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달라졌다. 당은 활력이 넘치고 이총재는 여유로워 보인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그 비밀의 해답을 ‘국가혁신위원회’에서 찾는다. 한나라당을 토론 분위기로 몰아간 국가혁신위. 사실상 집권준비위원회로 알려진 이 조직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자기 소개가 끝나자마자 이의원은 한나라당에 직격탄을 쏟아부었다.
“한나라당의 ‘국가혁신위원회’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회창 총재의 직속자문기구입니까? 아니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대로 수권야당의 정권인수위입니까? 심각한 문제점은 소위 ‘국가혁신위’의 인적 구성이며, 그 출신성향입니다. 본의원이 지난 5월 모 시사주간지에 게재된 국가혁신위 구성인물의 출신지와 출신학교를 비교 분석한 결과 영남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기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서울대도 나오지 못한 사람은 136명 중 33명으로 전체대비 24.3%에 불과하고, 나머지 75.7%인 103명이 영남, 경기고, 서울대 중 하나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의원은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일부 당직자의 습작수준이며, 모두 자문위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개탄스러운 것은 대상인물을 선정하는 이총재와 한나라당의 왜곡되고 편협하고 지역분열적인 잣대입니다”며 이총재와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
이어서 이의원은 “이회창 총재에게 묻고 싶다”며 말을 이어갔으나 당사자인 이총재는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뜨고 말았다.
“혁신위는 이총재 작품”
이날의 대정부 질문은 한나라당이 야심만만하게 준비해온 국가혁신위원회(혁신위)의 실체가 국민의 눈에 ‘클로즈업’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신문과 방송은 이의원의 대정부 질문을 집중보도하며 여야간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최근 ‘보-혁 정계개편론’이 담긴 혁신위 내부회의록 공개에 이르기까지 여야는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이 터지면 즉각 상대를 비난하고 맞받아치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사가 되기 훨씬 전부터 혁신위는 탄생과 진화의 과정을 밟으며 정치권 한복판을 뒤흔들 파괴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혁신위가 탄생한 시점이 지난 연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원외지구당 의원으로 혁신위 분과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지난 연말부터 이회창 총재 머릿속에는 혁신위에 대한 구상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 정치판이 상대방 흠집내기에 혈안이 돼 있었는데 이런 ‘네거티브 정쟁’에서 벗어나 이총재만이라도 국민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당초 이총재가 생각해낸 명칭은 ‘국가개조위원회’였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가개조위원회’라는 이름은 발상단계에서 폐기됐다.
“일본에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가 주창한 ‘일본열도개조론’이 있지 않습니까. 대만에서도 이와 유사한 국가개조론이 나온 적이 있고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사용한 적이 있는 ‘개조’라는 단어보다는 다른 단어를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득(李相得) 혁신위 부위원장은 “남이 사용한 말이 아니면서 국가 전략을 다시 짠다는 의미를 담은 단어를 찾다보니 ‘혁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혁신위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 제공자와 이총재가 혁신위 위원장을 맡은 조직체계 등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총재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이총재의 핵심브레인인 유승민(劉承旼) 여의도연구소장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李明博) 혁신위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은 혁신위가 이총재의 작품이며 이총재가 혁신위의 책임을 맡기로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다고 주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이위원장은 “지난 1월인가 이총재가 사석에서 ‘혁신위가 구성되면 내가 위원장을 맡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며 “지난 4월인가 한때 혁신위 위원장으로 외부인사를 영입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총재의 생각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뉴스를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한편에서는 이총재가 혁신위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순수한 이총재의 창조물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혁신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일이 되도록 추진한 사람은 이총재지만 아이디어 단계에서 혁신위를 프로그래밍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앞서 언급한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 유소장은 올해 초 사석에서 “조만간 한나라당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테니 두고 보라”고 귀띔한 적이 있었다. 당시 유소장은 “당의 체질을 바꾸는 대규모 인선을 준비중인데 초·재선 등 젊은 의원들과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원외지구당위원장을 가급적 중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유소장은 구체적으로 혁신위를 거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6월 내부정비를 마친 혁신위 당내 위원 인선 결과를 보면 유소장의 올해 초 당 체질개선 관련 발언이 상당부분 혁신위를 겨냥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혁신위의 일반 위원 가운데 초선의원이 28명, 원외지구당위원장은 15명으로 둘을 합하면 43명이다. 이회창 위원장과 이상득(李相得), 박관용(朴寬用) 두 부위원장, 주진우(朱鎭旴) 행정실장, 각 분과 위원장 부위원장을 모두 포함한 혁신위 위원 수는 76명.
