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아이비리그 꿈꾸는 외국어고 공부벌레들

  • 곽대중

    입력2005-05-11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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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침을 거듭하던 외국어고 ‘주가’가 다시 치솟고 있다. 서울의 2001학년도 외고 입시 경쟁률은 5대1로 95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내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외고로 몰려드는 까닭은?
    교육부는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예년에 비해 다소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미 수능에 ‘적응’해버린 학생들은 출제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쉽게 치러냈다.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만점자가 나왔다고 자랑하는 학교가 있으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언어영역이 까다로웠던 2000학년도 대입 수능에서는 만점자가 단 한 명이었다. 서울 대원외고 박혜진양(19·서울대 법학부 1년)이 그 주인공. 오승운양(20·서울대 기초과학부 2년)에 이어 2년 연속 여학생이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는데, 특히 장양의 출신 고등학교가 외국어고여서 더 관심을 모았다. 외국어고의 경우 한 반 학생의 10% 가까이가 서울대에 진학하는 등 60∼70%가 이른바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위 클래스의 변별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2001학년도 입시에서도 외국어고의 강세는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외국어고 학생들은 입시에서만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케이블 TV 영어채널 아리랑 TV에는 ‘퀴즈챔피언’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다. 고등학생들이 학교별로 4명씩 팀을 이뤄 출전하는데 문답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살다왔거나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데, 가끔은 해외에 한번도 나간 적이 없는 ‘토종’ 학생들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유창한 영어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 그중 상당수는 외고 학생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우승을 하면 ‘챔피언’ 타이틀을 얻게 되고, 나중에 챔피언 팀들끼리 실력을 겨뤄 ‘왕중왕’을 뽑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120여 회를 거치면서 배출된 일곱 팀의 챔피언 중 세 팀이 외고 학생들이었고, 왕중왕의 영광 역시 외고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명문대 입시, 경시대회 휩쓸어



    외고생들은 각종 외국어 경시대회나 독서 경시대회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 10월 동아일보와 한국영어교육학회가 주최한 전국 고등학생 영어 경시대회에서는 서울의 3개 외국어 고등학교가 나란히 우수학교상을 받았다. 최근 몇몇 외국어고등학교는 재학생들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하버드, 예일 등 미국 유수의 대학에 입학시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외고가 이렇게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 실업계 고등학교, 특수목적 고등학교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인문계 고교, 실업계 고등학교는 공업고 농업고 상업고 등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고교다. 또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0조에 의해 설치된 특수목적 고등학교로는 외국어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등이 있다.

    ‘특별한 분야에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모집해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한다’는 게 특목고의 설치목적. 이중 과학영재 육성을 목표로 설립된 과학고는 정책적으로 육성한 특목고이다 보니 처음부터 유능한 학생들을 끌어모아 출발할 수 있었고 오랜 기간 영재교육의 대명사로 알려지면서 재학생들에게 과학기술대 조기입학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그러나 같은 특목고인 외고의 출발은 과학고와 사뭇 달랐다. 외고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84년. 하지만 당시에는 ‘고등학교’라는 명칭을 달지 않았다. 교육법의 ‘각종학교’에 해당되는 ‘외국어학교’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대원외고 김일형 교감은 “외국어학교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자녀들만 다니는 학교, 혹은 직업학교 정도로 생각했다. ‘고졸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정원이 미달돼 일반계 고교 입시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모여들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그런 인식을 깨뜨리고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것. 지금이야 ‘국제화’ ‘세계화’ 같은 말이 보편화됐고 인터넷으로 세계가 하나의 정보망으로 통합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외고가 첫발을 내딛던 80년대 중반만 해도 일반인들에겐 ‘국제무대’라는 개념이 낯설기만 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인을 키우겠다”고 하면 “허황한 소리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1학년도 경쟁률 사상 최고

    서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이 얼마나 높은가를 ‘좋은 고등학교’의 척도로 삼는 우리 풍토에서 외고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역시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지면서부터였다. ‘외국어학교’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을 달고도 해마다 많은 수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니 실력 있는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 외고에서 무려 202명이 서울대에 합격하는 진기록을 세운 해도 있다.

    91년 외국어학교는 외국어 영재 발굴을 목적으로 한 특수목적고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외국어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외국어고 설립이 잇따랐다. 84년 출발 당시 2개에 불과했던 외고는 2000년 12월 현재 18개에 이른다. 서울에만도 대원 한영 명덕 대일 서울 이화(여학교) 등 6개의 외고가 설립됐다. 서울에 있는 외고는 모두 사립이며 수업료는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2배 정도 비싼 50여만 원(분기당)이다.

