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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없는 역대 정권이 남북교류 막았다”

평양교예단 유치 주역 金寶愛가 밝히는 對北문화교류사업 비화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의식없는 역대 정권이 남북교류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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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음악회는 말 그대로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것이다. 그 음악회는 남북 연예인들이 처음으로 함께 공연했다는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준비 부족에 따른 엉성한 진행, 생방송 불발, 북측의 일방적 주도 등은 비판의 소지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일부 언론은 공연 일정이 몇 차례 연기된 것을 두고 “북측이 공연 대가를 올려 받기 위해 계산된 행동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냐”고 반박했다.

“통일음악회는, 작년 8월에 통일부 승인이 떨어졌어요. 8월15일 기념행사로 평양에서 하는 걸로. 그런데 투자자들이 안 믿는 거야. 안 될 거라고. 그때부터 약속을 계속 어기게 된 거예요. 9월에 한다 했다가 다시 10월에. 10월도 몇 번 어기고. 11월에 MBC 실무진을 북경에 데리고 갔는데 그래도 나를 안 믿어줬어.

내가 작년 3월에 30억을 사기 당했어요, 건축업자한테. 그 때문에 갖고 있던 땅이 공중분해되고 수표가 부도나고. 부도만 안 났어도 내 힘으로 (평양 공연을) 추진할 수 있었는데 부도가 나니 은행에서 융통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남의 힘을 빌리게 된 거예요. 북쪽 사람들이 이 사정을 잘 알아. 그래서 처음에 200만달러로 책정된 공연비를 150만달러로, 마지막엔 60만달러로 깎아준 거야. 아태(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에서 다 해준 거예요. 150만달러 중엔 서울공연비도 포함돼 있었어요. 12월에 가니 그 사람들도 지겨운지 ‘포기합시다’ 하더라구. 나보고 그렇게 힘이 드는 걸 왜 하냐며.”

김씨가 남북교역의 북측 창구인 조선아태평화위원회와 선이 닿은 것은 대북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회장을 통해서다. 그전까지 조총련 관계자를 통해 북측과 접촉하던 김씨는 박씨를 통해 처음으로 북한의 공식창구와 연결됐다.

“재작년에 아태가 생겼잖아. 북경에서 박여사를 통해 아태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제대로 된 사람들과 연결됐어요. 아태에도 창구가 많은데 그중 제일 신용 있는 사람들을 잡은 거지. 실장 참사급들이에요. 통일음악회를 성사시키는 과정에도 박여사가 중간에서 수고 많이 했어요.”



김씨에 따르면 북측과 협의되고 통일부 허가까지 난 통일음악회 일정이 계속 늦춰진 것은 상호 불신 탓이었다.

“투자자들과 방송사가 돈을 안 대요. 양쪽에서 또라이 되는 거지. 1주일을 북경에 앉아 있었는데 아태 사람들이 ‘내년에 합시다’ 그러더라구. 자기들도 지친 거야. 참사들이 코피를 다 흘렸어. 저쪽 체제는 명령 체계가 철저하잖아. 너 왜 못하냐. 김보애가 뭔데 왜 이렇게 끌려다니냐. 이걸 막아준 사람이 일선 참사들이에요. 북한 당국을 설득하고. 나는 이거 안 되면 북경에서 자살하려구 했어. 저는 이제 길이 없습니다, 하고 기도했는데 그 이튿날 참사한테 전화가 왔더라구. 12월20일로 결정됐다구. 감사한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왔는데 또 안 믿어주는 거야. 12월18일 저녁 7시까지 못하겠다는 거야, 방송사에서. 그래서 전무실에 전화했어. 내 인생 포기하는 줄 알라고.”

방송사를 설득하는 일이 끝나자 또 한 차례 고비가 남아 있었다. 달러를 갖고 나가는 문제였다. 정부에선 북쪽에 건네주는 공연비 60만달러 외 추가경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위성방송비, 공연단 체제비 등으로 10만달러가 더 필요했다. 그 돈은 김씨가 직접 들고나갈 수밖에 없었다. 외환관리법에 따르면 1인당 1만달러 이상 해외로 갖고 나가거나 송금하는 것은 불법이다. 공항 검색대에서 김씨는 그 돈을 압수 당했다. 그때 도와준 사람이 박재규 통일부장관이다.

