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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기준 서울대학교 총장

“서울대 입시 우등생 줄세워 뽑지 않겠다”

  • 이형삼 hans@donga.com

“서울대 입시 우등생 줄세워 뽑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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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학생들은 자신이 택한 과의 외국어를 ‘전공어’로 공부한다. ‘제1외국어’로는 보통 영어를 선택한다. 또한 ‘제2외국어’ 하나를 골라 1년 동안 공부해야 한다. 가령 중국어과 학생의 경우 중국어를 전공어로, 영어를 제1외국어로,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 하나를 제2외국어로 공부하는 것이다. 학습목표대로라면 외고 학생들은 졸업 무렵에 전공어와 영어는 ‘능숙’하게, 제2외국어는 ‘생활회화 수준’으로 최소한 3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외고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웬만한 대학생들보다 낫다고 한다. 최근 국내 한 대학과 학술교류차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한 대학 카운슬러는 모 외고를 둘러보고 나서 “외고 학생들의 영어 질문수준이나 회화능력이 어제 만났던 대학생들을 능가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 외고는 토플점수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학년 진급시 불이익을 주기도 하는데, 대원외고의 경우 1학년은 450점, 2학년은 500점, 3학년은 550점의 하한선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학생은 드물다고 한다. 토플, 토익 만점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원외고의 경우 2000년에만 6명의 학생이 토플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외고가 순풍만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교육현장이 교육부의 대입정책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외고는 특히 이런 ‘바람’을 많이 탄다. 문제는 고교 내신성적.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일반계 고교에서 상위권에 들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학생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불과 0.1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의 명암이 갈리는 대학입시에서 내신이 불리하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수능의 변별력이 낮아진 상황에선 내신이 외고 지원을 꺼리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외고 설립 초기의 대학입시에서는 외고생에게 특수목적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비교내신제를 적용했다. 외고생의 경우 일반고교생처럼 고교 재학시 석차에 따른 상대평가 내신을 적용하지 않고 수능에서 얻은 점수대별로 등급을 달리하는 평균 내신성적을 적용한 것. 이 때문에 외고는 교육여건이 뛰어난 것은 물론 내신까지 유리해져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특수목적고 학생에게 비교내신제를 적용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제도는 폐지됐고 이에 따라 특목고 학생들은 커다란 불이익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등교거부와 항의시위가 잇따르는가 하면 자퇴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차라리 외고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러 내신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매년 7월에 실시되는 검정고시에 응시하려면 적어도 시험 6개월 전에 학교를 떠나야 한다. 그래서 외고와 과학고 2학년 학생의 12월은 자퇴서를 앞에 놓고 망설이기를 거듭하는 시기가 된다. 한영외고의 경우 97년에 비교내신제가 폐지되면서 100명이었던 일본어반 학생들이 졸업 때는 60명으로 줄었다. 서울의 6개 외고 입시 경쟁률도 97학년도의 4.60대 1에서 98학년도에는 1.79대 1로 뚝 떨어졌다.

‘대학원 중심대학’으론 한계

어떤 방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든 서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거친 수재들을 모아놓은 서울대의 국제경쟁력은 아직도 기대 밖이다.

99년 서울대는 컨설팅그룹 매킨지에 대학 각 부문의 ‘정밀진단’을 의뢰했다. 매킨지는 나름의 기준으로 서울대의 연구업적 부문을 평가한 결과 서울대가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평균수준 이상의 논문을 낸 비율이 20%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대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스탠포드대 UC버클리 하버드대 미시간대 위스콘신대의 경우 그 비율은 80∼90%였다. 이에 대해 이총장은 “서울대의 경우 한국어로 발표하는 논문이 많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30% 이상은 될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는 영어로 훌륭한 논문을 많이 쓰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인 국제 과학논문 인용색인(SCI)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99년 서울대가 SCI에 등재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수는 세계 대학 중 73위였다. 97년에 126위, 98년에 94위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장이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더욱이 논문수에서는 73위를 기록했지만, 논문의 질을 따지는 기준으로 활용되는 피인용 빈도에서는 순위가 한참 아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총장은 “우수한 교수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3년 안에 세계 일류 대학으로 인정받는 50위권 이내에 진입하겠다”고 자신했다.

