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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취재|‘미성년 윤락’과의 전면전 선포한 여성 경찰서장

너 영계포주? 나 김강자야

  • 하태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너 영계포주? 나 김강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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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옥천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지금은 궁금할 여유가 없어요. 너무 바빠서.”

― 옥천에 티켓다방은 완전히 없어졌습니까?

“티켓다방 자체가 아니라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미성년자가 없어졌습니다. 농촌에는 술집이 없고 티켓다방에서 윤락행위가 이루어져요. 티켓다방에 일하는 여종업원을 불러다가 술집에서 술 따르게 해요. 그뒤 은밀하게 윤락행위가 벌어지지요. 그렇지 않으면 차 가지고 여관으로 오라고 해서 윤락행위를 합니다.”

1시간 반 정도의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는 옥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옥천서장으로서 티켓다방과의 전쟁으로 일궈낸 ‘김강자 신화’를 검증하기 위해서 였다.



티켓다방이란 식품위생법상 휴게음식점으로 구분돼 있는 다방의 변태영업. 커피나 차 등을 판매하는 애초 목적과는 달리 여종업원을 노래연습장이나 단란주점 등에 출장보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차배달을 나간 여종업원이 손님의 요구로 1, 2시간 같이 놀아주게 하고, 다방주인은 그 시간만큼의 영업손실을 보전해 받는다는 의미에서 생긴 것이 ‘티켓’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방주인은 여종업원을 술집 등에 출장보내 티켓값을 챙기고 여종업원은 손님들에게 여흥을 제공한 대가로 티켓값 이상의 팁을 받아 주머니에 챙기는 형태가 됐다.

충북 옥천은 대전과 같은 생활권에 속해 있다. 새벽 1시 반 대전에 도착한 기자는 그 길로 택시를 잡아 타고 옥천으로 향했다. 새벽 2시경 옥천에 도착해 여관을 숙소로 정한 뒤 차배달을 시켰다. 최대한 어린 여자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5분도 안돼 검정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보자기에 싼 커피를 든 여자가 문을 노크했다. 광주가 고향이라는 이 여성은 20대 후반으로 ‘영계’는 아니었다.

“그 여자(김강자 서장)가 떠나긴 했지만 요새 옥천 다방에 미성년자는 없어요.”

10대 아가씨는 없냐고 묻는 기자에게 다방 아가씨는 이렇게 말했다. 후임 서장도 계속해서 미성년자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고, 미성년자를 고용하든 스무살을 넘긴 아가씨를 고용하든 티켓영업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데 업주들이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미성년자를 둘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대신 최근 들어 옥천지역 거의 모든 다방이 새벽3시까지 심야영업을 하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 새벽에도 커피 마시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이 아가씨는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밤새 팔운동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대답했다. 찻값도 낮에는 1500원, 밤12시를 넘으면 2000원이지만 오히려 심야에 차를 시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 게다가 술집이나 노래방으로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하니 티켓다방은 불야성을 이룬다는 것이 이 아가씨의 설명이었다. 1시간 티켓료는 1만5000원.

다방 아가씨를 돌려 보낸 뒤 아가씨를 불러 달라고 여관주인에게 다시 부탁했다. 화대는 4만원에 선불. 이번에도 최대한 어린 여자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술 더떠 30대 중반의 ‘아줌마’가 방에 들어왔다.

김서장에 대한 상반된 평가

5년전 이혼했다는 이 30대 여인은 대전의 보도방에 소속된 매춘부였다. 여관에서 보도사무실에 연락하면 보도사무실은 직업 여성을 자가용에 태워 손님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데려다 주는 것이다. 옥천에서 성행한다는 티켓영업과는 성격이 달랐지만 이 여성도 ‘티켓’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여성이 말하는 티켓이란 손님이 묵는 여관에서 동침을 해주는 대가로 20만원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하룻밤을 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대신 그날 밤 기대되는 예상수익을 보전해준다는 의미로 ‘티켓’이 사용되는 것.

김강자 서장이 옥천에 있을 당시부터 방범과장을 맡고 있는 정용옥 경감은 “김서장 부임 당시만 해도 옥천에 있는 42개의 다방에서 평균 7명 정도의 아가씨를 두고 있었는데 그중 2~3명은 미성년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98년 7월부터 2000년 1월까지 김강자 서장이 옥천에 있으면서 미성년자 티켓 영업을 꾸준히 단속한 결과 이제는 옥천군에서만큼은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다방은 없다”는 것.

김동권 정보보안 2계장은 “현장을 적발하고도 단속이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 김서장은 다방 종업원의 신원을 일일이 파악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며 “심지어 여관의 휴지에 묻은 정액 등을 체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긴 뒤 단속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서장의 후임으로 온 이한기 서장은 “김강자 서장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하지만 경찰이 하는 일을 제대로 홍보할 줄 아는 ‘상품가치’가 있는 분”이라며 “이제는 미성년자 단속문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므로 전면 단속보다는 위반행위 등 문제가 발생할 때 단호하게 대처하는 식의 단속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강자 서장이 벌였던 티켓다방과의 전쟁을 모든 주민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경감은 “미성년자 티켓영업이라는 불법행위를 엄단해 살기 좋고 아름다운 옥천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자는 김서장의 취지는 수긍하면서도 옥천이 매스컴에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군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즉 김강자 서장이 선포한 ‘티켓다방과의 전쟁’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옥천 하면 티켓다방을 먼저 떠올리게 되면서 옥천이 마치 미성년자 윤락이나 티켓다방의 천국인 것처럼 오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생겨났다는 것.

