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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흔들리는 의료보험제도 개인환자제 도입으로 해결하라

  • 이종수 한독한의학회장·독일 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흔들리는 의료보험제도 개인환자제 도입으로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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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 시행하고 있는 개인환자제는 의료보험의 구조적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다. 비싼 의료비를 감수할 수 있는 환자를 과장급 이상의 의사만이 진료하도록 하는 이 제도는 재정이 어려운 병원에 수입을 제공하는 한편, 의사들의 연구욕을 촉진하고 우수한 의료 인력을 전국에 분산시킬 수 있다.》
1883년 프러시아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공업지대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제정한 독일의 의료보험제도는 이 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다. 그런데 바로 이 제도가 20세기 말에 이르러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상승해가는 의료비를 의료보험조합의 재원이 받쳐주지 못하면서 정부당국도, 의료보험관계자도, 의료계 종사자들도 속수무책 상태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통일 이전인 1969년 총선에서 승리한 서독의 사회민주당은 1970년부터 사회정책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1970년 독일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할 평균 의료보험료는 고용인의 월 총소득 가운데 8.2%에 해당했다. 이중 절반인 4.2%에 해당하는 보험료는 고용주가 부담했다.

그러나 30년 후인 1999년 이 수치는 평균 13.5%로 상승, 고용인의 부담뿐만 아니라 고용주의 부담도 증가했다. 현상태로 방치할 경우 2030년에는 고용인 소득의 20%를 넘어선다. 더욱이 고용주는 고용인의 의료보험 외에 연금보험료와 실업보험료의 절반도 부담해야 한다. 즉 평균적으로 고용인 총봉급의 약 15%에 해당한 금액을 고용주가 사회보장 협조비로 지출해야 하는데, 이것은 인건비가 15% 상승한 것과 같다.

이는 결국 독일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를 위축시키거나,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생산공장을 이동함으로써 결국 자국 내에 실업자가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는 다시 국가의 세입감소, 실업수당 수요의 증가, 의료보험 수입의 감소를 야기했다.

좌파인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인 현 독일연방정부도 특히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의료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으려고 여러 대책을 강구했다. 그 일환으로 정부가 1999년 ‘의료개혁 2000’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으나 의료계와 야당이 과반수로 구성된 상원의 반대에 봉착해 물의를 일으켰을 뿐이다.



이 개혁법의 골자는 정부에서 의약품대금 예산과 환자진료예산을 고정시키고 개업의들이 그 예산 이상 청구할 수 없게 제한하는 것이었다. 의료계가 이 법안에 반대한 것은 의약품의 처방과 환자의 진료를 강력히 제한할 경우 결국 환자가 의사를 방문했을 때 예산초과로 치료약을 처방해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험제도하에서 병원 이익 내긴 불가능

현재 독일에서는 월수입이 6375마르크 이하(연간 8만마르크 = 4500만원)인 경우는 무조건 의무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이 이상의 수입을 가진 이들은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 1998년 의무보험 가입자는 독일인구 8200만명 중 7300만명이다. 1998년의 의무의료보험조합에 들어온 총의료보험료는 2430억 마르크이고, 사설의료보험회사에 들어온 총보험료는 335억 마르크였다. 1999년에도 이와 비슷한 보험료 수입을 예상할 때 이해 총의료예산이 5500억 마르크이니 2735억 마르크, 즉 약 50%의 의료예산이 부족하다.

모든 치료비는 전액을 의료보험이 보장하고 고가의 치료라 할지라도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자부하던 독일의료보험제도가 ‘과거의 유물’임을 독일국민은 잘 알고 있다. 120년 이상 경험을 쌓아온 의료보험제도의 원조가 천문학적인 의료예산 상승에 직면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지금부터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따져보려 한다.

의료보험제도란 다른 종류의 손해보험과 마찬가지로 국민, 특히 중산층 이하의 계층에서 예기치 않던 질병의 치료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매월 지불하는 소액의 보험료로 덜어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치료기관인 병원이나 의원이 이익을 추구할 때는 역시 의료보험료가 필연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보험료가 극도로 증가하면 사회보장제도는 그 의의를 상실한다.

이런 모순을 방지하기 위해 독일의 모든 병원(병실을 소유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즉 흑자를 내서는 안 되는 공익 유한회사로 돼 있다. 즉 비영리 법인이다. 병원설립은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체제 원칙을 떠나 수요에 따라 국가가 허가하고 건립비 대부분과 병원 설립 후 건물 수리비, 확충비와 고가의 장비구입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준다.

