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흔들리는 의료보험제도 개인환자제 도입으로 해결하라

  • 이종수 한독한의학회장·독일 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입력2007-01-02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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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 시행하고 있는 개인환자제는 의료보험의 구조적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다. 비싼 의료비를 감수할 수 있는 환자를 과장급 이상의 의사만이 진료하도록 하는 이 제도는 재정이 어려운 병원에 수입을 제공하는 한편, 의사들의 연구욕을 촉진하고 우수한 의료 인력을 전국에 분산시킬 수 있다.》
    1883년 프러시아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공업지대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제정한 독일의 의료보험제도는 이 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다. 그런데 바로 이 제도가 20세기 말에 이르러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상승해가는 의료비를 의료보험조합의 재원이 받쳐주지 못하면서 정부당국도, 의료보험관계자도, 의료계 종사자들도 속수무책 상태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통일 이전인 1969년 총선에서 승리한 서독의 사회민주당은 1970년부터 사회정책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1970년 독일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할 평균 의료보험료는 고용인의 월 총소득 가운데 8.2%에 해당했다. 이중 절반인 4.2%에 해당하는 보험료는 고용주가 부담했다.

    그러나 30년 후인 1999년 이 수치는 평균 13.5%로 상승, 고용인의 부담뿐만 아니라 고용주의 부담도 증가했다. 현상태로 방치할 경우 2030년에는 고용인 소득의 20%를 넘어선다. 더욱이 고용주는 고용인의 의료보험 외에 연금보험료와 실업보험료의 절반도 부담해야 한다. 즉 평균적으로 고용인 총봉급의 약 15%에 해당한 금액을 고용주가 사회보장 협조비로 지출해야 하는데, 이것은 인건비가 15% 상승한 것과 같다.

    이는 결국 독일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를 위축시키거나,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생산공장을 이동함으로써 결국 자국 내에 실업자가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는 다시 국가의 세입감소, 실업수당 수요의 증가, 의료보험 수입의 감소를 야기했다.

    좌파인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인 현 독일연방정부도 특히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의료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으려고 여러 대책을 강구했다. 그 일환으로 정부가 1999년 ‘의료개혁 2000’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으나 의료계와 야당이 과반수로 구성된 상원의 반대에 봉착해 물의를 일으켰을 뿐이다.



    이 개혁법의 골자는 정부에서 의약품대금 예산과 환자진료예산을 고정시키고 개업의들이 그 예산 이상 청구할 수 없게 제한하는 것이었다. 의료계가 이 법안에 반대한 것은 의약품의 처방과 환자의 진료를 강력히 제한할 경우 결국 환자가 의사를 방문했을 때 예산초과로 치료약을 처방해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험제도하에서 병원 이익 내긴 불가능

    현재 독일에서는 월수입이 6375마르크 이하(연간 8만마르크 = 4500만원)인 경우는 무조건 의무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이 이상의 수입을 가진 이들은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 1998년 의무보험 가입자는 독일인구 8200만명 중 7300만명이다. 1998년의 의무의료보험조합에 들어온 총의료보험료는 2430억 마르크이고, 사설의료보험회사에 들어온 총보험료는 335억 마르크였다. 1999년에도 이와 비슷한 보험료 수입을 예상할 때 이해 총의료예산이 5500억 마르크이니 2735억 마르크, 즉 약 50%의 의료예산이 부족하다.

    모든 치료비는 전액을 의료보험이 보장하고 고가의 치료라 할지라도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자부하던 독일의료보험제도가 ‘과거의 유물’임을 독일국민은 잘 알고 있다. 120년 이상 경험을 쌓아온 의료보험제도의 원조가 천문학적인 의료예산 상승에 직면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지금부터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따져보려 한다.

    의료보험제도란 다른 종류의 손해보험과 마찬가지로 국민, 특히 중산층 이하의 계층에서 예기치 않던 질병의 치료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매월 지불하는 소액의 보험료로 덜어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치료기관인 병원이나 의원이 이익을 추구할 때는 역시 의료보험료가 필연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보험료가 극도로 증가하면 사회보장제도는 그 의의를 상실한다.

    이런 모순을 방지하기 위해 독일의 모든 병원(병실을 소유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즉 흑자를 내서는 안 되는 공익 유한회사로 돼 있다. 즉 비영리 법인이다. 병원설립은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체제 원칙을 떠나 수요에 따라 국가가 허가하고 건립비 대부분과 병원 설립 후 건물 수리비, 확충비와 고가의 장비구입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준다.

