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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40년만에 털어놓은 군사쿠데타의 숨겨진 진상<2>

이한림의 울분 “박정희가 말뼈다귀냐 개뼈다귀냐”

  • 김준하

이한림의 울분 “박정희가 말뼈다귀냐 개뼈다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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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으로 난처했다. 당시 이기붕씨의 비서를 돕는 것은 4·19혁명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친구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마음을 정하고 낚시꾼으로 변장해 그와 같이 온양까지 가기로 했다.

온양에 도착해보니 해가 중천에 떠있어 사람들 눈을 피해 우선 낚시터에서 시간을 보낸 후 해진 후에 그의 처가로 가기로 했다. 낚시를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경찰 지프가 낚시터에 나타났다. 우리는 놀라서 기절할 지경이 었다. 누가 밀고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피할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마침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경찰 한 사람이 “여기 김준하란 분이 계십니까?” 하며 예상외의 겸손한 태도로 필자를 찾았다.

“납니다.” 대답이 끝나자 그 경찰관은 거수경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어찌된 일일까?



사연을 알아보니 이날 아침 청와대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고 내 아내는 온양에 낚시 하러 갔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온양경찰서에 연락해 나를 찾아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청와대로 나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전영배씨와 나는 청와대 덕분에 경찰차를 타고 당당하게 전씨 처가까지 갈 수 있었고 전씨는 처가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 아침 나와 같이 상경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청와대에 갔더니 대통령은 나에게 공보비서관으로서 청와대 대변인을 맡아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나는 뜻하지 않은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매우 놀랐다. 하루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계로 복귀하려던 나는 뜻을 꺾고 청와대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일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마음자세를 꼼꼼히 설명했다. 그때 그가 내세운 것이 ‘상식’이었다.

“민주주의 종주국인 영국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기본이 되는 헌법이 따로 없다. 그들은 상식을 헌법으로 대치하고 있다. 사고와 행동의 잣대를 상식으로 삼으면 나라일이건 개인 생활이건 정상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첫날 그의 가르침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대통령이 공보비서관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상의했는데 민관식(閔寬植) 의원과 정성태(鄭成太) 의원이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언론계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나에게 군인들의 쿠데타는 너무나 큰 짐이 아닐 수 없었다.

“불상사가 발생하면 안 된다”

5·16으로 바빴던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전날 밤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친서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또 하룻밤을 새웠다. 대통령이 일선 지휘관들에게 친서를 보내기로 마음을 정한 것은 자의가 아니라 장도영 혁명위원회의장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소장이 16일 아침 말한 바와 같이 수도 일원은 쿠데타군이 장악했다고 하지만 ‘미군의 출동설…’ ‘일선의 동요설…’ ‘후방의 동요설…’ 등으로 혁명주체들은 몹시 불안해했다.

바로 그 시각 청와대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칼멜수녀원에 몸을 숨긴 장면 총리는 미국 대사관에 수시로 전화를 걸고 있었으며 마셜 그린 대리대사는 장면 총리와의 전화내용을 수시로 본국에 보고하고 있었다(이상은 미국 국무성에서 밝힌 내용). 매그루더 8군 사령관과 만난 제1군사령관 이한림(李翰林) 중장은 박정희 장군에 대한 불신(박정희 장군의 과거 경력에 대해) 때문에 확실한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사태의 귀추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작성한 친서문안을 가지고 청와대에 출근해보니 유동준(兪東濬) 비서관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친서 초안을 만들어왔다. 대통령은 먼저 유비서관의 친서 초안을 읽어본 다음 내가 작성한 초안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대통령은 전에 없던 이상한 말을 했다. 비서실장과 나를 불러놓고 친서를 다시 작성해오라고 했다. 물론 사안이 중요했던 만큼 신중을 기하자는 뜻이었지만 문안을 다시 작성하라는 지시는 전례없는 일이었다.

친서를 다시 작성해서 대통령에게 제출했을 때 대통령은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원문에 “우리나라가 이 중대한 사태를 수습하는 데 불상사가 발생하거나 조금이라도 희생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에서 ‘불상사가 발생하거나’를 ‘피를 흘리는 일이 발생하거나’로 손수 고쳤다.

후일 “피를 흘리지 말라는 대통령의 친서 때문에 5·16혁명이 성공했다”는 비난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비서실장과 나는 ‘피를 흘리는 일’이라는 구절에 이의를 제기했다. 먼저 외교관 출신인 이재항 비서실장은 ‘피’라는 말이 너무 강한 이미지를 준다며 이의를 달았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대통령은 즉시 우리의 의견을 수렴해서 본인이 수정한 내용을 지워버리고 원문 그대로 회복시켰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대통령이 수정하려 했던 ‘피를 흘리는’ 운운의 단어가 청와대에서 새나가 온 세상에 알려졌다. 40년이 흐른 오늘에 와서도 있지도 않은 ‘피를 흘리는’이라는 단어가 마치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전용되고 있는 것이다.

유언비어는 그뿐이 아니었다. 1군사령관과 5개 군단장에게 보낸 대통령의 친서는 도합 여섯 통이 작성되었는데 모 일간지가 발행하는 월간지에서는 6통 이외에 별도로 한 통을 더 작성해 극비리에 모 사단장에게 전달된 것처럼 보도했다. 대통령의 친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전달했던 내가 아직도 생존해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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