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인터넷 황제’ 손정의 한국 인맥

  • 최수묵 동아일보 경제부 차장대우

    입력2006-12-21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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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정의 신드롬’이 벤처업계를 강타했다. 그가 본격적인 한국 투자를 선언함에 따라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가 격변의 계기를 맞고 있다. ‘손정의 리스트’에는 누가 올라 있을까. 그의 한국 투자는 어떤 구도로 전개될 것인가. 》
    ‘인터넷 황제’ 손정의(孫正義·43) 사장의 골프 핸디캡은 5 안팎이다. 18홀 72타를 정규타수로 본다면 샷의 실패확률이 6.5% 정도에 불과한, 프로 못지않은 실력이다. 키도 작고 운동신경도 그다지 뛰어날 것 같지 않은 그가 이처럼 프로급의 골프실력을 쌓게 된 것은 오직 치열한 노력 덕분이었다.

    그의 도쿄 아자부 저택 지하에는 최첨단 시뮬레이션 골프연습장이 설치돼 있다. 라이(공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 연출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그는 짬만 나면 맹렬한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라운딩을 했던 나래이동통신 이홍선 사장은 “드라이브뿐 아니라 아이언 샷과 퍼팅, 그리고 트러블에 빠졌을 때의 전략 등이 골고루 탁월했다”고 손사장의 골프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골프의 ‘칼’을 치밀하게 갈고 닦듯이 손사장은 사업을 할 때도 치밀하게 준비하기로 소문나 있다. 95년 4월 컴덱스사를 인수할 때의 일. 당시 손사장은 컴덱스의 셀던 아델슨 회장과 마주 앉아 지분매각 협상을 벌였다. 그는 수인사가 끝나자마자 “받고 싶은 가격을 딱 한 번만 말하시오. 타당한 가격이면 흥정없이 지불하겠소”라며 전격적인 ‘단발승부’를 제안했다. 당황한 아델슨 회장은 잠시 생각하다 8억달러를 제시했다. 손사장은 아델슨 회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OK!”를 외쳤다.

    협상은 시작된 지 5분도 못 돼 타결됐다. 하지만 손사장의 이날 행동은 결코 돌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컴덱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끝내고 8억5000만달러까지는 줘도 된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一流功守群, 偵情略七鬪’



    세계 인터넷 비즈니스계에 ‘살아 있는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손정의 사장이 이번에는 한국 투자를 본격 선언하고 나섰다. 초기 투자액은 예상보다 적은 1억달러(1160억원) 규모로 발표됐다. 제조업의 잣대로 볼 때는 다소 ‘실망스러운’ 액수다. 연초 삼성 현대 LG SK 등 국내 대기업들이 1000억∼3500억원을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충격적인 액수는 아니다. 코오롱그룹만 해도 단독으로 인터넷과 벤처기업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손정의 사장이 가진 영향력은 금액으로 견줄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그의 투자는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에 표피적인 지각변동을 넘어 본질적인 변화를 ‘강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손사장은 늘 미소를 잃지 않는 동안(童顔)이다. 만성 간염을 앓았던 병력이 있긴 해도, 혈색 좋은 얼굴이 산사의 동자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목소리도 나직하고 부드럽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기를 즐기고 자신의 말은 극히 아낀다. 상대방을 푸근하게 만들어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다.

    그는 ‘손자병법’을 30차례 이상 독파했다고 하는데, 그의 측근들은 “손사장이 손자병법을 투자와 경영에 자유자재로 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힘이 없을 때는 동맹을 구축한다거나 허허실실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 갖가지 전략과 전술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한다는 것.

    손사장은 ‘일류공수군(一流功守群)과 정정약칠투(偵情略七鬪)’를 경영전략으로 밝힌 바 있다. 일류가 안 되는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고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갖추며 집단과 연대로 승부를 건다는 것이 ‘일류공수군’, 전체를 조감하면서 정보를 얻고 전략을 세우며 70%의 승률이 있을 때 승부에 나선다는 것이 ‘정정약칠투’다.

    손사장은 나래이동통신과 공동 설립한 소프트뱅크홀딩스코리아(SBHK)와 곧 설립할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SBVK)를 통해 한국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두 회사의 사장은 한국측 파트너인 나래이통 이홍선 사장이 맡는다.