“나 여기서 자살하고 말겠다고 주저앉았는데, 공항측에선 못 보낸다는 거야. 급한 김에 지금 장관인 박재규 경남대총장에게 전화했어. 돈 뺏겨 북경에 못 간다고. 박총장이 여러 사람에게 손을 써 여비를 마련해주고 공항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줬어요.”

―박재규 장관과는 언제부터 친했던 겁니까.

“한 30년 됐지. 그 부인하고도 친하고. 그 분은 선비예요. 장관 그만둔다고 아쉬울 것도 없고. 소신껏 하다 나올 사람이지. 총장으로 다시 돌아가면 되잖아. 나한테 도움 많이 줬지. 재작년 11월에 이미 내가 하려는 남북합작영화 아리랑 관련 자료 보따리를 북쪽에 갖다줬어. 그만큼 남북문제에 열의가 있고 문화쪽으론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

북경에 도착한 김씨는 조선아태평화위원회측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의 딱한 사정을 알고 그쪽 관계자가 9만달러를 빌려줬다는 것.

“우리쪽 사람들은 안 도와주는데 오히려 그쪽 사람들이 도와줬어. 그것까진 좋아. 공연이 시작되고 나선 나보고 공산당 함정에 빠져 공산당 선전하러 공연단을 데리고 왔다고 비난해요.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내가 이런 일 당하고 산다구. 누구한테 이런 얘기 하기도 싫어. 오늘 얘기 문이 열렸으니 하는 거지.”

문화의식 없는 역대정권

―북쪽에 건네진 공연비 60만달러는 누가 댔습니까.

“한빛은행에서 1억, 39쇼핑에서 1억, 현대에서 1억5000만원을 냈어요. 나머지 3억은 내 돈으로 댔는데, 거기에 위성방송 비용으로 5만달러, 비행기표 호텔비에 먹고 조지는 데 돈 들고. 그러니 빚 안 질 수가 없지. 아무도 날 책임져주지 않아요. 정부에선 (북쪽에서) 여기 올 때는 체제비를 지원하지만 우리가 그쪽으로 가는 건 하나도 안 도와줘.”

―알아서 하라는 얘기네요.

“그렇지. 누가 너보고 하랬냐 이거지.”

김씨에 따르면 통일음악회가 끝난 후 갖가지 잡음이 뒤따른 건 우리쪽, 특히 방송사의 준비 부족 탓이다.

“MBC가 날 불신했어요. 그전에 MBC가 사기꾼에게 걸려 200만달러를 날렸거든. 방송사에서 안 믿으니 다 안 믿는 거야. 아태가 현대 붙들고 ‘김보애 좀 밀어주라’ 부탁했어요. 아태가 날 현대와 연결해준 거야. 아태가 그러니 현대도 꼼짝 못하고 날 밀어줬지. 그런데 현대가 나섰는데도 MBC는 여전히 안 믿더라니까. 그러니 공연 준비가 제대로 될 리 없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인기 가수들이 다른 일정으로 빠져 나가고. 타이밍 놓친 거야. 애초 계획대로 8월에 갔으면 좋았지. 그땐 출연진도 좋았고. 에유, 그 얘길 어떻게 다 해요.

북쪽에선 8월부터 하려 했으니 얼마나 만반의 준비를 했겠어. 그에 반해 우리쪽은 준비가 안 됐고 무계획적이었어요. 이건 고의성이 아니라 나를 불신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게 남한테 불신임받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나를 인정 안 한다고 생각해봐. 미치는 거야. 우리 가수들이 부를 곡목과 악보를 전날 밤 12시에 북쪽에 넘겨줬어요. 북쪽 연출가가 MBC PD한테 ‘당신 진짜 연출가 맞냐’고 묻더라구. 그 사람들, 내일 공연하는데 오늘 악보 받고 연습한 셈이야. 우리쪽 곡을.

