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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술취한 사람이 그리 많은지…”

택시기사 박계동 전의원이 본 서울풍경

  • 박 민·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웬 술취한 사람이 그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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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가 심해진다는 분석이 택시운전을 하다보면 피부에 와닿나요?

“빈민층이나 중산층은 흔들리는데 밤의 사람들로 대표되는 부유층은 다릅니다. 가짜 오렌지도 있고 평범한 샐러리맨도 있지만 대부분 여유가 있어요. 일단 택시를 타면 평균 1만원 이상의 거리를 갑니다. 택시수입의 3분의 2가 술먹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에요. 소위 오렌지들은 여자들과 부킹에 실패하면 하룻밤에도 강남과 영동, 홍익대앞 신촌 등을 오갑니다.

택시를 탄 웨이터에게 들었는데 한 테이블 술값이 1000만원 하는데 그것도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더군요. 도저히 계산이 안 나와 술값내용을 물어봤더니 5명 정도 오면 100만원 이상 하는 발렌타인 30년 같은 고급 위스키 3~4병 마시고 아가씨 팁을 1인당 50만원씩 주고 고급안주 몇 개 시키면 1천만원은 금세 넘는다고 설명합디다.

이처럼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유럽과 달리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폭동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구요.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런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언론도 ‘신자유주의’만 부르짖고 있단 말입니다.”

─정말 폭동의 위험이 체감됩니까?



“폭동은 아닐지라도 심각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죠. 택시운전사들도 이 상태로는 몇 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불만이 축적되고 있지만 정치는 이를 외면하고 있고요. 60년대와 70년대의 노동자 억압정책이 80년대 노동운동의 폭발을 가져왔듯이 신자유주의의 억압도 언젠가 폭발할 것입니다.”

─흔들리는 중산층 중 기억나는 손님이 있습니까?

“7월 중순 청담동에서 30대 여자가 술에 취해 택시를 탔어요. 처음엔 지하철 역으로 가자더니 ‘일산까지 갈 수 있냐’고 묻는 거예요. 시외로 갈 수 있느냐는 뜻이 아니라 외상으로 갈 수 있느냐는 뜻이었어요. 그 여자와 남편이 모두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들인데 남편이 IMF를 맞아 주택은행에서 명퇴를 했는데 퇴직금도 다 쓰고 아직 취직이 되지 않아 그 여자가 벤처회사에 나가고 있다고 합디다. 생활비가 200만원 이상 드는데 자기가 받는 월급은 150만원에 불과해 어려움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낮 12시에 선배가 사는 청담동에 와 술을 마시기 시작해 9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취한 얼굴로 전철을 타려니 그렇고 택시비는 모자라고 해서 외상택시를 탔다더군요. 택시비가 2만2000원 나왔는데 1만2000원밖에 없다고 하면서 자기 명함을 주는 거예요.

기사식당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부도가 나 동생까지 재산을 날렸대요. 아들 2명이 서울공대에 다니는 이 운전사는 자살을 하려고 15일간 방황하다 택시운전을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우리 회사에도 수출업체 사장 출신이 있는데 부도가 나 생계를 걱정하고 있던차에 ‘박계동 전의원이 택시운전사가 됐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곧장 우리회사로 와서 취업을 했어요.”

서울발전 가로막는 한심한 교통체계

─서울시민 못지 않게 서울도 중병을 앓고 있지 않습니까?

“서울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없어요. 런던의 템즈강이나 파리의 센 강은 한강과 견줄 것이 못돼요. 그러나 한강 주변의 아파트는 서울을 삭막한 도시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서울이 동북아 중점도시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교통문제입니다. 서울의 교통체계는 최소한의 기본도 못 갖추고 있어요. 우선 도로표지판만 봐도 외국인은 물론 택시운전사인 나에게도 어렵다니깐요. 예를 들어 연세대학 앞에서 수색으로 가는 표지판을 보고 가다보면 두갈래 길에서 ‘성산대교’와 ‘모래내’라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수색이 사라져버린 것이죠. 결국 두 곳 중 한군데를 찍어 운전을 해야 해요. 이런 상태에서 미리 차선을 변경하는 등 안전운전을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또 서울의 도로에는 도로번호가 없어요. 96년 미국 미주리대에서 공부할 때 방학을 이용, 미국 주요도시를 돌아다녔는데 표지판과 도로체계가 확실해 처음 가는 나도 운전을 해 목적지를 찾는 데 무리가 없었어요. 예를 들어 시카고의 경우 20여km인 16번도로 주변에는 4000여개의 번지가 홀짝으로 나뉘어 순번대로 배열돼 있어 도로지도만 있으면 누구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의 대기를 포함한 환경문제도 심각해요. 적어도 디젤차는 서울도심 진입을 금지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택시운전을 하다보면 에피소드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지난달 하순 새벽 2시경에 이문동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손님이 망우동으로 가자고 해요. 망우동은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잖아요. 순간 오싹해 백미러를 통해 손님을 봤더니 말없이 차창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마른침을 삼키고 운전을 해 망우동 한 교회 앞에서 여자손님을 내려줬더니 이번에는 스포츠 머리에 덩치가 큰 남자손님이 타더니 불암산으로 가자는 겁니다. 그 손님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갑자기 ‘택시강도가 아닐까’하는 불안이 엄습하잖아요. 불암산 자락으로 접어들면서 조심스럽게 “왜 새벽에 산엘 가느냐”고 묻자 “어제 술을 먹고 차를 절앞에 세워둬 차를 찾으러 간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한참 산길을 따라가다 그 손님 차로 보이는 승용차를 보고야 안심했어요.”

─택시운전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생리현상이에요. 오후 3시에 교대를 해서 나오면서 ‘건강을 생각해 식사 후에 30분은 꼭 쉬어야지’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사를 나서면 거리에 빈 택시들이 20~30m 간격으로 달리고 있어요. 지하도 입구나 건널목 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는 빈 택시가 몇대씩 서 있구요. 골목길로 접어들면 이미 한바퀴를 돌고도 손님을 못태운 택시가 골목길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식사를 하고도 5분을 쉬지 못해요. 밥을 먹고 바로 차를 타면 배가 접히면서 소화가 안되고 자꾸 방귀가 나오려 합니다. 졸음도 간단치 않은 문제죠. 허벅지를 꼬집고 손님에게 이야기도 걸지만 일단 졸음이 오기 시작하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억지로 졸음을 참다보면 내장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타들어가는 느낌입니다.”

─택시운전사 월급으로는 생활이 안될텐데….

“25평짜리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3억3천만원에 처분한 뒤 1억4천만원정도 되던 빚을 갚고 8천9백만원짜리 전세를 얻었습니다. 차액 1억8천만원과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으로 받은 6천7백만원을 잘라먹으면서 살고 있어요.”

박전의원은 앞으로 두 달 정도 더 택시운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택시운전을 하면서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서울의 교통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또 틈틈이 준비중인 국가개혁프로그램 관련 저서에도 택시운전 체험이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신동아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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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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