    손사장과 이사장은 회사 설립과 병행해 본격적인 ‘벤처기업 헌팅 리스트’를 작성해가며 투자를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사장이 왜 한국에 투자를 하며 궁극적으로는 얼마만한 규모로 투자를 확대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투자한다’는 사실만 선언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그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손사장은 소프트뱅크를 통해 이미 일본에 2000억엔대의 벤처펀드를 설립,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한국에 대한 투자액도 3000억∼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SBHK는 앞으로 3년간 100개 인터넷기업에 투자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그러나 1~2년 내에 목표했던 투자수익을 거둔다면 투자대상을 30~50여개로 대폭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 초기 자본금은 손사장과 나래이통이 8 대 2의 비율로 출자했다.

    인수·합병에는 무관심

    미국식 투자조합인 SBVK를 이용한 아웃소싱도 추진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조달될 투자금액은 2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SBVK의 자본금이 200억원인데, 펀드모집은 그 10배까지 허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투자가들도 펀드형태로 ‘손정의 칩(chip)’에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손사장의 투자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그의 독특한 사업철학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이 성장하도록 지원할 뿐 인수·합병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해왔다. 투자에 대해 이익을 내면 그뿐, 기업의 소유에는 집착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는 미국 야후나 E트레이드사를 인수할 때도 “100% 소유를 원치 않는다. 단지 기업이 계속 성장하도록 돕겠다”고 할 뿐이었다.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은 이와 같은 투자개념을 ‘20세기 최고의 발명’이라고 극찬한다. 손사장의 투자철학은 기존 인수·합병 개념이나 오너 중심의 기업경영 관행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 100여개의 투자회사를 관리하는 일본 소프트뱅크 직원은 5명에 불과하다. 그는 왜 다른 사람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인정하면서 10~30% 수준에서만 지분 참여를 하겠다는 것일까.

    우선 인터넷사업은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매우 다양한 장르로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어떤 산업이라도 ‘온라인’이라는 옷만 입으면 금세 인터넷사업으로 돌변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 노하우나 아이디어의 지속적인 발전이 필수적인 100% 인수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보다는 30%만 투자해 수익을 회수하는 실리전략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 손사장은 모든 장르의 인터넷사업을 장악하는 조직과 전문성을 갖춘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모든 성(城)을 점령하는 소모전을 피하고 성주(城主)들과 연대해 주적(主敵)과의 결전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5년 내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인터넷제국을 건설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강력한 네트워크의 연대임에 틀림없다. 모든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자본과 노력의 부담을 피하면서 세계적인 우군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단순히 수익만 추구하는 투자가에 그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그가 세계 인터넷 시장에 패자로 군림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앞으로 주목할 것은 그가 투자하는 ‘나무들’보다는 그 나무들이 형성하고 있는 ‘숲’의 구도라는 것이다.

    손정의의 사람들

    손사장의 세계전략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은 활력 넘치는 30대들이다. 한국측 파트너 역시 30대의 이홍선 사장이다. 미래산업인 인터넷 비즈니스에 걸맞은 ‘세대구성’을 마친 셈이다. 그의 주변인물들을 살펴보자.

    ▲조나단 엡스타인 손정의 사장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중 핵심. 국내 업계는 지난해 12월 손사장이 한국 방문 때 그를 대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무게를 실었다.

    엡스타인은 손사장의 대학동창이지만 연배로는 후배. 현직은 전략기획실장이다. 그러나 그가 맡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직책은 ‘나스닥 일본’의 기획실장. 손사장은 나스닥을 일본은 물론 유럽에도 상장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고 이를 추진하는 일을 그의 친구이자 핵심참모인 엡스타인에게 맡겼다.

    ▲데이비드 김 지난해 12월 영입된 아시아지역 책임자. 한국교포 2세로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미국 라이코스에서 인터넷 비즈니스를 배웠고 최근까지 차이나닷컴의 재무담당 책임을 맡았다. 그는 기자에게 “손사장이 좋아서 자리를 옮겼다”고 말할 정도로 손사장에게 푹 빠져 있다. “스톡옵션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인터넷 비즈니스는 돈보다 성취감이 매력”이라고 답할 정도로 패기에 차 있다. 업계에서는 데이비드 김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한국시장에, 차이나닷컴 출신이라는 점에서 중국시장에 동시에 내놓을 수 있는 손사장의 새로운 ‘마이티(Mighty) 카드’로 해석하고 있다.

