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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일본 핵폐기물 처분장 롯카쇼무라를 가다

위험은 통제, 지역은 발전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위험은 통제, 지역은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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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한국에서는, 한국전력이 거의 모든 전기를 생산하고[發電], 이 전기를 각 가정과 공장에 나눠주었다[配電]. 그러나 올해부터 배전은 한국전력이 독점하되, 발전은 여섯 개 발전 회사가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의 전력(電力)시스템은 우리 시스템과 크게 다르다. 일본은 여러 개의 섬으로 구성된 관계로, 무려 10개의 전력회사가 있다.

이 전력회사들은 과거의 한국전력처럼 그들이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과 배전을 모두 담당한다. 한국전력은 공기업이지만, 일본의 전력회사들은 민간기업이다. 10개 전력회사 중 오키나와에 있는 ‘오키나와전력’은 소비되는 전력이 너무 적어, 발전 용량이 큰 원자력 발전소를 짓지 않았다. 오키나와전력을 제외한 일본의 아홉 개 전력회사는 모두 원자력발전소를 갖고 있다.

그리고 10개의 전력회사 외에 일본원자력발전주식회사라는 또 하나의 발전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원자력발전을 도입하던 시절 원자력 발전 기술을 익혀 9개의 전력회사에게 기술을 나눠주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다. 이 회사와 9개의 전력회사가 보유한 원자력 발전소는 모두 52기다(한국은 16기).

롯카쇼무라에 위치한 일본원연주식회사는 9개 전력회사와 일본원자력발전주식회사가 공동으로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롯카쇼무라에 일본원연주식회사가 위치하게 된 것은 지방자치단체인 롯카쇼무라와 일본원연주식회사 사이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중앙정부가 낙후된 지방을 발전시키기 위해 ‘신(新)전국종합개발계획’을 결정한 것은 1969년 5월30일이었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오지인 아오모리켄 일대에 대한 개발 계획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일본 중앙정부는 롯카쇼무라 일대에 석유화학 콤비나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안을 검토했다.



지역 개발은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터를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누대에 걸쳐 한곳에서 살아온 사람들 중 일부는 고향을 떠나기 싫어 롯카쇼무라 개발 계획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롯카쇼무라는 개발 찬성과 개발 반대로 갈려 시끄러워졌다.

개발 반대를 외친 대표자는 롯카쇼무라의 촌장(村長)인 데라시타 리키사부로(寺下力三郞)씨였고, 개발 찬성론의 대표자는 촌의회 특별위원장인 하시모토 가츠시로(橋本勝四郞) 의원이었다. 찬반 대립이 극대화하자, 양파(兩派)는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주민투표로 상대의 파면을 결정하는 ‘주민소환’을 발의했다. 1973년 롯카쇼무라에서는 두 사람을 놓고 주민소환(파면)을 결정하는 주민 투표가 치러졌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간발의 표차로 소환을 모면했다. 제1차전은 무승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해 12월에 치러진 촌장 선거에서는 개발 지지파인 후루카와 이세마츠(古川伊勢松)씨가 당선됨으로써, 개발 쪽으로 축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 후 후루카와씨는 4선을 기록하며 89년까지 촌장을 지냈는데, 그가 촌장을 보던 시절 일본은 1차 오일쇼크(1973년)와 2차 오일쇼크(1979년)에 부딪혔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중앙정부는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을 포기하고 석유비축기지 건설을 서둘렀다. 1979년 이러한 일본 중앙정부의 의지를 파악한 후루카와 촌장은 일본의 제1호 석유 비축기지를 롯카쇼무라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만큼 많은 석유비축 기지가 들어서지 않아, 공단 예정지로 설정해놓은 땅이 남게 되었다. 1984년 일본전기산업연합회가 “롯카쇼무라가 놀리는 땅에 핵연료 시설을 지어도 되겠느냐”고 문의해왔다. 이에 대해 후루카와 촌장은 여론 수렴에 나섰는데, 유치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듬해인 1985년 일본의 10개 발전회사들은 공동으로 일본원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곳에 우라늄 농축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쓰치다 村長의 벼랑끝 전술

우라늄 농축공장 건설은 이 지역에 개발 찬성과 반대라는 또 다른 분쟁을 가져왔다. 그 결과 후루카와 촌장이 출마하지 않은 채로 치러진 1989년 촌장선거에서는 “더 이상 공단을 유치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동결파’의 쓰치다 히로시(土田浩)씨가 당선되었다. 쓰치다 촌장은 명분만 추구하지 않고 실리를 좇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을 구사할 줄도 알았다. 그는 농축우라늄 공장 건설에 이어 이곳에 재처리공장과 고준위 방폐물 임시보관장을 짓고 싶어하는 일본원연주식회사 등과 마주앉아 오랜 협상에 들어갔다.

