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전 서초경찰서 소년계장이 목격한 원조교제 백태

  • 박은경

    입력2005-05-13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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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간지 지면에 실린 모 정보통신업체 광고를 보면 가슴에 와 닿는 문구가 눈에 띈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욱 가깝게, 더욱 따뜻하게 이어주는 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욱 가깝게 이어주는’ 편리성을 악용한 일탈행위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인터넷 채팅과 휴대폰 문자서비스 등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성인 남성과 여성 청소년이 은밀히 만난 뒤 돈을 매개로 성관계를 갖는 이른바 ‘원조교제’다. 이는 ‘첨단 산업사회의 꽃’이 음험한 매매춘의 끈을 이어주는 ‘가교’로 변질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난 5월 휴대폰 문자게시판에 올라온 ‘인천 여 18세, 연락 바람’이라는 메시지를 보고 당사자인 여학생과 원조교제를 한 20~30대 남성 5명이 적발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금년 초만 해도 기존 전화방을 통한 원조교제 사범이 많았는데, 요즘은 회원제 전화방과 인터넷 채팅을 이용한 원조교제가 크게 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원조교제의 또 다른 수단으로 떠올라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전 서초경찰서 소년계장 정상배 경위(48·현 서초구 서래파출소 소장)는 지난 10개월 동안 끈질기게 원조교제 사범을 추적한 끝에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총 30건 단속, 97명 검거’ 실적을 올렸다. 그 결과 경찰청 안팎에서 ‘원조교제범 포도대장’으로 불리는 그는 최근 원조교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 실태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정소장이 현장을 직접 누비며 건져 올린 단속 실적을 토대로 경찰청 내부 문건인 ‘수사연구’ 9월호에 발표한 ‘원조교제 실태 관련 보고서’ 내용을 보면 그의 우려가 단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실한 사람이 대다수

    2000년 1월부터 8개월 동안 20건의 단속에 걸려든 원조교제 사범은 모두 66명. 이 가운데 35명은 구속, 나머지 31명은 불구속됐다. 직업을 보면 회사원(27명), 교수 및 교사(3명), 자영업자(23명), 무직자(3명), 기타(10명)였으며, 연령별로는 30대가 38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 19명, 40대 6명 순이다.

    “원조교제 사범이라고 해서 특정 직업군에 속하거나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조사 결과 오히려 직장이나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이 우리 사회 원조교제 문제가 무척 심각하다는 증거입니다. 불특정다수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건 원조교제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소장은 지난 9월26일 서래파출소 소장으로 발령 받아 자리를 옮긴 뒤에도 꾸준히 원조교제 단속에 나섰고, 그 결과 지금까지 10건의 실적을 추가했다. 본격적으로 원조교제 단속에 나선 지 1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만삭 10대 원조교제’ ‘휴대폰 채팅 원조교제’ ‘한 반 20명 원조교제’ 등 굵직한 제목으로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며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 수사를 대부분 정소장이 지휘했다.

    정소장이 ‘원조교제범과의 전쟁’에 뛰어든 계기는 93년 서울 가리봉파출소 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단오거리에 파출소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주변 유흥가를 끼고 ‘10대 가출촌’이라고 지목된 ‘벌집’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서울 또는 지방에서 가출한 아이들이 술집 접대부나 삐끼 생활을 하며 탈선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아마 당시 그곳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 후 서초경찰서 소년계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지난해 말, 청소년보호법이 강화된다는 정부발표를 보고 원조교제범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작정은 했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몰랐던 정소장은 맨처음 전화방을 찾았고, 그곳에서 만난 10대 여학생 세 명을 통해 원조교제 추적기법을 익혔다.

    “무작정 PC방에 들어가 주인을 붙잡고 인터넷과 채팅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채팅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한 뒤 대화방과 미팅방을 드나들며 원조교제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추적하는 식이었습니다.”

