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현우는 이마트와 손을 잡고 PB상품 TV ‘시네마 플러스’를 내놓았다. 14, 20, 21인치 세 종류로 대기업 제품보다 20∼30% 쌌다. 이렇게 가격을 내릴 수 있었던 건 광고비가 전혀 들지 않은데다 대기업들처럼 중간 거래처 없이 소비자에게 직판하고, 여기에 제품의 기능도 단순화해 재료비를 낮췄기 때문이다.
가전 3사는 기능의 단순화를 가리켜 “PB TV는 화면자동조정기능 등 첨단기능은 배제한 채 단순히 화면 재생 기능만 강조한 반쪽짜리 제품”이라며 맹공격했다. 이에 대해 최사장은 “TV는 거의 밤 에 보는데다 실내에서 보기 때문에 ‘화면자동조정기능’이 크게 필요치 않다. 괜히 복잡한 기능을 많이 넣어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꼭 필요한 기능만 넣어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제품을 구입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단순화한 것이다. 절대 기술이 없어 안 만든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대기업들의 공격에도 ‘시네마플러스’는 출시 8일 만에 1000여 대가 팔려나가는 개가를 올리고, 6개월 후에는 소형TV 시장에서 단일브랜드로 이마트 내 매출 1위의 히트상품이 되기도 했다.
“광고도 전혀 하지 않고 제품만 매장에 조용히 가져다 놓은 상태라 예측불허였어요.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우리도 놀랐어요. 이렇게 반응이 좋았던 것은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싼데다 디자인이 독특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히 소비자들의 눈길을 끈 디자인은 스피커인데, 귀 모양을 본떠 스피커를 만든 후 그곳을 철망으로 스틸그릴 처리를 했는데 이 디자인으로 ‘시네마플러스’는 지난 1월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이 선정한 ‘2000년 BEST 10 디자인 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네마플러스’의 성공에는 집 안에 TV를 한 대만 놓던 과거와 달리, 방마다 들여놓고 보는 생활 환경의 변화도 일조했다. 방에서 보는데 굳이 클 필요도 없고 여기에 값비싼 메이커보다는 값싼 제품이 더 나았다. 출시 1년이 돼가는 지금도 ‘시네마플러스’는 전국 33개 이마트 매장에서 한 달에 3000여 대가 팔려나간다.
이처럼 현우는 내수시장 진입 과정에 제품의 브랜드 못지않게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철저한 차별화 전략과 감각적인 디자인, 그리고 가격파괴로 최사장은 내수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소비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현우는 지난 6월말 대기업들의 반발을 의식해 뒤로 미뤘던 29인치 일반 TV를 시장에 내놓았다. 뒤이어 29인치 완전평면TV도 선보일 예정이다.
대기업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
소형TV와 달리 29인치는 거실용이다. 거실용 대형TV는 그 집을 찾는 사람이 가장 먼저 눈여겨보는 가전제품. 따라서 최사장은 남의 이목을 의식하는 소비자들이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현우 제품을 외면하지 않을지 은근히 걱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평면 TV출시 때는 제품출시를 알리는 신문, 잡지광고를 고려중이다.
이쯤 되면 그 동안 피해왔던 대기업들과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할 것 같다. 현재 현우가 생산하는 제품은 TV와 TV 셋톱박스, 인터넷 셋톱박스, DVD, MP3, 핸즈프리 등. 최사장이 회사가 안정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TV 한 품목만 생산하겠다던 약속을 깨고 이 디지털 관련 제품들을 생산하게 된 것은, 전남 무안의 생산공장을 경북 김천으로 옮기면서 30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게 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무안에서 수출항인 부산까지 물류비용이 너무 많이 들자, 최사장은 지난해 4월 김천에 대지 8000평을 구입, 건평 3000평의 최첨단 생산공장을 지어 TV생산라인을 옮겼다. 이 과정에 생산직원 30명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 벌어지자, 최사장은 디지털 TV를 개발하면서 축적된 기술을 이용, 디지털 관련 제품을 만들기로 하고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 동안 회사를 믿고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을 모른 체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현재 무안공장에서는 멀티미디어 사업본부를 두고 디지털 관련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들엔 자사상표인 ‘imedia’를 부착,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 가동한 김천공장엔 영상사업본부를 두고 TV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선 완제품(Complete Build-up), 반조립제품 (Semi-Knock-Down), 완전부품(Complete Knock-Down) 상태의 세 가지 형태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는데, 이는 수출국에 따라 각각 주문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 제품의 생산비율은 완제품 40%, 반제품 20%, 완전부품 40%인데 완제품 주문이 차츰 늘고 있다.
최형기 사장을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도전의식과 끈기다. 매사에 말이 없고 진득하게 기다려 ‘왕건 형’으로 불리는 그가 감각적인 영상매체인 TV와 만난 것은 동국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대한전선 TV개발부 연구원으로 들어가면서 부터다. 한창 열정을 갖고 일하던 1983년 대한전선은 대우전자에 흡수됐다. 대우전자로 옮겨온 그는 영상연구소에서 계속 TV관련 연구를 했다. 당시 미국 시장에 TV를 수출하던 대우전자는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반덤핑 정책으로 수출시장이 막히자, 중남미 시장개척에 나섰다. 이때 책임연구원이었던 최씨는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시장개척에 나섰다. 멕시코, 콜롬비아, 파나마, 브라질 등 중남미 일대를 돌며 판로를 개척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