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당정치에서 이념적 차별성은 별 의미를 갖지 못했다. 정당의 분화는 시민사회의 특성이나 이념의 차별성에 근거하지 않고 권력투쟁을 둘러싼 분화였다.
- 즉 집권세력과 이에 도전하는 세력의 여·야 대립구조였다. 여·야 자체가 구체적인 개념이나 성향을 갖는 개념은 아닌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민주당은 노동당의 2중대’라는 김용갑 의원의 발언 파문에 이어서, 일부 의원이 국보법 폐지안에 동조함으로써 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기서 한국의 정당들에서 이념이란 무엇인가, 즉 한국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분단이 정치이념적 공간을 제한
이념의 차원과 수준과 기준은 보수와 진보(급진), 우익과 좌익, 민족주의에 대한 시각,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국가개입, 개발론과 환경론, 페미니즘 등에 대한 신념이나 시각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이념은 정치현실에 대한 인식과 미래의 비전에 대한 가치체계 및 신념이다.
그동안 한국의 정당을 두고 이념이 없었다는 지적은, 우리의 정치인과 정당들이 정치현실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나 미래의 비전에 대한 신념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사적 연고나 1차원적인 권력게임에만 초점을 맞춰 행동해온 데 대해 비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이 권력게임의 조건에 따라 여당에서 야당으로, 또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쉽게 이합집산했던 것을 보면 이러한 지적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5대 국회만 하더라도 전체 의원들의 25% 정도가 소속 정당을 바꿨다.
물론 정당의 정체성이 반드시 이념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정당은 정치권력을 획득, 유지, 확장하는 정치활동 조직이다. 따라서 정치권력 투쟁에서 이념이 유용한 자원이 될 때, 그것은 정치인이나 정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주요 변수가 된다.
최근에 다시 불거진 우리 정당들의 이념적 정체성 논란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더 넓은 차원에서는 한국의 정당정치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과도기적 혼돈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알다시피 한국의 근대정치는 이른바 좌우익의 이념투쟁으로부터 출발했다. 이 이념투쟁은 국제적 냉전체제와 맞물리면서 남북분단으로 귀결되었다. 남쪽은 우익세력이 지배하는 정권으로, 북쪽은 좌익 정권으로 분단된 남북 대립체제는 남북 모두의 정치과정에 이념적 지평을 극도로 제한했다. 다원적 이념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의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다원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남한에서도 좌익적 정치이념은 반체제적인 것으로 불법시되었다.
남북분단의 대립체제에 따른 정치인들의 성향과 국가체제의 특성 때문에 한국 정당정치는 그 이념적 지형이 우익 일변도로 돼버렸다. 또 대의정치의 궁극적 자원인 우리의 시민사회도 정치이념을 제한하는 데 크게 작용했다. 6·25전쟁 경험과 함께 일반 국민들에게 ‘레드콤플렉스’가 내재하는 배경 위의 대의정치 체제에서 좌익 정당이 자리잡기 불가능했다.
이승만의 권위주의 통치와 박정희 정부 이래 계속된 국가주의적 동원전략은 우익 체제 내부에서 그나마 다양한 이념의 활동 공간을 더욱 억압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정당정치에서는 이념적 차별성이 별 의미를 갖지 못했다.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정치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분파적 주장과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불필요하다는 것. 이른바 ‘일민주의(一民主義)’ 주장이었다. 물론 이승만은 얼마 안 가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집권여당이라 할 수 있는 자유당을 창당하였다. 다른 명분도 내세웠지만, 권력투쟁을 위한 도구로서 의회를 지배하고 국민들을 동원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정치에서 정당의 분화는 시민사회의 특성이나 이념적 차별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정치세력간의 직접적인 권력투쟁을 둘러싼 분화였다. 즉 집권세력과 이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세력이 대립하는 여야 대립의 구조였다. 여야 자체가 구체적인 이념이나 성향을 담고 있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집권세력과 이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세력의 구분일 뿐이다.