    특목고와 실업고는 일반계 학교보다 한 달 정도 먼저 학생을 모집하는 전기(前期). 외고는 매년 11월 특별전형과 일반전형의 두 가지 방식으로 학생들을 모집한다. 2001학년도 외고 입시 경쟁률은 4.99대 1로 95년 이후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별전형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대부분 일반전형에 다시 응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경쟁률은 7대 1에 육박할 전망이다. 매년 10월 경에 열리는 외국어고 학교설명회에는 전국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모여드는 바람에 행사장인 강당 공간이 모자라 교실에서 방송으로 설명을 들어야 할 정도다.

    학교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특별전형에서는 대개 전국 규모의 외국어 경시대회 입상자, 학교장 추천학생, 중학교 성적 우수학생 등을 위주로 선발한다. 대원외고는 토플 500점 이상을 자격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대일외고는 중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았던 학생, 한영외고는 외교관 및 해외주재원 자녀, 국가유공자 자녀를 정원 외로 선발한다. 일반전형은 무시험 전형이 원칙으로 대개 영어 듣기시험 점수와 중학교 내신을 합산해 선발하는데, ‘교과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언어영역과 수리영역, 구술시험 등을 치르는 곳도 있다.

    외고는 전공별로 반이 나뉜다. 대개 영어과 독일어과 프랑스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등을 두고 있고 있으며, 명덕외고와 대일외고에는 러시아어과, 대원외고와 한영외고에는 스페인어과도 설치돼 있다.

    대원외고는 94년에 영어과를 폐지했다. 이제 영어는 국제사회의 필수적인 공용어가 됐기 때문에 굳이 반을 따로 편성할 필요가 없다는 게 대원외고측의 설명이다. 대신 이 학교는 중국이 21세기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에 대비, 중국어과를 2개 반으로 늘렸다. 또한 이화외고에는 일본어과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입시제도 변화로 부침 거듭

    외고 학생들은 자신이 택한 과의 외국어를 ‘전공어’로 공부한다. ‘제1외국어’로는 보통 영어를 선택한다. 또한 ‘제2외국어’ 하나를 골라 1년 동안 공부해야 한다. 가령 중국어과 학생의 경우 중국어를 전공어로, 영어를 제1외국어로,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 하나를 제2외국어로 공부하는 것이다. 학습목표대로라면 외고 학생들은 졸업 무렵에 전공어와 영어는 ‘능숙’하게, 제2외국어는 ‘생활회화 수준’으로 최소한 3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외고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웬만한 대학생들보다 낫다고 한다. 최근 국내 한 대학과 학술교류차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한 대학 카운슬러는 모 외고를 둘러보고 나서 “외고 학생들의 영어 질문수준이나 회화능력이 어제 만났던 대학생들을 능가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 외고는 토플점수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학년 진급시 불이익을 주기도 하는데, 대원외고의 경우 1학년은 450점, 2학년은 500점, 3학년은 550점의 하한선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학생은 드물다고 한다. 토플, 토익 만점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원외고의 경우 2000년에만 6명의 학생이 토플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외고가 순풍만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교육현장이 교육부의 대입정책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외고는 특히 이런 ‘바람’을 많이 탄다. 문제는 고교 내신성적.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일반계 고교에서 상위권에 들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학생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불과 0.1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의 명암이 갈리는 대학입시에서 내신이 불리하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수능의 변별력이 낮아진 상황에선 내신이 외고 지원을 꺼리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외고 설립 초기의 대학입시에서는 외고생에게 특수목적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비교내신제를 적용했다. 외고생의 경우 일반고교생처럼 고교 재학시 석차에 따른 상대평가 내신을 적용하지 않고 수능에서 얻은 점수대별로 등급을 달리하는 평균 내신성적을 적용한 것. 이 때문에 외고는 교육여건이 뛰어난 것은 물론 내신까지 유리해져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특수목적고 학생에게 비교내신제를 적용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제도는 폐지됐고 이에 따라 특목고 학생들은 커다란 불이익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등교거부와 항의시위가 잇따르는가 하면 자퇴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차라리 외고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러 내신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매년 7월에 실시되는 검정고시에 응시하려면 적어도 시험 6개월 전에 학교를 떠나야 한다. 그래서 외고와 과학고 2학년 학생의 12월은 자퇴서를 앞에 놓고 망설이기를 거듭하는 시기가 된다. 한영외고의 경우 97년에 비교내신제가 폐지되면서 100명이었던 일본어반 학생들이 졸업 때는 60명으로 줄었다. 서울의 6개 외고 입시 경쟁률도 97학년도의 4.60대 1에서 98학년도에는 1.79대 1로 뚝 떨어졌다.

