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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수연구소’ 감독 의사 김소연의 충격 공개

김일성이 실천한 북한식 자연요법

  •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김일성이 실천한 북한식 자연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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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연구소는 김씨가 연구소에 근무하던 해인 82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당시 이 연구소에 종사하는 인원만 4000명에 이를 정도로 범국가적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구체적인 인적 구성을 살펴보면 기초의학자와 임상의학자가 각각 100명씩 의료집단을 구성하고 있었고, 농작물 관리를 비롯한 제반 경영단이 800명, 가공인원 1000명, 그외에 연구소 부속 만년제약공장(현 고려제약), 수송 인원, 재정관리 인원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여기서 의료집단의 재정은 중앙당 3호청사가 맡았고, 그 나머지는 중앙당 8국 후방총국이 담당했다. 특히 이 연구소의 의료집단 200명이 바로 장수연구소의 핵심인 만수무강조로 분류돼 국가보위부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었다. 김씨가 장수연구소에 근무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그녀가 맡은 일은 이랬다.

“각 도에서는 매년 김일성 생일에 맞춰 산삼이나 장뇌삼, 웅담 등을 중앙으로 보냈는데, 동의연구소가 이를 관리했다. 나는 동의학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산삼이나 장뇌삼이 진짜인지, 그리고 어디 삼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을 지도했고, 연구원들이 중간에 빼돌리거나 잘못 검사하는 것을 관리했다. 물론 이런 일은 비밀리에 하는 작업이었고, 나 역시 장수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맡은 일을 충실히 했다.”

김씨는 동의연구소에서의 탁월한 실력 발휘로 86년에 ‘공작원’ 칭호를 받았다다. 공작원 하면 혁명가와 같은 칭호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단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한편 김씨가 관리 감독하는 동의연구소에서는 이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장수연구소 연구원들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기 위해 김일성 체질 연구에 달라붙었다. 김일성과 유사한 체질이라고 판단되는 100명을 가려내 사상의학(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체질을 연구했다. 그런데 김일성은 처음에 태음인으로 분류됐다가 아니라고 판명됐고, 나중에는 태양인으로 봤는데 이 역시 아니었다. 김일성은 사상 체질에 들지 않는 특수체질로 분류됐던 것이다. 우리는 김일성이 이 세상 사람으로는 먹어보기도 체험하기도 불가능한 것들을 먹고 겪으면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체질로 변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78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온 몸을 젊은 사람의 피로 교체했고, 그 2년 후에도 피를 교체했다. 김일성에게 피를 뽑히는 ‘채혈조’는 김일성과 혈액형이 같은 젊고 건강한 20살 전후의 젊은이들이었다. 이 채혈조 역시 김일성에게 기쁨을 준다 하여 ‘기쁨조’ 소속이었고, 중앙당 조직부 5과가 관리했다. 채혈조는 김일성에게 피를 뺏긴 후 폐인이 돼 얼마 못살고 죽고 말았다. 그런데 김일성은 채혈하면 몸이 건강해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목 뒤에 있는 혹만 급속도로 자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 김일성은 평소 약을 먹거나 주사 맞기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 연구소 연구원들의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김일성 집무실에 있는, 산삼 향이 나는 ‘산삼꽃’이다. 이것은 일년 내내 꽃이 피는 화초에 산삼을 비롯해 사향, 우황, 웅담 등의 농축액을 주입하면 그 꽃이 향기로 농축액을 뿜어내므로 김일성이 공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섭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김일성은 치아를 교체할 때도 액을 막아준다는 호랑이뼈와 장수를 상징하는 상아로 만든 치아를 사용했고, 옷도 손바느질로 만든 것만 입었고, 참새 5만마리분의 목털로만 짠 침구를 덮고 자는 등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북한 동의학이 남한보다 몇수 위

그런데 김씨는 북한 장수연구소의 동의학 연구 수준이 남한의 한의학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연구소 8호 작업반에서 만들어낸 산삼꽃 향은 ‘식물 분자원리를 이용한 육종학’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주로 각종 채소나 과일 재배 및 육종학을 연구하는 8호작업반은 산삼꽃 외에 ‘단백질 사과’도 만들어냈다. 이는 고단백질을 사과에 주입해 만든 것인데, 그 제조과정이 흥미롭다.

