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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 생선회 삼국지

자연산이냐 양식이냐 수입이냐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韓·中·日 생선회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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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횟집 메뉴는 중국산 활어가 점령한 지 오래다. 각 가정의 식탁도 수입산 고기가 점령했다. 다 죽어가는 한국 어업을 되살릴 방법은 무엇인가.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무조건적으로 인공어초를 투하하지 말고 부정어업을 단속하며 적절히 치어도 방류해야 한다. 기르는 어업으로의 전환과 치어 양산(量産)을 위해서는 국내 양식업이 되살아나야 한다. 여기에 연안어업을 황폐하게 만드는 주범인 발전소 온배수(溫排水)를 재활용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온배수를 이용하면 유리온실 농업처럼 사시사철 물고기를 기를 수 있다. 평생을 어업에 종사해온 이신복씨는 온배수를 이용한 양식법을 개발했는데….
휴가철이다. 밤바다에서 살랑거리는 해풍을 맞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계절이 왔다. 안주는 싱싱한 생선 회(膾)가 제격이다. “회를 안주로 하면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해!” “회는 역시 바닷가에서 먹어야 제 맛이야.” 오랜만에 긴장이 풀린 도시인들은 한없이 늘어진다. 그들은 입 안에서 씹는 회가 토종일 것이라고 철석 같이 믿으며 소주잔을 털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WTO(세계무역기구) 시대. 호주산 쇠고기, 미국산 오렌지, 중국산 마늘이 식탁을 차지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생선횟감도 수입됐을 것이라고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떠나온 도시로 눈을 돌려보자. 싸다횟집·장보고수산·모듬회 전문·태풍수산·남해활어…, 냉동 참치를 내놓는 참치 횟집이 생겨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엔가 펄펄 뛰는 활어(活魚)를 내놓는 횟집이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늘어났다. 아직도 육(肉)고기를 구우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도시인이 있다면, 그는 콜레스테롤의 공포를 모르는 ‘한 시대 늦은’ 사람일 것이다.

도시의 활어 횟집과 바닷가의 활어 횟집을 비교해 보면 가격 차이가 거의 없거나 도시 횟집이 오히려 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회지 횟값이 생산지인 바닷가보다 더 싼 것은, 국내 활어가 대부분 수입산임을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바닷가와 도회지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횟집이 수입산 활어를 사용하다 보니, 소비되는 물량이 많고 교통이 좋은 도회지로 공급되는 활어 값이 오히려 싸진 것이다.

소비자는 활어를 싸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국내 어업인의 처지에 서면 그 반대가 된다. 동북아 각 나라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포한 후, 한국은 일본·중국과 중간선 획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 한일어업협정과 한중어업협정을 타결했다. 양대 협정 체결로 인해 중국과 일본 근해에서 조업하던 우리 어선들이 철수하게 됨으로써 국내 수산업은 크게 위축되었다.

한국을 점령한 중국산 活魚



어민들이 일터를 놓치게 된 데는 그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어민들이 법이 정한 것보다 촘촘한 그물로 치어(稚魚)까지 남획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남획으로 국내 연안에서 어획량이 줄어들자 어민들은 일본이나 중국 쪽에 접근해 그물을 던졌다. 그러다 두 나라가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어업협정이 갱신되면서 어민들은 남획으로 황폐해진 우리 연안으로 쫓겨 들어왔다. ‘지속 생산’이 가능하도록 국내 어장을 관리했다면 지금처럼 국내 어업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不正어업으로 황폐화된 어장

물고기들은 주로 암초나 산호초 일대에 서식한다. 따라서 연안 어장을 풍부하게 하려면 사람이 만든 암초인 ‘인공어초(人工漁礁)’를 바다에 넣어주어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매년 740억원의 예산을 인공어초를 투하하는 데 쓰고 있다. 인공어초를 투하하면 일시적으로 고기떼가 몰려든다. 그러자 어민들이 어초를 투하한 수역에 집중적으로 그물을 드리웠다. 그런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인공어초는 결국 그물로 칭칭 감겼다. 어초 안에 갇힌 물고기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밖에 있는 고기는 그물 때문에 어초로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인공어초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예산은 인공어초를 만들어 투하하는 업자들에게 전달된다. 어민들이 인공어초를 못 쓰게 만들수록 해양수산부는 새로운 인공어초를 자꾸 만들어 투하하게 되니 업자로서는 부정(不正) 어업을 하는 어민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한국은 돈은 돈대로 쓰면서 어장은 황폐해지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돈 있는 어민들은 활로를 찾아냈다. 활어 양식업자에서 활어 수입업자로 변모한 것이다. 경남 통영과 전남 여수는 중국산 활어를 수입하는 대표적인 항구다. 원래 이곳은 활어를 주로 양식하던 곳인데, 돈 깨나 벌었다는 양식업자들은 전부 수입업자로 변신했다. 그러니까 밤새워 경부·호남고속도로를 달리는 활어 운반 차량은, 십중팔구 통영이나 여수에서 중국산 활어를 싣고 출발한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

중국산 활어는 배에 설치된 수조에 실려 통영이나 여수항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통관절차를 거쳐 횟집에 배달될 때까지는 수입업자의 수조나 가두리에서 한국산 바닷물을 마신다. 물고기들은 수온에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선이나 배타적 경제수역 선을 알 리가 없다. 그러니 수입 활어라 할지라도 한국에 들어와 ‘한국 물’을 먹는 순간 한국산 활어로 둔갑할 수가 있다. 이 활어는 어디 물을 먹었느냐에 따라 제주산 활어가 되기도 하고, 군산·목포·통영산 활어가 되기도 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활어의 양은 연 4만여t이고 중국 등 외국에서 들어오는 활어는 연 3.5만여t이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은 상당량의 활어가 ‘해상 박치기’라고 하는 밀수 형태로 유입된다고 한다. 이렇게 수입 활어량이 많다보니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들도 활어 수입에 혈안이 됐다. 자금력이 탄탄한 이들이 나서야 신용장 개설과 통관 절차가 원활하기 때문이다.

해상 박치기란 한국산 전자제품을 싣고 나간 한국 어선과 중국산 활어를 싣고 온 중국 어선이 공해상에서 만나, 물건을 맞교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밀수 활어까지 보태져 국내 활어시장은 외국산에 점령당하고 힘없는 어민들만 앉은 채로 말라 가는 것이다.

가난한 어민들을 살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들에게 수입 활어보다 싸게 활어를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과거의 부정 어업은 한쪽이 득을 보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상생(相生)의 어업을 찾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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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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