방송국에서 날 안 믿어 준비를 제대로 안 하다 보니 공연 때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 또, 가수들 누가 갔어. 유명한 애들은 다 빠졌잖아. 코리아나는 갔다가 노래도 못 부르고. 우리가 1부에 공연하고 걔들이 2부에 나왔는데 걔들은 기가 막힌 거야. 우리는 초라하기 짝이 없고. 그러니 말이 안 나올 리 없지요.”

코리아나가 노래를 못한 것은 곡목 선정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이 코리아나가 준비한 올림픽 주제가에 거부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다른 것 불러라. 못하겠다면 말고. 이렇게 된 거예요. 그쪽에서 안 좋아하는 건 빼야지. 그 전에 SBS가 로저 클린턴의 평양공연 때 찬조로 머리 물들인 신세대 가수들을 데리고 가 북한측의 반감을 산 일이 있잖아. 그래서 통일음악회 땐 노랑머리 하나도 안 데리고 갔지. 그쪽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해요, 노랑머리가 뛰는 걸. 그게 뭐냐 이거야. 무대에서 뛰어다니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 가사에. 민족적인 노래가 얼마나 많냐 이거야. 더욱이 말 그대로 통일음악회인데. 우리 것으로 해야지. 만약 다른 걸 생각한다면 정신빠진 PD지.”

공연이 끝난 후 남측 공연단의 고위 관계자가 김씨에게 호통을 쳤다.

“거기서 나를 몰아치면,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에요. 아유 말도 마. 그런 것 때문에 북쪽에선 나를 더 딱하게 생각할 거야. 아유 내 부끄러워 말도 못해.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김보애, 이리 오라구. 김보애는 서울에 가면 죽었다고. 공산당 문화를 선전하기 위한 함정에 빠졌다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같이 온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혼자 바보 되는 거야. 그간의 과정은 모르고 북측 공연은 화려하고 우리는 시원찮으니까. 북측 공연단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우리쪽 사람들을 달랬다니까.”

김씨가 대북사업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1991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남북영화제다. 당시 삼성물산 SS패션 대표였던 김씨는 영화제가 끝난 후 이 행사를 기획한 영화제작업자 주동진씨를 만난 자리에서 남북합작영화 제작을 논의했다. 작품은 황석영씨의 ‘장길산’으로 정했다.

“영화제가 뉴욕에서 열린 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서울이나 평양에서 하는 걸 반대했기 때문이에요. 북쪽에선 반대하지 않았어. 남북영화제나 합작영화제작이나 북쪽에선 적극적으로 나왔어. 문제는 늘 우리 정부였어. 노정권이나 YS 정권이나 다 안 받아줬어. 문화의식이 없는 대통령들이라. 황석영의 ‘장길산’을 영화화하기로 하고 북쪽과 작성한 계약서를 갖고 왔지. 그런데 노통이 허락해줄 리 만무지. 그래서 나중에 판권을 SBS에 팔았어요.”

김씨와 주씨, 황씨 세 사람은 뉴욕에서 판권 계약을 맺었다. 당시 황씨는 저작권료로 35만달러를 받았다. 뒷날 황씨가 북한을 불법방문한 죄로 구속됐을 때 김씨는 그 일과 관련해 법정에 나가 증언하기도 했다. 김씨는 남북합작영화 제작에 나서게 된 동기를 묻자 “영화인으로서 의미 깊은 일 아니에요?”라고 반문했다.

김씨가 대북사업 경력을 10년으로 내세우는 것은 ‘장길산’ 영화제작 계약을 그 출발점으로 잡기 때문이다. ‘장길산’ 영화화는 물거품이 됐지만 김씨는 이후 본격적으로 대북문화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통일부나 문화부나 북한과 관련된 것이면 무조건 안 된다고 했어요. YS 정권 때는 북한의 문화유산을 찍어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구. 금강산 같은 것. 또 승인이 안 나왔지. 그후 조총련 쪽에 줄을 대, 95년에 ‘아리랑’을 남북합작영화로 만들기로 계약했어요.”

김씨는 “’아리랑’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정도로 ‘아리랑’ 제작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당시 ‘아리랑’ 계약 조건은, 배우는 남과 북 반반으로 쓰되 촬영은 북한에서 하는 것으로 북측에 제작비로 60만달러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사전에 정부에 타진을 해보진 않았습니까.