    업무상 추적기법을 밝히기 어렵다는 정 소장은 경찰청 안에서도 원조교제에 관한 한 전문가로 손꼽힌다. 지금까지 그가 단속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원조교제의 실상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갈수록 다양해지는 원조교제의 형태와 수법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학교 3학년인 한 가출 소녀는 PC방에서 채팅을 통해 보도방 업주를 만났습니다. 이 소녀는 업주 2명과 차례로 성관계를 가진 뒤 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원조교제를 해야 했습니다. 말이 숙식 제공이지 날마다 여관방을 전전하며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운 채 하루 3~4차례 남성을 상대했습니다. 적발 당시 이 소녀가 전화방을 통해 만난 남성은 15명에 달했고, 1인당 10만원씩 받은 돈은 보도방 업주가 모두 갈취했습니다. 20대 초반 보도방 업주는 채팅을 통해 미성년자를 물색한 다음 이들을 술집에 연결시키려고 했는데, 미성년자 접대부 단속이 강화돼 사정이 여의치 않자 대신 원조교제로 돈벌이를 한 겁니다.”

    관련자 9명이 구속되고 7명이 불구속된 이 사건은 잠자리와 돈이 궁한 가출 청소년의 약점을 악용해 원조교제로 내모는 신종 매매춘 수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컴퓨터통신 대화방이나 채팅방에 들어가면 ‘잘 곳 없는 여, 동거 가능’, ‘먹여 주고 재워 줌’, ‘가출 여 숙식 제공’ 등 가출 청소년을 유혹하는 문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카메라 앞에서 신체를 노출하는 등 포르노비디오를 방불케 하는 음란성으로 문제가 된 화상채팅은 최근 새로운 원조교제의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문자 채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화상채팅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상대방 얼굴을 보며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8월, ‘만삭 10대 원조교제’ 파문을 일으켰던 15세 소녀는 화상채팅을 통해 첫 원조교제 상대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공공근로로 생활하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그때 아는 오빠와 성관계를 맺고 나중에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돼 가출했습니다. 막상 집을 나와보니 막막하고…. 처음엔 낙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에 나섰다가, 나중엔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심하고 계속 원조교제를 하다 임신 9개월경에 적발된 겁니다.”



    새롭게 등장한 화상채팅

    정소장에 따르면 원조교제 유형이 크게 PC통신과 인터넷 채팅(화상채팅 포함), 휴대폰 문자서비스(무선인터넷 포함), 전화방, 연락방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텔레비전과 전화 등이 구비된 방에서 고객을 받는 전형적인 전화방은 오랜 경찰 단속으로 최근 ‘휴게텔’ 또는 ‘휴게방’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일반 전화방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지만, 텔레비전 모니터로 상대방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화상카메라를 설치한 곳이 최근 새롭게 등장한 ‘화상채팅방’이다. 화상채팅방은 신종 전화방인 셈이다.

    시간당 1만5000원을 내고 출입할 수 있는 일반 전화방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전화만으로 일 대 일 대화가 가능한 것이 바로 ‘회원제전화방’이다. 회원제전화방은 700 음성정보서비스 전화를 통해 남성 회원을 모집한다. 5만~10만원의 회비를 온라인으로 송금하면 고유 회원번호와 비밀번호를 발급해주는데 일단 회원이 되면 ‘300분 무료 통화’가 가능하다. 회원으로 가입한 남성이 자신의 회원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곧바로 상대 여성과 일 대 일 통화가 이루어진다. 여성은 별도 회원가입 절차가 없으며 업체측이 마련한 ‘080여성무료전화’를 이용하면 언제든 통화가 가능하다.

    “일반 전화방은 서울보다 근교 도시에서 더욱 성업중입니다. 버젓이 포르노비디오를 틀어주는 곳도 많습니다. 한껏 성적 자극을 받은 상황에서 여성과 전화통화 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십중팔구는 만나자는 소리가 나오게 되죠.

