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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기준 서울대학교 총장

“서울대 입시 우등생 줄세워 뽑지 않겠다”

  • 이형삼 hans@donga.com

“서울대 입시 우등생 줄세워 뽑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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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입시, 그중에서도 서울대 입시를 확 뜯어고쳐야 대학도 살고 중·고교도 산다. 그래서 서울대 입시는 ‘수학능력 측정’과 ‘고교교육 정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노려야 한다. 취임 2년을 맞은 서울대 이기준 총장으로부터 입시개혁 방향과 서울대의 21세기 비전을 들어봤다.
서울대학교 총장에게는 대학의 살림을 꾸리고 연구활동을 진작하는 본연의 임무 못지않게 신경써야 될 일이 또 하나 있다. 신입생 선발이 그것이다. 명색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국립대 총장이 ‘가중치’는 어떻고, 수능 소수점 이하 반올림 처리는 어떻고 하는, 별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일일이 보고받고 고민하고 결재해야 한다는 건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서울대가 신입생을 어떻게 뽑느냐는 것은 대입 수험생들은 물론, 자녀를 둔 모든 학부모에게 지대한 관심사다. 서울대가 해마다 어떤 입시방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다른 대학들의 입시방안이 춤을 추고, 중·고등학교의 교실 풍경이 달라진다. 우리 중·고등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것은 교육당국이 정한 교과과정이 아니라 서울대 입시정책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니 서울대 총장이 어찌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12월13일 오후 서울대 총장실을 찾았을 때 이기준 총장(李基俊·63)은 예상대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지난 11월 취임 2주년을 맞은 이총장은 12월 말에 발표할 2002학년도 신입생 선발방안 마무리 작업으로 분주했다. 총장실 옆방에서는 보직교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중이었다. 이날은 마침 2001학년도 서울대 특차모집 원서접수 마감일이어서 학교 전체가 어수선했다.

“입시철이라 바쁘시겠다”고 인사를 건네자 이총장은 “이 자리는 안 바쁜 날이 없다. 바쁜 것을 즐기는 수밖에 없다”고 받았다.





교육정상화 유도하는 입시로

─이번 수능의 변별력이 낮아져 대학들이 난감해 하고 있더군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중에서는 우열을 가리기가 더욱 어려울 텐데, 서울대의 고민의 크겠습니다.

“수능의 변별력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은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능 준비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것은 신입생을 선발해야 할 대학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게 됐다는 것이죠.

이번처럼 변별력이 낮아진 경우에는 심도있는 면접과 구술시험, 고교장 추천 등 지금껏 준비해온 여러 단계의 사정을 거쳐 수험생의 기본적인 소양과 원하는 분야에서의 수학능력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대학은 수능이 변별기능을 못하는 이상 지필고사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교육부는 이것이 사실상 본고사를 부활시키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교육부가 지필고사를 못 치르게 하니 저희도 당장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학력이 우수한 학생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실시하는 심화된 수능시험(가칭 ‘수능Ⅱ’)을 도입해 현행 수능시험과 함께 실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신입생 선발은 대학에 맡겨야 합니다. 대학마다 다 사정이 다른데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무리가 따르게 돼 있어요.”

─교육부가 대학에 신입생 선발 자율권을 선뜻 내주지 않는 것은 대학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고등학교를 입시지옥으로 만들지 않고 사교육비를 증가시키지 않으면서도 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제대로 뽑을 만한 능력이 우리 대학들에는 없다고 보는 것이죠.

“저는 교무처장이나 학장들에게 서울대 입시정책에 두 가지 목표를 분명히 해달라고 늘 강조합니다. 하나는 중·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을 대학에서 다시 복습하는 일이 없게끔 지원자가 대학에서 교육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 제대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중·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것을 가능케 하는 선발방법을 찾기 위해 입시센터를 만들어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고교시절 화학반 활동도 했고 테니스반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미술반에 안 들어갔던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죠. 그런데 요즘 고교생들은 입시준비 때문에 그런 특별활동을 아예 못한다고 하더군요.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중·고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도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사교육비에 대한 관점은 좀 다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공교육비 투자는 만족스러운 수준이 못 됐습니다. 그렇다보니 사교육비가 인력을 양성하는 데 크게 기여해온 게 사실이에요. 요즘에 와서 사교육이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단지 입시 준비만을 위한 게 아니라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과외라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고 봐요.

