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1년생 딸을 둔 주부 Y씨(경기도 일산 거주)는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던 딸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딸의 왼쪽 어깻죽지가 오른쪽보다 유달리 솟아 있었던 것이다. 이상히 여겨 딸의 상의를 벗겨 등을 살펴보니 척추가 똑바르지 않고 S자 모양으로 약간 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딸은 서 있는 자세도 한쪽 다리가 짧은 듯 기우뚱한 상태였다. 당황한 Y씨는 딸을 데리고 인근 일산 백병원 척추센터를 찾았다. 목뼈에서 꼬리뼈까지 척추방사선을 촬영한 결과 딸은 척추가 35도 휘어진 ‘척추측만증’으로 진단됐다.
24마디의 뼈(경추 7개, 흉추 12개, 요추 5개)로 구성된 척추는 정면에서 바라볼 때 일직선, 즉 ‘1’자 모양이 정상이다. 이와 달리 척추가 좌우 옆으로 10도 이상 휘었을 경우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척추가 옆이 아닌 앞으로 굽는 증상도 있는데, 이를 ‘척추후만증’이라 하며 흔히 말하는 꼽추병이 그 대표적인 질환이다. 이외에도 척추가 뒤쪽으로 휘는 척추전만증도 있지만, 이는 매우 드문 질병이다.
그런데 척추가 옆이나 앞으로 휘는 척추 변형은 외관상 문제도 문제지만, 체형 불균형을 초래해 에너지 소모를 크게 하며 흉강(胸腔) 크기를 감소시켜 심폐기능을 저하시킨다. 꼽추인 사람이 정상인보다 일찍 사망하는 원인이 심폐기능 장애와 관계깊다는 것은 스웨덴의 임상 사례에서 확인됐다. 이외에 척추변형은 요통과 척추 통증, 척추 조기 퇴행성 등의 변화를 일으켜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기도 한다.
Y씨는 의사의 이같은 설명을 들으면서 딸의 증상을 진작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척추측만증은 디스크나 요통 등 다른 척추 질환과는 달리 통증이 없기 때문에 환자 자신도 모르고 지낼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Y씨 딸은 일단 비수술요법인 ‘탄력밴드 교정술’로 척추측만증을 치료해보기로 결정했다.
요즘 들어 Y씨 딸처럼 등뼈가 휜 척추측만증 환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해에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원이 서울시내 480개 초등학교 5,6학년생 21만70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5.1%인 3만2880명이 자세 이상자로 판명됐다. 이는 98년 조사에서 나타난 11.5%보다 훨씬 높은 수치. 또 자세 이상 초등학생(2313명)을 대상으로 한 X선 촬영 결과 척추가 이미 10도 이상 휜 척추측만증 환자도 97명(4.2%)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척추측만증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아이들 외에 자세 이상을 보이는 학생들 가운데서도 척추측만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학교보건원 관계자는 “자세 이상 학생들은 2, 3년 이내에 척추측만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며 “성장이 거의 끝난 고교 1학년 이상에서는 척추측만증이 발견되더라도 치료가 힘든 상태이기 때문에 자세 이상자 발견을 위한 검진이 초등학교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척추변형 치료의 세계적 명의
지난 1월 초순 척추측만증 치료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석세일(石世一·70) 교수팀을 인제대의대 일산백병원 척추센터에서 만났다. 일산백병원 척추센터는 척추 변형 및 기형치료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곳이다.
석교수팀은 “우리 아이 허리가 휘었어요”하고 걱정하는 부모들을 위해 그간 쌓아온 척추변형 임상 노하우와 최신 치료정보를 ‘신동아’에 공개하기로 했다. 척추 변형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이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참고로 일산백병원 척추센터의 좌장인 석세일교수는 국내에서 척추측만증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5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 64년에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체스터 의대에서 세계적인 척추 대가인 루이스 골드슈타인 교수를 만나 4년간 사사하고 68년 서울대 의대 교수(정형외과)로 부임했다. 골드슈타인 교수는 60년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석교수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 척추측만증 수술 기계까지 사주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척추측만증 수술의 시작이 된 셈.
이후 석교수는 척추변형 수술을 위해 척추경 나사를 척추경에 삽입하는 ‘척추경 나사 고정술’, 척추 분절마다 척추경 나사를 삽입해 교정하는 ‘분절 척추경 나사 고정술’ 등 독창적인 수술법을 개발해 세계 정형외과 의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특히 95년 저명한 정형외과 학술지인 ‘스파인(Spine)’지에 발표된 ‘특발성 척추측만증에서 분절 척추경 나사 고정술과 갈고리 고정술의 비교’ 논문은 한국 정형외과 의사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연구논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30여년의 임상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석교수는 척추측만증 분야에서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으며, 국제척추측만증학회에서 매년 워크숍 초청 멤버로 ‘모셔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석교수는 97년 서울대병원에서 상계 백병원 척추센터 소장으로 자리를 이동한 이후 현재 고희의 나이에도 상계 백병원과 일산 백병원의 척추센터를 오가며 인술을 펴고 있다.