그런데 집권세력의 비민주적 통치가 장기화하고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여당과 야당은 각기 하나의 정향을 갖는 정치세력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여당은 안정과 안보, 또는 경제성장 등을 주요 정치명분으로 주장했다. 야당과 그 지지세력은 여당을 비민주세력,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야당은 민주화를 주요 명분으로 제기하였고, 그 자신들도 민주화 세력임을 자임했다. 이런 대립 구도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 기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의 3당 합당, 14대 대선에서 정주영의 국민당 창당과 대권 도전,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 등으로 전통적인 여야의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5대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며 처음으로 여야간의 위상이 바뀌었다.
여야 관계와 지역주의의 혼재
물론 이 기간에 여야의 축을 넘어서는 정치세력이나 정당들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승만 정부 때 등장했던 진보당으로부터 최근의 민주노동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적 이념의 정당은 계속 있었다. 또한 제도적 이념틀의 한계 속에서 진보적, 급진적 세력들이 반합법, 비합법적인 활동을 전개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앞서 지적한 한국정치의 환경 속에서 정당정치의 중심으로는 진입하지 못했다. 4·19 직후 열린 환경으로 인해 1960년의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정당활동이 가장 두드러졌었다. 그럼에도 당시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 진보계열 정당들의 득표율은 민의원 6.8%, 참의원 3.4%에 불과해 각각 233석 중의 5석과 58석 중의 2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이후 5공화국 초 전두환 정권이 의도적으로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국회의원 2명을 제도에 편입시킨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진보정당의 제도적 진출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렇듯 그동안 한국의 정당정치는 여야를 축으로 한 대립과 경쟁의 구도였다. 여기에 1971년의 대통령 선거부터 두드러졌던 지역주의가 1987년 13대 대선을 거치면서 정당체제로 자리하게 되었다.
1990년 3당 합당 이전까지는 지역주의와 여야관계가 혼재했다. 5공화국 이래의 집권여당인 민정당이 대구·경북의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삼고 전통적 야당의 한 분파인 김영삼과 민주당이 부산·경남의 지역주의를, 다른 한 분파인 김대중과 평민당이 호남의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통적 집권여당의 일원이라 할 수 있는, 주로 박정희 정권 때의 여당 세력을 계승한 김종필과 신민주공화당이 충청권을 주요 기반으로 삼았다.
여야관계와 지역주의가 혼재하던 당시의 정당체제는 여야관계의 입지와 각 지역주의의 특성에 따라 차별성이 있었다. 민주당과 평민당은 민주화를 정치적 과제로 삼고 있었으며 전통적 민주화운동 세력이 주류를 이루었다. 지지기반으로 보았을 때는 민주당과 평민당 간에 차이도 있었는데, 지역적 특성과 맞물리면서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엘리트 및 상위계층의 지지가 많았다. 집권여당 민정당은 안정과 안보를 강조하면서 기득권세력을 옹호하게 되는 전통적 여당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공화당은 구성과 성향으로는 전통적인 집권여당의 특성을 보이면서도 야당의 위치에 있는, 모호한 입장이었다.
3당합당은 정당체제와 그 성격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단일 여당 민자당으로 합당하는 바람에 집권여당의 성격이 복잡해졌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한나라당 내부의 정체성 논란은 여기에 뿌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호남에 주요 기반을 둔 평민당(국민회의가 계승)이 야당세력으로 단일화된 가운데, 민주화 세력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민자당의 가장 분명한 정체성은 비호남지역주의였으며, 평민당의 정체성은 민주화세력과 호남지역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또 한나라당으로 재편 확대되는 과정에 민주화세력과 진보 운동권 출신들이 가세하게 되면서 이질적인 요인들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이 이질적인 요소들은 차기 정권장악과 반DJ 및 지역주의 구도라는 정체성으로 봉합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 야당의 중심이던 김대중과 국민회의는 집권세력이 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새로이 조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국민회의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겠다면서 민주당으로 재편하였으나, 아직도 새로운 정당으로 변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집권 이후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집권여당의 실종과 무기력에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민자당에서 다시 분당해 김대중정부의 출범 과정에 민주당과 연합했던 자민련은 구시대의 논리인 근대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명분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15대 대선 시기에는 정권교체와 지역화합이라는 명분이 민주당과의 연합에서 나타난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었으나, 이후에는 사실상 민주당과 연합하는 구심점이 불분명한 상태다.
