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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녀 ‘한국 유학’ 보낸 재미동포의 수기

“회초리로 우리말 가르친 자식 하버드생 안부럽다”

  • 윤주환 JW-YUN@HOTMAIL.COM

“회초리로 우리말 가르친 자식 하버드생 안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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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아이들과 감정교류를 하면서 공들여 한글을 가르쳐도 아이들의 어휘력은 더 이상 향상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매주 토요일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해도 그들의 한국어 실력은 기껏해야 한국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라고 한다. 집에서 극성을 부린 덕분에 큰딸의 한국어 실력은 그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직접 한국에 가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1988년 2월 세 아이는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떠났다. 낯선 생활에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서울에 가서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면 되고 성적은 관계치 않겠다고 약속해 스트레스를 덜어주었다.

큰딸은 정신여자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큰딸은 한국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또 성격이 활달해서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그러나 아주 초등학교 5학년에 들어간 둘째는 불만투성이였다. 같은 반 남학생들이 관심을 끌려고 치근대는 것을 두고 한국 남학생들은 버릇이 없다고 불평했고, 그것이 확대돼 아예 한국이 싫다고까지 했다.

막내는 한글을 겨우 읽는 정도였는데 아주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야 할 아이를 2학년에 넣었다. 막내는 한국 생활의 스트레스를 태권도로 풀려는 듯 검은 띠를 받아야 한다며 매일 도장에 나갔다. 세 아이 중 한국어 실력이 제일 떨어졌지만 산수는 항상 100점을 받아와 식구들을 웃겼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막내는 엄마라는 말은 알았어도 어머니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 같다. 어느 날 학용품을 사며 문방구집 아주머니에게 어머니라고 불렀단다. 옆에 있던 둘째 딸이 집에 와서 동생이 문방구집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러 창피했다면서 다음부터는 아주머니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큰딸이 그것도 틀렸다며 언니라고 불러야 옳다고 해서 온 식구가 웃고 말았다. 어쨌든 그해 추석은 처음으로 온 식구가 고향으로 성묘를 가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그렇게 10개월간 한국 생활을 하고 겨울방학이 되어 잠시 미국으로 왔는데, 나의 사업상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큰딸은 좀 서운해했고, 둘째는 다시 한국에 가지 않게 된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로부터 2년쯤 지났을 때, 하루는 둘째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에 가서 1년만 중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엉뚱한 요구였다. 속으로는 매우 반가웠지만 “지난번 서울 가서 살 때 한국이 싫다고 얼마나 투정을 부렸는지 기억하느냐”며 일단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자기는 한국과 한국어를 더 많이 배우고 싶은데 1년만 보내주면 아무 불평 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오겠다며 꼭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해서 둘째는 혼자 서울 이모집에 가 있게 됐다. 본인의 의지로 결정한 서울행이었기 때문에 약속대로 아무런 불평 없이 1년간 개원중학교를 잘 다니고 태권도 초단인 검은 띠까지 따 당당하게 돌아왔다.

93년 밀번고교 졸업을 며칠 앞둔 큰딸은 이미 주립대 입학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별안간 그애도 한국에 가서 대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이나 확인을 하고 또 절대 그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허락을 했다. 그리고 “네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것보다 더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칭찬해 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행여 내가 큰딸의 의사를 아예 무시하고 강제로 한국 대학에 보내는가 싶어 우리 가족을 만날 때마다 질문공세를 폈다. 그러나 큰딸은 아버지가 평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결정은 스스로 했다고 분명히 대답했다.

그렇게 큰딸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니까 둘째와 막내도 의무적으로 한국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심 아이들이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나에게 뜻밖의 큰 수확이었다.

큰딸의 경우 한국 대학에 특례입학 자격이 주어졌지만 중학교 1학년 수준의 한국어 실력으로 3대 1이 넘는 입학 경쟁을 뚫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큰딸은 1차 대학에 떨어지고 성신여대 사학과에 들어갔다.

교포 2세의 한국어 고민

큰딸의 대학입시를 보면서 나는 한국 특례입학제도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다. 내 딸처럼 미국에서 태어나 12년간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친 재미동포 2세 외국인 학생이 아무리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해도,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중고등학교 때 외국에서 2~3년간 살고 귀국한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 자녀들과 경쟁해 특례입학시험을 보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외국인이 잠시 외유를 한 한국인과 겨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큰딸이 입학 시험을 볼 때는 고려대 문과의 경우 수학1과 일반수학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일반수학을 다 배우지 않고(2차 함수까지만 배우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도 있고 또 수학1은 이공계 대학을 가고자 하는 일부 우수한 학생들만 배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입시과목을 그렇게 선정한 한국 대학에 문제가 있었다.