석교수와 팀을 이룬 김원중교수(40) 역시 척추측만증 수술요법 및 비수술요법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의사다. 석교수의 서울대의대 제자이기도 한 김교수는 얼마전 석교수와 공동으로 퇴행성 척추측만증 치료에 관한 임상논문을 세계 척추학회지(Journal of Spinal Disorders)에 발표, 또한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춘기가 가장 위험하다
먼저 척추측만증 등 척추변형 질환의 경우 현재는 뚜렷한 예방 수단이 없기 때문에 질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석교수팀은 강조한다.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빠르게 성장하는 사춘기(10세~성장 완료기)에서 가장 흔히 발견된다. 사춘기에 척추 변형이 새롭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정도가 심하지 않았던 척추 변형이 척추의 성장과 함께 급격히 악화돼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척추측만증은 그대로 둘 경우 계속 변형이 진행되는데, 성인이 돼서도 1년에 1∼2도씩 진행해 심한 기형을 유발하게 된다.
척추가 45도 이상 휜 고도 측만증일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치료 성공률이 높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조기에 발견되는 대로 비수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특히 척추측만증의 85%를 차지하는 청소년기의 ‘특발성 측만증’(척추체 또는 신경계통의 이상 등 특별한 질환이 없이 발생하는 측만증)은 다른 전신적인 문제가 없는 건강한 아이에게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부모는 방심하지 말고 아이의 척추가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지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실 척추측만증과 후만증(꼽추병) 등 척추변형 치료의 역사는 꽤 깊다. 기원전 4~5세기경의 히포크라테스 시대 이래 이미 척추변형에 대한 구체적인 치료가 시도돼 왔다. 그런데도 이 질환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아낼 수 없어서, 그저 죽을 때까지 참고 살아야 하는 천형(天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척추변형은 척추외과 분야에서 최대의 난제로 꼽히고 있다.
이는 척추변형에 대한 정확한 원인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 것과도 관계가 깊다. 대개 체격에 비해 작은 책·걸상, 무거운 가방, 입시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으로 척추가 휘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다행히 근자에 이르러 과학 기술과 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어 척추 변형 원인들이 조금씩이나마 밝혀지고 있는데, 척추의 선천적 결함·신경근육성 장애·신경섬유종증·감염·척추의 퇴행성 변화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유전적인 요인이나 호르몬 이상 등도 한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척추측만증은 일단 척추에 원인이 있는 구조성 측만증과, 척추 외의 다른 원인에 측만증세를 보이는 비구조성 측만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중 비구조성 측만증은 ▲자세가 나쁘거나 ▲양쪽의 다리 길이가 원래 차이가 나거나 ▲요통이 있거나 ▲디스크 등 척추 신경이 자극을 받은 경우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그 발생 원인을 해결하면 척추가 정상으로 회복하므로 척추 측만증 치료가 필요치 않다.
척추척만증 수술은 세계최고 수준
물론 치료를 요하는 척추측만증은 척추 자체에 원인이 있는 구조성 측만증이다. 구조성 측만증은 변형 부위의 유연성이 없어 자세의 변화나 측면 굴곡 검사로도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데, 척추의 병변으로 간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질환의 치료로는 수술적인 방법과 척추보조기구를 이용한 비수술적인 방법이 있다.
먼저 척추가 45도 이상 휘었을 때 사용하는 수술적인 요법에서는 석세일 교수팀이 단연 세계 최고다. 석교수팀의 척추경 나사 고정술은 교정력이 강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안전하며, 다양한 척추 변형에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우수한 기술로 세계 학계에서 평가받고 있다. 김원중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척추측만증 수술은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의 수준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이는 우리 팀에 환자들이 집중적으로 몰리다보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환자 케이스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에 더해 ‘척추경 나사 고정술’이라는 우수한 수술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석교수가 개발한 새 수술법으로 척추측만증을 치료한 논문을 처음으로 외국에 알렸을 때, 외국 의사들이 그 놀라운 임상 결과를 믿으려 들지 않았다. 나중에 로버터 윈터 같은 저명한 척추전문의가 우리 팀에 와서 직접 시술현장을 관찰한 뒤 그 치료 효과를 보증함으로써 외국 의사들이 믿게 되고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현재 이 수술법은 우리나라 사람과 체질이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중국, 대만, 홍콩의 척추외과 교과서에 실릴 예정으로 있고 유럽의 경우 프랑스학회지에도 게재될 예정이다.”
김교수는 또 재작년부터는 아주 심한 측만증과 후만증(꼽추)를 단 한번의 시술로 치료하는 수술법을 새로 개발했는데, 미국 척추측만증학회 회장이 직접 참관하고 갔다고 말한다. 이 수술법 역시 오는 7월에 열리는 바르셀로나 국체척추측만증 학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