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상담실에서 자신의 은밀한 얘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나말고 이런 사람이 또 있나요?”
직장상사와의 심각한 갈등, 아내와의 불화, 자식문제 등 우리가 주위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임에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잠시 객관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사례로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해주면 그때부터 편안한 얼굴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상황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고립’에 대해 본능적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보고자 하는 잠재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조성이 생기는 이유다. 동조(conformity)란 외부의 압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영향을 받아 행동상의 변화를 나타내는 현상이다.
재미있는 심리학 실험을 한 가지 보자. 의자에 앉은 4명의 남자에게 묻는다.
“박찬호는 일본 활동 중인가?”
이중 3명은 실험 협조자로서 그 질문에 ‘그렇다’는 거짓 대답을 하기로 합의가 된 사람이고 마지막에 앉아 있는 한 사람만 진짜 실험 대상자다. 실험 협조자 세 사람이 자신있는 표정으로 “그렇다”라고 말하면 네 번째 사람은 혼란에 빠져 버린다. 박찬호의 경기를 자주 시청했던 사람이라도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사정이 있어서 요즘은 일본에서 활동 중인지도 몰라’ 또는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라는 건 내 착각일지도 몰라’ 등등의 불안감 때문에 ‘그렇다’라고 어이없는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실 관계가 명확한 질문에서도 무려 35%가 남의 의견에 속없이 따른다는 게 이 실험의 결과다.
그게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다는 동조심리다. 이러한 동조심리에 근거해 벌어지는 현상이 바로 ‘패거리주의’나 ‘연고주의’다. 많은 사람이 이것에 얼굴을 찌푸리긴 하지만 그런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나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에게 ‘패거리주의’는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다. 지난번 현대그룹의 핵심요직에 있던 전문경영인 한 사람이 갑자기 한직으로 밀려났다. 소위 MK, MH라인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취해온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왕자의 난(亂)’ 같은 위기 상황이 되니까 어느쪽도 그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후문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조사했더니 22%가 업무 때문인 반면, 나머지 78%는 인간관계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회생활에서 남자의 능력이라는 건 결국 얼마만큼 다양하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좌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위 ‘마당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남자들은 표피적인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마음과 복잡한 일을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해결해버리는 현실적 효용성을 부러워하는 감정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수성 전총리와 강준만 전북대 교수. 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가장 넓다고 평가받는 ‘지성적 마당발’로 사람과 직접 교류하는 ‘근거리 네트워킹’의 대가이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절대고립을 자청한 채 살아가는 ‘독립군 지식인’이자, 사람을 절대로 만나지 않으면서 인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원거리 네트워킹’의 대가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의 일상에 빛과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고립과 연대’의 의미를 살펴보자.
감염되면 약이 없는 ‘이수성 바이러스’
필자가 아는 어느 중소기업체 사장은 자신이 이수성 전 총리와 친한 사이라고 자랑스레 말하곤 한다. 같이 식사도 몇 번 했단다. 그러나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이수성 전총리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국에 5만명 쯤 된다는 사실이다.
한번 감염되면 약도 없다는 ‘이수성 바이러스’. 누구라도 일단 만나기만 하면 그의 사람이 된다는 이수성의 친화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더구나 단시간에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은 놀랄 만큼 강력해서 일본에서 활동중인 세계적인 사업가 손정의를 연상시킨다. 손정의는 만난 지 5분 안에 상대방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순진, 성실, 열정이 흘러넘치는 손정의의 친화력이 사람을 확 돌아버리게 만든다는 거다.
그런데 이수성의 흡인력은 휴머니티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손정의를 능가한다. 80년대 서울대 학생처장 시절 보안사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후에 그를 조사하던 사람의 아들 결혼식에 주례를 서게 된다. 조사를 하던 그 틈에 보안사 직원은 이수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불가사의한 건 이수성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이다. 가끔 정치인 자질을 평가하는 기사 등에서 언급되는 부정적 표현을 제외하면 그에 대한 평가는 칭찬 일색이다. 이수성의 그늘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통합도 가능하며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남녀 차이도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이수성을 존경하거나 흠모한다고 말한다.
