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수는 지난해 10월 정교수로 승진, 정년을 보장받았다. 경북대가 그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각별하다는 뜻이다. 또한 96년 경북대병원에 모발이식센터가 생기면서 피부과 교수를 겸직하게 돼 우리나라에서 ‘기초’와 ‘임상’을 동시에 맡은 첫 사례가 되었다.
―의료계의 보수주의랄까 폐쇄주의랄까, 기초의학을 하는 사람이 피부과나 외과에 속할 법한 모발이식수술로 두각을 드러내는 과정에 마찰이나 오해를 일으킨 적은 없었나요?
“기존 연구질서에 적당히 순응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겠지만 이제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새로운 분야로 파고드는 리서치 마인드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마침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대학에 불어닥친 특성화 분위기가 저에게도 도움이 됐습니다. 사소한 오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모발이식을 하더라도 결국 기초의학이라는 더 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오해들을 걷어냈습니다. 분자생물학 차원의 모발유전자 연구는 분자생물학에 의존하는 여러 관련 분야에 꽤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해에 대한 걱정보다 주위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앞서요. 기왕이면 외곬으로 연구하기보다는 주위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서도 독창적인 리서치가 바람직하겠지요.
모발유전자를 의학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범위는 아주 넓어요. 가령 암세포와 모발세포는 분화가 아주 빠른 편인데, 이런 점을 정확하게 밝히면 암치료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간암연구자에게 모발 유전자를 분양하기도 하는데, 이는 인체의 어느 부분 유전자든 그 구조와 기능이 80% 정도 비슷하기 때문이죠.”
김교수는 현재 2000여개 모발유전자를 활용해 정상 모발과 대머리 모발(대머리는 머리카락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솜털로 바뀌는 것이다)의 차이를 밝히는 유전자칩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머리 부위에 바르는 약을 임상실험하고 있다. 모발유전자 연구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면서 화제를 대머리 치료 쪽으로 돌렸다.
스트레스가 대머리 만들지 않아
―대머리는 왜 생기는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유전(상염색체 우성유전)입니다. 여러 개의 유전자가 관계합니다. 남성호르몬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사춘기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성은 유전 형태가 남자와 비슷하지만 남성호르몬의 절대량이 남자보다 적기 때문에 대머리 숫자가 남자에 비해 적습니다만, 미국에는 약 2000만명의 여성이 대머리(머리숱이 아주 적어지는 형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유전적 원인과 함께 식생활의 변화도 대머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비해 요즘 대머리가 훨씬 많아지고 있는 까닭을 저는 식생활 변화에서 찾아봅니다. 주로 채식을 하던 농경사회에선 대머리 유전자를 가졌더라도 실제 대머리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었지만, 요즘은 지방을 많이 섭취해 대머리가 증가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동맥경화증이 있는 사람 중에 대머리가 많고,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5배 가량 대머리가 많습니다.”
―흔히 스트레스를 받아 대머리가 된다고도 말하는데요.
“그런 속설이 있기는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근거가 없어요. 스트레스가 대머리 진행을 빠르게 하는 측면은 있지요. 스트레스와 관련 있는 것은 ‘원형탈모증’인데, 대머리(남성형 탈모)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원형탈모증은 탈모 부위의 경계가 동전처럼 분명합니다.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인데 온몸의 털이 전부 없어지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저절로 치유됩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10여가지 모발촉진제품이 시판되고 있고, 모발관리업체들도 성업중입니다. 약물치료 효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대머리 치료약은 지금부터 5000여년 전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기록돼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습니다. 지금도 세계 어느나라에 가든 대머리 치료약 한두 가지는 다 있어요. 일본에는 무려 250가지나 되는 대머리 치료 관련 제품이 시판되고 있습니다.
발모제, 양모제, 탈모방지제 등의 이름으로 시판되는 약물들의 공통점은 식물에서 추출한 생약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들 식물은 여성호르몬 유사물질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발치료약 연구는 일본이 굉장히 활발한데 250가지 발모촉진제가 전부 약품이 아니라 의약부외품으로 분류됩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대머리 치료제로 인정하는 것은 ‘미녹시딜’과 ‘프로페치아’ 두 가지뿐입니다.
