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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 탐구

마당발 이수성, 독립군 강준만

마당발 이수성, 독립군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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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그가 쇼맨십이 강하다고 비난한다.

“그게 쇼라면 나는 평생 쇼만 하고 살 사람입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두고 패거리 정치 어쩌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저는 지금까지 어떤 의도를 갖고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사람을 좋아했고, 지금도 코흘리개 어린이나 장애인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습니다. 저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은 인위적이라기보다 자연스런 그의 기질로 보이기 때문이다. 총리실 직원들의 평가에 의하면 어떤 행사를 할 때 직원들의 요청사항을 제일 완벽하게 ‘연기’해낸 사람이 이수성이라고 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역대 총리 중 최고였다는 것이다. 그의 극적인 행동력은 그렇게 그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외향적이고 감각형인 사람들은 ‘극도의 위험부담을 안고 모험을 즐기는 성향’이 다분하다. 67년에 위수령이 내려지고 서울대에 군대가 진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데모 주동자로 찍힌 학생 손학규와 조영래는 군인들의 눈에 띄면 바로 잡혀갈 상황이었다. 학생처장이던 이수성은 군인들의 눈을 피해 관용차를 끌고 와서 손학규와 조영래를 학교 밖으로 탈출시켰다. 탈출 후에도 숨을 데가 마땅치 않자 그는 어머니가 사는 고향 칠곡으로 둘을 피신시켰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이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된 손학규는 지금도 이수성을 은인으로 모신다고 한다.

특별히 정치적인 소신이 뚜렷한 경우를 제외하고 교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배학생을 피신시키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이수성의 행적이나 말이나 글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아도 그에게서 뚜렷한 정치적 성향이 나타났던 때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극우부터 극좌까지 그저 모든 사람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다분히 색깔없는(?) 포용과 화합이 그가 내세우는 주장의 알파와 오메가다.



그러면서도 그는 학생들과 관련된 시위의 고비고비에서 심리적 지원자나 실질적 후원자로 맹활약한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상황에 개입했던 것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소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주변인들의 삶에 지나치게 밀착하는 그의 ‘근거리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쉴새없이 오버한다. 좋은 쪽이지만 말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매우 동정심이 많은 듯하지만 냉정하게 분석하면 실제로는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상대를 주시하고 있어서 상대방의 아주 미세한 기미도 잘 알아차리고, 따라서 타인의 예상보다 항상 몇 발 앞서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동정심이 많아 보이는 것이다. 감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속도의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좋은 게 좋은 거지, 선행조차도 뭘 그리 삐딱하게 보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결과를 놓고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기도 했다. 이수성의 성향에 몰두한 정신과 의사의 직업병(?)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정체성 모호하게 만드는 화해와 통합의 논리

이수성은 늘 화해와 통합을 외친다. 그 정도와 범위가 워낙 엄청나서 그의 정체성마저 모호하게 한다. 2000년 4월 민국당 창당시에 “신당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어보자.

“누구는 안되고 누구는 좋다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함께 간다. 4·19와 5·16세력이 화합하고 5·17과 5·18세력의 화합도 필요하다. 대화해를 통해 동서와 남북,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과거 잘못이 있는 사람도 자성하면 모두 모시겠다.”

이수성은 ‘방법은 다르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나라를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겠느냐’며 포용력을 과시한다. ‘알고 보면 다 착한 사람’ 이라는 논리며, 덕담에서 덕담으로 끝나는 인간관계다. 그는 자신에게 나쁘게 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고맙게 한 것은 기억을 하고 고마워한다고 말한다. 그게 자신의 장점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은 값이면 긍정적으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정신의학에서는 어떤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본다. 있는 그대로를 알아야 그에 맞는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1세기 민주 박정희론’을 제기했고,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 문제에 대한 사면을 주장하는 데서는 “일반론적인 법이론을 갖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찬반 양론이 있는 줄 압니다. 어쨌든 법의 근본 이념은 정의보다 사랑입니다”라고 말했다.

열린 친화력이라고 할까, 아니면 마당발식 화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의 ‘총론적인 사고’는 정도가 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박해받은 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그림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진실 여부보다 인간관계 자체를 더 중시하면서 포용과 친화력을 주장하는 그의 특성은 자신의 ‘각론적 사고’의 부재를 덮는 화려한 수사(修辭)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수성의 최대 약점은 그의 정신적 에너지가 오로지 바깥 세상을 향해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생각, 자아에 대한 성찰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1500회 가량의 주례를 섰다고 한다. 40대 중반부터 주례를 서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지금까지 20년간 매년 75회, 그러니까 1주에 1.4회씩 주례를 섰다는 계산이 나온다. 휴가나 명절, 외국방문 등의 날짜 등을 제외하고 계산해 보면 그는 마흔다섯 이후로는 거의 매주 2회씩 주례를 선 셈이다. 주례만으로도 일주일의 일정이 분주한 느낌인데, 그 외의 일들은 또 어떻겠는가. 그러고도 교수였던 그가 자신의 공부를 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근거리 네트워킹식 삶의 위기

그는 법대 교수로 있을 때 실정법상의 범죄구성 요건을 주로 따지는 고시법학보다는 피해자의 권익보호, 피고 인권 보호기능 등 ‘휴머니즘’을 유독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 자신도 “법조문보다는 법 정신이 중요하다는 핑계로 밤을 새우는 연구가 적었다”고 고백한다. 정치를 할 때도 원론 수준의 추상적인 주장 외에 구체적인 정책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지금 그의 ‘근거리 네트워킹’식 삶이 최대 고비를 맞았다. 4·13 총선에서 패한 넉달 후인 지난 7월 이수성과 인터뷰를 한 기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오해를 풀고 싶다’ ‘나는 정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선거가 끝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정치인 내면의 고통과 속사정까지 헤아려 어루만져줄 만큼 너그럽지 않다. 이씨의 고통은 바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천성에서 비롯한다.”

이수성은 불안에 대한 수용력이 취약하여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긴장상태나 갈등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외적인 상황이 삶에 근간이 되었던 사람은 그것이 무너지면 자신을 추스르기가 어렵다. 그간 쌓아둔 내면적인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자신에게 등을 돌린 고향사람들과도 빨리 ‘화합’하고 그들을 ‘포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고 소외되었던 자기 내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기자가 물었다.

“정치가 맞지 않는다, 국회의원 되려고 출마했던 것이 아니다, 이런 말씀을 강조했는데 정계은퇴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글세… 정치를 안한다고 얘기하면 곤란하겠지. 내가 결단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되었는데. 그렇지만 민족화합을 이루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그는 아직도 바깥세상에서 해결의 단서를 잡으려 하고 있다. 어두운 데서 동전을 잃어버린 소년이 가로등 밑이 환하다고 거기서 동전을 찾으려 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금 그에게 절실한 것은 그가 늘 외치던 남북, 동서의 화합과 포용이 아니다. 그의 외향적인 모습과 그의 내면의 ‘화합’이며 지금껏 소외되어온 그의 내면을 ‘포용’하는 것이다. 휴머니즘의 한 전형을 보여 주는 이 특별한 대인(大人)의 균형감각이 하루속히 회복되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이수성 같은 사람이 해결해줘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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