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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서울대 철학과 77학번의 자화상

  • 김지석 jk@hani.co.kr

2001년 1월 서울대 철학과 77학번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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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77학번 친구들은 세속적인 기준에서 볼 때 크게 성공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없다. 권력이나 재력을 갖출 능력도 없겠지만 사고방식이 그쪽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상을 현실화하려고 애쓰는 친구가 많은 편이다. 그런 친구 몇 명을 소개하고 싶다.

우선 여균동이라는 영화감독이 있는데 대중에게 꽤 알려져 있다. 이 친구는 ‘세상 밖으로’ ‘미인’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감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도 쓰고 ‘주노명 베이커리’ ‘이재수의 난’ ‘박봉곤 가출사건’ ‘맨’ ‘너에게 나를 보낸다’ ‘성공시대’ 등에 영화배우로 출연도 했다. 이 친구는 대학 다닐 때 시를 쓰기도 하고 한동안 마당극 연극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이처럼 다재다능한 친구가 어떤 영화제에서도 수상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이 ‘귀재’를 몰라주는 것인지 운명적으로 상복이 없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여균동은 6년간에 걸쳐 서울대에 다녔지만 실제 적을 둔 기간은 모두 합쳐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술자리에서 ‘해동청 보라매가 봉천동 고개를 넘어가느니 마느니’ 하는 노래를 걸게 부르더니 1학년 말 교내시위 때 ‘못된’ 선배의 꾐에 빠져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가 경찰서에 끌려가버렸다. 이때 제적된 그는 80년에 복학해 철학과로 진입했으나 바로 그 봄을 버티지 못하고 2개월 만에 다시 제적됐다. 당시 합수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는데 팔씨름에 가장 센 보안사 요원과 시합을 했는데 ‘맞지 않으려고’ 일부러 져줬다는 일화가 있다.

83년에 다시 복학했으나 2학기 때 또 제적된 후에는 아예 사회운동과 문화예술 활동에 전념하느라 아직까지 졸업장을 ‘구경’하지 못한 상태다. 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 운동 관련 집회장에서 여러 차례의 멀티슬라이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본인은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으나 현실이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마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영화배우 겸 감독 ‘여균동’은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 재미보다는 의미를 추구하는 그런 ‘철학적 영화’가 대중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을지 늘 염려스러워한다.



목소리가 우렁차서 시위나 집회 때마다 눈에 잘 띄던 정광필은 지금 경기도 분당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경기도 광주에 부지를 마련하고 2003년에 대안학교를 개교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그도 1학년 때인 77년 가을 학내시위와 관련해 제적됐다. 78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1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대통령이 숨진 날인 79년 10월26일 입대했다. 82년 2학기에 복학해 86년에 졸업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83년부터는 노동현장에서 생활하면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함께 했다.

교육으로 눈을 돌린 것은 90년대 초반부터다. 당시 관여하던 민중당이 사회노동당과 진보정당추진위로 갈라지면서 ‘현실 정치’라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실적으로는 정치가가 돼야 하는데, 자신과는 도저히 안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운동가로 남을 수 있는 기반도 크지 않은 것 같아, 먼 장래를 내다보고 교육을 택했다.

20대의 유연한 몸매를 간직한 의사

신체는 근육질로 다져졌지만 다정다감하던 변우식은 대학 때 기독교학생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의사가 돼 있다. 그는 81년 2월 철학과를 졸업한 뒤 바로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해 가을 휴학하고 입대해 84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그 뒤 여러 해 동안 인천·부천·경주 등의 기독교청년회(YMCA)에서 간사로 일했다. 그러다 90년대 초반에 의대 1학년에 다시 입학해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충남 보령시 보건소 관리의사로 근무중이다. 10여 년 동안 동기들과는 소원하게 지냈는데 최근 그를 만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멋있는 ‘철학적 의사’가 됐다고 한다.

