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민군 작전부국장을 지냈다는 이춘선씨가 중국으로 탈출해 북한의 핵물질 생산 기지는 금창리에서 30km 떨어진 천마산 지하터널 속에 있다고 진술했다. 탈북 후 중국 공안당국에 검거된 이씨는 이러한 진술을 한 후 북한으로 송환되었다고 한다. 국내 한 기관은 인민군 장성 출신의 탈북자인 이씨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대신 중국 공안 당국이 작성한 이씨 진술에 관한 보고서를 입수했다. 충격적인 북한의 핵물질 생산 기지 건설 과정을 상세히 공개한다.
1999년 미국이 1차로 금창리 시설을 조사한 후 탈북한 것으로 보이는 이춘선씨는 중국 공안당국에 검거돼 조사 받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시설은 금창리가 아니라 금창리에서 30km쯤 떨어진 천마산 지하에 있다. 금창리 지하시설은 천마산 지하에 있는 핵물질 추출 공장에서 발생한 배기 가스를 빼내는 곳이다. 그런데 북한은 배기가스를 잘못 처리해, 금창리 지하터널 앞에 있는 평야지대로 대량 누설하는 사고를 겪었다. 그로 인해 금창리 일대의 수목이 노랗게 말라죽어 미국은 금창리 지하시설을 핵 의혹 시설로 단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미국 CIA에도 정보제공
이씨를 조사한 중국 공안은 이씨의 진술을 토대로 상급 기관에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국내 한 기관이 이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를 입수한 기관에 따르면 이씨는 인민군 장성이 틀림없고, 중국 역시 이씨의 진술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 기관은 이씨를 한국으로 빼내기 위한 공작을 준비했으나 공작금을 마련하기도 전에, 중국 공안이 이씨를 북한으로 송환했다고 한다. 북한으로 송환된 후 이씨는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를 데려오는 데 실패한 이 기관은 대신 중국 공안당국이 중국어로 작성한 보고서 사본을 입수했다.
‘신동아’는 이 보고서의 존재를 확인했으나 사진 촬영이나 복사본을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대신 보고서 번역본을 입수했다. 이 기관은 보고서 사본을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 CIA 주재원에게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국정원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대북 정책이 잘못됐고 또 국정원의 정보가 북한으로 새고 있는 것으로 판단돼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 공안이 작성한 이씨 조서를 읽어보면 천마산 지하 시설은 원자력 발전소가 아니라 우라늄을 정련해 정광을 만드는 시설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핵연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우라늄정광을 수입하고 있으나, 북한은 직접 우라늄을 채광해 정광→변환→농축→성형가공을 거쳐 핵연료를 만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원자력연료(주)가 핵연료를 제작하는데, 한국원자력연료(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있다. 따라서 천마산 지하시설이 우라늄 정광 시설이라면 당연히 IAEA의 사찰을 받아야 한다.
지난 6월6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제네바합의의 ‘이행 개선(im- proved implementation)’을 요구했다. “제네바 합의의 이행 개선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대해 에번스 리비어 주한 미 대리대사는 “제네바 합의는 KEDO가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는 것만 명기돼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은 그에 상응해 IAEA의 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행의 개선이란 제네바 합의대로 북한이 IAEA의 일반 및 특별사찰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춘선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IAEA는 천마산 지하기지에 대해서도 사찰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씨의 진술은 예상 외로 치밀했다. 그는 수치를 적어가며 천마산 지하시설의 구조와 크기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위험한 작업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정치범들이 담당한다고 적었다. 이씨는 천마산 핵 시설 외에 함경북도 요덕에 있는 북한군의 화학무기 제조 공장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혔다.
‘신동아’는 이춘선씨를 조사한 중국 공안당국이 작성한 보고서의 번역본 전문을 게재한다. 번역본의 우리말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 원문의 뜻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을 다듬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번역본 전문을 게재하기에 앞서, 미국이 금창리를 핵 의혹 시설로 지목하게 된 과정과 1999년에 실시한 제1차 금창리 조사, 2000년 5월에 실시한 제2차 금창리 조사를 간략히 소개한다.
미국이 북한의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에 있는 지하시설을 핵 시설로 의심하게 된 것은, 미국 첩보위성이 찍어온 사진 때문이었다.