    이런 전화방도 문제지만 특히 회원제 전화방은 더욱 심각합니다. 회원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수화기를 들고 있으면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는데 여성과 통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수초밖에 안 걸립니다. 이런 식으로 잠깐동안 수십 통의 통화가 가능합니다. 원조교제의 온상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닌데, 회원제 전화방 업주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화기와 착신에 필요한 컴퓨터 단말기를 설치할 공간만 있으면 어디서나 사업이 가능한데다, 단속을 피해 기기 설치 장소와 운영자 사무실을 각각 따로 두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원조교제 수단으로 악용되는 ‘연락방’은 남녀 모두 별도의 회비없이 30초당 30~100원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700’ 전화를 이용해 회원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즉석에서 회원으로 등록돼 개인 음성사서함을 가질 수 있다. 연락방은 남성 또는 여성 전용, 남녀 혼용으로 구분되는데, 바로 이 사서함을 통해 남녀가 서로 음성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원조교제 상대를 물색한다.

    “회원제 전화방과 연락방은 스포츠지나 생활정보지, 성인잡지 광고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여기엔 성과 관련한 자극적인 문구가 가득합니다. 성인 남자가 봐도 ‘전화 한번 걸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는데, 한창 성에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실제로 단속에 걸린 아이 중에 광고를 보고 호기심으로 회원제 전화방에 전화를 걸었다가 원조교제로 빠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재미 삼아 전화했다 원조교제를 하게 됐다는 남성도 흔합니다.”

    실제로 모 스포츠지 광고 지면을 확인한 결과, 연락방 광고만 90여 개에 달했다. ‘연락방’ ‘대화방’ ‘사서함’ ‘여행방’ ‘미팅클럽’ ‘콜클럽’ 등의 연락방 광고는 한결같이 ‘절대성인용’임을 내세우며, ‘홀로 있는 밤, 짜릿한 느낌’ ‘화려하고 짜릿한 메시지, 100% 만족’ ‘무슨 맛일까? 오늘 괜찮아!’ ‘아- 터질 것 같아요’ ‘당신이 원하는 여성 24시간 대기 중’ ‘짜릿한 만남에서 황홀한 체험까지’ ‘24시간 깊은 밤의 비밀사서함’ ‘지금 어때!’ ‘찍어요. 나가요. 만나요’ ‘외로운 밤에서 해방, 황홀한 느낌’ ‘오늘 좋았어’ ‘24시간 번개 접속’이라는 문구로 사람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심지어 한 업체는 ‘네티즌’을 빗댄 ‘폰티즌’이란 신조어까지 사용하며 일 대 일 또는 다자간 통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 가운데 ‘최다접속, 30만 명 돌파’를 강조한 연락방으로 전화를 걸었다. 5자리 숫자로 된 회원번호를 받은 뒤, 비밀번호 4자리를 얻기 위해 무려 7차례나 번호를 다시 입력해야 했다. “귀하가 누르신 4자리 번호는 이미 사용중인 회원이 있습니다”라고 반복되는 안내 멘트. ‘30만 명 접속’을 자랑하는 광고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남성을 가장해 어렵게 연락방을 개설하고, 불과 한 시간 반 남짓 경과하여 사서함을 확인해보았다. 놀랍게도 무려 40통에 가까운 여성들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그 가운데 자신이 10대임을 밝혔거나 목소리로 보아 1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약 70%에 달했다. 이들이 남긴 메시지는 ‘아저씨랑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내 사서함 번호는 51***번이에요. 만날 생각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널널하고 시간 많아요, 오빠 연락주세요’ ‘만날 수 있나요?’ 등이었다. 반면 3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은 “이곳에서 불건전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순수한 얘기를 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특정시간과 특정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편리하고 은밀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원조교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 회원제 전화방과 인터넷 채팅이라면, 여기서 좀더 발전한 것이 바로 휴대폰 문자서비스다.

    “휴대폰 문자서비스는 ‘걸어 다니는 매매춘(업소)’이라 부를 만큼 원조교제에 악용될 위험성이 큽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7월11일부터 8월10일까지 한 달간 원조교제 사범 특별단속에 나섰는데, 이 때 휴대폰을 이용한 원조교제 사례 두 건이 적발되었습니다. 확산 속도가 타 수단에 비해 훨씬 빠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전부 사용하는 휴대폰 특성상 인터넷 채팅이나 회원제 전화방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광범위하고 손쉽게 원조교제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단속기간에 서울지방경찰청이 적발한 원조교제사범은 92명에 달했고, 이중 56명이 구속됐다. 원조교제 사범이 대상 청소년을 유인한 방법은 인터넷 채팅을 이용한 경우가 35건(38%)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 080성인전화(회원제 전화방)를 이용한 경우 17건(18%), 길거리 유인 15건(16%), 유흥업소 12건(13%), 전화방 8건(9%), 친구 소개 3건(3%), 휴대폰 2건(2%)이었다.