“내가 왜 된다는 확신을 가졌냐 하면요, 북한 당국이 허락하는데 자유주의국가인 우리나라 정부가 승인하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잘못된 일이라 여긴 거지. 말도 안 되는 일 아니야? 그런 점에서 우리가 모순이 많아. 남들은 나를 또라이로 알지만 북측으로부터 정확한 계약서와 합의서를 받을 수 있는데 안 될 이유가 없는 거지. 내가 또라이가 아니라 당시 정부가 또라이라 안 해준 거야.”

―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이유는요?

“간단해요. 남북문제는 아직 때가 이르다 이거야. 그야말로 네가 건방지게 왜 나서냐 이거지. 그러니 남들이 나보고 빨갱이라 그러지.”

―북쪽과 우리 정부는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북쪽이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쪽은 수익을 올리니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합의가 되고 사업에 타당성이 있으면 하지. 그 사람들, 되고 안 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요. 안 될 건 안 된다고 얘기하지.”

―그쪽에 제의했다가 거절당한 게 있습니까.

“예를 들면 모래사업 같은 거.”

김씨는 그와 관련해 더 이상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김영삼 전대통령과 과거에 친분이 있었는데요. 문민정부 시절 대북사업하는 데 도움이 안 됐나요.

“그 사람이 그런 일을 알 수가 없지. 알 필요도 없고. 의식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머리가 깡통이라고 해놓았으니 아마 나만 보면 10리 밖으로 도망갈 거야.”

김씨는 지난해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한껏 치켜 올린 반면 김 전대통령은 인격모독에 가까운 표현으로 깎아내려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은 다 김씨가 광화문에 차렸던 음식점 ‘세보’의 단골이었다. 김씨가 지난해 펴낸 자서전 ‘죽어도 못잊어’에는 김 전대통령과 자신이 한때 ‘특별한 친분’을 맺은 것으로 묘사돼 있다.

지난해 5월 김씨는 아태평화위원회와 ‘아리랑’ 제작사업을 재계약했다. 다른 조건은 1995년에 맺은 것과 같고 북측에 지불하는 제작비가 6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로 올랐다. 우리측 대본은 황석영씨에게 맡길 계획이다. 김씨에 따르면 ‘아리랑’은 우선순위에서 통일음악회에 밀렸다고 한다.

“작년 8월에 승인이 나기로 돼 있었는데 정부에서 통일음악회부터 하라고 해 허가가 연기됐어. 다음주 월요일쯤 통일부에 사업계획서를 정식으로 접수시킨다구. 다 돼 있어요.”

대북사업 사기꾼들

김씨는 1997년부터 접촉한 조총련계 기업인 ‘서해무역’을 통해 북한 영화를 수입했다. ‘안중근’ ‘사랑사랑 내사랑’ ‘홍길동’ ‘온달전’ ‘불가사리’ ‘꽃파는 처녀’ 등이 그것들이다. 그중 극장에서 상영된 것은 ‘불가사리’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TV에서 방영됐다. ‘불가사리’는 흥행에서 참패했다.

“고려미디어에 넘겼으니 난 잘 몰라. 관객이 한 200명쯤 들었지 아마. 하나도 안 남는 거지 뭐.”

―북한 영화의 비디오 판권을 독점한 겁니까.

“그렇죠.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건 다 가짜니까.”

―판권을 갖고 있는 비디오가 몇 개나 됩니까.

“열 개도 안 돼. 하나에 5만달러를 주고 사 방송사에 8000만원에 넘겨요. 세금 빼면 남는 게 거의 없어.”

―시중엔 안 나와 있죠.

“그럼요. 그걸 누가 보나 비디오로. 방송에서나 틀지.”

―사업을 하면 이익도 봐야지요.

“(북한 영화는) 8·15 등 행사 때나 보는 거지, 흥행성은 없어. 저쪽 영화들은 사실주의니 재미가 없어요. 이게 다 ‘아리랑’ 하나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아리랑’ 제작이 삶의 목표입니까.

