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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의 시대’를 사는 법|기업경영

마스터플랜 걷어치우고 로드맵 펼쳐라

  • 권삼윤 tumida@hanmail.net

마스터플랜 걷어치우고 로드맵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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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를 ‘개체의 시대(The Age of Individuals)’라 부르고자 한다.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미세한 다수의 존재가 모여 만들어내는 시장이, 또 네티즌들이 기존 정치와 경제·사회·문화의 틀을 바꾸고 있지 않은가. 개체는 이제 자본과 조직을 갖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이 주도한 정보통신혁명은 개체들에게도 ‘자기조직화(self networking)’의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일군 빌 게이츠가 바로 그런 인물 아닌가.

개체주의를 극도의 개인주의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나 아니면 안 된다’ ‘내 이익과 무관하면 나는 모른다’는 뜻이라면, 개체주의는 자신의 내실화와 충실화를 도모하되, 사회의 기본구성단위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으므로 모든 일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임한다는 특색이 있다. 개인주의와는 출발부터가 다르므로 결과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개체의 시대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하나하나의 개체가 독립된 주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20∼30년 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 명 가운데 여덟 명은 ‘통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수며 야구선수, 벤처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등 실로 다양한 답이 나온다.

그들은 더 이상 국가적인 것, 민족적인 것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의 중심이 자기자신이다. 물론 과거 아이들도 국가와 민족을 의식해서 통일이라고 답했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또 설령 그런 게 있었다 해도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스스로 생각할 줄도 알고 표현할 줄도 안다. 이른바 개체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누가 강요한다고 이것을 저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을 말할 뿐이다.

집단과 조직이 붕괴되면서 공통의 인식, 공통의 이익이 사라진 대신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다양한 이해구조와 시각이 생겨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점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모든 개체가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표출하고, 또 개인과 기업, 조직이 그걸 수용하려고 그들에게 가세함으로써 변화는 동시다발적으로, 또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리더십의 성격도 그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는 정보의 원천이 일정했기에 소수가 그것을 독점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체 스스로 정보를 마음껏 발신하고 수신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보의 독점체제가 붕괴, 소수에 의한 조직의 지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다. 리더는 정보 독점을 통한 지배와 군림의 자세에서 벗어나 정보의 공유화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닫고 권한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따라서 이 시대의 리더십이 가야 할 방향은 설득과 협력이다. 정보화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스트 프리 사회가 온다

정보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했던 국경과 민족 같은 거름장치가 허물어짐으로써 자칫 전세계의 미국화를 불러 일으키리라는 우려도 있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제까지 존재했던 물적·문화적 장벽이 모두 허물어졌다면 위기라고 겁낼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로이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만큼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렇게 국경, 민족이라는 벽이 헐리면서 이뤄진 정보공유화는 이해(利害)관계에 매달리는 사회가 아니라 이해(理解)에 기반을 둔 세계다. 이는 개체의 시대가 이뤄낼 원가절감효과에 따라 실현될 수 있다. 개체의 시대는 ‘코스트 프리 사회(cost-free society)’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모든 개체가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집중 투자함으로써 질 좋고 값싸고 개성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력이 충만한 이들 마니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원가개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이에 따라 코스트다운(원가절감)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업이나 산업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가체제와 권력구조, 관료조직, 교육제도, 문화 등 모든 영역을 변혁시켜 갈 것이다.

다른 하나는 1 대1 맞춤상품과 서비스의 확산이다. 요즘 보험 예금 등의 재테크나 아파트 건설분야 등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되는 맞춤상품, 맞춤서비스는 곧 자동차 안경 화장품 식품 서적 TV프로그램 영화 의료 등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나타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은 수십만, 수백만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불과 몇 가지의 변형제품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현실 여건상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을 다 살려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짜낸 결과가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진 수많은 고객을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시키는 소위 ‘절충식 마케팅’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은 이런 문제점을 일시에 해소하면서 ‘개인화 마케팅’을 촉발했다. 소비자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인터넷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파악하여 소비자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특별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주므로 비용 대비 효과가 엄청나며, 이것은 다시 자원의 절약을 가져온다. 주문생산이므로 폐기 처분할 것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방식은 거래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불특정 고객을 위해 상품을 진열장과 창고에 기한없이 쌓아놓는 바람에 발생하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까지 가져온다.

