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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상들이 본 ‘프로야구 팬’

엘-롯-기 팬, 화끈 두산 팬, 젠틀 삼성 팬, 이탈 중

  • 남훈희|신동아 객원기자 brentnam11@gmail.com

엘-롯-기 팬, 화끈 두산 팬, 젠틀 삼성 팬, 이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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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성근이 한화 팬 결집했는데…”
  • ● ‘kt, 넥센, SK’ 팬덤 빈약
6월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선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 대 LG 트윈스의 정규시즌 경기가 열렸다. 경기 시작 전인 오후 4시쯤 기자는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로 나와 잠실구장 중앙매표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내 남루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 따라붙더니 남성이 말문을 열었다.

“LG 지정석 있어. 지정석. 아주 좋은 자리야. 굳이 힘들게 줄 서서 기다리지 말고 나한테 사. 싸게 줄게.”



“LG 지정석 있어. 지정석”

이날 중앙매표소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중앙매표소의 창구가 개장하는 4시 30분이 되자마자 바로 입장권 구매가 가능할 정도였다. 힘들게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상황은 도래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표상은 혼자 복화술을 구사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 가봐야 좋은 자리 못 구해. 몇 장 필요해?”



아직 잠실구장 내부로 입장한 관중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좋은 자리를 못 구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그의 저의가 무엇인지 도통 파악하기 어려웠다. 필자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총총히 멀어졌다. 그는 6번 출구로 나오는 관중에게 ‘똑같은 레퍼토리로’ 다시 접근했다.

이날 중앙매표소 근처에는 15~16명의 남녀 암표상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단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이 서성이는 곳의 벽면에는 “암표를 방지하기 위해 암표상을 공익신고센터에 제보해주신 시민에게는 당일 경기입장권을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암표상은 물론, 야구를 보러 온 사람들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유명 브랜드의 티셔츠, 반바지, 운동화를 깔끔하게 착용한 50대 남자 암표상 A씨에게 먼저 다가갔다. 암표상이 본 프로야구 팬 문화는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프로야구는 연간 1000만 명이 찾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고, 암표상들은 팬이라는 수요자의 관점에서 프로야구 문화를 이야기할 만한 사람들이다. A씨는 다부진 체격과 짧게 정돈해 올린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A씨에게 가능하면 여러 암표상과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A씨는 내야 1루 출입구를 가리키며 “저쪽에 B○○(치킨) 매장이 있다. 거기서 기다려라. 이따 영업 끝내고 몇몇 동지랑 가겠다”고 했다.

오후 6시 30분 경기가 시작된 지 30여 분이 지나자 A씨가 4명의 남녀 암표상 동료와 함께 매장으로 들어왔다. 필자는 이들에게 치킨과 맥주를 대접했다. 또한 미리 준비한 선물용 머그잔도 증정했다. 대화는 1시간 가량 이어졌다.


“삼성이 맛이 가서…”

이들에게 입장권을 많이 팔았는지부터 물었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A씨는 “많이 못 팔았다. 지금 구장 내부로 들어가 보면 내외야 구분 없이 텅 빈 곳이 많을 거다. 오늘은 절반도 못 채울 것 같다”고 답했다. 

옆에 있던 암표상 B씨는 “작년부터 삼성 라이온즈가 맛이 가서 그렇다. 재작년까지는 평일에도 삼성 팬들이 잠실구장에 많이 왔다. 올해는 이승엽 은퇴 시즌인데도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이어 B씨는 “10개 구단 팬 중에서 삼성 팬이 요즘 불행하다. 삼성이 다년 간 왕좌에 있다가 꼴찌권으로 밀리면서 상당수 삼성 팬이 우울증을 호소한다. 경기장에도 안 오고 TV중계도 안 보겠다고 한다. 이탈하는 팬이 늘고 있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이날 KBO가 공식 집계한 관중 수는 잠실구장의 2만6000여 좌석 중 절반을 간신히 넘은 1만4197명이었다. 치킨 매장에 모인 5명의 암표상은 대개 학력이 낮고,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했고, 웨이터 배달부 등으로 일하다 암표상이 됐는데, 이른 경우는 동대문야구장 시절 시작한 이도 있었다.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기계 작업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일을 못 하게 됐다. 나와서 빈둥대던 와중에 아는 고향 후배가 ‘야구장만 한 노다지가 없다’고 해 지금까지 왔다.” (A씨) 

암표상도 ‘직업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비교적 젊은 40대 초반의 암표상 C씨는 “우리를 ‘잡범’으로 취급할 때는 분노가 솟구친다. 암표를 팔아 먹고사는 게 떳떳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야구 붐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중요한 경기에선 입장권은 한정되어 있지만 보려는 사람은 많다. 돈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관람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긴다. 암표상은 수수료를 받고 구매를 대행해줌으로써 야구 관람을 더 강하게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준다. 일종의 에이전트인 암표상을 통해 한정된 입장권의 ‘정의로운 분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C씨)

