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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의 그늘, 무너지는 대북공작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햇볕정책의 그늘, 무너지는 대북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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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일련의 정세속에서 그 동안 심혈을 다해 중국에 구축해온 대북 공작망을 철수하는 최악의 사태가 초래됐다. 남북 대치가 엄연한 현실인 이상, 국정원이 구축한 대북 공작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정원이 중국에 구축한 대북공작망은 1999년 5월27일 대한항공 선양(瀋陽) 지점장 원용수(元容秀·38)씨 연행을 계기로 철수했다. 원씨는 1989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김포국제공항 여객운송지점에서 일하다 92년 퇴사했다. 그리고 퇴사 6년 만인 1998년, 재입사해 심양지사장으로 발령 받았다. 대한항공을 들락거린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원씨는 대한항공 직원으로 위장한 국정원의 블랙요원이었다(원씨 사건은 1999년 6월9일 몇몇 언론에 간단히 소개된 바 있다).

원씨는 동북 3성 일대의 탈북자 문제를 담당했는데, 국정원과 비슷한 중국의 정보기관 ‘국가안전부’에 노출돼 간첩죄 혐의로 조사받게 됐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원씨를 연행한 지 11일째인 6월7일 풀어주었다. 풀려난 원씨는 한국으로 들어와 대한항공에 사직서를 내고 종적을 감추었다. 한 소식통의 말이다.

“북한은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원씨를 눈엣가시로 여겼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 정보기관에 대해 계속해서 왜 국정원의 공작을 허용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을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중국과 우호 관계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그에 대한 결과가 원지점장 검거였다. 북한의 요구에 부응한 중국은 원지점장 석방 조건으로 중국에 설치된 국정원의 대북 공작망 철수를 요구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 요구를 순순히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원지점장은 기소되지 않고 석방됐으나 우리는 대북 공작망을 철수해야 했다.”

소식통은 “여기서 우리는 크게 판단 미스를 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요구대로 대북 공작망을 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북중관계가 날개를 단 듯이 회복되었다. 2000년 3월5일 김정일 위원장이 극히 이례적으로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한 것이나, 2000년 4월5일 북한 고려항공이 평양-베이징에 이은 두 번째 북중 정기노선인 평양-선양 노선을 개설한 것, 그리고 2001년 1월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 이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 시기 우리가 얻어낸 것은 2000년 4월8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전격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원지점장 석방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는 남북 관계의 개선 속도가 너무 빨라, 중국에 설치한 대북 공작망의 철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김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남북관계를 교착시키고 있다. 한국이 중국에 있는 대북공작망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추진한 남북 관계가 꼬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설치됐던 대북공작망의 철수는 혁혁한 전과를 쌓아온 최대의 공작망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이 조직이 거둔 대표적인 성과 중의 하나는 지난 5월1일 도미니카 공화국 여권을 들고 일본의 나리타(成田) 공항으로 입국하려다 검거된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 김정남(金正男)의 정체를 샅샅이 파악한 일이다.

대북공작망의 활약상

김정남이 일본에 검거됐을 때 한국 언론은 ‘김정남의 정체를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미국의 CIA일 것이다’ ‘미국의 CIA가 첩보를 흘려줘 일본의 출입국관리국이 김정남을 검거할 수 있었다’는 등의 추측보도를 쏟아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들은 “소설이 너무 심하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정남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국정원이었다.

1994년 안기부 공작팀은 베이징 시내 한 호텔에서 김정남과 그의 부인 신정희를 비밀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 안기부 공작팀의 움직임이 중국 공안 외사 당국에 포착되었다. 안기부 공작팀이 김정남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하자, 중국 공안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으면 어떻게 하느냐. 사진 배경을 보면 베이징에서 찍었다는 사실이 금방 밝혀진다. 그렇게 되면 중조(中朝) 관계가 어려워진다. 자제해달라”며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안기부는 만 23세의 성인 김정남의 사진을 충분히 촬영해, 김정남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진 판독만으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때까지 미국의 CIA는 김정남 사진을 갖고 있지 못했다. 안기부는 협조 차원에서 김정남 사진 일부를 CIA에 넘겨주었다. 안기부 공작팀은 김정남을 촬영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 반경과 그가 사용하는 위조여권도 거의 완벽하게 파악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검거될 때 김정남은 ‘팡 시옹(PANG XIONG)’이란 이름이 기재된 도미니카 여권을 갖고 있었다. 안기부는 이 여권을 포함해 김정남이 사용하는 10여 개 가명 여권도 일찌감치 파악해 놓고 있었다(따라서 김정남이 위조 여권을 갖고 제주도를 다녀갔다는 소문은 신빙성이 약하다. 국정원이 묵인하지 않는 한 김정남의 제주 밀입국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소식통은 “1994년의 김정남과 2001년의 김정남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부인 신정희는 7년 사이에 상당히 살이 쪘다”며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CIA가 안기부보다 대북정보가 많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는 안기부가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되었다. 한중 수교를 계기로 안기부가 중국에 대북공작망을 구축한 것이 계기였다. 만주 지역을 떠도는 탈북자와 북한을 드나드는 조선족 등을 통해 북한을 손금 보듯이 파악한 안기부는 이때부터는 CIA에 자료를 협조해주는 등 우월한 위치를 점유했다.

미국에게 있어 북한은, 가상적국이 아닌, 7개 불량국가(rouge state) 중의 하나이지만, 안기부에게 있어 북한은 모든 것이었다. 때문에 중국과 국교를 맺은 후 안기부는 총력을 다해 북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렇게 중요한 성과를 거둬온 공작팀을 우리는 너무 쉽게 내준 것이다.”

국가안보는 대화와 같은 평화적인 방법만으로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국 지도부의 속셈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적국 지도층 인사를 망명시키거나 납치하는 공작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임무를 국가 정보기관에 부여해놓고 있다. 남북 대립이 치열하던 시절 한국에서는 안기부가 이 임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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