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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흔들리는 의료보험제도 개인환자제 도입으로 해결하라

  • 이종수 한독한의학회장·독일 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흔들리는 의료보험제도 개인환자제 도입으로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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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8200만명의 독일에는 582개의 의무의료보험조합이 존재한다.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만 해도 현재 14만5000명이다. 1998년에 130억 마르크(8조5000억원)의 예산이 이 보험단체의 운영비로 지출됐다. 이 해에 징수된 총 의무의료보험액 2430억 마르크의 5.3%에 해당한다. 그 외에 개업의를 대표해 의료보험단체와 교섭을 벌여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의료보험의사협회가 있는데 여기도 1만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니 의료보험의 징수, 관리 및 배당업무에만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최근 최대한의 구조조정을 시행했지만, 1998년에는 그 예산이 1997년에 비해 5%증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정부는 구조조정과 합리적인 경영을 통해 의무의료보험조합 예산이 남을 경우 그 다음해의 의료보험료 비율을 내리도록 하고, 가입자가 의무의료보험조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보험조합간에 경합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독일의 각 의무의료보험조합의 보험률은 동일하지 않고 고용인 총급여의 최하 11.9%에서 최고 15%까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발도상국이 시행하는 의료보험으로는 운영비 지출이 많아지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지만 징수된 의료보험료는 최대한 환자 진료에 사용하는 것이 지상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보험료의 징수, 관리, 지출 등에 수반되는 부대경비는 최소화해야 한다. 제도 개혁을 통해 의료비지급과정을 간소화해 방만한 경영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은 노년보험처럼 세대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을 비축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없고 매년 그 보험률을 변동해 갈 수 있어야 한다. 특수한 사정으로 한 해의 예산을 초과했을 때 그에 상응해 그 다음해에는 보험률을 올려 그 적자를 메우고, 예산이 남을 때는 그 다음해에 보험률을 내려 가입자에게 환원하는 것이 순리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의료보험공단이 일산 신도시에 대형병원을 설립했다. 그 병원을 경영함으로써 적절한 의료수가를 의료보험공단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설립 목적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 의료제도와 비교해볼 때 이는 언어도단이다.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 시행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자본주의적 의료정책을 지향하는 미국의 사설의료보험회사가 이익을 추구해가는 식의 기업경영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미국에는 자체 병원을 설립해 보험가입자를 치료함으로써 의료비를 절감하고 이익을 올리는 사설의료보험회사가 있다. 한국의 의료보험공단이 병원을 설립하면 수익을 올린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국민으로부터 징수하는 보험금은 오로지 국민의 의료를 위해 사용돼야 하고 공단은 수익을 추구해서는 안 될 공익기관으로 제 구실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자유경쟁

의료사업을 하나의 기업으로 본다면 자유경제주의 원칙하에서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어야 하고, 경쟁에 의한 자연도태의 결과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수입이 사회복지를 지향하는 의료보험료라는 한정된 예산에 좌우된다면 병원 병상수는 필요에 의해 조절돼야 한다. 독일과 같이 병원의 설립, 수리와 증축, 그리고 고가의 의료기 공급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필요한 병상수 조절이 간단하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자칭하던 1950년대 말 인구 6200만명의 서부독일에는 40만개 병상이 있었다(정신병원 제외). 70년대 중반 사민당정부의 새로운 노동보호법에 따라 각 직장에서 병가를 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구는 늘지 않았는데도 병상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서독 정부는 총병상을 49만개 이상으로 늘렸다. 그러나 80년대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결국 환자가 줄어 통일 전까지 45만개 병상으로 줄였다.

동서독 통일 직후인 1990년 동서독을 합해 61만7000개에 이르던 병상은 통일 후 실업자의 증가로 병원 이용률이 낮아지면서 7년 뒤 54만1000개로 감소됐다(실업률이 높아지면 병원이 비는 현상은 1998년 초 우리나라의 IMF체제하에서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독일은 정부가 자유자재로 병상수를 증감함으로써 불필요한 예산의 소모를 방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총병상수는 인구비율로 볼 때 독일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지만 우리 국민의 경제사정을 감안해 정부가 적절한 수급계획에 따라 설립 및 증축을 인허가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의료의 적정수급이 이루어지고 의료보험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돼 병원운영자의 도산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킬 수 있다.

비단 병원뿐만 아니라 개업의 배정도 수요에 따라 국가가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년 의과대학에서 배출된 다수의 의사는 개업 시장에 일대혼란을 야기하고 환자진료예산은 무제한 상승할 것이다.