보건소에서 진료를 전담하고 있는 그는 인간의 생·노·병·사 문제 해결은 인류의 숙원이자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사라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 철학 신학에 이어 다시 의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질병과 노화에 대해 그는 독특한 생각을 갖고 있다. 질병과 노화도 자신이 학습한 신념의 결과물이며, 이 신념(또는 의지)의 변화에 따라 삶의 형식이 바뀌고 질병과 노화가 치유되기도 하고 지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질병과 노화를 포함해 외부세계는 내부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우주에서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몸과 마음의 완전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생명체로서의 인간 완성”을 지향한다. 다른 말로 하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통일이다. 아울러 그는 이런 노력을 이웃과 함께 하는 일종의 공동체 운동을 통해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업의가 아니라 보건소를 직장으로 택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광필도 그렇지만 변우식도 무인 스타일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못 하는 운동이 없고 강하고 튼튼하다. 한마디로 강철 같다. 얼굴에는 건강함에서 오는 자신감이 보이고, 손목을 잡으면 내공의 힘에 압도된다. 최근 변우식을 본 사람은 군살이 하나도 없는 마른 몸매에 놀란다.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고 한다. 언제 한번 볼품없는 ‘똥배’만 나온 동기들끼리 모여 변우식을 연사로 모시고 건강과 몸매 관리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자고 제안한 친구도 있다.

철학이 사람과 세계의 근본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그 탐구 방법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분석과 직관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 분석은 이성, 논리, 합리, 정합성 등과 관계된다. 철학과 출신들이 차고 냉정하게 보이는 것은 분석이 앞서기 때문이다.

세계 훗설학회에서 알아주는 철학교수

학창시절 수업시간(사실 어수선한 학내사정으로 제대로 수업이 이뤄진 적이 별로 없지만)이나 동기들 사이의 세미나, 술자리 등에서는 새로운 개념과 논리가 난무했다.

그때마다 큰 덩치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한 친구가 종횡무진의 논리로 다른 사람을 기죽이곤 했다. 박정희식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하면 비판이론을 들고 나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얘기하고, 비판이론을 좀 공부한 뒤 얘기하면 다시 비판이론의 한계를 지적한 뒤 변증법을 풀어놓는 식이다. ‘무늬’만 동기였지 완전히 선배격이었다.

그의 논리가 정통이었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가 이후 학자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현재 교수로 있는 이남인(서울대), 민찬홍(한남대), 김재기(경성대) 등도 뛰어난 논객이었다. 특히 이남인과 민찬홍은 사회문제에 대한 시각이 다소 다른데다 일찍부터 학자의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동기들의 각종 모임에 꾸준히 참여한 것을 지금 생각해보니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남인은 훗설이라는 세계적인 철학자가 제창한 ‘현상학’을 전공했는데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열린 훗설학회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발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동기들 중에 기자가 둘이나 있으면서도 이를 널리 알리지 못했으니 ‘뛰어난 학자도 친구의 눈에는 친구일 뿐’이라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

시립대 철학과 교수로 있는 이성백은 학창시절에 과대표를 지냈다. 순탄하게 성장했음이 외모에서도 드러나는 그는 당시 운동권적인 과 분위기 때문에 마음 고생을 꽤 한 것 같다. 그러나 야외에서 술판이 벌어지면 현란한 제스처와 함께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멋지게 불러 박수 갈채를 받곤 했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다가 독일 베를린 대학에 유학했다. 그가 소련철학을 전공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철학과 77학번 중 몇몇은 다소 놀랐다. 활발한 성격이긴 하나 학창시절에 사회문제에는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정확하게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서의 소련철학의 개혁 시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 교수가 됐지만 소련 동구 붕괴의 여파로 국내에서도 이 분야의 철학은 시들해진 상황이었다.

그는 90년대 들어 한국에서 명예가 실추된 마르크스주의를 21세기의 시기적 상황에 맞는 진보적 사상으로 재정립하는 연구에 정진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적 재구성이란 연구 목표 아래 20세기 서구 마르크스주의 흐름들,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이론 등 기존 철학 및 일반 사회이론의 비교 연구, 사회 현실 변화의 새로운 주제들인 신자유주의, 정보화, 생태위기, 페미니즘 등에 대한 좌파적 관점의 이론적 해명 등이 구체적인 연구 대상이다. 그는 나이 들면 자신이 사는 조그마한 지역을 ‘사람’이 사는 소규모 지역공동체로 발전시키는 데에 일조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사실 철학과 77학번으로 학계로 나간 사람들은 자리잡기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다른 학번에 비해 비교적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공부하는 시기도 길어지고 유학파도 적은 편이다. 그중에는 강사생활을 14년간 한 사람도 있다. 이들이 겪은 어려움은 철학과 77학번 출신 교수 가운데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학문적 혈연의식이 강하다는 서울대에도 철학과 77학번 교수는 1명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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