    의료보험에서 지급되는 의료수가는 ‘호텔비’(식사대, 방청소비 등 병원 숙박에 필요한 경비와 이에 따른 인건비)와 진단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 그리고 입원중의 치료비에만 충당한다. 동시에 병원 사무국은 지급되는 의료수가로 환자에게 최대한의 진료를 제공하면서도 적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동일한 병실수를 소유하고 있는 어느 한 병원의 외과가 다른 병원에 비해 수술건수가 많을 때에는 그 병원의 외과 의사들이 열심히 한 셈이니 적자가 나지 않도록 의료수가를 올려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병원이 최소한의 적자를 면하고, 동시에 의욕적으로 일하는 의사들의 사기를 살려줄 수 있도록 의료보험조합에서 조정한다. 즉 병원의 국영화와 같은 제도다.

    늘어나는 환자 부담

    독일병원협회의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정신병원을 제외한 일반병원의 총 병상수는 54만914개다. 그중 56.3%인 30만4500병상이 국공립이고, 37.9%(20만4811병상)는 교회가 주축이 돼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 그 나머지 5.8%가 개인이 경영하는 병원이다. 그러나 병상의 1년당 사용률은 국공립병원 81.4%, 비영리법인병원 81.2%, 개인병원이 81.9%로 국공립을 막론하고 전 병원이 80% 이상이다.

    입원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개인병원과 비영리법인병원 모두 5600마르크(360만원)로 같고 국공립병원이 6400마르크(420만원)인데, 이처럼 국공립병원의 의료비가 높은 것은 전국의 모든 대학병원과 대형 3차 진료병원이 포함돼 있어 중환자 치료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병원과 비영리법인병원은 전부가 2차 진료기관으로, 역시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의료보험공단의 예산이 한정돼 있으므로 결국 환자 개인의 부담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1999년 4월 서울에서 개최된 한·독의학 심포지엄에서는 1998년 우리나라 총 의료비에서 환자의 자체 부담이 비보험진료비까지 포함해 70%에 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병원의 이익 추구와 이상적인 사회보장제도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의무의료보험제도는 공존할 수 없다. 이 점이 모순이다.

    개업의가 존립할 수 있어야

    독일에서 개업의란 병실을 소유하지 않은 의원을 말한다. 의원에는 환자를 해당지역에서 보살피는 가정의와, 전문적인 진단과 전문외래치료를 담당하는 전문의로 대별된다. 그러나 모두가 정부의 수급계획에 의해 한정된 수를 각 지역에 허가배치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개업할 수 없다.

    각 병원은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 외에는 일반적인 외래환자를 보지 않고 2차, 3차 진료에 해당하는 특수 외래만 받는다. 외래를 보더라도 의료보험에서 지급되는 의료수가가 염가이기 때문에 병원 재정에는 별도움이 안 된다. 독일의 병원을 방문하면 외래가 없어 너무 조용한 것에 놀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래환자의 대부분이 대형 병원에 집중된다. 집중된 환자를 처리하려면 진료시간은 1~2분을 초과할 수 없지만 병원의 수익을 추구해야 하니 가급적 많은 외래환자를 받아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한다면 이처럼 짧은 시간의 진료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법의 결정은 불가능하다.

    의료보험제도하에서 대형 병원의 과제는 이와 같은 일차 진료에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병원 경영자들은 병원이 적자를 면해야 하므로 외래환자를 많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개업의는 환자부족으로 파산에 이르고 그 결과는 각 지역 1차의료 수급의 붕괴로 나타난다. 이것은 국가의료수급 차원에서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독일에서는 대형 슈퍼마켓의 발달로 각 촌락과 대도시 구석구석에 있던 식품상이 자취를 감추었다. 작은 식품점이 대형 슈퍼와 경합해 이길 수 없다. 현 상태로 가면 그런 현상이 우리나라 의료수급에 되는 발생한다. 즉 대형 병원만이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파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각 의원에서 과다진료, 치료비의 부정 신청, 환자를 해당 전문의에게 의뢰하지 않는 일들이 빈번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것은 개업의의 범죄라기보다는 그와 같은 모순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독일의 경우 개업의는 시군별로 한단위가 구성돼 그 지역 의료보험조합 수입에서 배당된 총예산을 각 개업의의 업적에 해당하는 총점수에 따라 배당하고 있다.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개업의 개개인이 진료하는 환자수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여기에 개업의의 자유경쟁이 있다) 생존권을 위협할 만한 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업의를 대변하는 보험의사협회가 각시군의 의료보험조합과 협상을 벌인다. 전문과목과 상관없이 독일 개업의의 평균 실수입은 대개 동일하다.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하는 의료제도로는 사회보장제도하의 의료인 수급이 제대로 기동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일대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