쓰치다 촌장은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다. ‘개발 동결’을 내세운 그는 사용후핵연료와 방폐물의 보관장소를 찾지 못한 일본전기산업연합회와 일본원연주식회사를 애태웠다. 그리고 좋은 조건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개발을 허용했는데, 그가 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일본원연주식회사는 우라늄 농축공장을 완공하고 이어 저준위 방폐물 영구처분장을 만들어 조업에 들어갔다(1992년). 그리고 1995년에는 가장 문제가 된 고준위 방폐물 임시보관장을 완성했다.

가장 빡빡한 상대였던 쓰치다 촌장 시절, 일본원연주식회사가 고준위 방폐물 임시보관장을 완성했다는 것은 상당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시기 일본원연주식회사는 52기 원전에서 받은 사용후핵연료를 영국의 BNFL과 프랑스의 코제마 사로 보내 재처리를 맡겼다. BNFL과 코제마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다시 원자로에 넣는 MOX연료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고준위 방폐물을 함께 일본으로 보내주고 있었다(현재는 코제마사만 고준위 방폐물을 일본으로 보내고 있다).

MOX연료와 고준위 방폐물은 배에 실려 롯카쇼무라에 있는 무츠오가와라(むつ小川原) 항구로 운반되는데, 이 배가 출항을 준비하면 ‘그린피스’를 비롯한 전세계의 반핵(反核)단체들은 바빠진다. 한국의 반핵단체들도 이 배가 대한해협을 비롯한 한국 근해로 지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벤트성’ 시위를 준비한다. 이 배가 무츠오가와라 항구에 도착하면 다카기 진사부로(高木仁三郞) 박사와 히로세 다카시(廣瀨隆)씨 등 대표적인 일본의 반핵운동가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무츠오가와라 항구에 나타나 시위를 벌이곤 했다.

롯카쇼무라에 도착한 MOX연료는 곧 원전으로 옮겨가 사용되지만, 고준위 방폐물은 롯카쇼무라에 보관된다. 반핵단체들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고준위 방폐물이다. 고준위 방폐물은 방사능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위험한 쓰레기다.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의 재처리 공장에서는, 이 쓰레기를 고열을 가해 액체상태의 유리에 섞어, 높이 1.3m, 지름 33㎝, 두께 5㎜의 스테인리스 원통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원통을 냉각하면 유리 성분은 단단한 고체로 변해, 자기와 뒤섞인 고준위 방폐물을 꽉 잡고 있게 된다(유리화).

유리질 속에 갖혔는 데도 불구하고 고준위 방폐물은 열을 내뿜는다. 때문에 스테인리스 원통의 외부 온도는 무려 200℃까지 올라간다. 이 온도가 100℃ 이하로 내려가는 데 30~50년이 필요한데, 이 기간 동안 스테인리스 원통은 롯카쇼무라의 창고에 임시 보관되는 것이다. 롯카쇼무라 도착 다음날 기자는 이 회사의 홍보과장인 모리 하루미(森春美)씨의 안내를 받아, 프랑스에서 가져온 스테인리스 원통을 보관하는 임시 보관장을 방문했다.

모리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임시 보관장은 강력한 지진에도 끄떡 없도록 지하 20m까지 파내려가 거대한 암반을 찾아낸 후, 그 위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대한 암반 위에 ‘연탄’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콘크리트 ‘저장 피트(pit)’를 만들었다. 저장 피트에 뚫린 이 구멍들은 ‘수납관’이라고 하는데 16m 깊이의 수납관에는 9개의 스테인리스 원통이 들어간다. 9개의 원통이 들어간 수납관은 두께 1.9m의 거대한 뚜껑이 덮여 30∼50년간 관리된다. 롯카쇼무라의 임시 보관장에는 160개의 수납관이 건설돼 있어 모두 1440개의 스테인리스 원통을 집어넣을 수 있다. 모리 과장은 “이러한 시설과 별도로 현재 160개의 수납관을 가진 임시 보관장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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