그 가운데 초선과 원외가 43명으로 전체의 57%를 차지하는데 이 수치만으로도 혁신위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표 참조) 초·재선과 원외를 중용한다는 것은 곧 다선 의원 중심의 당 중앙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논의를 전개하려는 이총재의 의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혁신위의 인적 구성을 정확히 예측했고 실제 혁신위를 디자인한 장본인으로 전해지는 유소장의 역할 탓에 한나라당 주변에서 “유소장을 정확히 이해해야 혁신위의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혁신위의 한 위원은 “그를 알면 혁신위의 성격과 집권 이후 프로그램까지 전부 알 수 있다. 유소장은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추켜세웠다.
“유소장의 사회과학적 토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론자입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보수적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학력만으로 그를 보수주의자로 몰아서는 곤란합니다. 현실정치에서는 오히려 당내에서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쇄신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소장에 대한 평가는 당의 정책으로 구현되는 과정에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유소장 본인이 정치인이 아니라 참모로서 자신의 위치를 한정하고 있는 이상, 비록 아이디어가 누구에게서 나왔든 혁신위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방향키를 잡은 이총재에게 달려 있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앞서의 혁신위 관계자는 이총재가 위원장을 자임하고 나선 것에 대해 이런 정치적 해석을 달았다.
“이총재가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결과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스스로 큰짐을 떠맡은 것 아니겠습니까. 지역, 정치성향, 세대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갈등을 통합하는 책임을 떠맡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총재는 위원장이 되는 순간 다양한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당내 인재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와 어떤 국정운영의 모델을 보여주느냐 하는 시험대에 선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러니까 이총재에게는 혁신위가 기회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도전인 셈입니다. 혁신위의 결과물을 어떤 것으로 내놓느냐에 따라 집권 이후 통치 프로그램의 윤곽도 드러나는 셈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전제 위에서 혁신위를 들여다볼 경우, 당장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과연 혁신위의 정치적 색깔은 무엇이냐는 점이다. ‘국가혁신’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혁신의 과제를 논의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개혁성향의 정책대안들이 주로 검토되지 않았을까.
반대로 한나라당의 당내기구로 출범한 이상, 한나라당의 정강정책 틀을 벗어날 수 없을 테고 따라서 아무리 국정쇄신방안을 논의하더라도 보수적 당론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 이 문제는 혁신위 내부에서도 민감한 안건으로 토론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논쟁이 벌어졌던 곳은 혁신위 국가비전분과. 국가비전분과는 7개 분과 가운데 선임분과에 해당하는 곳이다. “집으로 말하자면 천장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이상득 부위원장의 설명처럼, 기둥과 벽이 될 나머지 6개 분과를 아우르는 국가 전체의 비전과 전략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어떤 식의 국가운영 전략이 짜이느냐는 곧 한나라당의 향후 전략, 집권 이후 국가운영 방향을 가늠할 방향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는 분과다.
국가비전분과의 이런 위상탓에 분과모임 초기, 보수성향의 위원과 개혁성향의 위원 사이에 국가전략의 총론 방향설정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총재도 참석한 이 토론에서 개혁성향의 한 참석자가 “21세기에는 좌우편향을 극복하고 합리적으로 가자”고 제안하자 보수성향의 위원이 즉각 반발했다고 한다. 그는 “좌우편향을 극복하자는 주장은 모호하다. 우리 당의 다수가 신봉하는 보수이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거론하며 반박했다.