그 후 고려대 총장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만날 기회가 있어 그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문과 계통 특례입학시험 과목에서 수학이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

1차 지원에 떨어진 큰딸에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일류대학에 가면 밤새워 공부해도 겨우 C학점이 나올까 말까일 테니 적절한 수준의 대학에 가는 것이 좋다고 위로해줬다. 또 학점은 상관하지 않을 테니 대학에 다니는 동안 한국 신문을 완전히 독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국어를 익히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를 사주면서 세 번만 읽으라고 했다. 모름지기 이 땅의 지식인이라면 동서양 사상사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둘째는 언니의 시행착오를 보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11학년을 마치고 한국에 가서 정신여자고등학교 2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여고를 졸업한 후 96년 고려대 동양사학과에 들어갔다. 본래 한국사학과를 보내려고 했는데 학부에서 동양사를 배우고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다. 그런데 동양사를 공부하려니까 한자 실력이 필요했다. 둘째는 휴학을 하며 다시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막내는 미국에서 6학년을 마치고 아주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전학해 2년간 다닌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밀번고등학교 9학년에 들어갔다. 밀번고는 미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공립고교로, 전학년에서 수학과 물리과목에서 항상 수석이던 막내의 성적이라면 아이비리그 대학은 문제없다고 했다. 하지만 막내는 11학년을 마치고 미련없이 한국으로 가서 나의 모교인 중동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들어갔고 지금은 고려대 경제학과에 다니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우리 아이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서울로 가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집에서 항상 한국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고,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꾸준히 배운 것, 그리고 온가족이 서울에서 1년간 살면서 서울 생활이 좀 불편하더라도 살 만하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바람은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면 좋겠다는 것이지만 딱히 그들에게 어디에서 살라는 말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들이 어디에서 사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 사항인 것이다.

한국 대학 유감

아이 셋을 모두 한국 대학에 보낸 우리에게는 한국 대학과 교수들에 대해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큰딸이 서울대를 지원하지 않은 것은 그 당시 시험과목이 한국어, 영어, 수학(일반수학 및 수학1), 한국역사였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면접이면 충분한데 한국사까지 들어 있어 포기했던 것이다. 둘째 딸과 아들은 한국에서 잠깐잠깐 학교를 다닌 경력 때문에 서울대 입학자격에 미달됐다. 그래서 둘째 딸과 아들은 고려대로 보냈다.

하지만 입학 후에도 아이들의 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한번은 큰딸이 강의 도중 이해가 잘 안 돼 질문을 했더니 교수가 엉뚱한 질문으로 강의 리듬을 깼다고 나무라더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교수는 “다른 학생들은 다 미국으로 유학 가려고 아우성인데 너는 왜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한국으로 유학을 왔는지 이상하다”면서 마치 미국에서 대학 다닐 실력이 못 돼 한국으로 쫓겨온 문제 학생인 양 사정없이 F학점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재미동포 2세 한국계 시민권자는 미국인으로 봐야 옳다. 겉모양이 한국인이니까 ‘한국 사람이 왜 그리 한국말을 못하느냐’고 타박을 줄 게 아니다. 다른 한국 학생들과 똑같이 비교 평가하는 것도 잘못이다.

미국으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은 영어가 매우 서툴지만 미국 대학이 잘 지도해서 대부분 무사히 졸업시키고 있으며, 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쳤어도 대학입학 무렵 큰딸과 둘째 딸의 한국어 실력은 초등학교 졸업생 수준 이었으니 대학강의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재미동포 2세 자녀가 한국어를 완전히 습득하려면 적어도 초등학교 때 1년, 중학교 때 2년 하는 식으로 띄엄띄엄 한국에 보내는 것은 큰 효과가 없고 최소한 3~4년 이상 계속 한국에 머물면서 공부를 해야 성과가 있다. 큰딸처럼 서울 가서 1~2년 공부한 한국어로는 대학강의를 듣고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한국 대학교가 해외동포 2세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특례입학제도를 실시하면서 정작 서비스는 하지 않는 것은 정원외 입학으로 등록금이나 받아 챙겨서 학교재정이나 충당하자는 것 이외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대학평가를 할 때는 그 대학 입학생 중 몇 %가 졸업장을 받는지도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미국 일류대학교는 자기들이 선발한 신입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세심한 신경을 써서 자기들이 그 학생을 선발한 것에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애쓴다.

그러나 한국 대학교는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학업을 잘 마치고 돌아갈 수 있게 계속 지도해줘야 하는데 입학만 시켜놓고 등록금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대학 당국에서 외국인 유학생 각자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매학기 성적은 어떤지 전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독일 교수들은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공부가 끝나면 독일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먼저 묻는다고 한다.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학생들은 빨리 학업을 끝내고 돌아갈 수 있도록 온갖 협조를 한다고 들었다.

한국 교수들도 백인 유학생에게는 매우 관대하고 친절한 것 같은데, 재미동포 2세 외국인 유학생들은 아예 한국인으로 취급해 아무런 배려를 하지 않는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어렵게 한국 대학을 택한 재미동포 2세들은 도중 하차하거나 아니면 형편없는 학점으로 졸업해 나중에 미국 대학원 진학시 대학 성적 불량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미동포 2세들에게 한국 교육 기관이 좀더 따뜻한 시선을 가져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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