미녹시딜은 원래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것인데, 고혈압을 치료하던 중 부작용으로 몸에 털이 나는 것에 착안해 대머리 치료제로 개발된 것입니다. 탈모 부위에 바르면 대머리 진행을 막아 솜털이 조금 굵어지는 효과가 있지만 중단하면 2개월 안에 이전 상태로 돌아갑니다. 남자보다 여자 대머리에 주로 사용합니다.
프로페치아는 원래 전립선 비대증에 사용하던 약인데, 남성호르몬의 활성을 막아주는 기능 때문에 대머리 치료약으로 개발됐습니다. 바르지 않고 먹는 약인데 6개월 이상 복용하면 상당히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복용을 중단하면 역시 2개월 안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 버립니다. 프로페치아는 복용할 경우 성욕감퇴, 발기부전, 기형아 출산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이 적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판매가 엄격합니다.
수많은 발모촉진제는 의약품이 아닌 의약부외품이므로 소비자가 구입해 사용한 뒤 아무 효과가 없더라도 제조자는 법적 책임이 없습니다. FDA가 의약품으로 인정한 두 가지는 일시적 효과와 부작용 때문에 한계가 있구요.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입니다.”
머리카락 이식이 최선의 치료
―의학적으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모든 대머리는 유전이기 때문에 대머리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 없애버리면 됩니다.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연구성과로 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당장 대머리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머리카락을 옮겨 심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대머리가 되지 않는 머리 뒷부분의 머리카락을 떼내 대머리 부분에 옮겨 심는 것인데 동양사람과 서양사람은 그 방식이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한 구멍에 3∼8가닥을 심는 방식으로 해마다 23만명이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만 머리카락이 서양사람보다 굵고 검은 동양사람이 이런 식으로 심으면 이상해지지요. 동양사람에겐 1∼3가닥(모속)으로 분리해서 심는 모속식모술이 적합합니다. 요즘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모속식모술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
―자기의 머리카락을 옮겨 심으면 다시 빠지지는 않습니까.
“그동안 약 1300명에게 모속식모 수술을 했는데 실패한 경우는 한번도 없습니다(김교수는 환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92년 자신의 허벅지에 심은 머리카락을 보여준다고 한다). 다만 수술받은 환자 중 약 50%는 두 번 정도 심어야 모양새가 좋습니다. 또 아무렇게나 심어선 안되고 머리모양 등 미용성형 측면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모속식모수술을 받아도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것은 대머리가 되지 않는 부위의 머리카락은 몸 어디에 옮겨 심어도 그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종자(種子)가 중요하다는 거죠. 여성의 음부 무모증에도 머리카락을 옮겨 심을 경우, 한번씩 잘라줘야 하는 불편이 있긴 하지만 만족스러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모발이식이 지금으로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비용이 만만찮아 대머리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더 빠지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경북대 모발이식센터의 경우 3∼4시간에 1300가닥 정도를 심는데 50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비용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적은 돈은 아니겠지요. 모발이식이 돈이 된다고 소문나니까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퍼지고 있어요. 관련 분야 의사들이 모발이식술을 공유해 빨리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저도 모발이식에만 전적으로 매달릴 수 없고(김교수는 월, 수 이틀만 모발이식수술을 한다), 올해부터는 모속식모술 워크숍을 활발하게 열 계획입니다. 마침 올 10월 세계모발외과학학회의 국제워크숍이 경북대에서 개최되는데, 우리나라에 모발이식을 체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교수는 지난해 10월 고려대 생명공학원 초청을 받아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100명에게 특강을 했다. 고려대가 김교수를 초청한 이유는 ‘과학자가 무언가를 연구한다면 저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모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김교수를 잘 아는 어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학자들의 연구라는 게 미국이나 일본을 많이 따라가지 않느냐. 수많은 학자 중에 이게 나의 독보적 연구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김교수의 연구는 같은 학자로서 정말 배울 점이 많다.”
‘모발과 모발유전자’를 붙들고 지난 10년 동안 89년식 엑셀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기초의학 교실의 불을 밤늦도록 밝혀온 김교수의 연구가 앞으로 또 어떤 결실을 낳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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