치열한 보혁(保革)논쟁
두 사람이 대립되는 의견을 내놓은 뒤 한동안 논쟁이 벌어졌다. 위원들의 논쟁을 말없이 지켜보던 이총재는 회의 말미에 총평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총재는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자는 게 혁신위의 과제”라고 전제한 뒤 “중요한 것은 미래지향성”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 혁신위의 한 인사는 “이총재는 우리 당이 수구 기득권 정당으로 몰리는 데 저항감을 갖고 있다. 보수세력이 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알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굳이 이총재 본인의 의견을 밝히지 않아도 될 자리에서 ‘미래지향성’을 강조해 보수의 목소리만으로는 안 된다는 구상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총재가 개혁지향세력의 손을 들어줬다는 이런 해석은 아직은 당내에서 소수설에 속한다. 혁신위 참가자들은 물론, 대부분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당내 보수정객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혁신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직접적으로 “우리 사회의 다수가 보수파 아닌가. 한나라당은 다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할 뿐”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혁신위는 이회창 총재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하고 지난 5월 초 공식 출범했다. 그리고 분과별로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10회에서 15회 정도 내부 토론 및 외부강사 초청 토론 행사를 가졌다. 지난 6월까지 분과별 의제를 설정하고 외부인사 초청회의를 마쳤으며 7월부터는 의제별로 토론과 내용 채우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7월3일에는 국가비전, 정치발전, 통일외교안보분과의 1차 보고회를, 7월6일에는 미래경쟁력, 민생복지, 교육발전, 문화예술 등 나머지 4개 분과의 1차 보고회를 각각 여의도 당사에서 이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이날 보고회를 마치고 혁신위는 8월 말까지 집권에 대비한 국정지표 수립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8월 말에 있을 2차 보고회까지 구체적인 분과별 혁신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며, 10월 말에는 분과별 보고서를 완성할 예정이다. 그리고 12월 말까지는 분과별 보고서를 총괄하는 혁신위 전체 보고서를 선보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혁신위는 내부 논의를 공론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대중과 함께 하는 공개행사를 열어 혁신위의 논의 결과를 확산해나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통일외교안보분과의 경우 분과위원 내부토론과는 별도로 ‘열린 통일광장’이라는 공개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7월13일 청주를 시작으로 27일 제주, 8월3일 창원, 31일 부산, 9월7일 광주 순으로 전국 10개 도시를 순회하는 이 행사는 철저하게 청중의 자유토론을 중심으로 운영해 일반 국민여론 수렴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분과별로 편차는 있지만 대략 이런 방식의 대중이벤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혁신위 활동 가운데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각 분과별 자문위원단 구성과 그들의 면면이다. 당초 혁신위는 이총재 직속 혁신위 자문단을 구성하고, 별도로 분과별 자문위원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자문위원단이 어떤 사람들로 채워지느냐는 혁신위의 성격과 관련,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서 이윤수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던 자문위원들의 출신지역과 학연 등도 관심사항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학자인 자문위원들이 평소 어떤 학문적 성과를 이룬 사람인지를 파악함으로써 혁신위가 내놓을 미래비전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문위원단의 면면은 곧 혁신위 전체의 색깔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혁신위는 이 대목에 관한 한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혁신위와 관련해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문위원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르러서는 손사래 치기에 바쁘다. “본인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혁신위 자문위원의 일부가 공개된 적은 있었다. 지난 5월15일 저녁 한나라당은 서울시내 모처에서 이총재 주재로 혁신위 자문위원단 회의를 열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19명의 전직 고위관료와 현직 교수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리고 초청장을 받은 인사 가운데 15명이 자문위원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한나라당이 초청장을 보낸 인사들은 남덕우 전국무총리, 김진현 문화일보 고문, 박세일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김숙희 전교육부장관, 김명호 전한국은행 총재, 김경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안병영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김영작 국민대 정치학과 교수, 김경원 전주미대사, 김기환 세종연구소장, 송복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이승윤 전경제부총리, 한승주 고려대 정외과 교수, 최재삼 전해양경찰청장, 이상우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 손봉호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정정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 박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자문위원단 구성 과정에 이회창 총재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한두 차례 이상 개별적으로 만나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는 10여 차례나 따로 만나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혁신위에 대한 이총재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으냐”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초청자 명단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언론의 관심이 쏠리자 이들 대부분은 “나는 혁신위와 관계가 없다”거나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혁신위와의 관계를 극구 부인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당사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초청장을 발송한 한나라당측에서도 명단 확인을 거부했다.