“그렇진 않아요. 이제 거의 실현 단계에 왔으니 그후엔 또 다른 일을 해야지.”

김씨에 따르면 대북사업을 하는 사람 중엔 사기꾼이 많다고 한다. 90% 이상이 사기꾼이라는 것. 김씨의 NS21은 ‘온달전’ ‘사랑사랑 내사랑’ 등 북한 영화 수입 판권을 둘러싸고 IMS라는 회사와 소송에 휘말려 있다.

“중국돈 300원이면 똑같은 도장을 파요. 계약서를 위조하는 거야. 나는 알지. 예컨대 상표권 분쟁이 일었던 북한음식점 ‘옥류관’도 북쪽에선 허가해준 적이 없어. 중앙방송을 통해 밝혔잖아. 나도 그때 바로 확인해봤어요. 나도 음식장사 하니까 그런 게 허용된다면 한번 해보려고. 그런데 북쪽에서 계약한 적이 없는 거야.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중국에 있는 조선족 등이 북한 당국과 통한다며 이중 삼중으로 파는 거야. 그럼 피해는 국내 사업자들이 보지. 당국에선 도장이 비슷하면 허가해주니까. IMS도 거기 말려든 거야. 중국 누구와 통해 북한과 계약했다고 하지만 북한에선 가짜라고 하잖아. 중개한 쪽에 얼마라도 돈을 줬을 것 아니야. 피해자지. 그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팔면 피해자가 또 생기는 거야. 계약서의 글자체 문장 도장이 다 달라. 두고 봐요. 내가 무조건 승소한다구. 북쪽에서 온 확인서도 재판부에 다 제출했고.”

김씨는 지금까지 북한을 세 차례 방문했다. 북쪽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묻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얘기 보따리를 푼다.

“그전까지 조총련만 접촉하다가 98년 북경에서 처음 그쪽 사람들을 만났을 땐 몹시 긴장했어요. 그쪽도 긴장하고. 서로 눈치 보고. 그런데 사람 감정은 다 같은 거야. 동족이다보니 몇 분 안 지나 말이 편해져요. 그쪽에선 날 영화배우 아무개의 부인으로만 알지. 그런데 내가 ‘나는 일부종사 못한 사람이다’고 하자 모두들 놀라는 거야. 그거 무슨 소리입니까, 하고. 결혼을 여러 번 했다니까 ‘아니, 남쪽에선 그런 일도 있습니까’ 하더라구. 거기다 또 ‘두 번은 가짜 결혼이었다’ 하니 더 놀라지. 내가 내 흉을 보며 농담을 하자 모두들 배를 잡더라구. 그 순간 대화의 벽이 무너져버리는 거야.

술 담배도 거기서 배웠다니까. 긴장 풀고 분위기 맞추기 위해. 그런 데서 정이 드는 거지.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사람들 만나면 참 기분 좋아.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확실히 놀거든. 지금도 보고 싶어요.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나는 그 친구들 만나는 시간이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야. 이념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인간성, 그 순수성을 보는 거야. 인간적으로 편안해. 평양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 똑같아. 가식이 없어요.

지난번 정상회담 때 김정일의 언행을 두고 쇼가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알기론 쇼가 아니야. 그쪽 사람들 생활과 성격이 원래 그래. 술과 음악을 좋아하고 포크댄스를 즐겨요, 아코디언에 맞춰. 왜 술을 좋아하냐. 그쪽에선 집단적으로 일을 하잖아. 저녁이 되면 우리와 달리 내일에 대해 걱정할 일이 없잖아. 배급제도니까. 그래서 우리와 노는 게 차원이 다른 거야.”

―억압된 체제에 대한 불만은 없던가요.

“그것이 습관화, 생활화돼 있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못해요.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얘기하고.”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은 비슷할 텐데 북쪽 사람들도 자본주의 체제에서처럼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의 욕망은 어떻게 하면 나라에 이바지하느냐, 충성을 다하느냐, 오로지 거기에 맞춰져 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네가 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지요. 우리하고 반씩 섞였으면 좋겠어. 그 사람들은 사람을 섬길 줄 알거든.”

