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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남성탐구

변화의 달인 김윤환 딸각발이 선비 김윤식

  • 정혜신

변화의 달인 김윤환 딸각발이 선비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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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은 9대 국회의원 선거때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험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시작은 순탄치가 않았던 셈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를 위해 지역구를 갈고 닦던 그에게 고향선배인 박정희 전대통령이 유정회 국회의원 자리를 배려한 이후 그의 정치인생은 늘 순풍에 돛단 격이었다. 아마도 지난해의 공천탈락 충격이 그의 정치역정에서 가장 큰 시련이 아니었을까. 그의 정치이력은 화려하다.

23년간 5선의 국회의원 경력에 정무장관 3회, 원내총무 2회, 집권당 사무총장 2회, 집권당 대표위원을 2번 지낸 후 지금 현재는 비록 미니정당이지만 민국당 대표로 재임 중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절로 시샘이 날만한 경력일 것이다.

자신을 향해 ‘양지만을 쫓아다니는 정치인’이라거나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은 유신헌법을 만들지도 않았고 쿠데타를 하지도 않았으며 이당 저당을 옮겨 다닌 적도 없다고 항변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의 정치경력 중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정무장관을 3회나 지냈다는 것이다. 정무장관이란 최고통치권자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여야의 정치적 가교 역할을 하는 자리인데, 김윤환은 그런 직책을 전두환정권, 노태우정권, 김영삼정권에서 각각 1번씩 역임한 것이다. 그는 3번째의 정무장관을 맡으면서 어떻든 정치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오래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유명한 경구(警句)를 남겼다.

그는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타협과 절충’에 능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변신의 천재’라거나 ‘물렁뼈’ ‘소신없이 양지만을 쫓는 킹메이커’ ‘구시대 정치인의 전형’이란 비난도 있지만 그의 정치스타일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정하게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허주같은 사람이 여당에 있기에 대화가 통한다”고 했으며, 김근태 최고위원도 사석에서 “암울했던 시기에 여권 내부에 김 선배(허주)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정치가 조금씩이나마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특유의 ‘굴신성(屈身性)’을 무기로 정치사의 주요 고비마다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누르며 ‘대세를 쫓아’(그 자신은 ‘대세를 만들어 간다’고 표현한단다)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줏대도 없이 ‘되는 쪽‘을 따라가서 킹메이커를 자처하며 손을 들어준 후 정권을 넘어선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비판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신은 되는 쪽을 뒤따라 간 것이 아니라 92년 김영삼 후보때와 이회창 후보때 모두 다수파의 반대속에 ‘되어야 하는 사람’을 어렵게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흔히 대세몰이로 표현되는 정치세력간 제휴에 김윤환만큼 능란한 정치인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부분에 절충과 타협의 명수, 변화와 적응의 달인이라는 김윤환의 비밀의 열쇠가 담겨져 있다.

허주(虛舟), 빈배라는 아호가 함축하듯 그의 정치스타일에는 여백이 있다. 그는 누구나 부담없이 탈 수 있도록 늘 배를 비워 놓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킹메이커이지만 정권이 창출된 후에도 그는 경쟁자들의 표적이 되는 법이 없다. ‘무늬만 실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서질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말처럼 개인적 축재를 하거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지만 권력핵심으로서의 파워행사에는 에누리가 없긴 했다.

지난 95년 신한국당 대표로 그가 임명되자 여권의 핵심브레인이었던 당시 이영희 여의도 연구소장은 ‘5,6공을 주도했던 인물이 당을 이끌 수는 없는 일’이라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당 차원에서 이영희 소장에게 경고처분을 내리자 김윤환은 특유의 부드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그런 언행을 하면 내가 대표자리에 어떻게 있겠나. 경고만 가지고 되겠느냐.”

결국 이영희는 여의도 연구소장직에서 해임된다. 지난 96년 15대 공천과 관련된 발언도 김윤환의 파워를 잘 보여준다.

“솔직히 공천을 전원 내 의사대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의도에 어긋나는 공천은 없다.”



‘계영배(戒盈盃)의 철학’

그러나 그는 무리하게 배를 가득 채우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92년 당시 민주계의 맏형이었던 최형우 의원은 한 모임에서 김윤환의 도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허주선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김영삼대통령 만들기에 일등공신이라 할만한 사람이 김윤환이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의 정치적 위상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찬밥’신세였다. 그는 ‘과거 기득권 세력으로서 역사의 검증을 받는 기간이 필요하다’며 스스로 몸을 낮췄다. 자리보다도 총재가 하는 일에 서로 의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정도만 표현했다. 그러니 적이 있을 리 없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보면 계영배(戒盈盃)라는 신비의 술잔이 나온다. 말 그대로 꽉 채우는 걸 경계하는 잔이다. 술잔의 7부까지만 술을 부으면 계속 술이 남아 있지만 술잔 가득 채우면 술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빈 잔이 되어 버리는 신기(神器)다.

김윤환은 ‘계영배의 철학’이 몸에 배인 사람이다. 자신의 빈배에 7부 이상 가득 채우는 법이 거의 없다. 이 원칙이 김윤환을 변화와 적응의 달인으로 만들어준 심리적 근간이 된다. 정치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봐도 거의 예술의 경지다. 정치란 ‘상대가 있는 게임’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그의 정치철학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정치가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여권핵심에 있을 때 그걸 위해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단다. 그가 주장하는 정치적 화두는 두 가지다. 동서화합과 제도적 민주정치의 실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동서화합이라는 대목에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제는 전설처럼 되어버린 김윤환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선동적 발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그의 정치술의 요체를 ‘지역주의 패권론’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선거때마다 지역주의 망령이 등장하곤 하는데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김윤환이 있었다.

국민회의측은 그를 가리켜 “킹메이커로 위장한 희대의 지역감정 메이커”라며 격렬하게 비난했고 자민련은 “92년 대선 당시 ‘우리가 남이가’로 김영삼후보에게 TK몰표를 주더니 이번엔 이회창후보에게 붙어 PK에 ‘우리가 남이가’를 선동하고 있다”며 맹렬하게 규탄했다. 그런 그가 지난 97년 대선정국을 앞두고 뜻밖에도 ‘영남후보 배제론’의 운을 띄운다.

“61년부터 97년까지 무려 36년간 영남에만 정권이 돌아갔는데 또다시 TK에, 정권이 돌아가 41년을 집권하게 된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제기한 것은 ‘나는 직접 나서지 않지만 누구도 나를 무시하면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게 당시 언론의 분석이다.

“그는 말은 잘하지 못하고 어눌한데 그것을 역으로 잘 활용해요. 특히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은 허주가 단골이죠.”

한 정치부 기자의 진단이다. 김윤환은 대선 등 정치일정의 주요 고비마다 정국방향을 돌리는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발언의 대부분은 지역주의에 근거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97년 말 한 시사주간지의 분석을 인용해 보자.

‘TK배제론’은 자신의 위상을 강화할 시점이 되면 언제든지 ‘TK주도론’내지 ‘TK주체론’으로 모양새를 바꾼다. 대선후보 경선정국에서는 ‘TK배제론’으로 유력주자 편을 들고, 총선정국에서는 ‘TK주도론’으로 자신의 위상강화를 꾀하며 대선정국이 되면 ‘영남대동론’을 외치는 게 김윤환이라는 정치인이다.

그런 지역감정의 족쇄는 지난번 4·13총선에서 김윤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민국당으로 출마한 김윤환은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지역구에서 낙선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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