정권창출에 기여했다는 것과 지역구도에 따른 캐스팅보트라는 위치가 자민련의 정치적 입지를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민련은 16대 총선에서 자신들의 지역주의적 기반마저 흔들리게 되면서 국회 교섭단체 정수에도 못 미치는 군소정당으로 왜소화된 상태다.
결국 현재 한국 정당정치는 한편으로 위상 재정립이 요구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변화에 대한 요구를 지역주의 구도로 봉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화에 따른 권위주의 유산 청산, 세계화 추세와 경제 구조조정에 따른 위기 대응 방식, 남북관계의 변화 등을 둘러싸고 한국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북한에 대한 시각이 최근 쟁점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이념 논란에서 가장 두드러진 쟁점은 북한에 대한 시각이다. 북한과 사회주의를 둘러싼 견해는 그 동안 한국정치 이념의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이를 둘러싼 차별성이 우리의 정당정치에 이념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반공 권위주의 체제는 이념의 다양성을 불가능하게 했고 집권세력의 이념만 허용했다. 따라서 반공만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치이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이념은 정치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바, 최근 우리의 정치환경 변화는 반공헤게모니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은 김대중 정부의 출현과 이어진 남북관계의 변화다.
김대중과 민주당 역시 기존 정치세력의 한 분파였다는 점에서 이들의 집권 자체는 새로운 이념적 지평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주요 정치세력 중에서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남북관계에 대한 시각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음은 다 아는 바다. 이 때문에 상대 세력에서는 김대중을 ‘빨갱이’ 등으로 음해하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김대중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공주의자다. 다만 반북이데올로기와 대북 강경정책에 집중하던 반공주의자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것이다.
집권세력이 국가정책과 노선을 거의 독점해왔던 한국정치 구조에서 여야 관계의 역전은 정치이념 지형에서도 일정한 변화를 초래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이 대북화해 기조를 주도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이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부와 집권여당은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하고 야당이 부분적으로 이를 비판하던 그동안의 경향이 역전된 것이다.
한국 정당구조의 특성상 정당 보스의 노선이 곧 정당의 노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었지만, 민주당의 경우 대북정책을 둘러싼 내부 이견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보안법 폐지 등에 있어서는 당의 노선보다 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세력도 있었다. 지난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 15명 모두가 국가보안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 중 두 명은 아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야당 한나라당의 경우 대북관계에 대한 당의 노선은 안보와 북한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는, 즉 전통적 집권여당의 노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폐지는 말할 것도 없고 개정도 반대한다는 것이 당론이라고 이회창 총재는 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일부 진보운동 계열 출신과 소장파 의원들이 당의 노선과 다르게 집권여당의 대북 화해 노선에 호응하고, 나아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 오히려 집권여당의 당론보다 더 전향적인 의견을 내면서 한나라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노선이 이념에 기초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현재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반DJ노선에 있기 때문에, 현재 DJ정부가 추구하는 대북화해 노선에도 반대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의 경우 15대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부터 북한에 대해 적대적 대립관계에 기초한 상호주의를 강조해왔다. 통일방향에 있어서도 공존보다는, 현재 북한의 체제가 존속하느냐 아니면 흡수통일이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15대 대선 후보합동토론회에서 피력한 바 있다. 총재의 당내 대북관계 조언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남북관계 대책특위’에도 이세기, 김용갑, 정형근, 박세환, 윤여준, 송영대, 구본태 등 전체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인물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일부 실용주의 성향의 인물이 참여하고 있다.