김강자 서장과 같이 일했던 한 경찰관은 김서장을 ‘꼴통’이라고 표현했다. 김서장은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다 여자로는 보기 드문 강인한 면을 가졌는데, 그 점이 최대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면 상관없지만 조직의 장이 추진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은 심한 피로와 짜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

“그여자? 떠났잖아요”

김강자 서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 한 가지.

한번은 옥천의 한 교사가 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철저히 조사하라는 김서장의 지시가 있었고, 옥천경찰서 직원이 수사를 담당했다. 경찰관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학생과 교사를 불러다 조사했지만 혐의내용이 불분명했다. 그래서 보강조사를 계속하는데 다혈질인 김서장은 이를 참지 못하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학생을 불러다 면담한 뒤 교사를 성폭행범이라고 단정했다는 것.

김서장은 “이 자식 당장 구속하라”고 불호령을 내렸지만 담당 경찰관은 증거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고 결국 이 사건은 학생측이 고소를 취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옥천경찰서의 한 간부는 “법의 집행이란 형식과 절차를 모두 지킨 뒤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데도 김서장은 때때로 이런 기본원칙을 망각하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단순 통계만으로 보면 김강자 서장 재임 당시 42곳이었던 옥천군내 다방은 2000년 1월 현재 51곳으로 약 20% 늘어났다. 하지만 이중 실제로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10여곳이어서 전체적으로는 김서장 재임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한 다방 여종업원도 품귀현상을 보여 요즘은 한 업소에 3~4명만 고용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옥천군 중심가에 있는 한 다방의 업주 A씨와 만났다. 배달영업이 거의 90% 이상이라는 시골다방의 특색에 걸맞게 이 다방에도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전화가 걸려오는 즉시 아가씨들이 커피보자기를 들고 다방문을 나섰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다방의 업주는 김강자 서장에 대한 악감정을 숨기지 않고 토해냈다. A씨는 “경찰은 다방 업주들의 고충은 전혀 이해하지 않은 채 단속만 해서 업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요즘 아가씨들은 주인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 주인이 야단이라도 조금 치면 업소를 나가버리는 경우가 예사고 티켓영업도 아가씨가 원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업주가 매춘영업을 강요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상황이 이런데도 김서장은 업주들에게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고, 정작 단속을 한 미성년자들은 제대로 선도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아가씨들은 마음만 먹으면 전국이 잠재적인 직장이므로 옥천에서 단속이 심해도 콧방귀도 안 뀐다는 것.

또 다른 다방업주 B씨는 김서장을 소영웅주의에 빠진 출세주의자로 판단하고 있었다. B씨는 “소문에 의하면 김서장 남편이 서울대 법대를 나왔는데 선후배들이 요직에 앉아 있어 빽이 대단하고, 호남출신이어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물론 현직 경찰청장의 최측근이라고 한다”며 “일약 서울의 일선경찰서 서장이 된 것도 다 그런 배경이 작용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서장의 남편 김환국씨는 모 기관 3급 공무원이며, 서울 법대를 졸업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방 업주들과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옥천의 다방 앞에서는 소형오토바이가 쉴새 없이 커피 보자기를 든 아가씨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호랑이 등에 탄 서장

12일 밤 11시반 서울역에 도착한 기자는 다시 종암경찰서로 갔다. 김강자 서장은 운동복 차림으로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 이화여대에서 할 ‘우리나라 현행법상 성폭력 처리과정’이라는 주제의 특별강연 원고를 가다듬고 있었다. 옥천 주민들이 김서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 등을 취재하고 왔다는 기자의 말에 김서장은 흠칫 놀라며 “요새 옥천은 어떻더냐” “혹시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없더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 김서장이 공명심 때문에 옥천을 매도했다며 반감을 숨기지 않는 사람도 있더군요.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옥천만 티켓다방이 활개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농촌지역처럼 티켓다방이 성행했고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대다수 주민이나 여성들은 옥천 티켓다방의 실체를 알 수 없겠지만 서장으로서 그것을 묵과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나는 옥천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미성년자 윤락을 근절하고자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종암경찰서 관계자들은 최근 김강자 서장의 상황에 대해 ‘호랑이 등에 탄 격’이라고 표현했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뛰어 내리면 큰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대로 달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종암경찰서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은 매스컴의 과열된 취재나 보도때문에 초래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암경찰서의 한 간부는 “김서장은 실전경험이 많아 매매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며 “취임 직후부터 이번 전쟁은 미성년자 매매춘과의 전쟁이라고 범위를 분명하게 한정한 것도 매매춘이라는 거대한 적과 정면대결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서장이 파악하듯 미성년자 윤락을 없애는 일은 김서장 개인의 싸움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여론은 김강자 서장의 편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을 입증하듯 요즘 종암경찰서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격려전화가 쇄도하고 각계에서 성금이나 물품지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기우(杞憂)겠지만 김강자 서장은 미성년자 윤락과의 전쟁을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김서장에게 보내는 국민의 박수는 미성년자 윤락에 철퇴를 내리겠다는 공직자인 종암경찰서장에게 보내는 박수지 인간 김강자에게 보내는 박수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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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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