A씨에 따르면, 잠실구장을 비롯해 전국 야구장에서 활동하는 암표상은 약 15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여성은 30명 정도다. KBO리그가 8구단 체제로 운영되던 시절에는 100명 정도였다고 한다. 2013년 NC 다이노스, 2015년 kt 위즈가 각각 경상남도 창원과 경기도 수원을 연고로 창단돼 10구단 체제가 되면서 작금의 150명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묵직한 두산, 점잖은 두산 팬”

잠실구장의 경우 ‘주중(화·수·목) 일반 경기’가 열릴 땐 20명 안팎의 암표상이 영업을 하고, ‘주말(금·토·일) 빅 매치’가 열릴 땐 40명 안팎의 암표상이 움직인다고 한다. 어쩌면 각 구단의 마케팅 부서만큼 흥행에 민감한 암표상이 정의하는 ‘빅 매치’란 무엇일까.

“서울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나 두산 베어즈, 이 중에서도 LG가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에 전국구 인기를 자랑하는 롯데 자이언츠나 KIA 타이거즈가 맞붙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암표상 B씨)

암표상들은 이구동성으로 롯데나 KIA가 잠실 원정경기를 오는 날이면 입장권 가격을 ‘엿장수 마음대로’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이런 경기엔 부산과 광주에서 활동하는 암표상까지 대거 상경한다고 한다. C씨는 “입장권만 충분히 확보하면 잠실의 롯데-LG전, KIA-LG전은 그냥 돈을 쓸어 담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올해 암표상의 소원은 LG, 두산, 롯데, KIA가 포스트시즌에 동반 진출하는 것이다.

구단별 팬 문화와 관련해 암표상 D씨는 “엘롯기+두산(LG, 롯데, KIA+두산) 대 나머지(삼성, 한화 이글즈, SK 와이번즈, 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kt 위즈)로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D씨는 “엘롯기+두산 4개 구단의 팬 문화는 자주 만원 관중을 채워줄 정도로 구단에 대해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열정적이다. 나머지 6개 구단의 팬 문화는 이보다 약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덜 열정적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상위 4개 구단의 팬 문화도 서로 갈린다. D씨는 “두산이 묵직한 팀 컬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두산 팬은 비교적 젠틀한(점잖은) 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 이후 신규 여성 팬이 주로 두산을 중심으로 많이 유입됐다. 반면 LG 팬들은 한번 불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화끈하게 타오른다. 열정 측면에서 LG 팬이 두산 팬을 압도한다”고 말한다. 치킨 집에 모인 암표상들은 대체로 “LG 팬이 가장 정체성이 강하고 열정적이며 이어 KIA 팬, 롯데 팬, 두산 팬 순”이라고 평가했다.

암표상 E씨는 “엘롯기는 원래 세 팀이 꼴찌를 도맡으면서 나온 말이다. 세 팀은 원래 경기력이 헬렐레하고, 세 팀의 팬은 원래 돈을 헤프게 쓴다. 우리 같은 암표상에겐 봉”이라고 말했다. 2016년 포스트시즌 LG-KIA 와일드카드전에서 암표 가격은 평소 암표 가격의 3배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kt 무색무취, SK 불가사의”

암표상들은 팬덤(fandom·열정적으로 좋아해 몰입하는 사람)이 가장 적은 최하위 구단으로 ‘kt, 넥센, SK’를 주저 없이 꼽는다.

“kt는 무색무취다. 팬을 흡입할 어떠한 매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구단 차원의 팬 서비스도 별로다. 심지어 kt가 연고지를 수원으로 정한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다. 수원은 천하의 현대도 망해 나간 곳이다. kt 팬은 규모도 작고 통일된 느낌을 주지 못한다.” (A씨)

“넥센 팬의 대부분은 최근 유입됐다. 또한 넥센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LG나 두산을 함께 좋아한다. 정체성이나 응집력이 떨어진다. 넥센의 전신인 현대의 팬들은 연고지 이전 파동 전후로 SK로 갈아타거나 아예 야구계를 떠났다.” (C씨)

“SK는 불가사의한 구단이다. 우승을 밥 먹듯 하던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도 관중 수는 적었다. 오히려 왕년의 태평양이 성적은 하위권이었지만 팬이 많았다. 올해도 SK는 홈런구단으로 거듭나 선전하 고 있지만 팬을 끌어들이진 못한다. ‘와이번즈’라는 구단 이름도 이상하다. 무슨 뜻인지 알기도 어렵다.” (D씨) 

지방에선 NC가 팬덤이 적은 비선호 구단으로 꼽힌다고 한다.