자민련도 대북관계에 있어서는 한나라당 주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한체제로의 흡수통일을 함의하는,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을 당의 강령에 담고 있다. 다만 보안법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일부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김학원 의원 등에 의해 제기되기도 하나, 보수를 당의 이념으로 하는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없어 보인다.
이렇듯 현재 대북관계를 둘러싼 정당별 스펙트럼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한나라당, 자민련으로 나뉜다. 물론 더 진보적인 입장에서 국보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세력도 있다. 원내에 진입하지 못한 민주노동당, 그리고 시민사회 단체들에서는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를 구성하여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보법 개정과 개정반대 의견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국보법 폐지 요구는 개정에 대한 압력으로는 작용할 수 있겠지만, 제도정치의 이념적 쟁점은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의 대북 문제에 대한 견해는 자연히 미국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한미동맹 및 협조체제,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 등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모두 크게 차이는 없어 보인다. 다만 민주당이 우리의 자주적 대북관계를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미국과의 협조관계를 더욱 강조하는 것 같다. 또한 미국내의 정치세력과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태도가 상대적으로 강한 미국 민주당을,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서구의 이념 스펙트럼에서는 대체로 좌익과 진보주의는 국제주의적 경향을, 우익과 보수주의는 상대적으로 민족주의적 또는 국가주의 성향을 띤다. 따라서 극단적 민족주의나 종족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비서구 제3세계권에서는 좌우익 모두가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좌익이나 진보세력들도 강대국 및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이런 3세계적 특성에다 남북 분단구조가 맞물려 우익 및 보수주의 세력은 남한 중심의 우익적 민족주의를, 진보세력은 남북통합적 민족주의를 견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체제에서 국가개입의 정도와 방향은 정치이념에 주요한 지표가 된다. 국가개입을 둘러싼 쟁점에서는 현재의 정당간에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 모두 형식상으로 시장자율을 강조하면서도, 국가주의체제의 유산 속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데 국가의 개입을 용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이념을 둘러싼 이념적 차이는 현 정부와 원외 진보세력 간에 두드러지고 있다. 진보세력들은 현재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과정을 신자유주의로 규정, 반대하며 비판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은 정부와 집권여당의 구조조정 및 경제전략을 두고 국부유출 등으로 비판하며, 정부재정의 감축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대비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세력처럼 노선이나 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 또는 정치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나라당이 정부재정의 감축을 주장하고 있지만, 예산의 각 항목에서는 오히려 정부 제출안보다 증액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재정감축 주장은 집권여당에 대한 견제 차원의 주장으로 보인다.
DJ정부 약자에게 고통 전가
국가개입과 경제이념은 사회계층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19세기까지 유럽의 경우를 보면 보수주의는 귀족과 엘리트층의 이해와 주장을 대변하는 경향이었고, 자유주의는 부르주아 및 중간계층을,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및 하위계층의 이해와 주장을 대변하는 경향이었다. 이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래 국가개입의 강화는 복지정책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정책이 되었다. 20세기 들어 1970년대까지 유럽에서는 복지국가화 경향이 강화되었다. 그러다가 70년대 말 80년대로 접어들어 국가개입을 통한 복지정책을 다시 축소하면서 이른바 신자유주의 노선이 대부분의 국가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런 국가개입을 둘러싼 노선은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라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양 축으로 하여 나타나는 이념적 스펙트럼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면서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강조했던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이 특별한 성과도 보여주지 못했고, 계획경제체제인 사회주의 역시 몰락하는 바람에 우익경제도 좌익경제도 모두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실패를 거울삼아 좌도 우도 아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모색해보려던 것이 1990년 후반에 등장한 영국 블레어 정부의 ‘제3의 길’이나 독일 슈뢰더 정부의 ‘새로운 중도 노선’이었다.
