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교에 이어 지난 11월20일 영종대교가 개통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장대(長大) 교량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인천국제공항과 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을 연결하는 영종대교는 95년 11월 착공 이후 숱한 화제를 낳았다.
영종대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바다 위에 세워진 평범한 다리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다리는 전체 길이가 4420m에 이르고, 세계 최초로 건설된 3차원 케이블 자정식(自定式) 현수교이며, 상층에는 6차선 도로, 하층에는 4차선 도로와 복선 철도가 지나는 철도병용식 2층 교량이라 그 형태와 특성이 남다르다.
다리에 직접 케이블 매달아
우리나라의 사회간접자본(SOC) 민자사업 1호로 착공된 영종대교는 그 동안 이런 저런 구설에 휘말렸다. 국제공항이 완공돼도 다리를 못 세워 개항이 늦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컸다. 당초에는 영종대교 전구간을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려 했다가 뒤늦게 민자사업으로 계획이 변경됐기 때문. 공사비를 둘러싼 정부와 시공업체 사이의 이견으로 2년여 동안 삽질 한번 못 하고 허송세월 하기도 했다.
더구나 영종대교 구간 중 현수교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이 세계 최초로 3차원 케이블 자정식으로 시공되는 것이어서 공정이 워낙 까다롭다는 점도 공사가 지연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교량전문가들도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이러다 접근로도 없는 고도(孤島)에 공항만 덩그러니 들어설 판”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영종대교는 완공예정일(2000년 11월28일)보다 일주일 앞선 11월21일 개통식을 갖고 그 위용을 선보였다. 공사현장을 방문, 한국의 교량건설 기술수준을 의심하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던 미국 일본 등지의 기술자들도 막상 완공된 다리를 보고는 “어떻게 다리 난간에다 저렇게 무거운 케이블을 매달았느냐”고 물으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고 한다. 세계적인 건설 관련 잡지인 ‘ENR(Engineering News-Record)’는 영종대교를 2000년 7월호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자정식 현수교의 성공사례로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시공한 영종대교 현수교의 길이는 550m. 세계의 현수교 가운데는 500m가 넘는 것이 많다. 일본의 아카시대교는 1991m, 미나미비산교는 1100m, 도쿄만을 가로지르는 레인보 현수교는 550m다. 73년에 완공된 우리나라의 남해대교도 660m다.
하지만 영종대교 현수교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여느 현수교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다리의 케이블은 마치 럭비공 같은 곡선 모양의 3차원 자정식 형태로 되어 있다. 3차원 케이블은 주탑과 주탑 사이가 2000m가 넘는 미래형 초장대교에나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영종대교 현수교가 이 방식으로 시공된 것은 세계 최초의 일이며 또한 자정식 현수교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일반적으로 현수교는 수심이 깊고 파도가 심해 교각을 여러 개 세우기 어려운 바다나 협곡 같은 곳에 세운다. 주탑을 세운 뒤 그 양쪽으로 케이블을 걸고 그 위에 상판을 매다는데, 계곡 사이를 연결한 구름다리가 현수교의 원형이다. 이 경우 주탑 양쪽으로 케이블을 고정시킬 수 있는 큰 바위 같은 앵커가 필요하다. 이처럼 케이블 양끝을 외부의 앵커에 고정하는 것을 타정식(他定式) 현수교라 부르는데, 아카시대교나 미나미비산교, 남해대교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자정식 현수교는 다리 자체가 앵커가 된다. 그래서 임시 교각을 세워 다리 상판을 다 얹어놓은 다음에 케이블을 걸어야 한다. 다리가 케이블을 걸어놓는 앵커 노릇을 하려면 다리 무게가 무거워야 한다.
또한 케이블을 다리에 제대로 매달기 위해서는 정착부에 집중되는 힘을 정확하게 분산하는 문제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무리하게 힘을 가하면 다리가 꺾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케이블이 럭비공 같은 곡선 모양이기 때문에 주(主)케이블과 지(枝)케이블의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각도를 이루게 해서 이를 상판과 연결하는 작업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논문 속 다리’를 현실로
이처럼 지금껏 어느 나라에서도 건설된 적이 없고 시공도 어려운 3차원 자정식 현수교 방식을 영종대교에 적용한 것은 우리의 전통미를 다리에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93년 교통부는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계획하면서 영종대교 설계를 현상공모했다. 세계로 드나드는 관문 노릇을 할 이 다리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아름다움을 가장 잘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 유신설계와 일본 조다이(長大)사의 공동 설계작인 3차원 케이블 자정식 현수교가 당선됐다. 교량 건설에 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종대교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기 때문에 교각 사이로 대형 선박이 지나갈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설계가 필요했다.
길이 1km 이내의 케이블 교량은 서해대교와 같은 사장교 방식으로 건설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사장교는 주탑에 경사지게 설치된 사장케이블이 상판의 하중을 지지하는 형태. 주탑과 상판 사이에 케이블을 설치, 차량이 지나다니는 상판에 부족한 강성을 보완한 것이다. 현수교에 비해 공사비가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케이블의 장력을 조정하기도 쉽고 노후한 케이블을 교체하기에도 편리하다.
하지만 영종대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한국의 첫 관문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선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현수교를 선택했다. 영종대교의 현수교 구간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기와지붕 같다. 또한 주탑은 항아리의 둥근 모양을 본떴다.
당시 설계 심사에 참가했던 서울대 장승필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는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은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상징적인 의미와 조형미도 고려해야 한다. 영종대교 현수교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은은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다리다”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문제는 누가 현수교를 시공하느냐였다. 3차원 케이블 자정식 현수교는 연구논문에서만 논의가 분분했지, 실제로는 한번도 건설된 적이 없기 때문에 시공을 맡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수교 공사를 떠맡은 업체는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를 시공하는 11개 건설업체의 주간사인 삼성물산이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77년에 건설분야에 뛰어들긴 했지만 아파트나 좀 지어봤지 토목분야에서는 변변한 다리 하나 놓아보지 못한 업체였다. 80년대 들어 해외공사로 이름을 날리던 한 건설회사를 인수했지만, 도급순위 1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그런 삼성이 채산성도 없는 현수교 건설을 떠맡은 데는 나름대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사회간접자본에 민자건설의 물꼬가 터진 이상 향후 도로 항만 교량 등 대형 민자 토목공사가 속속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삼성으로선 하루빨리 토목건설 기술력을 키워야 했고, 이런 상황에 고난도의 현수교 시공은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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