더 나아가 아시아국가들이 참고할만한 아시아형 세계화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세계화라는 지구적 차원의 보편적인 움직임과 한국이라는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이 함께 조화되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무시되면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역사성이 없는 미국식 세계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의 차이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주적 세계화, 아시아형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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