미국의 1차 조사가 있기 전에 나온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국방당국은 금창리 부근에서 2개의 댐과 4개의 터널, 그리고 물을 끌어오는 데 사용되는 파이프라인을 발견했다. 이러한 시설들은 크게 굽이치는 강을 끼고 4km 사방에 모여 있었다. 여기에는 노동자 숙사와 경비부대 주둔지 등 공사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주거를 위한 시설도 다수 발견되었다.
미국 첩보위성은 4개 터널이 금창리, 금창리 동남쪽인 평북 구성군 하갑지역, 구성군, 그리고 태천군에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미국은 4개 터널 중에서 금창리 터널을 핵의혹 시설로 지목한 것이다(注: 4개 터널은 미국이 인공위성을 통해 찾아내고 그들이 갖고 있는 북한 지도를 통해 분류한 것이라, 이춘선씨처럼 북한에 살았던 사람이 밝힌 터널 위치명과 다를 수 있다. 이춘선씨가 밝힌 터널이 미국 첩보위성이 찾아낸 터널 중 어느 것과 일치하는지, 아니면 미국이 찾아내지 못한 별개의 터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국방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1989년 인공 수로와 지하터널 굴착 공사를 시작했다(그러나 이춘선씨는 천마산 지하시설에 대한 굴착 공사는 83년부터 시작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미 국방 당국은 이 공사에 참여한 군부대가 바로 영변에 있는 북한의 핵시설(흑연 감속로) 건설에 참여한 바로 그 부대라는 점에 주목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미국 국방당국은 지하 터널을 뚫기 위해 파낸 토사가 무려 38만t에 이른다며 이렇게 많은 토사를 꺼낸 것으로 봐서는 거대한 공장이 지하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금창리 부근에 지어진 댐은 원자로에 쓰일 냉각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고, 파이프라인은 원자로에 쓰일 냉각수를 저수지로부터 공급받기 위해 만든 것으로 분석했다.
금창리 실사에서는 아무것도 못찾아
미국은 1997년 북한이 이곳에 기폭장치 실험장을 건설해 1997년부터 1998년 사이 세 차례 기폭실험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중첩되자 미국 국방당국은 북한이 38만t의 토사를 긁어냈다면 이는 지하에 20만㎾급 원자력 발전소와 재처리 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짓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뉴욕에서 금창리 사찰을 위한 미-북 협상이 시작되고, 1999년 5월20일부터 24일까지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담당 특사를 단장으로 한 14명의 조사단이 북한에 들어갔다.
조사를 마치고 미국은 “북한이 1994년 핵 동결을 결의한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고 결론 지을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금창리 현장조사 보고서의 요지는 네 가지다.
첫째,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원자로나 핵 재처리공장이 없었으며 건설중이지도 않았다. 둘째, 지하시설의 규모와 배치형태로 봐서는 북한이 영변에 건설한 흑연감속 원자로처럼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원자로를 설치하는 게 부적합하다. 핵 재처리공장을 짓기에도 역시 부적합하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지하시설이기 때문에, 상당한(substantial) 개조를 한다면 그런 시설을 지원하는 기능은 할 수 있다. 넷째, 북한측이 이 시설의 어느 부분도 감추려고 노력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금창리 실사를 앞두고 미국과 협상한 북한은 사찰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3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요구했다. 미국은 금창리를 사찰하는 대가로 3억 달러에 상당하는 식량60만t의 지원을 약속했었다. 1차 사찰이 이뤄진후 미국은 약속대로 세계식량기구(WFP) 등을 통해 60만t의 식량을 지원했다. 북한은 지금도 금창리의 빈 터널을 보여주는 대가로 3억달러를 벌었다고 자랑한다.
1차 조사에서 아무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미국은 이듬해 2차 조사단을 보낸다. 12명으로 구성된 미국의 2차 조사단은 2000년 5월23일 북한에 들어가 25일부터 금창리 지하시설을 재조사했다. 그러나 2차 조사단 또한 “지하시설의 상태가 1년 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고 발표하고 27일 평양에서 철수했다. 미 국무부는 그해 5월30일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은 방대한 터널단지로,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조사단의 활동에 대한 신중한 기술분석이 이뤄질 것이며 그후 추가적인 판단과 보고가 가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필립 리커 국무부 대변인은 이 성명에서 금창리 지하시설의 용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측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불특정 목적의 시설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국가안보로 지정된 용도를 상업적인 시설로 이용할 수도 있다”며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1999년과 2000년에 있었던 금창리에 대한 두 차례 현장조사에서 미국은 핵의혹 시설을 찾아내는 데 실패한 것이다.
