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의 평균 끌어올린다는 점에선 긍정적
- 영세하다고 골목가게 무조건 존속 주장은 무리
- 자본을 앞세워 경쟁력 있는 영세 업체 구축(驅逐)이 문제
-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통한 영업권 보호가 핵심
프랜차이즈 진입 배경
시간을 되돌려 20여 년 전으로 가보자. 1990년대 초중반은 대기업들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던 시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파리바게트로 1988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본격적인 확장기를 맞이한 것이 1990년대 중반이다. 이때의 성공 덕분에 샤니가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립식품을 인수, 현재의 SPC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당시, 골목 가게들의 경쟁력은 낮았다.분식점을 예로 들어보자. 거의 모든 분식점이 표준화한 메뉴 없이 ‘감(感)’으로 짠 레시피로 가게를 운영했다. 문제는 이 분식점들의 평균 퀄리티가 좋지 않은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메뉴가 인상 깊지도 못했고, 특색 없고, 방문할 때마다 나오는 음식의 질도 들쭉날쭉했다. 당장 대표 메뉴라 할 수 있는 떡볶이만 해도 국물의 농도가 시시각각 달랐다. 떡은 불어터져 있기 일쑤였다.
동네 빵집, 동네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퀄리티 낮은 빵이 범람했다. 음식점 창업은 요리 좀 한다는 주부에게 남편이 자본금을 대면서 놀지 말고 해보라는 식의, 일종의 부업 같은 일이라는 인식도 많았다. 외식으로 먹는 요리의 수준이 집밥보다 아주 좋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집에서는 쉽게 해먹을 수 없는 짜장면, 짬뽕 같은 중화요리나 고깃집 음식이 대표적 외식 메뉴로 자리 잡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이 프랜차이즈가 골목마다 자리 잡기 전 골목상권의 양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랜차이즈가 골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는 대량생산 수단
대형 프랜차이즈는 직영점·가맹점의 점주와 직원의 역량을 본점의 직원 수준만큼 끌어올리기 어렵다. 따라서 생산 과정을 단축하고 표준화함으로써 분점에서도 본점의 서비스를 손쉽게 제공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프랜차이즈가 있었기에 우리는 동네에서도 본점과 거의 유사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전과 다른 생산의 혁신이었다.
자, 이제 다시 골목상권 얘기로 돌아오자. 골목상권의 가게들이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때, 해당 업종 중 가장 잘되는 가게들이 평균화와 표준화를 앞세워 골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표준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변동성을 크게 줄여 소비자가 본점에 가지 않고도 본점에 준하는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덕분에 프랜차이즈 가게들은 골목상권의 가게들보다 상품과 서비스 등에서 평균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소비자로 하여금 골목 가게보다 프랜차이즈를 이용하게 만들었다. 어느 분점을 가도 비슷한 품질로, 적어도 소비 결정에 실패할 일이 없게 만든 부분이 대기업과 대형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빠른 속도로 점령한 핵심 요인이다.
반면, 골목상권 가게들은 한국의 짧은 자본주의 역사 때문에 개인이 경쟁 역량을 갖출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그 때문에 표준화와 품질관리를 앞세운 우월한 업체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많은 골목 가게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 경쟁에서 패배하며 그들의 가맹점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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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없으면 이길 수 없다
혹자는 골목상권의 가게들이 대형 프랜차이즈로 급속하게 바뀌는 손 바뀜을 지적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프랜차이즈 대비 경쟁력이 뒤처진 가게들이 그저 영세하다는 이유로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적어도 지금 각 골목에서 프랜차이즈와 경쟁해 우위에 있는 가게는 프랜차이즈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추구함으로써 자신들만의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 똑같은 방법으로 해서는 규모를 이길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대기업과 대형 업체 탓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대형 프랜차이즈의 급속한 확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맹점주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어야 한다. 즉, 가맹점의 급속한 확산에는 그만큼 가맹점주가 되겠다고 몰려든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프랜차이즈는 제품 개발과 가격 책정, 인테리어 구성, 홍보, 재료 확보와 주문 등에서 자유롭다. 독립된 사업자로 일을 하는 경우라면 이 모든 것을 고민하고 직접 결정해야 한다. 프랜차이즈는 복잡한 모든 것을 본사가 해주는 비교적 편히 장사하는 방법이다.
또 마케팅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본사가 담당하고 있기에 가맹수수료가 합리화될 수 있다. 사업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춰준다. 특별한 아이디어나 운영 능력이 없어도 손쉽게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다. 만약 특정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가맹점주가 되겠다고 몰려간 그 사업자들이 이러한 지원 없이 직접 창업했다면 그 사업이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필자는 여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할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의 골목상권 침투는 분명 문제점이 있긴 하나, 대형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망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거의 저품질 서비스를 평균 이상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골목상권이 처음부터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그렇게 대형 프랜차이즈에 일방적으로 패배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어두운 부분을 살펴볼 차례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우리나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 것은 사실이며, 영세한 자영업자라면 대형 프랜차이즈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생존율이 높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론적으론 이렇게 되면 양자 균형이 이루어져 양쪽 모두가 공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매끈하게 돌아가지 않으니 문제다.
과거에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진입이 서비스 질이 낮은 소형 자영업자들을 도태시키고 서비스 질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면,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있는 상권에 자본력을 투하, 서비스를 획일화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축소시키며, 기존 사업자들을 외곽으로 내쫓거나 가맹점주를 향해 갑질을 하는 횡포가 벌어진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어두운 면
우리나라의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 법은 임차인보다 임대인에게 유리하다. 과거보다 보호 기간이 늘어나긴 했어도 5년이라는 계약기간은 짧다. 주요 선진국들의 상가임대차계약이 무기한 계약이거나 정기 계약이라 해도 프랑스는 9년, 영국은 10~15년 등 장기 계약인 점을 감안할 때 부족함이 많다. 더군다나 최초 계약으로부터 5년을 채울 경우 계약 갱신이 더는 되지 않고, 새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임대인은 직전 계약 조건과 무관하게 금액을 제안할 수 있다.자본력을 앞세운 거대 프랜차이즈가 진입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다. 건물 전체를 임차하거나 상권에 형성된 임대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임대료를 제안하는 식으로, 임대인으로 하여금 어떻게든 기존 계약자를 내보내게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건물의 임대료가 크게 오를 경우 해당 지역의 평균 임대료도 그에 맞춰서 상승한다. 지역의 임대료는 그 지역 시세를 고려해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되는데, 이는 특정 건물의 임대료 상승이 해당 지역 평균 임대료 상승의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자본력을 무기로 나름의 경쟁력을 갖춘 영세업체들을 해당 지역에서 더 이상 영업할 수 없게 만든다. 이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임대인, 중개인의 이해관계가 부합해 생긴 일이며, 우리나라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미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영세업자는 완벽하게 배제된다.
대형 프랜차이즈에 대한 비판은 이런 부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은 대형 프랜차이즈의 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영업권을 보호하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