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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교수의 재미있는 마케팅 이야기

고객의 눈으로 보아야 기업이 산다

  • 홍성태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경영학

고객의 눈으로 보아야 기업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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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케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도대체 “우리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느냐(What business are we in?)”를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해야 한다. 이는 곧 기업(Corporate)의 정체(Identity)가 무엇이냐를 밝히는 것(CI)으로, 이것을 잘못 규정하면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
많은 기업이 자신이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사업을 한다. 마케팅의 기본은 사업의 성격을 고객 측면에서 정의하고, 그 성격을 고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우선은 기업의 정체성(Corporate Identity: 일명 CI)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 제1부 - 사업의 성격을 파악하라 ]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한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 ‘스프링벅’이라는 산양이 살고 있다. 이 산양은 보통 20∼30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지만 계절이 바뀔 때는 수천 마리가 떼를 이루기도 한다. 거대한 산양 떼가 천천히 이동하는 장면은 가위 장관이리라.

그런데 앞서 가는 산양들이 풀을 먹고 지나가면, 뒤에 오는 양들은 먹을 풀이 없다. 그러니 뒤를 쫓는 산양들은 풀을 먹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 하고, 앞에 가는 양들은 뒤지지 않으려고 차차 발걸음이 빨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큰 무리가 모두 다 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풀을 뜯어먹기 위해 앞서려고 했지만, 그 다음엔 앞서기 위해 앞서려 한다. 그 다음엔 왜 뛰는지도 모르는 채 그대로 내달리다가 낭떠러지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가격에서든 서비스에서든 무작정 경쟁만 의식하여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달리는 산양같이 어리석은 기업이 많다.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열심히 내달리기만 하는 기업은 곧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과연 무슨 사업을 하는가

마케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도대체 “우리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느냐(What business are we in?)”를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해야 한다. 이는 곧 기업(Corporate)의 정체(Identity)가 무엇이냐를 밝히는 것(CI)으로 이것을 잘못 규정하면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

미국의 앰트랙(Amtrak)은 19세기 중반에 생겨난 철도회사로서 매우 번성하였다. 그 당시 서부를 개척해 나가는 데 철도운송에 대한 수요는 거의 무한하여 1세기 동안 철도산업은 화물과 승객 수송을 독점하여 왔다. 그런데 1960년대에 이르러 경쟁자가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 중 발달한 항공술 덕분에 항공 운송이 일반화하고 웬만한 소도시에까지 비행장이 들어선 것이다.

앰트랙은 자신의 사업을 ‘철도사업(rail road business)’이라고 규정하여 왔다. 그래서 경쟁자인 항공사들과 차별화하느라 되도록이면 비행장을 멀리 피해 철로를 깔아 경쟁력을 가져보려 하였다. 그러나 결국 고객의 외면으로 오늘날 도산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 작년의 손실만도 10억 달러에 이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고객의 눈으로 보아라

사람들은 왜 기차를 타는가 : 사업 내용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고객의 욕구’ 측면이다. 앰트랙의 사업은 기업 측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철도사업이다. 그런데 고객 측에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차를 타던 사람(고객)들이 왜 기차를 탈까?

그렇다. 마차에 비해 기차가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앰트랙은 자신의 사업을 ‘철도사업’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빠르고 편리한 운송수단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생각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비행기가 등장했을 때 전혀 다른 대응을 했을 것이다.

기차와 비행기 중에 어떤 것이 더 빠르고 편리한 운송수단이 되는가? 비행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비행기와 경쟁하게 된 앰트랙이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은 둘 중 하나다. 첫째는, CI를 바꿔 비행기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분야를 개발하는 것이다. 예컨대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운송수단’을 CI로 삼고 시간을 다투지 않는 제품의 운송 또는 관광을 포함한 여가 여행 등을 주 제품으로 내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빠르고 편리한 운송수단’에 집착하고 싶다면 항공사업에 진출할 일이다. 그래서 오늘날 ‘앰트랙 에어라인’이 날아다니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비행기와 철도를 조합하여 비행장에서 시내까지 직접 연결되는 철로를 깔아 다른 항공사가 제공할 수 없는 ‘더 빠르고, 더 편리한 운송 수단’을 제공했더라면 앰트랙이 오늘날처럼 도산 위기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업의 성격을 ‘제품’의 기능과 형태가 아니라 ‘고객’의 욕구를 중심으로 보아야 함을 말해 준다.

대부분의 기업이 ‘자신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what a company is best at)’를 잘 모른다.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라. 해답이 거기에 있다.