    ▲문규학 ‘PC위크’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이네이블’ 등을 출판하는 (주)정보시대 사장. 미국에서 MBA를 받은 뒤 야후에서 일했고 소프트뱅크벤처스테크놀로지의 펀드매니저 다섯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이들 펀드매니저들은 각각의 영역을 갖고 활동했으며 문사장은 전자상거래 부문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사장은 지난해 나우콤 인수를 추진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문사장은 당시 손사장의 ‘뜻’을 받들어 인수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문사장은 “ISP(인터넷 서비스 프로바이더)를 인수해야만 인터넷의 흐름을 알 수 있다”며 ISP 인수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그는 스스로 손사장의 ‘한국 내 대리인’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홍선 손사장의 한국측 파트너.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의 차남으로 미국 플로리다 공대를 나왔다. 이사장은 야후의 창립자인 제리 양과 함께 야후코리아를 설립했다. 이후 손정의 사장이 미국 야후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자연스럽게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장은 손사장의 파트너로만 머물지는 않겠다는 생각. 나래이동통신을 인터넷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자본금 150억원 규모의 인터넷증권사 설립을 추진하는 등 독보적인 인터넷사업가로 변신중이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 단독 면담

    손정의 사장은 지난해 12월20일 밤늦게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방한 일성(一聲)으로 “한국의 인터넷 열기가 무척 달라졌다. 그것은 공항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공항에는 30여명의 기자가 손사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취재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손사장을 둘러싼 참모들은 일체의 대화를 차단한 채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다. 손사장은 출국장으로 나온 뒤 VIP룸으로 향하지 않고 곧장 숙소인 신라호텔로 향했다. 그가 공항에서 한 말은 한 번의 ‘Yes’뿐이었다. 한 기자가 “한국 인터넷 사업전망이 밝다고 보느냐”고 묻자 대꾸한 말이다. 나머지 모든 질문에 대해서는 “Not decided”라고 답했다. 그의 도착 당일 아침 동아일보가 “손사장이 향후 3년간 100개의 인터넷 기업에 투자할 것”이라며 그의 투자전략을 상세히 보도했기 때문에 스스로 말조심을 한 것이었다.

    이날 밤에는 공식 일정이 없었다. 조나단 엡스타인, 데이비드 김 등 핵심참모와 함께 투자전략을 최종 점검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 한국에서는 이홍선 사장이 그를 영접했다. 손사장은 다음날 오전 7시30분 호텔 내 다이너스티 룸에서 조찬강연을 했다. 일부에서는 그 이전에 손사장이 업계의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는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이날 아침 손사장과 단독 요담했다고 전한다. 이 자리에서 이회장은 코오롱이 2000년에 지주회사를 설립, 인터넷 벤처에 1000억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임을 밝혔고 이에 대해 손사장과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코오롱과 손사장이 함께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코오롱측은 “합의된 것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급급했던 코오롱이 신세기통신 지분 매각으로 1조691억원의 여유가 생기자 이를 기반으로 차세대 산업인 인터넷 비즈니스 쪽으로 진출하려고 일종의 ‘타진’을 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강연이 끝난 오전 9시30분, 손사장은 삼보 이용태 회장과 한국 내 투자를 위한 제휴협약을 체결했다. 120여명의 기자가 몰려든 이 자리에서 손사장은 전세계 투자전략의 일단을 설명했다. 그의 발언 요지는 이러했다.

    “현재 소프트뱅크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은 미국에 140개, 일본에 50개, 유럽에 20개로 모두 200개가 넘는다. 앞으로 이를 더 확대할 것이며, 그 수는 5년간 780개에 이를 것이다. 한국에는 3년간 100개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100개라는 것은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꼭 100개가 아닐 수도 있다(이와 관련, 손사장의 핵심측근은 ‘투자한 기업에서 의외로 높은 성과를 거둘 경우 투자대상 기업은 50개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래의 이홍선 사장이 투자기업을 선별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투자 리스트가 확정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나는 잠재력이 있는 미래의 기업에 투자할 것이다. 현재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머지않아 설립할 기업들도 투자 대상에 포함될 것이다.