김씨는 남북한 정부의 역사의식 차이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YS가 중앙청 때려부순 게 제일 가슴 아파. 그걸 왜 부숴요. 거기다 일제박물관을 만들어야지. 자라는 애들한테 일본을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런데 북한엔 그런 게 잘 돼 있어요.”

김씨에게 조금 껄끄러울 듯싶은 질문을 던졌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점이 있다면요.

“몰라요. 관망하고 있어.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동안 이쪽 분야에서 열심히 해온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했으면 하는 거지. 북쪽 사람들은 신뢰를 중요시하거든요.”

―정부가 대북사업을 독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요.

“그거, 세상이 다 아는 건데. 바람직하지 않죠. 거래는 민간인들이 세밀하게 해야지. 정부는 큰 덩어리만 맡고. 민간인이 가져오는 것 중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아닌 건 자르고. 정부가 너무 나서면 오히려 교역이 후퇴할 수 있어요. 북쪽에선 우리 정부의 장관들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 불만이에요. 업무를 알 때쯤 바뀌니.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문제만큼은 이어가야지. 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면 누가 정권을 잡든 남북관계의 방향을 쉽게 바꿀 수 없겠지요.”

‘북조선으로 가는 길’

대북사업의 정부 주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김씨는 현대의 대북투자를 높게 평가했다.

“현대는 정말 평가해줘야 해요. 누가 뭐래도 통일에 크게 기여한 거야. 추진하는 사업들이 성공하든 안 하든. 어느 기업이 그렇게 해요. 북쪽에서도 인정해주잖아. 정주영 회장, 대단한 사람이야. 너무 욕심이 많아 남들에게 밉보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지금 현대를 밀어주고 있어요. 현대가 이쪽에서 당하고 있으니까 북한에서 의리를 보이는 거야. 나는 그걸 알아. 현대가 그동안 기여한 바가 있으니 도와주는 거지. 개성 관광사업도 다 그런 거야. 컨소시엄해서 돈 끌어들이는 건 현대가 할 일이고.”

김씨는 앞으로도 대북사업, 특히 문화교류사업에 자신의 삶을 바칠 작정이다. 벌여놓은 일도 많다. 먼저 서울 통일음악회 개최. 지난해 12월에 열린 평양 통일음악회의 후속행사인 이 음악회는 올 가을쯤 열릴 예정이다. 평양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북측에 60만달러를 주기로 했다. 방송사(MBC)와도 협의가 끝났다고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영화 ‘아리랑’ 합작 사업이다. 이 또한 통일부 승인이 나는 대로 이르면 올해 안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씨는 또 통일민족문화교류협의회라는 사단법인을 만드는 데도 관여하고 있다. 이르면 8월중 창립할 이 단체는 북한의 조선문화예술공연협회에 맞서 앞으로 남북문화교류사업에서 대정부 창구 노릇을 할 전망이다. 문화 분야에서 일하는 저명인사 40여명이 회원으로 참가할 예정인데 초대 문화체육부장관을 지낸 이민섭씨(현재 자민련 부총재)가 명예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김씨는 ‘밀레21’이라는 멀티미디어 인터넷방송에서 ‘북조선으로 가는 길’이라는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김씨는 북한의 음식문화 등을 소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장차 북한 음식에 관한 책도 낼 계획이다.

8월11일, 12일 이틀에 걸쳐 약 8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씨에게 받은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열정’이다. 그녀에 대한 항간의 부정적인 평판이 무색하게 그녀는 대북사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 그리고 소신을 갖고 있었다. 북쪽 동포들에 대한 애정이 몸에 배 있었고 문화교류사업을 통해 통일에 이바지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있었다.

남북교류에 대한 그녀의 시각이 맹목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은 다음의 얘기를 듣고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쪽에서 오란다고 언론사 사장들이 한꺼번에 다 가요. 화합도 좋지만 그 영향을 받아 언론이 할 말을 제대로 못하면 안 되잖아요. 기자들 몇 사람 보내면 되지. 자존심도 없나 봐. 동아(동아일보)가 안 간 건 잘한 일이야.”

신동아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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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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