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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한국경제 ‘감’못잡는 한국 경제학자들

  • 이형삼 hans@donga.com

한국경제 ‘감’못잡는 한국 경제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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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앞의 미래도 예측하지 못한다, 현실감각이 뒤떨어져 정책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경제현안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이다. ‘한국경제를 연구하지 않는 한국 경제학자.’ 그 아이러니의 속사정은 무엇인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은 경제문제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된 해답을 얻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조운 로빈슨)

“경제학자의 주된 임무는 틀리는 데 있다. 경제학자는 우선 자신이 틀리고 이어서 타인을 속인다. 그가 틀리면 틀릴수록 사람들은 더욱 그의 ‘식견’을 필요로 한다. 경제학자의 수많은 실수는 그의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란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자신의 역할과 유용함이 강조되는 유일한 전문가다.”(미셸 무솔리노)

영국과 프랑스의 두 경제학자가 그린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오류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기도 하고,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지닌 한계를 인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 들어간 지 꼭 2년째 되던 지난해 12월3일, 10여 명의 국내 중진 경제학자들이 한 민간 경제연구소가 주최한 ‘IMF 경제위기와 한국경제학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실천과학자인 경제학도로서 사상 초유의 금융대란을 미리 막지 못한 데 대한 자기 반성의 자리로 비쳤다.

그러나 두 대학교수의 주제문 발표에 이어 본격적인 토론으로 접어들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IMF 경제위기에 대해 우리가 반성할 것은 없다” “잘못은 관료들이 했는데 왜 학자들이 책임을 덮어쓰느냐”는 등 강한 반론이 제기된 것. 급기야 주제문을 발표했던 교수들도 “주최측이 당초 ‘한국경제학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글을 청탁해놓고 이제 와서 이를 IMF 경제위기와 연결짓고 있다”며 젊은 학자들의 견해에 동조하고 나섰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경제위기에 대한 반성보다는 우리 경제학자들의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반성, 연구 여건, 한국경제학의 진로 등에 대한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논의로 성격이 변했다.

헛다리 짚은 경제학자들

하지만 IMF 환란을 겪으면서 우리 경제학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험악한 사회 분위기에서 경제학자는 비록 ‘주범’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공범으로 찍히기에 충분한 빌미를 줬다. 경제연구소와 대학 등에 몸담은 일부 경제학자들이 외환위기 직전까지 쏟아낸 엉터리 예측 때문이었다.

96년의 경상수지 적자가 230억 달러에 이른데다 한보 삼미 등 대기업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97년 벽두부터 중소기업의 부도가 확산되고 실업자가 넘쳐났으며, 해외에서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도가 추락, 차입금리가 오르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97년 4월 주요 관변 경제연구소들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에 발표한 것보다 1% 정도 낮은 5%대로 수정하면서 그 시점에 벌써 “경기가 하강할 대로 하강해 바닥에 이르렀다”고 추정했다. 이들은 불과 3개월 후인 7월의 하반기 경제전망에서는 6월의 수출 회복세를 근거로 성장률을 6.2%로 상향 조정하면서 “경기가 바닥을 치고 상승국면에 들어섰다”고 호언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대개 5.5∼6.0%대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경제위기’란 천만의 말씀이었다. 8월에 태국이 IMF체제로 들어가자 우리나라가 그 지원국의 하나로 5억 달러를 내줄 처지가 됐는데도 우리의 위기를 강력히 주장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한 이들 중 누구도 환율이 곧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10월 말에는 달러 환율이 연거푸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금융기관의 외환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지만 일부 학자와 연구소들은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증가 논리를 앞세워 98년 성장률을 6%대로 내다봤다. IMF 관리체제로 편입되기 겨우 한 달 전인 11월에도 내로라하는 경제연구소들은 97년 말∼98년 초의 환율 예상치를 1달러당 920∼995원대로 잡았다.

하지만 실제 환율은 이들의 예상을 비웃기나 하듯 11월20일 1100원을 넘어선 뒤에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다 12월23일에는 2000원까지 치솟았다.