    인터넷은 모든 산업과 연결돼 과거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이버 증권거래의 경우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활발하다고 판단한다. 금융과 관련된 인터넷투자를 더 확대할 것이다.”

    점심식사는 당초 동아일보 오명 사장, 중앙일보 금창태 사장,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등 언론사 사장과 전경련 김각중 회장을 초청한 가운데 삼보 이용태 회장이 함께할 계획이었으나, 중앙일보 금사장과 조선일보 방사장은 불참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업계의 주요 인물을 잠깐 만났다”는 게 주최측의 귀띔. 그 이상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후 3시30분, 손사장은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면담했다. 짧은 만남이었다. 손사장은 이 자리에서 인터넷 투자와 청소년에 대한 인터넷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손사장의 건의를 상당 부분 참고해 보름 뒤 신년사를 통해 모든 교실에 PC 1대씩을 보급하고 초고속통신망을 2005년까지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를 나선 손사장은 저녁 비행기로 한국을 떠났다. 올 때는 일본에서 왔지만 갈 때는 미국으로 갔다.

    손사장이 이번 방한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난 것은 12월21일 아침이었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초청강연이었다. 그는 2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자신의 경영철학, 그리고 21세기 인터넷 비즈니스 전망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손사장의 강연에 앞서 이용태 회장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손사장의 인품과 비즈니스 스타일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회장은 “손사장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시했으며, 이 모델은 소프트뱅크를 5년 내에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기업에 투자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손사장의 투자철학도 높이 평가했다. 이회장은 “젊은 친구들이 미래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데, 손정의의 총을 맞은 놈들은 죽지 않고 날개가 생겨 오히려 더 잘 뻗어 나간다”고 비유했다.

    이어 손사장이 강단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했으며 얼굴엔 시종 옅은 미소를 띠었다. 좀 길지만 그의 강연내용을 옮겨보자.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놀란 것은 한국 경제가 갈수록 건전하게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의 확산과 수용 속도가 아주 빠르다. 소프트뱅크가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투자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의 인터넷혁명을 도울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고 싶다.

    나는 혼합된 문화에서 성장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기 전에 미국에서 작은 사업을 했다. 미국에서 교육받았고 미국에 많은 친구가 있다. 가족과 선조는 한국인이다. 나는 100%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4년전 인터넷에 눈 돌려

    나는 4년 전 사업 방향을 인터넷으로 결정했다. 이전에 시스코시스템스와 합작투자도 했지만, 사실상 인터넷에 눈을 돌린 것은 4년 전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인터넷은 막 시작단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젠 길거리의 표지판에도 ‘www’라는 월드 와이드 웹 주소가 씌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TV와 신문 잡지의 모든 광고에도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가 씌어 있다.

    거의 매달 미국에 가는데, 그때마다 미국은 변해 있다. 새로운 인터넷 기업인들이 훌륭한 아이디어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등 정보통신계의 거물들도 요즘 젊은이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인류는 2만년의 역사에 걸쳐 3단계로 발전했다(손사장은 파워포인트를 이용, 자신의 강의내용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스크린에 비추며 강의했다). 농업혁명이 첫번째다. 직접 손으로 식량을 만든 시대다. 두 번째가 산업사회, 세 번째는 정보화 사회다. 첫 번째에서 두 번째로 사회가 변할 때 패러다임이 변했다. 교육이나 정부의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파워를 가진 사람들도 바뀌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 토론이 활성화되지 않아 혁명이 일어났다.

    이제는 3단계로 진입할 때다. 그러나 전쟁을 할 수는 없다. 갈등 없이 새로운 사회로 진입해야 한다. 지적 혁명이 필요하다. 용감하게 새 사회로 진입하려는 결단과 선택이 필요하다.

    소프트뱅크의 비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인터넷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나의 집에는 50대의 PC가 있다. 이 PC는 전자레인지 TV 자동차 등 모든 집기와 연결되어 있다. 뉴욕의 호텔에서도 집 안의 집기를 작동할 수 있다.