따라서 무조건 사교육비를 줄이라고 하기보다는 사교육비가 정상적인 교육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넣거나 개인의 특기를 개발하는 데 올바로 사용되도록 이끄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교장 추천제 정착

서울대는 2002학년도부터 큰 폭으로 바뀌는 입시제도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스탠포드대, UC버클리 등의 외국 명문대학을 벤치마킹하는 등 다각도의 연구를 거듭해왔다. UC버클리 부총장을 지낸 와트슨 래치 박사를 행정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입시제도를 비롯한 행정 전반에 국제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30명의 입시전문위원을 채용, 입시제도를 연구하고 관련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하게 했다.

─2002학년도 이후에는 어떤 방법으로 신입생을 뽑을 계획입니까?

“구체적인 내용은 12월 말까지 확정해 발표할 예정입니다만, 선발기준이 매우 다양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총점이 1점이라도 더 많은 학생이 들어왔지만, 앞으로는 총점은 좀 못 받았어도 어느 한 분야에 특기가 있는 학생들에게 길을 넓혀줄 생각입니다.

특별전형에서는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및 경시대회 입상자,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학생, 국가적으로 보호·육성해야 할 학문분야의 학생들도 뽑으려고 해요. 서울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이니 만큼 농어촌 고교 출신 학생들도 배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2000학년도의 경우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한 고등학교가 90개나 됐어요.

또한 균형잡힌 사회인으로 성장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세계 시민으로서 문화적 소양도 필요하고 여가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음악, 미술도 좀 알고 스포츠도 잘 하는 지원자에겐 특혜를 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저는 단체운동을 해본 지원자에게 어드밴티지를 주자고 주장했어요. 한국사람들은 ‘개인기’는 좋은데 팀워크엔 약합니다. 그런데 팀워크를 기르기에 가장 좋은 것이 축구 같은 팀 스포츠거든요. 선발방법에 대해서는 이렇듯 매우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서울대의 신입생 선발기준은 대학 차원이 아니라 학부, 학과 차원에서 마련되리라는 것입니다. 특정 분야를 공부하는 데 적합한 학생은 그 분야의 학부, 학과에서 가장 잘 가려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해서 50∼60개 학부가 서로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뽑게 되면 ‘족집게 과외’ 같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다양한 재능을 가진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해서 기본적인 수학능력이 없는 학생까지 받겠다는 뜻은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와야 할 것을 대학에서 다시 가르치는 낭비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교육을 개혁하는 첩경은 1학년 교육을 뜯어고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봄에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영어시험(TEPS)을 치르게 해서 500점이 안 되면 아예 강의를 못듣게 했어요. 700점 이상인 학생들은 20명씩 클래스를 나눠 원어민으로부터 고급영어 수업을 듣게 했습니다.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해줘야죠.

신입생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 원칙을 적용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부를 지원하는 학생에겐 어느 수준 이상의 물리 점수를 요구해야 합니다. 물리학부를 지원하면서 점수를 더 따려고 물리시험 대신 생물시험을 치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설령 들어온다 해도 대학에서 이런 학생의 수준에 맞춰 ‘고등학교 물리’를 가르치게 되면 잘하는 학생이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불이익을 줘야 합니다. 고등학교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분들은 오랫동안 그 일만 계속해온 달인들입니다. 대학에서 그런 것까지 가르치려 들면 경쟁이 안 돼요.”

─서울대는 수년 전부터 일반전형은 물론, 다양한 특별전형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해왔습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선발한 학생들이 입학한 뒤에는 수학능력 등에서 어떤 차이를 보였습니까?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일반전형으로 선발한 학생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교장 추천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일반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보다 학업성적이 더 좋았어요. 그래서 내년쯤에는 고교장 추천전형이 완전히 정착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일부 고교에서는 학생의 특기나 적성, 인성보다는 성적 위주로 추천서를 써주는 바람에 추천서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서로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어요. 따지고 보면 단 한번 치른 수능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도 공정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서울대가 이제는 성적순으로 줄 세워놓고 앞에서부터 뽑는 일은 않겠다는 것입니다. 특기가 있고 성실해서 고교장이 추천했으면 믿고 뽑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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