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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화제

한국금융계 장악한 해외파 뱅커들

  • 이제경 < 매경이코노미 기자 >

한국금융계 장악한 해외파 뱅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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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흔살에 연봉 13억, 스톡옵션 163만주
  • ● 서울대 - 美 MBA가 기본… 몸에 밴 실력제일주의
  • ● 눈치 안 보고 내 사람 데려와 써
  • ● 씨티은행 출신이 70%
  • ● 주주 이익 극대화가 유일한 목표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 지금의 자리를 맡아달라는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 때는 1999년 1월이었다. 당시 그는 뱅커스트러스트의 자회사인 뱅커스트러스트 월펜손 상무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증권회사 M&A(인수합병) 업무를 13년 넘게 한 그는 마침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에 시달렸다. 여기에는 1998년 11월 30일로 의무 근무기간이 끝났다는 점도 작용했다.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부인과 함께 겨울 휴가에 들어가기 전 조지 소로스 펀드 측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다짜고짜 소로스 회장을 만나달라는 내용이었다. 겨울 휴가를 포기한 채 소로스를 만났다. M&A 업계에서 13년 동안 일했지만 소로스를 직접 만날 기회는 한 번도 없었기에 강회장으로서도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소로스가 발탁한 M&A 전문가

소로스 회장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의 제안을 했다. 한국의 대림산업그룹 계열사인 서울증권을 인수하려는데 그 곳 사장을 맡을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국 시장은 발전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업도 확대 할 것이니 믿고 맡아달라고 했다. 만약 거절하면 서울증권 인수를 다시 고려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강회장은 당황했다.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인이 한국에서 살 의향이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즉답을 할 수 없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소로스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금융전문가를 상대로 사전 조사를 했다고 한다. 서울증권 최고경영자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 수소문한 결과 십 수년 간 증권사 M&A업무를 해온 강천수씨를 천거받은 것이다. 적임자가 갖춰야 할 조건은 영어구사력과 증권업무에 대한 해박함, 경영 능력이었다.



강회장은 직접 증권업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증권사 M&A를 담당했기 때문에 별 하자가 없다고 판단한 듯 했다. 무엇보다 소로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M&A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확장경영을 하려면 다른 금융회사를 인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강회장 같은 인물이 적임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직접 만나본 강회장의 영어 구사능력이 미국인 이상으로 뛰어나 소로스는 마음을 굳혔다.

이렇게 해서 강회장은 서울증권과 인연을 맺었다. 1999년 5월, 3개월 동안 서울증권 고문을 지낸 뒤 대표이사 사장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학력은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에서 MBA (경영학석사)를 받았다. 1986년 한국에 돌아와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했다. 꿈을 실현하기에 한국은 너무 좁다고 생각한 것일까. 1년 뒤 그는 연구원 생활을 접고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증권을 맡은 후 2년 간 그가 쌓은 업적에 소로스는 만족할 듯 하다. 한일투신운용을 인수했고, 4년 동안 줄곧 적자였던 서울증권을 1999년 업계 8위, 2000년 7위(세전 이익 기준)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증권의 2000년 ROE(자기자본수익률) 순위는 업계 6위. ROE 부문에서 업계 5위에 오르는 것이 올해 강회장의 최대 목표다. 다른 경영지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오직 어떻게 하면 ROE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역점을 둘 뿐이다.

헤지펀드 CEO의 변신

서울증권이 인수한 한일투신운용 이정진 사장(43)도 떠오르는 국내 금융전문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국내 금융시장에 데뷔한 지는 2년에 불과하지만 벌써부터 그의 활동 하나 하나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1999년 5월 서울증권 전무이사로 국내 증권업계에 얼굴을 내밀었다. 강천수회장의 천거로 한국땅을 밟은 것. 서울증권에 오기 전 그는 미국 헤지펀드인 인빅터스캐피탈&동양증권아메리카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했다. 또한 SASM&F란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이사장의 첫 직장은 제조업체였다. 미국 인텔사의 유럽 및 일본 마케팅 담당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 2년 동안 경력을 쌓은 뒤 뱅커스트러스트에서 증권업무를 맡았다. 이렇듯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경영학과 법학을 모두 전공했기 때문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MBA를 딴 후 다시 조지타운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91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도 함께 취득했다.

이사장의 경영철학은 미국법의 정신에 기초해 있다. 조직원이 자기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기업경영은 저절로 좋아진다는 것. 판사가 최종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변호사가 자신의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진실이 밝혀진다는 식의 미국 사법제도 정신이 배어있는 경영철학이다. 이 때문에 그는 성과급 제도에 심혈을 쏟는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정해 놓고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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