    인구 8200만명의 독일에는 582개의 의무의료보험조합이 존재한다.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만 해도 현재 14만5000명이다. 1998년에 130억 마르크(8조5000억원)의 예산이 이 보험단체의 운영비로 지출됐다. 이 해에 징수된 총 의무의료보험액 2430억 마르크의 5.3%에 해당한다. 그 외에 개업의를 대표해 의료보험단체와 교섭을 벌여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의료보험의사협회가 있는데 여기도 1만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니 의료보험의 징수, 관리 및 배당업무에만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최근 최대한의 구조조정을 시행했지만, 1998년에는 그 예산이 1997년에 비해 5%증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정부는 구조조정과 합리적인 경영을 통해 의무의료보험조합 예산이 남을 경우 그 다음해의 의료보험료 비율을 내리도록 하고, 가입자가 의무의료보험조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보험조합간에 경합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독일의 각 의무의료보험조합의 보험률은 동일하지 않고 고용인 총급여의 최하 11.9%에서 최고 15%까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발도상국이 시행하는 의료보험으로는 운영비 지출이 많아지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지만 징수된 의료보험료는 최대한 환자 진료에 사용하는 것이 지상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보험료의 징수, 관리, 지출 등에 수반되는 부대경비는 최소화해야 한다. 제도 개혁을 통해 의료비지급과정을 간소화해 방만한 경영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은 노년보험처럼 세대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을 비축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없고 매년 그 보험률을 변동해 갈 수 있어야 한다. 특수한 사정으로 한 해의 예산을 초과했을 때 그에 상응해 그 다음해에는 보험률을 올려 그 적자를 메우고, 예산이 남을 때는 그 다음해에 보험률을 내려 가입자에게 환원하는 것이 순리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의료보험공단이 일산 신도시에 대형병원을 설립했다. 그 병원을 경영함으로써 적절한 의료수가를 의료보험공단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설립 목적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 의료제도와 비교해볼 때 이는 언어도단이다.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 시행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자본주의적 의료정책을 지향하는 미국의 사설의료보험회사가 이익을 추구해가는 식의 기업경영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미국에는 자체 병원을 설립해 보험가입자를 치료함으로써 의료비를 절감하고 이익을 올리는 사설의료보험회사가 있다. 한국의 의료보험공단이 병원을 설립하면 수익을 올린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국민으로부터 징수하는 보험금은 오로지 국민의 의료를 위해 사용돼야 하고 공단은 수익을 추구해서는 안 될 공익기관으로 제 구실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자유경쟁

    의료사업을 하나의 기업으로 본다면 자유경제주의 원칙하에서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어야 하고, 경쟁에 의한 자연도태의 결과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수입이 사회복지를 지향하는 의료보험료라는 한정된 예산에 좌우된다면 병원 병상수는 필요에 의해 조절돼야 한다. 독일과 같이 병원의 설립, 수리와 증축, 그리고 고가의 의료기 공급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필요한 병상수 조절이 간단하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자칭하던 1950년대 말 인구 6200만명의 서부독일에는 40만개 병상이 있었다(정신병원 제외). 70년대 중반 사민당정부의 새로운 노동보호법에 따라 각 직장에서 병가를 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구는 늘지 않았는데도 병상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서독 정부는 총병상을 49만개 이상으로 늘렸다. 그러나 80년대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결국 환자가 줄어 통일 전까지 45만개 병상으로 줄였다.

    동서독 통일 직후인 1990년 동서독을 합해 61만7000개에 이르던 병상은 통일 후 실업자의 증가로 병원 이용률이 낮아지면서 7년 뒤 54만1000개로 감소됐다(실업률이 높아지면 병원이 비는 현상은 1998년 초 우리나라의 IMF체제하에서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독일은 정부가 자유자재로 병상수를 증감함으로써 불필요한 예산의 소모를 방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총병상수는 인구비율로 볼 때 독일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지만 우리 국민의 경제사정을 감안해 정부가 적절한 수급계획에 따라 설립 및 증축을 인허가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의료의 적정수급이 이루어지고 의료보험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돼 병원운영자의 도산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킬 수 있다.

    비단 병원뿐만 아니라 개업의 배정도 수요에 따라 국가가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년 의과대학에서 배출된 다수의 의사는 개업 시장에 일대혼란을 야기하고 환자진료예산은 무제한 상승할 것이다.