살다보면 죽마고우와도 감정적 골이 생겨 험담을 할 수도 있는 법인데, 그 많은 사람들과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지난 4·13 총선 때 경북 칠곡에서는 이수성의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수십명의 ‘동생’들이 ‘형님’의 선거운동을 거들었다. 또 칠곡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던 장영철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4선을 위해 뛰던 장의원이었지만 이수성과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뜻을 접었다는 것이다. 이수성의 매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성은 1939년생으로 경북 칠곡이 고향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5년에 직선제 총장에 선출되었다. 1995년 12월부터 1년3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을 지냈다. 그는 그중에서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가 서울대 교수일 때 일이다. 타 과의 한 교수가 검찰과 관련한 민원이 있어 법대 원로교수를 찾아갔더니 원로교수는 “이수성이가 힘 좀 쓴다”며 그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당시 이수성 교수는 그 자리에서 조교에게 자신의 오후 강의를 모두 휴강하도록 지시한 다음 부탁한 교수와 함께 검찰로 직접 가서는 즉석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그 교수가 그 날 이후 열렬한 ‘이수성 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의 3대 마당발
이수성은 김상현 전의원, 김재기 전주택은행장과 함께 한국의 3대 마당발로 불린다. 그러나 마당발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이수성과의 비교를 위해 김상현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김상현은 가난한 시골 집안의 5대독자로 태어나 조실부모했고 학력은 고교중퇴가 전부다. 그에 비해 이수성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는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법무장관으로 거론될 정도로 신망있는 변호사였다. 불행히도 6·25전쟁 때 납북되긴 했지만 이수성의 인간관계는 명망있는 아버지의 인맥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김상현은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자신에겐 그 외에 어떤 밑천도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마당발은 헝그리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자기 컴퓨터에 입력된 사람만도 2만7000명에 이르며, 이름도 알고 얼굴도 기억하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1만명 쯤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맥으로 나하고 연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게 김상현의 믿음이다.
그는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새벽미사를 마친 후 신자들과 차 한잔 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식사 약속 외에는 사람들을 만날 때 1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서 2개 이상의 약속을 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 정도면 마당발은 원한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 명백해진다. 넘치는 정열과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부지런한 것도 필수 조건이다. 김상현의 경우 그런 물리적 조건들이 극명하게 부각돼서 그렇지, 이수성도 그런 마당발의 조건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격이 전혀 다른 마당발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김상현은 피나는 노력을 통한 ‘후천적 마당발’이라 볼 수 있고, 이수성은 타고난 성향에서 비롯된 ‘선천적 마당발’이다.
여러 자료에 근거해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이수성의 성격을 분류해 보면 그는 ‘외향적 감각형’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극적인 행동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상징적으로 표현해본다면 이들은 어딜 가도 불을 밝히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스타일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도 극적으로 만든다.
사례 하나. 80년 5월, 서울역에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집결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이수성 교수는 시위학생들이 남대문을 넘어설 경우 신군부의 엄청난 진압작전이 준비돼 있다는 얘기를 내무장관을 통해 들었다. 이수성은 그런 얘기를 듣고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즉시 현장에 나가서 학생들을 간곡하게 설득하여 해산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의 주역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서울역에서 서울대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교직원들을 동원해 학생식당에서 1000여명의 학생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먹였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지 않은가. 이수성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드라마틱하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사례 둘. 95년 교수들의 압도적 지지로 서울대 총장이 된 이수성은 이례적으로 총학생회 출범식에 참석했다. 그때까지 서울대 총학생회 발대식은 과격시위의 전초전으로 인식돼 역대 총장들은 대부분 그 행사에 참석하는 걸 꺼렸다. 그런데 서울대 총장이 된 이수성이 총학생회장의 손을 잡고 행사장 연단에 오른 것이다. 그 장면이 다음날 일간지의 빅뉴스가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밋밋한 일도 그를 거치면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탈바꿈한다. 그것은 그의 타고난 기질로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이벤트성 감화력’의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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