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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의 그늘, 무너지는 대북공작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햇볕정책의 그늘, 무너지는 대북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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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내 대북공작조직 와해
  • ● 발호하는 대북 에이전트
  • ● 총풍사건과 북한인 납치
  • ● 황장엽의 다짐과 지혜
  • ● 북한 상선의 NLL 침범과 해주항
  • ● 대북 공작망 와해가 초래한 장길수 가족 사건
  • 남북정상회담 1년이 지난 지금 대북관계는 전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은 그들의 상선으로 하여금 NLL과 제주해협을 무단 통과케 해 김대중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4강 관계도 삐걱거리고 있다. 미국은 황장엽씨를 초청해 김대중 정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탈북자들을 핑퐁 치듯 떠넘기며 북한으로 송환하고 있다. 불과 1년 만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인가. 국정원의 공작 기능이 와해됐기 때문인데….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대북정책이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전후해 정부와 여당은 연일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촉구했으나, 북한은 요지부동 대꾸가 없다. 김위원장은 과연 서울을 방문할 것인가? 김위원장의 흉중을 들여다볼 수는 없으므로, 아무도 이 질문에 정확히 답변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속을 짐작케 하는 증거는 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2000년 6월15일, 북한의 ‘로동신문’은 제1면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서울을 방문하시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문구가 또렷이 박힌 북남공동선언 전문을 대문짝만하게 게재했다.

쌓여만 가는 남북관계 악재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1년 6월15일자 ‘로동신문’은 제5면에 ‘위대한 수령님의 통일 유훈 관철에서 획기적인 전진을 가져온 역사적 사변’이란 제목을 단 남북정상회담 1년을 평가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조국통일의 리정표’란 제목하에 북남공동선언을 실은 상자기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상자기사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거론한 문구가 감쪽같이 빠져 있었다(사진 참조). 북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김위원장은 서울을 방문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김위원장의 답방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정부 여당의 태도와 완전 반대되는 것이다.

북한은 김위원장의 답방 여부에 대답하는 대신, 호의를 갖고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애쓰는 김대중 정부를 오히려 골탕먹이고 있다. 북한 상선을 제주해협과 북방한계선으로 무단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6·15정상회담 후 자취를 감췄던 북한 삐라가 7월9일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에서 발견된 것과, 지난해 요란하게 시작된 경의선 복구사업이 북한측의 비협조로 오래 전에 ‘스톱’된 것도 북한의 어깃장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왜 김위원장과 북한은 그들에게 호의적인 김대중 정부를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꼬이는 것은 남북관계만이 아니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에도 대북 문제를 놓고 상당한 긴장이 형성돼 있다. 황장엽(黃長燁) 전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방미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갈등이 좋은 사례다. 미국 공화당은 황씨를 초청하는 방법을 통해 햇볕정책을 펼치는 김대중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씨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국에 가겠다며 적극 호응하고 있다.

지난 7월12일 기자는 황씨를 명예회장, 김덕홍(金德弘)씨를 회장으로 한 탈북자동지회를 방문했다. 동지회는 탈북자 중에서도 엘리트들이 중심이 된 단체인데, 국가정보원(이하 國情院)은 예산을 지원하며 이 단체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이 단체가 햇볕정책에 반대한다는 명확히 밝히자, 지원을 중단했다. 그로 인해 동지회는 월간지 ‘민족통일’의 발간을 중단한 상태다. 이곳에는 10여명쯤 되는 탈북자들이 모여 있었다. 동지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정부가 황선생의 방미를 막기 위해 극단적인 조처를 취할 것에 대비해, 열흘째 집에 가지 않고 이곳에서 숙식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왜 우리 언론은 동지회 회원들이 이렇게 단결해 있는 것을 보도하지 않는가. 한국 언론이 우리의 주장을 보도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외국 언론에 우리의 성명을 밝히겠다”며 한국 언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 관계자는 이러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정부가 황선생의 방미를 막기 위해 이중 간첩죄를 걸어 구속하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연금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황선생은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자신의 방미시기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협의해서 결정하라며 한 발짝 물러서는 지혜를 발휘했다. 한·미 정부가 방미시기를 결정한다면, 이는 곧 한국 정부가 방미를 허가한 것이 되므로 황선생의 인신을 구속하지 못하게 된다. 황선생과 우리는 황선생의 방미가 성사되도록 그야말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1997년 4월20일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들어온 황씨는 성명을 통해 자신은 “전쟁도발을 막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민족 앞에 속죄하고 싶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동지회 관계자들은 “황선생은 그때 이미 죽음을 불사하겠다고 작심했다. 이러한 신념을 단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 그런데 기대했던 한국에서는 햇볕정책 때문에 이러한 투쟁을 할 수가 없어, 황선생은 미국에 가서 이를 알리겠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미국 공화당은 황씨를 초청함으로써 김대중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한일 관계도 상당히 굴절돼 있다. 작금의 한일 갈등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한국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일본 보수층의 불만이 깔려 있다. 지난 6월23일 일본 경시청 공안부는 일본에서 폐선 조치한 어선을 동남아로 가져가 개조한 후, 북한에 몰래 판매한 브로커들을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경시청을 비롯한 일본 보수층은, 북한이 밀수입한 일본의 중고어선을 대일(對日) 공작선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중고어선이 한국 동해안의 한 항구를 거쳐 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항구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한국 사람이 개입한 데 대해 심히 불쾌히 여기는 눈치다.