이상득 부위원장은 “이런 부작용이 발생해 5월15일 이후 자문위원단을 해체하고 대신 분과별로 필요에 따라 자문위원을 선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부위원장은 “분과 자문위원 선임 방식도 분과위원장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공식 자문위원으로 하든 아니면 비공식적으로 개별적 자문을 받든 분과위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부위원장은 “공식적으로 자문위원 위촉장을 수여한 외부인사는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다. 대신 문화예술분과는 외부인사가 자문위원이 아니라 아예 혁신위 멤버로 회의 때마다 참석하는가 하면, 어떤 분과는 회의참석은 하지 않는 대신 분과 위원의 개별적 질문에 답하는 간접자문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제 문제를 주로 다루는 미래경쟁력분과의 경우에는 주로 경제학과 교수들이 자문위원인데 이명박 분과위원장은 “교수들 가운데는 ‘한나라당사에서 토론회를 하면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부득이하게 우리 분과만 당사 밖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고는 있지만 혁신위는 분과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인사들로부터 지혜를 빌려가며 토론모임을 운영해가고 있다. 이처럼 혁신위의 자문에 응하는 인사는 대략 200명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분과에서는 한나라당의 자문에 응할 것 같지 않던 개혁성향의 학자들을 초청, 토론을 갖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소장 정치학자인 P교수와 DJ정권 고위인사와 교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C교수, 그리고 또 다른 P교수 등의 이름이 혁신위 주변에서 거론되고 있다.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라”
혁신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의 진행과정을 이구동성으로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런 성과의 배경에는 이회창 총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명박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은 이총재의 역할과 관련, 다음의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6월 말 미래경쟁력분과는 안산공단을 방문했다. 아침 일찍 당사를 출발해 현장에 도착, 그곳 사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점심식사를 함께한 뒤 올라오는 일정이었는데 이총재도 동행했다고 한다.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총재가 이명박 위원장을 불렀다. 그리고는 “행사를 잘 치렀다. 그러나 분과위원이 아닌 당직자들과 기자들이 너무 많이 따라와 마치 무슨 이벤트 같은데 앞으로는 조용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서 이총재는 상기된 표정으로 그날 안산에서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를 이위원장에게 전했는데 그 사장은 “야당 총재와 만나 얘기를 나눴다고 뭐 당장 기업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실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말이나마 시원하게 해서 만족스럽다”고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이명박 위원장은 “이총재는 경제학 교수들을 초청한 분과의 토론회 때도 꼭 참석해 시종일관 진지하게 메모를 해가며 강의를 듣고 있다. 총재가 그렇게 하니 다른 위원들이 진지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의 자랑이 아니더라도 7개 분과의 각종 모임시 분과위원 평균 출석률은 80%를 넘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혁신위는 그 운영과정에서부터 과거 야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율과 진지함이 넘쳐난다는 게 혁신위 관계자들의 한 목소리다.
아이디어들은 꽤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분과별 회의 때마다 이총재가 “상식수준의 발언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는 주문을 한 뒤로는 다소 황당한 주장들도 여과없이 토론 거리로 올라온다고 한다.
5∼10년 내에 실현할 수 있는 안건 위주로 토론하다 보니 비교적 실현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 중심으로 토론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DJ정권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만 그중 관심을 끄는 분야는 역시 통일외교안보분과다. 알려진 대로 현 정부는 대북관계 개선에 정권차원의 총력을 기울여왔다.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남북한 관계 개선에서 통일의 돌파구를 열고자 했다.
그러나 충분히 예측할 만한 사항이지만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통일정책은 큰 틀에서 변화를 보일 공산이 크다. 이런 면에서 혁신위 통일외교안보분과 소속 위원들에게도 그 부담감이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고 한다.