북조선 평안북도 천마산 핵 생산기 지에 관한 보고 /북조선 불법 월경자 이춘선(전 북조선 인민무력부 작전국 부국장) 제공
평안북도 대관군 천마산에 있는 북한의 핵 생산기지의 대외 명칭은 ‘천마산 발전소’다.
천마산 발전소는 평안북도 대관군 대관읍에서 서남쪽으로 40km, 금창리에서 서북으로 30km, 청수리에서 15km, 수원리에서 35km쯤 떨어진 천마산맥 천마봉 지하에 있다. 이 곳을 중심으로 주변 10km 이내에는 사람이 전혀 살고 있지 않다. 천마봉은 해발고도가 1116m, 지상고도가 780m인 산인데 핵 생산기지는 이 봉우리 지하 터널 속에 있다.
애초 북한은 1983년부터 이곳에 핵 생산기지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년 늦은 1984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는 인민무력부 공병국 산하 제2사단이 동원됐다. 이때 내건 공사목적은 천마산을 관통하는 수로를 뚫어 발전소를 짓는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핵 물질을 생산하기 위한 지하터널 공사였다. 지하터널은 1986년 말 완공되었고 1987년 초부터 기술자들이 들어와 관련 설비를 설치했다. 생산에 들어간 것은 1989년 말부터였다.
1)핵물질 생산기지 조직도
천마산 발전소에는 소장 한 명과 각각 행정·서무·기술을 담당하는 부소장이 3명 있다. 그리고 기술자들을 지휘하는 총기술감독이 있으며, 그 밑에 7개 과가 있다. 소장과 총기술감독은 인민군 대좌이고, 행정과 서무를 담당하는 부소장은 중좌, 기술 부소장은 소좌다. 7개 과는 다음과 같다.
①생산과: 핵물질 생산을 담당한다.
②기술과: 핵광석을 기술적으로 감정하고 함유량을 분석한다.
③계획과: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상급기관에서 하달한 생산 임무를 수행한다.
④노무과: 기술자 노무자들의 업무를 분배한다.
⑤노동안전과: 인원과 시설에 대한 안전 문제를 감독한다.
⑥기자재과: 핵 물질 생산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의 유지 보수와 구매 업무를 담당한다
⑦서무과: 종사자들과 그 가족에 대한 서무를 담당한다.
천마산 발전소에 근무하는 인원은 자녀를 둔 40세 이상의 현역 군인으로만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 군복을 입지 않는다. 이들의 가족은 천마산에서 30km쯤 떨어진 대관군 금창리에서 외부 세계와 격리된 채 집단거주한다. 발전소 기술자 35명과 기타 인력은 이곳에서 천마산 발전소까지 매일 통근버스로 출퇴근 한다.
관리직 인원은 100여명 전후다. 매일 16명의 기술자가 지하터널 안에서 근무하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종신 감금형을 선고받은 정치범들이 담당한다. 천마산 발전소에서 일하는 정치범이 약 400명에 이른다.
핵 광석은 평안남도 성천군과 황해북도 서흥군에서 채굴한다. 광석은 인민무력부 운송국 예하 1개 연대에 의해 이곳으로 운송된다. 이 연대는 구 소련제 5t 화물트럭 50여 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30여 대가 핵광석을 운송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천마산 발전소 외곽에는 두 개의 공개된 초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출입자들의 통행증을 검사한다. 인민무력부에서 발행한 특별통행증이 있어야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
천마산 발전소에서의 모든 작업은 지하터널 안에서 진행된다. 지하터널 입구는 남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동쪽 방향(동남동 방향)으로 나 있고, 이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폭 7m 정도, 높이 6m쯤 되는 아치형의 터널이 이어진다. 터널 입구는 4면 전체가 콘크리트로 구축돼 있는데 입구에서 불과 3m 떨어진 지점에 큰 철문이 설치돼 있다.
이 철문을 통과하면 조명등 외에는 아무 시설이 없는 지하터널이 2.5km 정도 이어진다. 이렇게 2.5km 정도 들어가면 터널이 오른쪽으로 90도 정도 틀어지면서 둘째 철문이 나온다. 이 철문을 통과해 다시 1km 정도 들어가면 셋째 철문이 있다. 셋째 철문을 통과해야 주터널로 들어갈 수 있다.