맞춤서비스는 대(對)고객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조직 내 인사에서도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맞춤형 인사’가 등장하고 있으며, 노사관계 역시 종래의 집단적 노사관계가 개별적 노사관계로 급격히 이행되고 있다. 집단의 자리에 개체가 들어서는 것이다.

맞춤시대의 출현은 정보의 내용과 질을 변화시켰다. 이제 정보는 산업·금융·조세정책 등을 다루는 관료의 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또한 그것은 그다지 유용하지도 않다. 요즘 신문 지면을 보더라도 부처 출입기자가 쓰는 기사보다는 독자적으로 취재한 기사가 늘고 있으며, 독자들도 그런 기사에 더 주목한다. 그들은 관청에서 흘러나오는 그렇고 그런 기사보다 시중에 나도는 이야기,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개체들의 트렌디 같은 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정보들을 더 중요시한다. 이런 것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촉발할 뿐 아니라 마케팅의 대상이자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일시적인 구조조정기를 거치면 기업인이 관료를 찾아가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대신 그들은 시장으로, 현장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창의력이 움트는 곳

이제 기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인 개체,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장과 한몸이 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외형보다는 내실을 따져야 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또한 기업은 말랑말랑해져야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바위처럼 자리만 지켜서는 안 된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주위 환경을 자신에게 맞춰가면서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이 점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성의 기능’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동물들의 사소한 행동조차 잘 살펴보면 그것은 그들의 환경을 개조하는 행위임을 알게 된다. 가장 단순한 생명체도 그들의 먹이가 자연스레 자신들에게 헤엄쳐 오게 만든다. 고등한 동물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먹이를 추적하고, 포획하고, 저작(咀嚼)한다. 그리하여 환경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변형시킨다. 어떤 동물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땅을 파며, 어떤 놈들은 포획할 대상을 추적한다.

이러한 모든 생존작전을 ‘환경적응’이라는 흔한 용어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하면 정말로 중요한 사실들이 다 빠져나가버린다. 고등한 형태의 생물은 그들의 환경을 개변하는 데 능동적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같은 글에서 인간에겐 세 가지 충동이 있다고 했다. ‘산다(to live·생존의 수준)’ ‘잘 산다(to live well·만족스러운 생활)’ ‘더 잘 산다(to live better·매우 만족스러운 생활)’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족도가 낮은 수준의 삶을 한 차원 더 높은 삶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을 이성의 기능이라고 했다. 앞서 말한 환경개조 능력이나 이성의 기능이란,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화두처럼 되어버린 ‘지식(knowledge)’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행하는 ‘일’이란 환경을 능동적으로 개변하고 삶의 만족도를 향상시키려는 것이며, 거기에 소용되는 것이 지식이고 이성이라면 반드시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할 필요가 없다. 박사학위를 얻을 이유는 더욱 없다. 고도의 학문적 연마가 필요한 분야나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나 동·식물의 생장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걸 관찰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때 가서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보면 된다.

우리는 에고(ego)가 창의성을 개발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것은 일면만 본 것일 뿐, 전체를 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래서 환경을 개조해 나가려는 바로 그 자리에서 창의성이 움트는 게 아니던가. 에고는 이렇듯 창의성의 원천인 것이다.

문제는 소수와 조직을 위한 수직적인 틀을 어떻게 수많은 개체를 위한 수평적인 틀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해집단간에 충돌도 일어날 것이다. 특히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밖에 살 길이 없으니 우리는 개체의 시대를 사는 법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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