구본태(具本泰) 통일외교안보분과 부위원장은 과거 통일원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초안작성에 참여했던 한나라당의 대표적 통일전문가. 원외지구당 위원장이지만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2선급 분과 부위원장에 전격 발탁된 인물이다. 그는 “분과 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통일이 우리 국가전략의 1순위냐 하는 점부터 의문을 갖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부위원장은 “5∼10년 내 통일·외교환경을 진단해보면 도전적 요인이 많다. 세계화와 블록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계질서 구축작업이 가속화하고 있고, 2005년쯤이면 큰 틀이 완성되리라고 본다”며 “이 시기를 잘못 대처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도 못 하고 후진국으로 끝날지도 모를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전제에 근거해 구부위원장은 통일외교안보분과의 고민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식량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당분간 없어 보입니다. 이런 식량사정 탓에 북한이 위험국, 테러국 성격에서 못 벗어날 경우 이는 고스란히 우리의 부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이런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환경도 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제 정치질서가 형성중인데, 미국의 팍스아메리카 정책에서 가상 적은 중국입니다. 그러다 보니 견제세력으로서 일본의 위치가 미국으로서는 더욱 중요해지겠죠.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국제적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곧 한반도의 성격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반도 지위변경에 중국이 불안을 느끼고 있고 일본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한반도 통일은 주변국에 불안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통일정책과 외교안보정책 간의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과거와 같이 남북한 당사자 사이의 관계개선에 주력하는 통일 지상주의 정책으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크며 좀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등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구부위원장은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통일에 주변국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서독은 정치인 누구도 통일이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서독정치인들은 세계가 블록화돼가는 현실을 들어 ‘유럽은 하나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유럽이 하나가 되는 마당에 동서독의 통일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도 이런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경제분야를 주로 다루는 미래경쟁력분과는 한때 ‘작고 강한 국가론’, 이른바 ‘강소국(强小國)론’을 주제로 외부강사 초청 세미나를 했던 곳. 그런데 강소국론을 놓고도 분과 내부에서 활발한 토론이 전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소국가로 거론되는 아일랜드나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은 인구가 고작 수백만명, 많아야 1500만명 정도인데 남북한을 합쳐 인구가 700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가 강소국에 만족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는 것.
“정말 공부가 많이 됩니다”
아무튼 분과위마다 활발한 논쟁이 일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상득 부위원장은 “공부가 많이 된다. 과거 정책위 의장을 지내면서 많은 토론을 해봤지만 지금처럼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모임은 보지 못했다”고 자랑했다.
혁신위가 활발히 움직이면서 파급효과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혁신위 활동에 자극받아 한나라당의 공조직들도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총재의 한 측근인사는 “지금보다 더 좋은 시절은 없는 것 같다. 당조직도 ‘팽팽’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눈치만 보던 중진급 의원들도 제 돈을 들여 별도 사무실을 열고는 뭔가 일을 맡아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모두가 혁신위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이 활력을 찾음으로써 이총재의 리더십도 덩달아 강화되고 있다. 이총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게 당을 장악하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 올 초만 해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비주류의 목소리도 최근 들어서는 잠잠해졌다. 절묘하게 이총재의 약점을 공략해오던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은 지 오래됐다.
비주류의 리더였던 김덕룡 의원도 최근 들어 내부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김의원 계보로 분류되던 이른바 ‘DR계’ 인사들은 아예 혁신위 요직에 자리잡고 있다. 구본태 통일외교안보분과 부위원장은 김의원의 비서실장으로 알려진 인물. 구부위원장은 “DR의 목표는 한나라당의 집권이다. 따라서 우리 계보인사들이 당직을 맡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상섭 안영근 김영춘 원희룡 의원 등 평소 당내 보수세력과 갈등관계에 있어 한때 이총재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던 의원들 역시 혁신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혁신위의 등장 이후 당내에서 이총재의 통솔력은 한층 강화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총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대여관계에서 느긋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여투쟁은 하되 국회를 공전시켜서는 안 된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하지 말라”는 등 최근 이총재의 ‘느긋한’ 정국대처방식 역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결과물이다.