    1992년 미국의 정보통신(IT)기업은 시가총액으로 상위 20대 기업에 한 곳도 들지 못했다. 93년 인텔이 처음으로 20위권에 들었고, 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합세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정보통신 기업은 세상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4개가 정보통신 기업이다.

    돈은 돈일 뿐이다. 시가총액은 하나의 척도일 뿐 기업의 모든 것을 평가하지는 못한다. 미국인 70%는 인터넷산업이 거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95%는 인터넷산업이 더욱 성장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인터넷산업은 PC산업을 훨씬 앞지르는 성장세를 보일 것이다.

    2005년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3억명에 이르러 미국을 제치고 인터넷 중심국가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를 주도했지만 이때부터 모든 게 바뀐다. 이에 대비해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청소년들을 교육해야 한다.

    나는 (총리 자문위원 자격으로) 일본 정부가 원한다면 모든 학생에게 PC를 1대씩 지급하고 초고속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게 무상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여기에 드는 돈은 100억달러 정도다. 이는 도쿄에 다리 하나를 놓는 정도에 불과한 액수다.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학생수가 적으니 적은 비용으로 훨씬 빨리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에는 본부(本部)가 모든 것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돕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마음가짐과 비전을 바꿔야만 성공할 수 있다.”

    어떤 기업이 초청됐나

    지난해 손사장은 국내 ISP인 나우누리를 인수하려다 실패했지만, 당시 인수추진팀을 이끌던 문규학 사장이 “인터넷 투자는 ISP에서 출발한다”고까지 말한 것을 보면 이들이 ISP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와 커뮤니티 사이버 몰, 온라인 게임, 멀티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 인터넷에 등장하는 갖가지 장르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베이스캠프 구실을 하는 ISP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ISP는 기본적으로 적정선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회원을 사이버 몰 혹은 게임 쪽으로 유도하는 기지가 된다. 또 ISP를 기반으로 각종 컨텐츠 사업자와의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손사장의 첫 작업은 ISP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ISP 이후 손사장이 점찍을 인터넷 비즈니스는 어떤 종목들일까. 그는 기자회견에서 “아직 투자할 기업을 확정하지는 않았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인터넷과 관련된 것이라면 증권, 금융, 전자상거래, 포털 사이트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투자대상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유무선 통신회사와 PC제조업체 등 인터넷 인프라 관련 기업도 일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옥석(玉石)은 철저히 가린다는 방침. 손사장은 “(성공을 100으로 보았을 때) 70% 정도 성장한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혀 기업의 성공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따라서 신생 벤처나 코스닥 등에서 이미 농익은 종목은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그가 투자해온 기업들을 보면 투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서 야후 E트레이드 카포인트 지오시티 사이버캐시 온세일 ZDNET 등 포털과 전자상거래 쪽을 중점적으로 사들였고 킹스턴테크놀로지(메모리보드 메이커) 등 일부 하드웨어 업체도 인수했다.

    그렇다 해도 향후 ‘손정의 칩’이 어느 쪽을 지향할지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단편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것은 방한 이튿날 조찬강연에 초청된 기업들의 면면이다. 물론 행사주관측은 “투자대상과 초청기업을 동일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초청자 150여명 가운데 순수한 인터넷 벤처기업 사장은 37명이었다. 대부분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는 신생 벤처기업들이다. 일부는 이미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들이다. 이중 주력군은 인터넷 비즈니스의 정점에 서 있는 전자상거래 관련기업들. 골드뱅크 아이커머스 이니텍 인터파크 휴먼컴퓨터 파이언소프트 등 6개 기업과 삼보컴퓨터 관련사인 메타랜드가 초청자 리스트에 함께 올랐다.

    골드뱅크는 지나친 주가 상승으로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98년 4월 인텔이 초청한 세계 인터넷기업 13개에 포함됐던 경력의 벤처. 인터파크는 골드뱅크와 함께 이미 코스닥에 등록,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여서 투자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휴먼컴퓨터는 전자상거래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이니텍은 전자상거래에 필요한 지불수단 등 솔루션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다.