“서울대 학과나 교수 중에는 이미 세계 수준에 올라 있는 이가 많아요. 예를 들어 물리학부 교수들의 1인당 연구업적은 미국 대학 물리학과 중 1, 2위를 다투는 스탠포드대 물리학부보다 훨씬 낫습니다. 다만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32명인데 스탠포드는 43명이고, 스탠포드 물리학과 교수 중에 2명이 노벨상 수상자라 학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우리보다 클 뿐이죠.

또한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들의 1인당 연구업적은 미국 대학 중 4위인 MIT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생명복제 분야의 황우석 교수 같은 분은 세계적으로도 첫손에 꼽히죠. 조금만 더 밀어주면 두각을 나타낼 분야가 수두룩합니다.”

서울대가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학부과정에서부터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백화점 학과’ 체제를 지양하고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는 기형적인 서울대 입시 열기를 잠재워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이루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대도 이런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서울대가 작성한 ‘뉴 밀레니엄 비전과 전략’이라는 문건에는 “‘대학원 중심대학’만으로는 세계적 수준의 종합연구대학으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금의 ‘백화점 학과’들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총장에게 그 사정을 물었다.

“그동안 ‘대학원 중심대학’이니 ‘연구 중심대학’이니 하는 말들이 많았습니다만,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던 개념이었어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카네기위원회의 대학 분류에 따르면 서울대는 ‘세계 수준의 종합연구대학(World Class Comprehensive Research University)’을 지향합니다. 연구대학이란 대학원만 있는 대학이 아니에요. 학사·석사·박사코스에서 기초과정과 응용과정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세계 50위 안에 드는 대학은 모두 이런 종합연구대학입니다. 그동안 매킨지의 자문도 받고 외국의 전·현직 총장들과도 여러 차례 논의하면서 한국에도 이런 대학이 1∼2개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번에 뉴 밀레니엄 비전을 설정하면서 서울대가 이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제 내부적으로 웬만큼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기회는 여러 토끼에게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다면 더더욱 학과 통·폐합, 학부 축소 등의 구조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난 10월 열린 국회 교육위의 서울대 국정감사에선 “사립대학과 중복되는 학과는 폐지하고 일부 학과는 프랑스처럼 별도 대학으로 분화시켜 특성화, 전문화해야 한다”는 발전적 해체론까지 나오던데요.

“국감 당시 서울대가 모든 학과를 다 가져가고 학사과정도 줄이지 않는다고 지적됐지만, 실제로는 99년부터 이미 학사과정 정원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까지 무려 25%를 줄이게 됩니다. 이건 사립대학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학사과정을 축소하는 대신 대학원과정을 확충해 대학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이게 홍보가 잘 안됐어요.

학과 통·폐합 문제를 거론하셨는데, 물론 서울대라고 모든 분야에서 다 경쟁력이 있을 수는 없겠죠. 학교당국으로선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계속 지원해서 더 잘 할 수 있게 하면 됩니다. 영세하고 경쟁력없는 분야는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통합되게 돼 있어요.

그걸 인위적으로 하려고 들면 부작용만 커집니다. 잘하는 곳을 밀어주면 되지, 못하는 곳과 자꾸 씨름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요? 어쨌든 기회는 여러 마리 토끼에게 다 주고 나서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자는 겁니다.”

기업 구조조정에서처럼 이른바 핵심역량(core competence)만 남기고 경쟁력없는 부문은 다 잘라내라는 논리를 모든 대학에 예외없이 요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 인터뷰에 배석했던 서울대 민상기 기획실장(경영대 교수)은 이 대목에서 중국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베이징대의 경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까지는 인문대 공대 의대 농대 등을 모두 갖춘 종합대였다고 한다. 그러다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하면서 구소련 모델을 받아들여 1952년 베이징대를 인문대로, 칭화(淸華)대를 공대로 개편했다. 이에 따라 베이징대에서 공대 농대 의대를 분리했고, 칭화대의 문학부와 이학부를 분리해 베이징대로, 농학부를 베이징농대로 흡수시켰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런 방식의 대학 전문화는 그 나라 에서는 좋은 대학들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할 만큼 성장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베이징대는 99년에 다시 의대를 통합했고 현재 공대를 새로 만들고 있으며, 칭화대도 70년대 말∼80년대 초에 이과계와 문과계를 복원한 데 이어 84년에는 사회과학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듯 이미 50년 전에 중국이 실험했다가 실패한 소련 모델의 개념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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