    이동통신업체가 제공하는 휴대폰 문자서비스는 각 업체가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입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문자 메시지를 올릴 수 있는 ‘테마게시판’ ‘사랑통신’ ‘자기소개’ 코너다. 실제로 관련 코너에 들어가 확인한 결과 ‘$줄 오빠들만 01*-752-85**’ ‘?줄 아저씨만 답, 01*-807-57**’ ‘난 여 19살. 진짜 할 아저씨만, 01*-243-92**’ ‘원조여자, 문자 줄래? 01*-226-37**’ 등 원조교제 관련 글이 올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무작위로 아무 번호나 눌러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수법으로 원조교제 상대를 구하는 아이들도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연락처와 함께 ‘아저씨, 할래?’ ‘17세 여, 용돈 필요’ 등 노골적인 문자 메시지를 받은 회사원 김인철씨(남·32세)는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에 그런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세 명 더 있습니다. 처음엔 황당하다가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구요. 전화했더니 아이가 대뜸 ‘아저씨 어디에요? 지금 나올 수 있어요? 나랑 할래요?’ 하고 묻는 바람에 너무 기가 차서 야단쳤습니다” 라고 털어놓았다.

    문자서비스가 ‘문자팅→ 문팅’으로 불리며 원조교제 수단으로 악용되자 지난해 4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특정 서비스를 ‘폐쇄조치’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문제가 됐던 서비스를 제공한 이동통신업체는 단 한 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업체마다 경쟁적으로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담해진 중년 남자들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7월1일을 전후해 원조교제에 대한 정부 단속이 강화되자 최근 원조교제에 나선 청소년과 성인 남성들의 수법이 더 교묘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원조교제 사범 신상공개’와 맞물려 ‘증거인멸’ 수준에까지 도달한 실정이다.

    “상습적으로 원조교제를 하는 아이들 중에는 10대인데도 20살, 21살 등으로 나이를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상대방이 신상공개를 염려해 거래에 응해오지 않을까 걱정한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원조교제로 돈을 벌겠다고 작정한 부류입니다. 특히 여러 차례 원조교제 경험이 있는 아이를 단속해도, 과거와 달리 요즘은 상대 남성 10명 중 3명 정도만 적발하는 수준입니다. 서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피해가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아이들이 남자들 연락처를 수첩에 남기거나 명함으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경우가 드뭅니다. 남자 쪽에서 꼬리가 잡힐까 봐 명함을 아예 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아이들도 따로 보관해두지 않습니다. 심지어 연락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내는 경우, 절대로 만날 장소에 차를 끌고 가지 않는 남성도 많습니다. 차번호가 노출되어 추적당할지 모른다는 계산에서 미리 피하는 겁니다.”

    아이들 중에도 마치 ‘007’을 방불케 하는 수법으로 상대 남성을 고르거나, 단속을 피하려고 숨바꼭질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성인 남성과 약속 장소가 정해지면 근처에 숨어서 우선 지켜봅니다. 돈 많은 남자인가, 외모가 괜찮은가, 마음씨가 좋게 생겼는가, 아니면 형사인가 아닌가를 살핍니다. 일단 마음에 들고 안심할 만한 상대라는 판단이 서면 휴대폰을 이용해 최종 확인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디 공중전화 부스로 와라, 몇 번째 횡단보도로 와라 하는 식으로 혹시 모를 감시를 따돌리지요.

    그중에는 더 영악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또래 3,4명이 공동으로 원조교제에 나서서 일단 걸리는 대로 약속을 잡아놓고 A가 못 나가면 B를, B가 못 나가면 C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따불’을 뜁니다. 심지어 자기 친구는 성적으로 첫 경험이기 때문에 돈을 더 내야 한다며 흥정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원조교제 경험이 많다 해도 겨우 중학생인 아이가 어떤 남자는 어떻다는 식으로 성적 능력에 대해 서슴없이 평가하는 걸 볼 땐 정말 아찔합니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오로지 돈을 위해 남자들에게 몸을 내맡기는 아이들. 원조교제로 단속된 아이들 대부분은 마음이 괴팍하고, 어른 특히 남자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고 정소장은 지적한다.