    비교내신제 폐지는 당사자인 외고는 물론 대학에도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가령 97년 서울대에 입학한 신입생 중 과학고 출신이 530명, 외국어고 출신이 383명으로 과학고와 외고 출신이 전체 신입생의 20%에 이르렀다. 이런 형편이니 우수한 특목고 학생들을 내신 때문에 다른 대학에 뺏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내신성적을 평어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석차백분율로 내신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수우미양가 등으로 묶어서 평가하는 것. 이는 내신 부풀리기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 서울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학이 특목고 학생에 대해 이렇게 사실상의 비교내신제 및 평어 반영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한 자퇴 행렬은 거의 사라졌다. “굳이 서울대를 고집하지 않고 연·고대 가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교육환경이 좋은 외고에서 공부하는 것이 낫다”는 게 요즘 부모들의 생각이다.

    내신이 불리한데도 외고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실붕괴 현상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화외고 장덕희 교감의 말이다.

    “예전엔 명문대에 얼마나 보내느냐는 것을 학교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학부모가 많았지만, 요즘은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됐다. 내신에서 불리할 것을 감수하면서도 공부할 여건과 분위기가 갖춰진 학교로 자녀를 보내겠다는 부모들이 많다.”

    잘 알려진 대로 최근의 교실붕괴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수업중에 대놓고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아이들을 내버려두자니 다른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그렇다고 일일이 깨우자니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는 것. 경기도의 한 여고 1학년 담임교사는 이렇게 ‘현장상황’을 전한다.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폐지되면서 아이들은 오후 3시면 교문을 나선다. 취지야 좋지만 아이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겠는가. 갈 곳도 만들어주지 않고 그냥 자율적으로 하라는 것은 이들을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것과 마찬가지디. 방과후에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을 하라는데, 이것을 담당할 교원인력이 충분한 것도 아니고 학생들도 관심이 없다. 결국 학부모는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수밖에 없는데, 이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교육정책을 무색케 한다.

    상위권 학생들은 수능이 너무 쉬워 공부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하고, 하위권 아이들은 아예 포기하고 엎드려 잔다. 지난 몇년간 전인적인 학생지도를 실시한다고 생활기록부를 세분했는데, 50명이 넘는 한 반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한 명 한 명 상담하면서 기록한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하지만 외고에서는 이런 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공부한다고 왕따당할 일도 없다. 학생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교사들이 수업을 준비하거나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지만, 외고 교사들은 일반계 고교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가르치기가 수월하다고 말한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서는 대개 중간에서 약간 높은 정도의 수준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실력있는 학생들이 따분해 하지 않을 정도로 하되,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너무 빠르거나 깊게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외고의 경우 웬만큼 상향 평준화된 아이들이 모여 있어 학습수준을 쉽게 정할 수 있고 심화학습도 제대로 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는 것.

    인성교육에 신경

    외고의 또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외국어를 원어민 교사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 97년 외환위기 이후 많은 일반계 고등학교가 원어민 교사를 내보내야 했던 반면 외고는 오히려 원어민 교사를 더 늘려가고 있다. 외국어는 외국인과 직접 부딪쳐서 배우지 않으면 실력이 느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외고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부분의 외국어고는 학과별로 어학실을 갖추고 있고, 외국어 수업시간에는 한 반을 둘로 나누어 20여 명씩 대화,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자연히 학습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외고는 수업시간의 40% 정도를 이렇게 외국어 교육에 할애하는 대신 예체능 수업시간이 다른 학교에 비해 적다. 졸업을 앞둔 한 외고 여학생은 “가정시간이 없어 뜨개질도 못해봤다”면서 “수능이 끝난 요즘은 십자수를 배우는 아이들도 있다”고 수줍게 웃었다.