혁신위의 한 관계자는 “너무 잘되다 보니까 많은 힘이 혁신위에 몰려 있다는 역기능도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당내문제 개혁에만 치중했던 과거 ‘뉴밀레니엄위원회’보다 훨씬 잘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혁신위 참석자들 사이에 한나라당과 이총재 집권 이후 ‘롤’과 연관, 어떤 기대감을 갖고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당내에서도 혁신위가 일종의 ‘집권준비위원회’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고, 혁신위에서 역량을 인정받으면 이총재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중용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이 당내인사들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혁신위가 구성될 때만 해도 혁신위원은 당내 유휴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조직으로 오인됐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혁신위 멤버에도 못 든 사람은 바보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혁신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뒤늦게 혁신위 참여를 신청하는 사람들로 인해 6월 말까지 혁신위원에 변동이 생기는 등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고 말했다.
혁신위 운영과정에서도 의욕이 지나친 일부 위원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회 활동보다 혁신위 모임을 우선하다 보니 본회의나 상임위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혁신위 준비에만 골몰하는 의원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혁신위의 한 고위인사는 “국회 개회시간 이전에 토론을 끝내려 하지만 가끔 토론이 길어지다 보면 개회시간이 지나서까지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렇지만 가급적 혁신위 분과모임을 아침 7시 반에 시작해 9시 반 이전에는 끝내 통상 10시부터 시작하는 국회일정에 차질이 없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의원이 혁신위 멤버인 보좌진들의 경우 국회가 문을 닫은 7월 들어서도 혁신위 활동 자료를 확보하느라 휴가도 못 가 입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혁신위에 참여하는 의원뿐 아니라 그 주위사람들까지 덩달아 바쁘다는 얘기다.
‘공개된 모임’이라고 자처하던 초기 주장과 달리 신분노출을 꺼리는 자문교수들과 여당의 공세를 의식해 폐쇄적으로 모임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점도 옥에 티라는 지적이다. 이래서야 과거 정권의 집권준비팀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언론과 당내외 비난도 만만치 않다.
한편 한나라당의 활발한 움직임에 대해 민주당 측은 겉으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 집단에서 무슨 아이디어가 나오겠나. 일과성 정치쇼일 가능성이 크다”고 폄하했다.
그러나 혁신위가 내놓을 결과물과 상관없이 혁신위 탓에 한나라당 분위기가 바뀌고 있고 이총재의 리더십이 강화되고 있다는 데는 전체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불평과 부러움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이런저런 이유로 별로 하는 일 없는 우리와 비교하면 한나라당의 요란한 움직임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한나라당은 어느 역대 정당도 시도한 적이 없는 당내 집권전략수립팀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해가고 있다. 치열한 토론과 신선한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토론 분위기만으로도 이 실험은 성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총재의 일석사조(一石四鳥) 전략
그러나 이총재에게 혁신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치있는 시도이고 도전이다. 이총재는 혁신위를 통해 당내 조직과 인사들 사이에 충성경쟁을 벌이게 하는 한편, 교묘하게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또 대국민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개선한 점도 혁신위가 가져다준 선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김영삼 김대중 두 전현직 대통령이 거액의 자금과 시간을 들여,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가면서 만들었던 집권준비팀, 즉 YS정권의 ‘동숭동팀’과 DJ정권의 ‘중경회’와는 달리 당내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집권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점 또한 이회창 총재가 내심 흐뭇해할 대목이다.
그리고 이총재 개인으로서는 시간에 쫓겨 자칫 게을리하기 쉬운 대권주자로서 ‘개인교습’도 혁신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함으로써 또 다른 보너스도 챙기고 있다. 한마디로 이총재에게 국가혁신위는 일석사조(一石四鳥)의 효과를 주는 정치이벤트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혁신위로 대표되는 이회창 총재의 집권구상은 어떤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될까. ‘중단 없는 개혁’을 주장해온 DJ정권과는 어떻게 다른 국가전략을 수립할까.
이와 관련, 혁신위의 한 관계자는 “국가혁신위는 ‘묵’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둥근틀을 쓰느냐 네모난 틀을 쓰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묵이 나오듯, 어떤 틀의 국가전략에 합의가 이뤄지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은 지금 한창 ‘도토리를 갈고 원료를 배합하는’ 묵 제조의 기초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