한·중, 한·러관계도 답답한 국면

한중, 한러 관계도 대북 문제를 둘러싸고 삐걱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 마찰을 빚어도, 그래도 큰 틀에서는 한국과 한편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보다는 오히려 북한 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을 준다. 중국과 러시아가 탈북자를 붙잡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그러한 증거다.

특히 중국은 예상외로 많은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하고 있다. 1999년 2월부터 7월12일 사이 중국의 모 국책연구소는 단둥(丹東)·옌지(延吉)·룽징(龍井)·훈춘(琿春) 등 북한과 인접한 중국의 국경도시를 조사한 후, ‘북한의 불법월경 기아자(饑餓者) 및 북한사회 현상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 공안이 북한으로 송환한 탈북자 수를 최초로 밝힌 자료다. 중국 공안은 1996년 589명, 1997년에는 5439명, 1998년에는 무려 6300여 명의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했다.

한러 관계는 더욱 나쁘다.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개칭한 직후인 1998년 7월1일, 러시아는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해온 국정원 직원 조성우(趙成禹)씨를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목해 추방했다. 세계의 정보기관들은 정보요원들을 대개 대사관 직원으로 위장해 내보내는데, 이때 상대국 정보기관에게 ‘우리 기관의 아무개를 □□ 타이틀의 외교관으로 내보낸다’고 알려주는 게 불문율이다. 이런 정보원을 ‘공개 정보원’ 혹은 ‘화이트(white)’라고 한다. 반면 상대국 정보기관을 속이기 위해 상사 직원이나 선교사 등으로 위장해 내보내는 요원은 ‘비공개 정보원’ 혹은 ‘블랙(black)’이라고 한다.

조성우 참사관은 러시아 정보 당국에 통보된 화이트였다. 그런데도 조참사관을 추방한 것은, 한러 정보당국간의 협조를 중단하겠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나온 이상 한국도 같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7월8일 한국은 서울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참사관 타이틀로 나와 있는 해외정보부 직원 올레그 아브람킨을 맞추방했다. 정보요원 맞추방 사건으로 한러 관계는 더욱 얼어붙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 한국은, 한국으로 가기를 희망한 탈북자 7명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에 완전 우롱당했다.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온 탈북자 7명을 체포한 것은 1999년 11월10일이었다. 이들이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는 러시아 정부가 이들을 난민으로 판정해주어야 한다. 모스크바 주재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는 이들을 난민으로 판정했으나, 러시아 정부는 난민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 한러 관계가 좋았을 때, 러시아는 난민 판정을 하지 않고도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12월8일 러시아 외교부는 탈북자들에게 출국비자를 발급해, 비공식으로 한국에 보내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직후 러시아 외교부는 “직원의 실수로 비자가 잘못 발급됐다. 그 직원을 문책했다”고 밝히고, 12월30일 “탈북자 7명을 러중 국경조약에 따라 이들이 넘어온 중국으로 되돌려보낸다”며 중국으로 추방했다.

한술 더 뜬 것은 중국이었다. 2000년 1월12일 중국은 러시아에서 돌아온 7명을 전격적으로 북한에 송환해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러시아와 중국 정부를 쳐다보며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기다린 한국 정부만 ‘바보’가 됐다.

러시아가 추방한 탈북자 7명이 북한으로 송환된 것은 상당한 쇼크였다. 러시아와 중국이 핑퐁 치듯 떠넘기다 탈북자들을 사지(死地)로 집어넣을 때까지 국정원은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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