태평스러운 낙관론자들은 97년 12월3일 우리나라가 마침내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98년 성장률이 -6.7%로 추락하면서 큰코를 다치자 그 후로는 하나같이 비관론자로 돌변했다. 그 무렵 이들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99년 성장률 예상치는 1∼2%대. 그러나 99년에 우리 경제는 10.7%의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비록 ‘일부 연구소’와 ‘일부 교수’의 오류라고는 해도 이들 대부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발깨나 센 학자들이었으니만큼 이들의 견해가 학계 주류의 목소리처럼 들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98년 3월에는 국내 유수 대학의 경제·경영학과 교수 9명이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을 극찬하는 책을 펴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기업분석 결과 “대우의 세계경영 전략은 한국 기업이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일깨워준 모범 사례”라며 “이는 대우라는 개별 기업의 경영전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 전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과제이며 한국경제의 도약 및 국부확대 전략이다”고 평가했다. 대우는 그 후 1년여 만에 부도위기를 맞았다.

경제학의 한계

우리 경제학자들만 헛다리를 짚은 것은 아니었다. IMF는 97년 8월21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대기업 부도 사태가 생산과 수출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며, 수출과 투자가 회복되고 있고, 금융부문의 혼란도 수습될 수 있다”며 연말까지 6.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97년 9월23일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도 “한국경제에 문제가 없다”며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동남아 국가와 한국의 경제상황을 비교하는 일부의 시각이 있으나 한국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무솔리노의 말마따나 ‘틀리는 것이 경제학자의 주된 임무’라고 한다면 지나치겠지만, 이렇듯 틀린 예측을 내놓았다고 해서 경제학자들의 자격을 시비할 일은 못 된다. 경제학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학문이다.

성신여대 경제학과 강석훈 교수는 “경제학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현재에 주어진 정보에 바탕을 두는데, 이 정보는 이미 현재의 경제지표에 모두 반영됐기 때문에 미래의 변화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라고 설명한다. 경제학에서 자주 쓰는 ‘랜덤워크(random walk) 이론’과 ‘루카스의 비판’이 그 상징적인 예라는 것.

주가나 환율은 술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처럼 제멋대로 변하므로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게 랜덤워크 이론의 골자다. 즉 주가나 환율의 변화는 과거의 변화와 패턴에 제약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므로 오늘의 주가나 환율이 내일의 주가나 환율을 예측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따라서 미래의 주가나 환율을 예측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계량경제학에서 흔히 이용하는 예측모델도 믿을 게 못 된다. 가령 ‘y=a+bχ’라는 예측모델이 있고 y를 소비, χ를 소득이라고 하자. 여기에서 계수 a와 b는 현재의 소비 등을 기준으로 추산하는데, 사람들은 소득이 오르거나 내릴 것이라고 예상되면 이들 계수 자체를 변화시키므로 소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1년 후의 소득이 줄 것으로 예상되면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소득에 변함이 없더라도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려 한다는 것. 이것이 루카스의 비판이다.

미국의 통화·금융·시장정책을 총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처럼 미래 경제지표의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따라 임금증가율이 올라갔다든지 내려갔다든지 하는 구체적 증거가 나올 때만 정책에 손을 댄다. 미국의 총통화(M2) 예상치는 약 20%의 근사치만으로 알려진다고 한다. 이런 수치를 근거로 성장률을 1%대까지 예상해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MIT 경제학과 폴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학의 향연’이라는 책에서 “경제학은 원시과학”이라며 경제학자를 19세기 말의 의학 교수에 비유한 바 있다. 당시 의학 교수들은 인간의 신체기관과 작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축적했으며 이를 토대로 질병의 예방법에 대해 유용한 충고를 해줄 수 있었지만, 막상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대개는 치료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경제학자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의 예방법 등에 대해 유용한 충고를 해줄 수는 있지만, 그가 치료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식으로 해석하자면, 한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예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원시과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단기적인 경제 예측을 남발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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