    외고가 공부벌레들을 모아놓고 공부만 시키는 곳은 아니다. 학교측은 인성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대원외고는 현관 게시판에 명심보감 구절을 붙여놓았다. 명심보감은 이 학교 학생들의 필수과목. 학생들은 매주 주어지는 구절을 암송한다. 한영외고는 다채로운 서클활동으로 학생들의 자율성을 배양한다.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음악반 조각반 풍물반 등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 이화외고는 매주 예배시간을 갖는 등 기독교 교육을 실시한다. 이 밖에도 많은 학교가 방과후 전공에 맞는 특기적성교육, 전공예술제, 세계 문화의 날, 모의 유엔총회, 각종 국제회의 봉사활동 등을 통해 인성교육의 장을 마련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외고 학생들의 해외유학붐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외고들마다 해외유학반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대원외고의 SAP(Study Abroad Plan) 프로그램과 한영외고의 해외유학반 등은 졸업과 동시에 현지에서의 어학연수과정 없이 곧바로 외국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유학반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는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컬럼비아대 코넬대 펜실베이니아대 브라운대 다트머스대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미국 동부 유명대학들. 이런 대학에 입학하려면 기본적으로 토플과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공부해야 한다. SAT는 미국의 대입 수능시험. SATⅠ은 언어와 수리영역의 수학능력을 측정하고, SATⅡ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수학능력을 측정한다.

    아이브리그를 꿈꾸는 아이들

    문제는 우리나라에 이런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교사들이 드물다는 것. 해외유학반을 가장 먼저 설치했던 대원외고도 운영 초기에 이 문제로 애를 먹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미국인의 사고방식, 생활풍습, 사회체계 등을 두루 익힌 교사요원을 확보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예컨대 수학문제 하나도 영어로 원리를 설명하며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 이런 요건을 충족시킬 만큼 전문적 자질을 갖춘 교사가 흔할 리 없다. 그래서 대원외고의 경우 유능한 외국인 교사가, 한영외고에서는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교사가 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대원외고 SAP반 1기생으로 미국 컬럼비아대에 진학한 이우진군(19)은 ‘나는 조기유학 없이 아이비리그로 간다’는 책에서 유학준비 초기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미국 유학의 원대한 꿈을 품고 날갯짓을 시작한 SAP 유학반. 그러나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미국 명문대학에 학생을 직접 입학시킨 예는 극히 드물었다. 아니, 거의 전무했다. 그런 까닭에 학교도 우리도 방향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어쨌거나 카운슬러도 없고 가이드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유학 준비가 시작됐다. 전례없는 모험에 뛰어든 만큼, 우리는 항상 정보의 가뭄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저기서 닥치는대로 정보를 수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은 ‘정보에 대한 갈증’뿐이었다.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3년동안 거의 모든 것을 독학으로 해결해야 했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생각하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를 미국식으로 만들어갔다. 리포트도 미국 고등학교식으로 작성했고 대화도 영어로만 했다. 먹는 것까지 미국화하려 했다. 학생들의 표현대로 ‘서울대 가는 것보다 몇 배 어려운’ 과정이었다. 결국 SAP 1기 9명이 전원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하는 쾌거를 낳았다. 지금도 학년별로 10여 명의 학생들이 해외유학반에 편성돼 있다.

    명문고 기준이 달라진다

    대원외고에서는 3교시가 끝난 11시30분부터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학생들의 요구로 한 시간을 앞당겼다고 한다.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이 학생들은 10여 분만에 게눈 감추듯 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거나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느라 바쁘다. 스피커로는 흥겨운 팝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그 시끌벅적한 중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SAP 3기 L양이었다. 아이비리그에서 비즈니스나 언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L양은 “SATⅠ은 가르칠 선생님이 계시지만 SATⅡ는 교재를 보고 독학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우리가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손등에는 영어 단어와 문장이 깨알처럼 쓰여 있었다.

    외고들이 해외유학반을 운영하는 데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한 교사는 “한참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키워야 할 학생들이 오로지 미국 유학만 생각하며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아가 우수한 인력을 해외로 내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대원외고 남봉철 교장은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외국 대학에 입학시키느냐는 것이 외고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원외고는 2002년에 20명 이상의 학생을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25명 이상을 미국의 주립대 등으로 유학보낼 계획을 세웠다. 현재 100여명의 이 학교 졸업생들이 세계 각지에서 공부하면서 해외 동문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서울대 많이 보냈다고 명문고라고 부르던 시대는 지났다. 서울대 학생들의 실력이나 시설, 규모가 세계 50위권에도 못든다고 걱정하지 않는가.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외국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들은 외국에서 배운 지식을 한국에 돌아와서 활용할 수도 있고, 현지에서 살더라도 결국은 한국을 위해 봉사할 것이다.

    가령 미국과 자동차 무역협상을 한다고 할 때 하버드 출신의 우리 학생이 같은 하버드 출신의 미국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협상에 임할 수도 있다. 이때 대학 동창이라는 인맥이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시야를 넓혀야 한다. 국내에서 우리끼리만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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