    “아이들이 성인 남자를 한결같이 돈벌이 상대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정상적인 (성)행위보다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하는 어른이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면 돈을 더 주면 될 거 아니냐는 식으로 강요하는 남성도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이 느끼는 모멸감이나 수치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이들 마음이 점점 더 황폐해지는 겁니다.”

    원조교제에 나선 남성 가운데 아이들을 상대로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도 적지 않다. 상대적으로 아이들도 점점 더 영악하게 변하고 있다.

    “18세 여학생이 휴대폰에 ‘원조교제, 여 18세’라는 메시지를 올리고 연락해온 남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아이가 돈만 받고 도망쳤다 나중에 남자한테 잡혀서 그 집에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어떤 남성은 10만원 주겠다고 아이를 꼬신 뒤, 정작 자고 나서는 인상을 팍팍 쓰면서 3만원만 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사이에 미리 돈부터 받고 원조교제 하라, 안 그러면 떼먹힌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지요.

    더 기가 막힌 사례도 있습니다. 10만원을 먼저 주고 아이를 유혹한 뒤 경찰서 근처로 데리고 가서 방범증 비슷한 걸 보여주면서 너 저기 갈래? 조용히 가서 나랑 잘래?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고 난 뒤에는 미리 준 10만원을 빼앗고 차비나 하라며 달랑 1만원만 줬습니다. 또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너 원조교제 하는 것 부모한테 이르지 않을 테니까 나랑 공짜로 한 번만 하자, 그런 남성도 있습니다. 수차례 협박전화를 걸어 아이가 노이로제 지경까지 갔습니다.”

    일부 아이들은 전혀 나이답지 않게 당돌한 모습을 보인다. 단속에 걸려 경찰서까지 온 뒤에도 “내가 뭘 잘못했어요?” “증거 있으면 대봐요” “형사면 다야?” 하며 대드는 경우도 있다.

    “성 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가 원조교제로 첫 경험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 낙태 수술비, 가수 공연 참가비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원조교제에 나선 아이가 많지만, 경찰서에서까지 무턱대고 대드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다 어른들 책임이지요.”

    세상과 부딪치며 닳고 닳아 마음의 문이 닫힌 아이들을 상대로 수사를 하기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와 상대 남성이 합의하여 은밀히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성폭행 사건보다 더 수사하기 어려운 것이 원조교제라고 정소장은 이야기한다.

    “현장을 덮치기 전에는 아이들이 협조해줘야 상대 남성을 잡을 수 있는데, 쉽게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말문을 트기 시작해야 그 때부터 사실상 수사가 진행됩니다. 그 기간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까지 갑니다. 통상 3~4일은 걸려야 실마리를 잡게 됩니다. 수사할 때는 아이들을 딸같이 대합니다. 그래야 겨우 마음을 여니까요. 아이를 집으로 보내면서 내일 몇 시까지 와라 해놓고 혹시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초조해합니다. 안 나오고 도망가면 수사는 거기서 끝나게 됩니다.”

    원조교제 수사를 둘러싼 승강이는 아이들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수사선상에 오른 남성들한테 전화해서 경찰서로 잠깐 나와달라고 하면 찜찜해하면서도 멋모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지 아십니까? 내가 거기 왜 가냐고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재차 전화해서 미성년자 윤락 어쩌고 하면 그런 사실 전혀 없다고 딱 잡아뗍니다. 채팅은 하느냐? 참고인으로 한번 들러 달라고 하면, 그제서야 켕기니까 씩씩대며 나옵니다. 조사 과정에도 미성년자인지 몰랐다고 끝까지 우기는 사람, 주민등록증 확인하고 관계하느냐며 대드는 사람, 여자가 먼저 꼬셨다는 사람…. 별별 사람 많습니다. 심지어 100만 원을 건네며 봐달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뇌물공여의사표시죄를 추가했습니다. 적발된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하다 보면 울화가 치밀다 못해 한심할 지경입니다.”