    커뮤니티 분야에서는 5개, 게임 분야에서는 4개 기업이 각각 리스트에 올랐다. 톡톡 튀는 신세대 사이트인 아이팝콘, 여성전용 사이트인 예쓰월드, 육아 관련 사이트인 색동넷, 20대와 30대 등 세대별로 이용할 수 있게 한 인츠닷컴, 전문인 중심의 네트로21 등이 이번에 초청된 커뮤니티 사이트. 또한 스타크래프트의 국내 시합 주관사인 베틀탑과 인터넷 다마고치를 개발한 지오인터랙티브, 온라인 게임업체인 아이소프트와 NC소프트 등이 게임분야 리스트에 올랐다.

    사이버 몰도 상당수 포함됐다. 경매사이트 옥션과 서적 판매 사이트 와우북, 패션전문매장 코스메틱랜드 등이 그들. 이밖에 회원 확보가 활발한 3W투어 코아링크 등 여행·레저 사이트와 시티넷 등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업계 선두를 자부하는 코네스와 이찬진 사장의 드림위즈가 인터넷교육업체로 초청장을 받았다.

    인터넷을 떠받치는 인프라인 접속프로그램 검색엔진 등의 기술개발업체로는 건잠머리(MPEG) 나모인터랙티브(검색엔진) 네오위즈(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네오텔레콤(광중계기) 버추얼텍(인트라넷) 사이버다임(전자문서) 시큐어(보안벽) 인터링크(LAN)가 포함됐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회원을 충분히 확보했거나 전자상거래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 색다르고 독보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것도 공통점이다. 손사장의 선택기준인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실적’을 모두 충족시킬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손사장은 이 밖에 경영자의 자질과 구성원의 팀워크도 강조했다. 벤처기업가에 필요한 열정과 협동정신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조찬강연에 참석했던 멀티미디어 서비스업체 채티비의 나원주 사장은 “손정의 사장의 선택기준은 누구나 공감하는 21세기형 벤처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경영권이 보장된다면 손사장과 손을 잡겠다는 게 대다수 벤처기업가들의 의견이었다”고 참석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강연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elife21이라는 독특한 커뮤니티를 설립한 윤석민 사장도 “손사장의 투자방식은 벤처기업가들의 열의를 북돋는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벤처기업가들은 액수의 과다를 떠나 그런 경영철학을 가진 손사장과의 연대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손사장의 투자방식이나 경영철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강연에 참석한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은 “손사장의 방법에도 한계는 있다”고 지적했다. 손사장이 서구적 자본주의의 색깔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비유하자면 손사장은 A와 B 두 개의 기업에 투자했을 때 각각 이득을 보면 그뿐, A와 B를 연결해 시너지효과를 보는 데는 별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 인터넷 사업의 경우 서로 회원을 공유하거나 커넥션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손사장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김사장은 “손사장이 기업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는 전통적인 자본과 경영의 유착, 혹은 부의 세습을 차단하는 혁명적인 개념이자 실천강령이라는 것.

    그런가 하면 손사장과 파트너 관계인 나래이동통신과, 이번 행사를 주관한 정보시대 등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내용 기업’은 관심 밖

    정보산업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하나로통신 신윤식 사장도 불만을 감추지 않는 인사 중 하나. 신사장은 손정의 사장의 경영철학을 들어보기 위해 행사 이틀 전 정보시대측에 조찬강연 참석 여부를 문의했다. 그러나 정보시대측은 “초청된 인사 이외에는 누구도 가감할 수 없다”며 신사장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초청한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뿐,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추가로 초청하지 않겠다며 콧대 높은 태도를 보인 것. 자리가 있어도 초청할 수 없다는 고자세에 분통을 터뜨린 사람은 신사장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조찬강연장에는 초청자 리스트에 없는 사람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삼보컴퓨터나 나래이통, 정보시대뿐 아니라 이벤트를 준비한 광고대행사 드림커뮤니케이션의 실무자 등을 통해 조찬강연장에 ‘무사히’ 입장했다. ‘초청자만 입장시키겠다’던 관계자들의 말은 엄포에 불과했던 것이다.

    초청자 리스트 역시 ‘엄선’된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일례로 행사주최측은 정보통신부의 남궁석 장관과 안병엽 차관, 그리고 거의 모든 실·국장들과 접촉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감사관과 총무과장 비상계획관 등 손정의 사장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관리들까지 초청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통부에서는 공종렬 정책국장과 김창곤 지원국장이 참석하는 데 그쳤다.