일단 겨울에 사과나무를 동면시킬 때 뿌리가 있는 부분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누렁개(황구)를 묻어 부식시킨다. 이듬해 봄이 되면 나무 밑에서 열이 발산되면서 김이 무럭무럭 나고, 질소도 형성된다. 또 봄에 사과나무 가지치기할 때는 고단백질인 개구리를 한 삼태기 넣어 둔다. 그렇게 해서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사과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벌레도 먹지 않는다. 사과나무에서 열매를 딸 때가 되면 음이온 종이로 열매를 싼 뒤, 설탕 20kg과 물을 뿌리에 붓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충성 1호’라고 불리는 단백질 사과다. 이 사과는 마치 고기를 먹는 것처럼 맛이 고소하면서도 당도가 높아 매우 달다. 껍질을 깎을 때 껍질이 과일에 끈끈하게 붙어 있을 정도다. 북한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배도 만들어냈다. 이런 작업은 몸에는 좋은데 독이 있는 생약이나, 심장에는 좋은데 위장에는 해로운 음식을 중화시키기 위해 식물분자원리와 동물분자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자연의학 혹은 동의학에 비해 남한의 한의학 수준은 어떨까. 한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씨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기로 하자.

“내가 여기 와서 느낀건데 남한의 한의학과 북한의 동의학을 비교해볼 때 동의학이 더 심도있고 고전적인 연구를 행하는 것 같다. 북한에서 동의학을 배우는 사람은 산에 가서 직접 약초를 캐는 등 약재부터 완벽히 익힌다.

그리고 그런 약재가 현대 약리학적으로 어떤 효능이 있는지도 다 배운다. 북한에서는 한약재에 대한 성분분석이 다 돼 있어서, 어떤 약재는 비타민, 탄수화물,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서 어디에 좋고, 항암 효과가 어떻다는 걸 다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다음에 경락체계를 배우고 방제학을 배운다. 방제학을 익힐 때도 법제를 하는 법, 즉 독초는 어떻게 가공하고 인체에 어떻게 투여할 수 있는지 등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실습한다.

그런데 여기 와서 한의대생들에게 한약재를 현대 약물학적으로 말해보라고 하니까 전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한에서는 한의학을 하는 한의사들이 산에서 자라는 초근목피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어 보였다. 약초의 약성이나 생김새, 맛도 모른 채 이름만 줄줄 외우는 등 한의학을 겉으로만 배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또 여기서는 본과 4년만 마치고 바로 개업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의학에서는 천명의 환자를 진맥해야 한 가지 병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임상경험이 필요한데, 여기 한의대 졸업생들은 그냥 한의학 교과서에 실린 대로 처방전을 잘 쓰면 된다는 식이었다.”

김일성의 사망 이유

기자는 북한자연의학에 대한 김소연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94년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돌연 사망한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한 개인의 만수무강을 위해 4000명의 연구진이 동원되고,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초월한 자연요법도 그에겐 소용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김씨의 대답.

“김일성은 72세부터 동맥경화증이 있었고, 그래서 장수연구소도 생긴 것이다. 나는 92년 귀순하기 전까지 옆에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는데, 한마디로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인한 심장마비사 아닌가 해석하고 있다. 즉 마음의 조화가 깨졌다는 말이다.

김일성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죽었을 때 약간 충격을 받았고, 특히 무기 중개소가 있는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졌을 때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뇌동맥경화로 소출혈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고의 붕괴로 노동1호 미사일 등 무기를 못팔아먹게 되자 나라 살림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때 장수연구소 의료진에 비상령이 내렸다.

또 김정일이 데리고 온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막대한 외화를 가지고 탈출했을 때도 충격받았다. 오죽하면 그 무렵 희극배우(코미디언)들에게 김일성을 하루에 열번 웃게 하면 공훈배우 칭호를 주겠다고 했겠는가. 또 소련이 붕괴됐을 때는 거의 병들다시피 했다.

이렇게 동구권과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마저 개혁개방의 길을 걷게 돼 사면팔방이 막힌 김일성으로서는 인민들을 계속해서 속여야 하는 마음의 부담과 지도자로서의 고통이 컸을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젊은 사람의 피로 간 뒤 혹이 빨리 자라 목을 누를 정도였다는 점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미 정상회담 합의시점에서 김일성은 많이 쇠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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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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