주터널은 하부 폭이 15m 정도고, 높이는 6m 정도인 아치 구조다. 주터널 내부에는 5mm 두께의 알루미늄 판이 부설돼 있다. 주터널의 전체 길이는 6km 정도이며 주터널 우측에는 폭 3m 정도의 물길이 있다. 물길은 셋째 철문에서 5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수원지로 취수구를 뽑아내 만들어진 것이다.
셋째 철문을 통과해 600m 정도 되는 곳 우측에 10여개의 지하실이 배치돼 있다. 이곳이 바로 업무실과 생산공장이다. 10개의 지하실을 정리하면 이렇다.
①업무실: 기술자와 작업자가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호(防護) 작업복을 갈아입는 탈의실 겸 휴게실이다.
②1호 광석장: 핵물질이 함유된 광석을 물 속에 넣어 선별하는 작업장으로 50m×60m=3000m2의 면적을 갖고 있다.
③2호 광석장: 1호 광석장에서 선별된 광석을 다시 물 속에서 정밀 선별하는 곳. 1호 광석장과 면적이 같다.
④건조실: 광석 선별은 물 속에서 하므로, 선별한 광석을 건조할 필요가 있다. 선별한 광석을 건조하는 곳이다. 20m×20m=400㎡의 면적을 갖고 있고 높이는 약 20m다.
⑤1호 용융실: 핵 광석을 용융시켜 우라늄을 제련하는 작업장. 20m×20m=400㎡의 면적에 높이는 약 20m다. 사방 벽면에 20mm 두께의 알루미늄 판이 부설돼 있다.
⑥2호 용융실: 1호 용융실과 같다.
⑦3호 용융실: 1호 용융실과 같다.
⑧4호 용융실: 1호 용융실과 같다.
⑨포장실: 제련한 우라늄을 밀폐용기에 넣어 포장하는 곳. 20m×20m=400㎡의 면적으로 높이는 약 4m다.
⑩제품창고: 포장까지 완료된 제품을 보관하는 곳이다. 30m×20m=600㎡의 면적에 높이는 4m 가량 되는 공간이다. 이곳도 사방 벽면에 20mm 두께의 알루미늄 판이 부설돼 있다.
제품창고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100여m 쯤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또 하나의 터널이 뚫려 있다. 이 터널로 20m쯤 들어가면 폭 50m, 길이 100m, 높이 5m의 공간에 사방 벽이 5mm 두께의 알루미늄 판으로 둘러싸인 핵폐기물 처분장이 나온다. 1호에서부터 4호까지의 용융실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모두 이곳으로 이송돼 분해·보관되고 일정한 수량에 도달하면 미사일 생산지로 이송해 분해 처리한다.
주터널 끝지점에는 200m 길이의 핵물질 제품 출구가 있다. 핵물질 제품을 빼내는 출구는 천마봉 우측에 만들어진 직승기(헬기) 이착륙장을 향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핵물질은 직승기에 실려 평안남도 안주시 교창도 계곡(안주시 남칠리와 문덕군 입석리 사이)에 있는 핵물질 지하 저장고로 옮겨져 보관된다.
이 지하터널에 있는 전력 케이블과 조명선로는 모두 지중선(地中線)이다. 또 업무실(①) 출입문 근처 터널 윗 부분에는 직경이 1.5m쯤 되는 환풍구가 설치돼 있다. 이 환풍구는 산 정상까지 뚫려 있다. 주 터널 끝 지점에도 유사한 환풍구가 설치돼 있다.
주터널 중간 지점에는 길이 3m, 폭 1.5m 정도 되는 큰 배기구가 있다. 이 배기구에는 2중의 여과장치가 설치돼 있는데 여과장치의 두께는 1.5m다. 여과장치는 자갈과 여과포로 구성돼 있다. 배기구의 대형 환풍기는 매년 정기적으로 교체한다.
3)미국이 금창리를 조사한 원인
이춘선의 진술에 의하면 금창리는 천마봉에서 30km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데, 금창리의 지하터널은 천마봉 지하터널의 배기구 방향에 있다고 한다. 지하터널의 밀폐 상태와 기술 처리 미비로 인해, 핵물질을 함유한 소량의 기체가 이쪽에서 누설되었고, 그로 인해 금창리 일대의 넓은 평야에 있는 수목이 노랗게 말라죽었다.
미국의 첩보 위성은 이를 발견하고 금창리에 핵시설이 있을 것라고 단정, 실사에 착수했으나, 천마산 지하에 건설된 핵물질 생산기지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상 보고를 마친다.