    학계 쪽의 초청자가 소수에 그친 것은 손사장의 방한 의미를 상업적으로 퇴색시켰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다양한 계층과의 만남이 제한되다 보니 인터넷의 미래와 21세기의 산업변화 등 폭넓은 미래 예측이나 ‘개념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모임의 성격은 사실상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설명회’로 국한됐다.

    한 대학교수는 “손사장은 비즈니스맨 개인이라기보다는 국내 벤처기업가나 경제인들이 함께 생각을 나눠볼 만한 공인으로 봐야 한다”며 행사주최측의 지나친 상업적 자세를 질타했다.

    그동안 수차례 이뤄진 손사장의 방한은 사업성 평가를 위한‘예비방문’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번 방한을 통해 그가 밝힌 한국투자 계획은 21세기 ‘인터넷 태평양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평가되기 때문.

    국내외에선 한국 인터넷시장의 미래가 밝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본에 비해 비즈니스의 역동성도 강렬하며 향후 3년간 성장세도 다른 아시아 국가 못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은 손사장이 한국의 ‘국내용 기업’에만 관심을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국경 없는 인터넷의 특성상 손사장은 국제무대 진출이 가능한 인터넷 서비스를 집중 발굴하리라는 것.

    한국은 중국 향한 교두보?

    손사장도 “한국 인터넷 서비스의 국제화를 지원하겠지만, 외국의 훌륭한 인터넷 서비스를 한국에 소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투자가 ‘일방향’ 혹은 개별적인 ‘낙점 형태’가 아니라 ‘쌍방향적’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성격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투자대상 기업은 종적으로 업종이 비슷한 종목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 그보다는 횡적으로 서로 보완하고 성격이 다른 ‘백화점식’ 투자가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손사장은 ‘인터넷 백화점’을 건설하고 이곳에 유명 메이커(인터넷 서비스들)의 매장을 끌어들여 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평소 자신이 투자한 기업들을 ‘늑대떼Group of Wolves)’라고 부르면서 강한 연대를 강조해온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손사장은 이와 관련, “소프트뱅크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일류 선수들을 모아 게임 전체를 기획할 뿐이다”라고 비유했다.

    또한 손사장이 염두에 둔 전세계 투자전략에서 한국은 종착점이 아니라 교두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방한기간에 여러 차례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강조했다. 세계의 언론들도 중국이 정보산업, 특히 인터넷 부문에서 급부상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인구가 세계 최대 규모에 이를 경우 각종 컨텐츠는 중국어 사용이 필수적일 것이다. 또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누가 먼저 창출하느냐는 것도 인터넷 비즈니스 제패에 관건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손사장의 한국 투자는 중국 투자에 대비한 교두보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나래이통 이홍선 사장의 예견도 손사장과 같다. 이사장은 “향후 3년간 한국은 중국보다 중요한 인터넷시장”이라고 확언했지만,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오히려 중국이 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고 있는 것.

    이렇게 본다면 손사장은 앞으로 3년간 한국 시장에서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면서 중국 진출 기반을 다지고, 5년 후에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시장인 중국에서 최후의 진검승부를 걸겠다는 장기 전략을 가진 듯하다. 손사장이 1월 중 소프트뱅크홀딩스코리아(SBHK)를 출범시키면서 같은 시기에 중국에도 같은 형태의 지주회사인 소프트뱅크홀딩스차이나(SBHC)를 설립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 해도 손사장은 일단 시작한 한국 투자에서 확실한 수익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소프트뱅크테크놀로지(벤처 캐피털)의 경우 지난해 수익률은 약 10배(1000%)였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4~5배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손사장이 누구를 투자대상으로 삼느냐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손사장이 그리는 큰 구도가 무엇인지를 한국 업계가 빨리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사장이 세계 인터넷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니만큼 그의 의도와 청사진을 파악하는 것은 한국 인터넷 비즈니스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다.

    이들은 손사장이 보여줄 다양한 경영기법과 철학을 다이제스트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세습경영에 물든 재벌기업 풍토에서 탈피,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그의 투자자세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

    ‘자기 증식을 하지 못하는 기업은 과감히 매각한다’는 손사장의 냉철함을 통해 엄격한 구조조정의 틀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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