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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격증’에 도전하는 사람들

국제공인재무분석사, 미국공인회계사, 미국간호사, 미국한의사…

  • 곽대중 < 자유기고가 >

‘미국자격증’에 도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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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하단에 얼마나 많은 자격증을 적어 넣느냐 하는 것이 취업의 중요한 변수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대등한 학력이라면 자격증을 많이 취득한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그만큼 많은 투자를 했다는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 학력주의의 벽도 점차 낮아져 어느 대기업 입사에서는 일류대학 출신의 지원자가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지방대 출신에게 밀렸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단순히 취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이른바 인생 다모작(多毛作)시대. 갓 입사한 사원부터 정년을 앞둔 중역 간부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나를 가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은, 퇴근 후 샐러리맨들을 학원과 도서관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1998년을 분기점으로 이제 대한민국에서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져 옛말이 되어버렸고,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가든 무언가를 꿈꾸며 창업의 길을 걸어가든 ‘자격증’이라는 보험에 들어놓아야 조금이라도 안심이 된다.

약간은 삭막하게 느껴지는 이러한 이유를 떠나 순전히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자격증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업과는 상관없는 요리, 자동차 정비, 에어로빅 강사 등 30여 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고 지금도 부단히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는 것을 취미(?)로 여기는 사람이 화제로 오르내린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다는 합격자의 이야기도 그리 생소하지 않다.

이러한 흐름 속에 자격증도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국내 변호사가 되기도 힘든 마당에 국제 변호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고, 한국공인회계사가 아니라 미국공인회계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APR, CPIM, ASQ 등 생소한 국제공인, 혹은 미국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사람들의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결혼정보회사 (주)선우는 지난 4월 전국 5개 도시 미혼남녀 366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 설문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 하나를 내놓았다. ‘나의 결혼조건에 이민가능 여부가 작용한다’는 문항에 5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대답한 것. 최근의 이민열풍 속에, 이제는 배우자의 선택 기준으로 이민이 가능한지 여부도 고려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국제공인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좋은 신랑감, 신부감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2월 라이선스닷컴(www.lysense. com)이 네티즌을 대상으로 ‘가장 따고 싶은 자격증’을 묻는 설문에서도 40% 정도의 응답자가 ‘국제자격증’을 꼽았다. 취업을 위해, 전직과 승진을 위해, 창업을 위해, 혹은 이민을 위해 국제공인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분식점에 넥타이를 맨 30대 초반의 샐러리맨들이 모여 앉아 있다. 또래 직장인들이 1차로 저녁식사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을 시각, 이들은 김밥과 떡볶이로 저녁을 때우는 중이다. 간단한 식사 도중 나누는 대화의 소재는 최근 있었던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시험이었다. 10여 분 만에 식사를 마친 이들은 7시20분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부랴부랴 학원으로 향했다.

CFA(금융 및 투자 전문가) 응시자 급증

S증권 대리라고 자신을 밝힌 이 일행중 한 명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CFA를 준비하다 보니 나도 처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학원에 등록했다”고 자신이 CFA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이 들어간 곳은 미국공인회계사(AICPA), 국제공인재무분석사, 국제재무위험관리사(FRM) 등의 자격증 시험과목을 강의하는 국제금융회계전문학원으로, 강의실마다 퇴근 후 이곳으로 ‘출근’한 샐러리맨으로 가득했다. 강의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볼 수 있는 60여 좌석의 LAB실에도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승진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독종’으로 불렸을 사람들이 이제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6월3일 일요일 고려대학교는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함께, 졸업한 지 10년은 넘었음직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달라는 대학 본부측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교내는 주차할 공간을 찾는 차량들로 혼잡했다. 이날은 세계 74개국에서 동시에 시행된 CFA시험이 있던 날.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이날 시험으로 학교 주변의 식당과 도시락 장수들도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올해 CFA시험의 서울지역 응시자는 총 3157명으로 지난해 2141명에 비해 47.5%나 급증했다. 한국의 지원자 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는 홍콩(6580명), 싱가포르(4801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으며 일본(1916명), 대만(1337명)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많다고 한다.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란 미국투자경영분석협회(AIMR)가 입증하는 금융 및 투자분야 전문가를 이르는 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해 1998년 수십 명에 불과하던 응시자가 1999년 800여 명, 작년에는 2000여 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CFA자격증 소지자는 국내는 물론 세계금융기관에서도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CFA자격증 소지자를 고용하는 금융기관은 국제적 공신력과 신뢰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금융·증권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에게 CFA는 이른바 ‘몸값’을 올리는 신종 자격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전문가로 성장하기를 희망하는 임직원에게 이 자격을 따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정해진 표준은 없으나 비슷한 조건일 때 비자격자에 비해 CFA는 평균 20∼30% 더 많은 연봉을 추가로 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CFA 자격을 딴 사람은 모두 54명으로 이들 대부분은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컨설턴트 등으로 활약중이다.

대학 졸업 후 여러 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다가 번번이 좌절한 최은경(29)씨는 미국공인회계사(AICPA)로 인생의 행로를 바꾼 경우다. 1999년 LA로 건너가 시험을 치른 이씨는 AICPA 자격을 얻자마자 외국계 기업들의 ‘모셔가기’ 경쟁의 대상이 되어 현재 외국계 C유통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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