우리의 정당들은 국가개입 전략에 차이가 없는 것처럼 계층전략에서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집권 민주당은 정강에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임을 강조하고, 정부정책에서도 생산적 복지 노선을 주장하면서 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는 등 여타 정당보다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 지지계층으로 보았을 때 사회적 하위계층의 지지가 가장 많은 당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오히려 약자에게 더 직접적인 고통을 떠넘기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우선한다는 이념은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세력이나 진보세력에서는 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사회경제적 약자를 돌보지 않는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결국 현재 한국 정당정치에서 이념적 쟁점은 대북관계를 둘러싼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원내 정당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현재의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집권 민주당의 이념적 혼돈도 거의 없어 보인다. 현재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변화의 압력도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민주당의 문제는 민주화 세력과 호남지역주의를 기반으로 구축되었던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 시절에 정권교체로 집약되었던 민주화의 논리를 계승하는, 집권 이후의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호남지역주의의 정당성도 주·객관적으로 약해진 듯하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민주당의 당정쇄신 논란은 이런 문제점에서 비롯된 위기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김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념이 현실 정책으로 추구되면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앞으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말할 때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대북정책에서 보수적인 목소리를 가장 강하게 내면서 집권 민주당을 비판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대북관련 노선에서 불안정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현재의 한나라당이 3당통합, 그리고 이어진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확대·재편되면서 당의 구성원들이 전통적인 구 여권과 민주화 운동세력 및 재야운동권 출신의 일부가 혼합 편재된 결과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대북관계 등에 전향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원웅 의원은 당의 이념적 논란을,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당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당의 이념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당의 정체성을 유지케하는, 차별성 있고 우월한 정치적 명분이 무엇인가는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현재까지 반DJ노선과 지역주의라는 당의 존재기반이 여타 부분의 당내 이질성을 봉합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당내 이념 구조는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단기적으로는 대권 후보를 중심으로 한 당의 지도력이 어떻게 유지될 것이냐가 중요한 변수로 보인다.
자민련은 보수기조를 가장 분명히 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한나라당과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보수 선언만으로 당의 정체성을 유지·확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경험과 점진적 사회발전을 중시하는 보수주의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내용이 바뀌어야 하는 바,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논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6대 총선에서는 개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개혁적 보수’를 표방했지만, 개혁의 내용이 분명히 부각되지 않았다. 결국 자민련은 현실적인 권력게임을 위해서도 이념적 재정립이 필요한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 개편해야 정당정치 산다
모든 정치체제에서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가장 분명한 이념적 대립은 재야세력과 제도 정치권의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오히려 한국사회의 최근 상황은 권위주의 시대보다 이념적 갈등이 오히려 작은 편이다. 이는 재야세력의 이념적 기반이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국내적으로는 민주화가 진전하면서 재야세력의 대내외적 투쟁 명분이 약화된 결과다.
대신에 정부의 구조조정과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이를 신자유주의로 비판하는 노동세력과 진보세력의 목소리가 두드러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비판과 같은, 국가개입과 시장경제를 둘러싼 쟁점이 앞으로 한국사회의 이념축으로 설정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분단체제라는 특수성 속에서 대북관계가 한국정치 이념에 주요 기준이 되고 있지만, 사실 정치공동체에서 정치를 통한 자원의 재분배 방식과 이를 위한 체제의 선택은 정치이념의 핵심적 기준이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논쟁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와 복지의 강화를 주장하는 재야 진보세력의 이념이 한국 정당정치 과정에 변수가 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이들이 제도정당으로 세력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에는 진보세력 자신의 이념적 설득력과 조직 능력, 시민사회의 구조 및 정치적 지지와 함께 정치제도 또한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소수세력은 배제되는 현행 정치권력 구조와 선거제도의 개편 여부가 재야 진보세력의 세력화에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현행 한국의 대통령제가 체계적 이념에 기초한 정치인과 정당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념만이 정당활동의 배경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미국처럼 정당 조직의 정체성이 약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에 대한 책임있는 성찰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이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라 정치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쉽게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이다. 이런 정치적 환경은 정치인들의 부조리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제 아래서는 정당정치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미국의 대통령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권력분립이 안된 우리의 대통령제에서는 정당정치가 대권체제에 매여 의회정치의 실종까지 낳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정치가 정당정치를 토대로 발전을 모색한다면 현행 대통령제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