    의사의 의욕을 잃게 하는 제도

    독일의 경우 의료비가 증가한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첫째는 개업의 숫자가 증가일로에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2차 세계대전 후 의료인 양성이 침체되면서 1970년대 전반까지 독일은 의사 간호사 같은 의료인을 외국에서 초청해야 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인력이 늘어나기 시작, 1999년 초에는 총인구가 8200만명인 이 나라에 35만7727명의 의사가 존재한다(독일연방의사협회). 인구 229명당 의사 1인꼴이다. 뿐만 아니라 2258개 병원의 56만5000병상은 주야로 환자를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병원의 병상과 의사수가 증가하면 자연히 의사는 생계유지를 위해, 병원은 적자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외의 과다한 진료를 하게 돼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에 직접 관여한 의료인과 의료와 연관된 분야의 종사자가 400만명 이상으로 독일 전체 생업 및 취업자의 12%에 해당한다. 이 인력의 인건비 증가도 의료비 증가에 중요한 원인이다.

    의사의 증가는 자연히 개업의의 수입을 감소시키며 1998년에 독일 개업의의 연평균 수입은 20만4000마르크(1억3000만원), 월평균 1100만원 정도다. 이 금액에서 의사 개개인의 의료보험, 연금보험, 실업보험, 그리고 세금을 공제하면 그렇게 많은 수입은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의과대학 지망생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성적이 우수하다. 이것은 의사가 인술을 베푸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사회의 존경을 받기도 했거니와, 특히 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무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는 자연히 의사의 수입이 감소하며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처럼 파산하는 정부의료기관이나 개인의료기관이 허다해진다. 특히 독일처럼 병원이 공익을 위한 비영리법인인 경우 의사는 봉급을 받는 일개 공무원에 불과하다. 이것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출동해야 하는 의사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욕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용기를 상실케 한다. 공산주의 국가가 멸망한 원인이 결국 개인의 욕구를 무시한 제도에 있는 것과 같다.

    독일식 개인환자제도 도입해볼만

    독일에서는 의료사회정책을 수행해가며 그에 수반되는 이와 같은 단점을 보충하기 위해 병원의 대소를 막론하고 각 과의 과장은 봉급 외에 ‘프라이빗 환자’(Private Patient = 개인환자)를 치료해 그 수입의 상당 부분을 갖도록 계약한다. 프라이빗 환자는 부유층으로 의무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의무보험에 가입되었어도 의료보험이 지급한 금액 외에 자비로 지불할 능력이 있는 경우다. 한국의 특진제와 비슷한 제도지만 프라이빗 환자의 의료수가는 의무보험 환자의 수가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가이며, 병원의 각 과에서는 과장 외에는 프라이빗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이 제도에는 3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재정이 어려운 병원과 의원에는 의무의료보험 환자 수입 외에 상당한 비율의 수입원이 된다. 둘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박봉으로 진료와 연구에 다년간 종사한 의사들이 40세가 넘으면 병원의 대소를 막론하고 지방병원의 과장직에 취임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한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의 목표가 있다. 셋째, 이로 인해 우수한 의료인력이 지방병원으로 배당된다.

    필자가 접촉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이 제도에 대해 “국가가 의료의 계급제도를 허가하는 것을 일반사회에서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현재 이런 제도가 없어도 비공식적으로 계급사회적 의료제도가 확립돼 있다. 서울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는 유명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빈곤층 환자라 할지라도 3차 진료기관인 유명 대학병원의 치료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다. 의료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프라이빗 환자 시스템은 자본주의 자유경제체제하에서 당연한 제도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부를 얻었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유능한 의사의 치료를 받는 길도 공식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독일의 견해다.

    독일에서 이 프라이빗 환자 제도가 없다면 의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몰두하는 의욕적인 의학도는 없을 것이다. 현재 독일 현역 의사의 5%가 각 병원의 과장직에 있고, 1997년에 최고 400만 마르크(26억원)의 수입을 올린 과장도 있다.

    이상적인 사회보장정책 실현의 이면에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제도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의료계는 우수한 인력의 부족으로 쇠퇴일로를 걸어갈 것이다. 또한 프라이빗 환자는 개업의도 볼 수 있으니 의료보험제도로 수입이 적은 개업의에게 적지 않은 혜택이 된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고려해야만 야망 있는 젊은 의료인을 확보할 수 있고 부유층의 재력이 의료계로 흘러드는 길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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