의사의 의욕을 잃게 하는 제도

독일의 경우 의료비가 증가한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첫째는 개업의 숫자가 증가일로에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2차 세계대전 후 의료인 양성이 침체되면서 1970년대 전반까지 독일은 의사 간호사 같은 의료인을 외국에서 초청해야 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인력이 늘어나기 시작, 1999년 초에는 총인구가 8200만명인 이 나라에 35만7727명의 의사가 존재한다(독일연방의사협회). 인구 229명당 의사 1인꼴이다. 뿐만 아니라 2258개 병원의 56만5000병상은 주야로 환자를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병원의 병상과 의사수가 증가하면 자연히 의사는 생계유지를 위해, 병원은 적자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외의 과다한 진료를 하게 돼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에 직접 관여한 의료인과 의료와 연관된 분야의 종사자가 400만명 이상으로 독일 전체 생업 및 취업자의 12%에 해당한다. 이 인력의 인건비 증가도 의료비 증가에 중요한 원인이다.

의사의 증가는 자연히 개업의의 수입을 감소시키며 1998년에 독일 개업의의 연평균 수입은 20만4000마르크(1억3000만원), 월평균 1100만원 정도다. 이 금액에서 의사 개개인의 의료보험, 연금보험, 실업보험, 그리고 세금을 공제하면 그렇게 많은 수입은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의과대학 지망생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성적이 우수하다. 이것은 의사가 인술을 베푸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사회의 존경을 받기도 했거니와, 특히 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무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는 자연히 의사의 수입이 감소하며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처럼 파산하는 정부의료기관이나 개인의료기관이 허다해진다. 특히 독일처럼 병원이 공익을 위한 비영리법인인 경우 의사는 봉급을 받는 일개 공무원에 불과하다. 이것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출동해야 하는 의사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욕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용기를 상실케 한다. 공산주의 국가가 멸망한 원인이 결국 개인의 욕구를 무시한 제도에 있는 것과 같다.

독일식 개인환자제도 도입해볼만

독일에서는 의료사회정책을 수행해가며 그에 수반되는 이와 같은 단점을 보충하기 위해 병원의 대소를 막론하고 각 과의 과장은 봉급 외에 ‘프라이빗 환자’(Private Patient = 개인환자)를 치료해 그 수입의 상당 부분을 갖도록 계약한다. 프라이빗 환자는 부유층으로 의무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의무보험에 가입되었어도 의료보험이 지급한 금액 외에 자비로 지불할 능력이 있는 경우다. 한국의 특진제와 비슷한 제도지만 프라이빗 환자의 의료수가는 의무보험 환자의 수가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가이며, 병원의 각 과에서는 과장 외에는 프라이빗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이 제도에는 3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재정이 어려운 병원과 의원에는 의무의료보험 환자 수입 외에 상당한 비율의 수입원이 된다. 둘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박봉으로 진료와 연구에 다년간 종사한 의사들이 40세가 넘으면 병원의 대소를 막론하고 지방병원의 과장직에 취임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한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의 목표가 있다. 셋째, 이로 인해 우수한 의료인력이 지방병원으로 배당된다.

필자가 접촉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이 제도에 대해 “국가가 의료의 계급제도를 허가하는 것을 일반사회에서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현재 이런 제도가 없어도 비공식적으로 계급사회적 의료제도가 확립돼 있다. 서울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는 유명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빈곤층 환자라 할지라도 3차 진료기관인 유명 대학병원의 치료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다. 의료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프라이빗 환자 시스템은 자본주의 자유경제체제하에서 당연한 제도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부를 얻었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유능한 의사의 치료를 받는 길도 공식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독일의 견해다.

독일에서 이 프라이빗 환자 제도가 없다면 의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몰두하는 의욕적인 의학도는 없을 것이다. 현재 독일 현역 의사의 5%가 각 병원의 과장직에 있고, 1997년에 최고 400만 마르크(26억원)의 수입을 올린 과장도 있다.

이상적인 사회보장정책 실현의 이면에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제도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의료계는 우수한 인력의 부족으로 쇠퇴일로를 걸어갈 것이다. 또한 프라이빗 환자는 개업의도 볼 수 있으니 의료보험제도로 수입이 적은 개업의에게 적지 않은 혜택이 된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고려해야만 야망 있는 젊은 의료인을 확보할 수 있고 부유층의 재력이 의료계로 흘러드는 길도 열린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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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한독한의학회장·독일 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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