의료보험에서 지급되는 의료수가는 ‘호텔비’(식사대, 방청소비 등 병원 숙박에 필요한 경비와 이에 따른 인건비)와 진단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 그리고 입원중의 치료비에만 충당한다. 동시에 병원 사무국은 지급되는 의료수가로 환자에게 최대한의 진료를 제공하면서도 적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동일한 병실수를 소유하고 있는 어느 한 병원의 외과가 다른 병원에 비해 수술건수가 많을 때에는 그 병원의 외과 의사들이 열심히 한 셈이니 적자가 나지 않도록 의료수가를 올려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병원이 최소한의 적자를 면하고, 동시에 의욕적으로 일하는 의사들의 사기를 살려줄 수 있도록 의료보험조합에서 조정한다. 즉 병원의 국영화와 같은 제도다.

늘어나는 환자 부담

독일병원협회의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정신병원을 제외한 일반병원의 총 병상수는 54만914개다. 그중 56.3%인 30만4500병상이 국공립이고, 37.9%(20만4811병상)는 교회가 주축이 돼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 그 나머지 5.8%가 개인이 경영하는 병원이다. 그러나 병상의 1년당 사용률은 국공립병원 81.4%, 비영리법인병원 81.2%, 개인병원이 81.9%로 국공립을 막론하고 전 병원이 80% 이상이다.

입원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개인병원과 비영리법인병원 모두 5600마르크(360만원)로 같고 국공립병원이 6400마르크(420만원)인데, 이처럼 국공립병원의 의료비가 높은 것은 전국의 모든 대학병원과 대형 3차 진료병원이 포함돼 있어 중환자 치료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병원과 비영리법인병원은 전부가 2차 진료기관으로, 역시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의료보험공단의 예산이 한정돼 있으므로 결국 환자 개인의 부담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1999년 4월 서울에서 개최된 한·독의학 심포지엄에서는 1998년 우리나라 총 의료비에서 환자의 자체 부담이 비보험진료비까지 포함해 70%에 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병원의 이익 추구와 이상적인 사회보장제도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의무의료보험제도는 공존할 수 없다. 이 점이 모순이다.

개업의가 존립할 수 있어야

독일에서 개업의란 병실을 소유하지 않은 의원을 말한다. 의원에는 환자를 해당지역에서 보살피는 가정의와, 전문적인 진단과 전문외래치료를 담당하는 전문의로 대별된다. 그러나 모두가 정부의 수급계획에 의해 한정된 수를 각 지역에 허가배치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개업할 수 없다.

각 병원은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 외에는 일반적인 외래환자를 보지 않고 2차, 3차 진료에 해당하는 특수 외래만 받는다. 외래를 보더라도 의료보험에서 지급되는 의료수가가 염가이기 때문에 병원 재정에는 별도움이 안 된다. 독일의 병원을 방문하면 외래가 없어 너무 조용한 것에 놀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래환자의 대부분이 대형 병원에 집중된다. 집중된 환자를 처리하려면 진료시간은 1~2분을 초과할 수 없지만 병원의 수익을 추구해야 하니 가급적 많은 외래환자를 받아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한다면 이처럼 짧은 시간의 진료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법의 결정은 불가능하다.

의료보험제도하에서 대형 병원의 과제는 이와 같은 일차 진료에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병원 경영자들은 병원이 적자를 면해야 하므로 외래환자를 많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개업의는 환자부족으로 파산에 이르고 그 결과는 각 지역 1차의료 수급의 붕괴로 나타난다. 이것은 국가의료수급 차원에서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독일에서는 대형 슈퍼마켓의 발달로 각 촌락과 대도시 구석구석에 있던 식품상이 자취를 감추었다. 작은 식품점이 대형 슈퍼와 경합해 이길 수 없다. 현 상태로 가면 그런 현상이 우리나라 의료수급에 되는 발생한다. 즉 대형 병원만이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파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각 의원에서 과다진료, 치료비의 부정 신청, 환자를 해당 전문의에게 의뢰하지 않는 일들이 빈번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것은 개업의의 범죄라기보다는 그와 같은 모순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독일의 경우 개업의는 시군별로 한단위가 구성돼 그 지역 의료보험조합 수입에서 배당된 총예산을 각 개업의의 업적에 해당하는 총점수에 따라 배당하고 있다.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개업의 개개인이 진료하는 환자수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여기에 개업의의 자유경쟁이 있다) 생존권을 위협할 만한 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업의를 대변하는 보험의사협회가 각시군의 의료보험조합과 협상을 벌인다. 전문과목과 상관없이 독일 개업의의 평균 실수입은 대개 동일하다.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하는 의료제도로는 사회보장제도하의 의료인 수급이 제대로 기동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일대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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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한독한의학회장·독일 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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