아래와 같이 북조선에서 불법 월경한 이춘선이 제공한 북한 군용화학 생산기지에 대한 상황을 보고한다.
이춘선은 함경북도 은덕군에 있는 화학공장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이 공장의 대외 명칭은 ‘7·7연합기업소’다. 7·7연합기업소에는 101·102·103·104의 네 개 공장이 있는데, 이중 102 공장이 화학무기를 만드는 곳이다. 102공장은 함경북도 은덕군 은덕읍에서 6km쯤 떨어진 송림골에 있는데, 이 공장은 도로에서 3km쯤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해 있다.
이춘선씨는 이 공장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102공장 외곽은 2m 간격을 둔 두 겹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출입문은 한개뿐이다. 출입문과 공장 주위를 둘러싼 철조망 주변에서는 인민군 1개 경비대대가 24시간 경비를 선다.
이 공장은 1988년 11월 인민무력부 작전국 부국장이던 김만연 소장의 지휘하에 건설됐다. 이 공장에 들어온 장비는 소련 모스크바 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를 취득한 이영희(60세 가량의 여성)씨의 지도로 설치됐다. 이영희는 북한의 저명 인사 이성일의 딸로 알려져 있다.
102호 공장 직원수는 200여명인데, 이들은 일반 노동자와 관리자·기술자로 구분된다. 일반 노동자는 120여 명의 정치범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에 노출돼 있다. 일반 노동자로 일하는 정치범들은 공장 기지 내에 철조망을 친 숙소에서 생활한다. 이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숙소나 공장 밖으로 외출할 때는 반드시 경비대와 관리자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102호 공장을 관리하는 관리자는 50여명이 군인인데, 최상급자는 55세 가량된 이영백 소좌다.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를 담당하는 10여명의 기술자가 이 공장에 근무한다. 관리자와 기술자 그리고 공장 경비를 담당하는 경비대 간부 그리고 이들의 가족은 이 공장에서 3km쯤 떨어져 있는 사택에서 생활한다.
사택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매일 1대의 버스를 타고 통근한다. 관리자와 기술자 그리고 경비대 간부들에게는 매일 계란 1개, 맥주 300g, 쌀 800g이 배급되었으나, 지금은 식량사정이 극도로 나빠져 이렇게까지는 주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
이 공장에서는 NO₂(이산화질소: 注 이춘선씨는 조서에 NO₂로 표기했다. 다른 화학물도 마찬가지였다)와 NH₃(암모니아)가 흐르는 수송관을 설치해 놓고 있다. 이곳에서는 NO₂를 SO₂(이산화황)에 주입하여 가열함으로써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을 Hg(수은) 연소로에 넣어 혼합물을 만든다(NO₂+SO₂+Hg).
이렇게 만들어진 혼합물은 밀폐된 2개의 탱크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가압처리한 후 유리병에 넣어진다. 이 유리병은 직승기(헬기)에 실려 자강도 강계시에 있는 강계시 뜨락또르(경운기)공장으로 옮겨진다.
이 뜨락또르공장은 위장 명칭이고 실제 기능과 명칭은 포탄을 생산하는 108호 공장이다. 108호 공장에서는 무게 45.8kg, 직경 251mm의 포탄을 생산하는데, 102호 공장에서 생산된 혼합물은 이 포탄에 장전됨으로써 화학탄이 만들어진다.
(注: 강계 뜨락또르 공장은 1945년 10월 평양에서 문을 연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군수공장이다. 북한 군수품의 40%정도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또 108호 공장처럼 1로 시작되는 공장은 인민무력성이 관장하는 공장이다.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군수공장은 6××식으로 6으로 시작한다.)
북한은 이렇게 생산한 화학탄을 주로 425·815·806 훈련소와 공군의 한 개 폭격기 사단에 보낸다(注: 425 훈련소를 비롯한 세 개의 훈련소는 대표적인 북한 육군의 기동군단이다). 나머지 부대에는 각 50발씩의 화학탄을 공급해 실전배치해 놓고 있다. 이 화학탄이 터질 경우 가스를 마신 사람은 기관지가 타들어가 사망한다고 한다.
1994년 인민무력부는 기구 개편을 하면서 102공장을 작전국 소속에서 기술장비국으로 이관했다. 그리고 그해 말 북한의 방위산업을 담당하는 조선로동당 제2경제위원회로 다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