사람들은 왜 영화를 보는가 :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진 영화사 MCA나 ‘콜롬비아’ 등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사업은 제품 면에서만 보면 영화사업이다. 그들은 영화사업을 통하여 20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시기를 풍미하였다. 불경기에도 오로지 번성한 것은 영화사업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은 물론 전쟁 후에도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사업은 계속 번창하여 왔다.

이러한 영화사업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70년대에 출현한 VCR 때문이다. VCR가 출현하자 사람들은 극장에 가는 대신에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다 보았다. 제품의 형태만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영화사업을 한다고 생각한 콜롬비아, MCA 등은 VCR의 출현을 안타까워하며, 고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다. 그들 나름대로 고객의 욕구도 조사해 보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영화 선택의 여지를 주기 위해 대형 극장을 4∼5개의 소극장으로 나누어 개조하였다. 표를 구입해 극장에 들어선 고객이 자기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집에서 비디오를 볼 때처럼 편안한 자세로 관람하도록 극장 의자를 더욱 편하게 만들고 앞뒤 간격을 넓혔을 뿐 아니라, 바닥에 고급 카펫도 깔아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관객들은 극장을 찾지 않았다.

이번에는 극장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점을 찾아보았다. 미국 사람들은 극장에 가면 십중팔구 팝콘을 즐긴다. 그런데 집에서 튀긴 팝콘은 아무리 맛있게 만들려 해도 극장 팝콘에 미치지 못하였다. 낭만적 요소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즐길 수 없는 극장만의 낭만을 살리기 위해 더욱 좋은 팝콘과 스낵 등도 개발하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은 날로 줄었다.

이와 같이 극장을 어떻게 개조하여 손님을 끌 것인가에만 신경을 쓰던 MCA나 콜롬비아는 90년대 초, 주인이 바뀌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영화사들이 자신의 사업을 고객의 눈으로 파악했다면 그러한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일까?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사들이 만약 자신이 ‘즐거움을 주는 사업(entertain·ment business)’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VCR는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주 잘 된 영화라도 개봉관에서 3~6개월 후면 ‘중고품’이 되고 마는데, 비디오의 보급으로 이러한 중고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업의 성격을 제대로 인식했더라면 갓 개봉관을 떠난 영화들은 물론, 다시는 극장에서 상영 못할 30∼40년대의 흑백영화들을 녹화하여 적극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즐거움을 주는 사업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먼저 눈을 뜬 기업은 의외로 ‘디즈니’다. 현재 전세계 비디오 판매량 1위에서 10위까지 중 9개가 ‘디즈니’의 작품이다. 반면에 거대한 시장이 생겼는데도 새로운 기회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VCR를 경쟁자로만 인식한 MCA나 콜롬비아 같은 영화사들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왜 TV를 보는가 : 일본의 ‘마쓰시타’나 ‘소니’ 같은 회사들은 이런 점을 깨닫고, 기능과 형태를 중심으로 사업성격을 규정하던 구태를 탈피했다. 즉 자신들이 제품 면에서는 전자사업을 하지만, 고객의 측면에서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왜 TV 드라마를 보는가? 재미있으니까. TV를 보거나 워크맨을 듣는 사람들이 결국은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사업을 ‘즐거움을 주는 사업’이라고 규정한 것은 매우 현명한 처사다.

마쓰시타와 소니가 자기 사업의 정체를 인식한 후 미국의 MCA와 콜롬비아사를 각각 61억 달러, 46억 달러나 지불하고 매입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품 형태 면에서는 전혀 다른 사업 같지만, 고객 욕구 면에서는 동일한 사업이라고 본 것이다. 결국 그들은 일본에서 생산한 전자제품들을 통해 가장 좋은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미국의 영화사를 통해 가장 좋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전하겠다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마쓰시타의 타니이 데루오(谷井照雄) 사장은 이를 “하드와 소프트의 이상적인 결합”이라고 일컬었다.

기업 정체의 규명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업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기능이나 형태보다 고객의 시각을 중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사업을 시장욕구 충족의 과정으로 보아야지 제품생산의 과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제품과 기술은 진부해지지만 기본적인 고객의 욕구는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화장품을 만드는 ‘레블론(Revlon)’ 회사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세 단어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WE SELL HOPE(우리는 기대감을 판다)”

그렇다. 레블론 회사가 파는 것은 화학제품이 아니다. 아름다움 자체도 아니다. 그들은 “이 화장품을 바르면 예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파는 것이다.

이제, 귀사에서도 과연 무엇을 판매하고 있는지, 고객 위치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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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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