“마산구장은 과거 롯데의 제2 홈구장이었다. 2010년 마산, 창원, 진해가 창원시로 통합되었지만 마산 사람은 자신을 ‘마산 사람’이라 말한다. 마산 사람은 롯데를 열정적으로 좋아해 용접기로 자물쇠를 녹여 야구장에 난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산을 연고지로 하는 NC가 창단된 이후엔 이상하게 점잖게 변모했고 열정도 식었다.” (E씨)

삼성 라이온즈 팬과 관련해, A씨는 “삼성에는 ‘대구아재’라 불리던 막강한 팬덤이 있었다. 그러나 김응룡, 선동렬 등 해태 출신 감독들이 들어오고 팀 컬러가 홈런 타자보다 불펜투수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골수 팬 중 상당수가 떨어져 나갔다. 올해엔 성적까지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추가 이탈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불펜투수 혹사시켜도…”

한화 팬과 관련해서도, 암표상들은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한화의 성적과는 무관하게 ‘김성근’이라는 개인 브랜드가 한화 팬을 결집시키는 데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5월 김성근 전 감독이 퇴진했다. 사실상 경질로 알려지기도 한다. 한화는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르고 있다. 김성근의 티켓 파워는 타 감독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대화나 김응룡도 팬 끌어모으기 측면에선 김성근에겐 상대가 안 된다.

김성근이 한화에 온 이후로 한화의 기존 팬에다 김성근을 좋아하는 개인 팬이 더해졌다. 심지어 김성근이 불펜투수를 혹사시키는 엽기적인 운영을 해도, 그것을 욕하기 위해 한화 경기를 보는 ‘안티 팬’으로 인해 경기장 관중 수는 더 늘었다. 인터넷에서 한화는 김성근으로 인해 뜨거운 이슈가 되어왔고 한화의 팬 층은 두꺼워졌다.

김성근이 없는 한화는 원래의 무미건조한 팀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한화가 더 강한 팀으로 변모한 것 같지도 않다. 옛날 고교야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천안북일고’의 위용은 지금의 한화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프로야구 선수들과 구단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마지막 질문에 암표상들은 “자신의 팬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투수 앞 땅볼을 치더라도 전력 질주해야 프로 아니야?”



‘프로야구 암표’ 생태계 “알바 동원해 수백 장 확보 잘하면 월 1000만 원 수입”

프로야구 암표상은 대부분 인터넷 인터파크와 야구장 매표소를 통해 표를 확보한다. 인터파크는 서울을 연고로 둔 LG, 두산, 넥센의 홈 경기 발권을 담당한다. 암표상들은 대개 경기 열흘 전에 입장권을 예매한다.

인터파크에서 한 사람이 구매할 수 있는 입장권은 최다 12장. 게다가 빅 매치의 지정석은 발권 개시 2분 내에 매진된다. 그렇다면 암표상은 이런 상황에서 입장권 수백~수십 장을 어떻게 확보할까. 암표상 A씨는 소위 ‘알바’를 고용해 표를 예매한다고 설명한다.

“공부에 뜻을 접은 중·고등학생 10여 명에게 프로야구 빅 매치 입장권을 예매하라고 시킨다. 이들은 인터파크에서 ID 하나당 6장씩 2회까지 예매를 시도한다. 예매한 실적에 따라 나는 이들에게 입장권 한 장당 최고 1만 원까지 수당을 지급한다.”

암표상 B씨는 “인터넷 중고물품 사고팔기 사이트에서 프로야구 입장권만 전문적으로 파는 대학생들도 있다. 이들에게 약간의 웃돈을 주고 표를 넘겨받기도 한다. 빅 매치라도 입장권 확보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암표상들은 대개 경기 당일 야구장 주변에서 원가의 2배에 입장권을 판다. 잠실구장을 기준으로 7만 원짜리 프리미엄석은 14만 원에, 4만3000원짜리 테이블석은 8만 원에, 1만7000원짜리 블루존은 3만~4만 원에 팔린다고 한다. 그러나 빅 매치에선 부르는 게 값이 된다. A씨는 LG-두산 어린이날 3연전 등 빅 매치가 벌어진 5월에 암표 판매로 1000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잠실구장 중앙매표소 벽면에 암표 제보 공지가 부착되어 있지만, 암표 단속은 형식에 그치는 편이다. 암표상 B씨는 “암표 판매는 경범죄여서 적발되어도 20만 원 벌금 처벌에 그친다.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되면 확보한 입장권 수백 장이 휴지조각이 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암표상이 웃돈을 받고 입장권을 건네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기에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 경찰도 이런데 일반 시민이 암표 거래를 제대로 제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암표는 학계에서도 논쟁거리다. 미국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VIP석에 앉을 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선수들의 이름 등번호 타율을 꿰는 팬들이 돈 많은 암표 구매자들보다 야구를 더 좋아한다”며 암표를 공격한다. 반면, 같은 대학의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려면,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소비자에게 그 자원이 돌아가야 한다”며 암표를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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