    한편 원조교제 단속에 걸린 남성들 가운데 가끔 아내가 경찰서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대부분의 아내가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착실한 사람인지 아느냐”며 항변하는데 정소장은 달리 해줄 말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원조교제 사범을 보면 가정과 직장에 충실하고, 점잖은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의외로 순진한 사람도 있습니다. 주로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성실한 사람이 전화방이나 채팅을 이용해 원조교제에 빠져드는 예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술집 여성을 상대하기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지요. 대신 털털하고 개방적인 사람은 호기심 삼아 한번 해보자는 식이고, 적발된 경우도 극히 드뭅니다.

    수사하다 보면 가장 괴로운 때가 멋모르고 찾아온 가족들한테 당신 남편이 이런 사람이라고 얘기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남편 잘못으로 엄청난 충격을 당하는 걸 지켜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원조교제 사범 중에는 한사코 가족에게 알리길 거부하거나 어떻게든 구속만은 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제발 불구속 되게 해달라, 구류 정도로만 해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회사나 가족에게 며칠 출장 간다고 둘러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교제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직장퇴출, 가정파괴는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잠깐 실수로 30~40년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겁니다. 40대 초반 원조교제 사범 한 명이 한숨을 내쉬며 이제 다 끝났다 하는데, 어쩌자고 그랬을까 솔직히 측은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강력히 처벌할 방침

    최근 서울지방경찰청은 지속적으로 원조교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벌여 관련 사범을 반드시 처벌하게끔 방침을 세웠다. 그 동안 훈방조치에 그치던 청소년에 대해서도 보호처분에 의한 소년원 수감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등 ‘원조교제 사범 강력 처벌’ 의지를 밝혔다.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7월 이후 관련 사범이 형사입건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 상습범이거나 죄질이 나쁜 청소년도 보호감호 처분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은 단속된 전화방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는데, 최근 벌금형에 ‘2년 이하 징역’이 추가됐습니다. 또 조만간 형이 확정된 원조교제 사범의 신상이 공개되면 단속 효과가 더욱 커지리라 봅니다.

    여기에 덧붙여 다각적인 규제가 필요합니다. 가령 원조교제 숙소로 이용되는 여관은 미성년자 출입이 금지된 곳입니다. 이에 대한 꾸준한 단속과 원조교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각종 서비스에 대한 미성년자 접근 차단, 전화방 또는 연락방에 대한 광고 규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소장은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내 자식은 절대 나쁜 짓 하지 않는다는 맹신을 버려야 합니다. 또 아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가방은 무얼 들고 다니는지 일일이 신경 써서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이 대개 소비욕구를 채우기 위해 원조교제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특히 방학 때면 휴가비 마련을 위해 원조교제에 나서는 아이들이 많아집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용돈도 무조건 적게 줄 게 아니라 적당히 쓸 만큼 줘야 합니다.

    주위 환경이 안 그런데 아이한테만 아껴라, 쓰지 마라 하면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아이들 사고방식이나 사회환경이 과거와는 달리 위험천만한 상황입니다. 적당한 용돈과 눈높이 대화, 세심한 관심이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청소년 15% 원조교제 유혹

    최근 충청남도 주관으로 열린 ‘청소년 유해환경 보호 관련 논문 공모전’에서 수상한 ‘원조교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과 대책방안’(한서대학교 청소년학과 3학년 가미애·노소영)을 보면 청소년들이 현재 처한 주변 환경을 쉽게 알 수 있다.

    설문조사에 응한 서산 시내 중·고생 400명 중 15%가 PC통신 등을 통해 원조교제 유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전체 학생 중 95.8%가 원조교제에 대해 알고 있으며, 여학생의 37%, 남학생의 9%가 주변에서 원조교제를 하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설마 내 아이가…’ 하는 사이 아이들은 벌써 저만치 탈선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정소장.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원조교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적발된 아이들이 제 모습을 찾아 또래처럼 밝아졌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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