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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

인도네시아 마지막 ‘밀림의 전사’ 다약족

  • 김병호 < 농학박사 > kimbh38@netian.com

인도네시아 마지막 ‘밀림의 전사’ 다약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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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인도 북부의 나가족 마을을 탐사했을 때, 그들이 우리 민족 고유의 씨름을 하는 광경을 보고는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다약족 마을에서도 긴 장대 끝에 새를 얹어 놓은, 우리나라 솟대와 영락없이 닮은 그들의 솟대 앞에서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이 도대체 어떤 종족이기에 마한(馬韓)시대 이래로 간직해온 우리의 솟대와 유사한 민속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다음으로 놀란 것은 키. 옛날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방아를 찧고 난 다음 벼 껍질을 쌀과 분리하기 위해서 키를 사용했는데, 다약족 마을에서 생김새가 우리 것과 아주 유사한 키를 보았던 것이다.

세계의 미작지대에서 사용하는 키는 모두가 원형(圓形)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마름모꼴을 닮은 부챗살 모양의 독특한 키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다약족이 우리 것과 닮은 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셋째로 불가사의했던 것은 다약족의 아이를 업는 풍속.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민족은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 민족과 한 갈래가 분명한 일본족, 라후족, 리수족, 아카족 등 극히 일부다. 그러니 다약족이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생김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열대지방 사람답게 가무잡잡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약족은 열대지방, 그것도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어찌해서 동아시아 사람(한국, 일본, 중국인) 같은 모습에 누런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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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그들의 조상들이 서아시아 혹은 인도에서 출발해 한반도 쪽을 향해 가다가 도중에 낙오되었거나 아니면 그 역으로 한반도 쪽에서 인도 방향으로 가다가 보르네오 섬(칼리만탄)에 주저앉아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곳에 멀지 않은 슬라베시 섬 최북단 마나도(Manado)에도 그들과 똑같은 피부에 얼굴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지금도 ‘금강산과 선녀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갈피를 잡을 것 같기도 하다.

이같은 상상력을 더해주는 데는 한 가지 근거가 있다. 한반도에서 배가 표류하면 대만이나 필리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마나도나 칼리만탄 지역에 이른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은 현대문명과 단절된 채 오랫동안 그들끼리만 살아서 그런지 우리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풍속이 많다. 그 가운데서 몇 가지를 골라서 소개한다.

다약족은 외부에서 남자 손님이 오면 그날 밤 마을의 처녀들이 수청을 든다. 낮 시간에 그 남자 손님의 눈길을 가장 많이 받은 처녀가 그날 밤의 당번. 저녁 식사를 끝낸 손님이 우리나라의 시골 원두막처럼 생긴 집에 누워 있으면 곱게 치장한 그 처녀가 원두막 밑으로 와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서는 매듭 지은 풀을 건넨다.

남자 손님이 그 매듭을 풀어서 처녀에게 되돌려주면 두 사람은 그날 밤 동침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외부 손님들에게 인기 있는 처녀일수록 다약족 총각들이 서로 장가를 가겠다고 쟁탈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만약 한 처녀를 두 총각이 좋아하면 결투를 해서 승자가 차지한다. 그러나 한 총각을 두 처녀가 좋아하는 경우는 두 처녀 모두 포기한다. 얼마나 사려 깊은 행동인가.

다약족의 축제날이 되면 더욱 이상스런 광경이 벌어진다. 숫제 이것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만하다. 밤이 되면 기다란 칸막이 집에 처녀들이 한 명씩 들어가 섹스파트너를 기다린다.

섹스 파트너는 그날 벌어진 경기의 승자들. 경기에 참가한 남자들(외부인도 동참할 수 있음)은 칸막이 집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을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밀림 속을 뚫고 전진하는 ‘사랑의 용사’들 앞에는 온갖 장애물이 놓여 있다. 도중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덫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수백 명이 출발하지만, 온갖 역경을 헤치고 최후의 지점에 도달하는 용사 중의 용사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이들이 그날 밤의 황제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찾아간 다약족 마을에는 미인이 꽤 많아서 사나이라면 한번 그와 같은 모험을 거쳐 용사가 될만한 값어치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처녀가 총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경우다. 처녀는 일생 동안 총각이 어디를 가든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데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

다약족 사람들 말에 따르면, 처녀들은 마술을 사용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아내 지구 끝이라도 찾아간다고 했다.

다약족은 대개 여자 나이 16세, 남자 나이 18~21세면 결혼을 한다. 여자나 남자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아이를 낳으면 분가한다. 결혼식은 의외로 성대해서 피로연은 결혼 전에 일주일, 결혼 후에 일주일, 이렇게 반 달 동안이나 계속된다.

필자가 경험한 오지의 소수민족들은 마치 결혼이 자기 삶의 전부인 양 아주 성대하게 치르는데, 다약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결혼식 기간 내내 온 동네가 잔칫 집처럼 붕붕 뜬다.

다약족은 혼전에 성에 대한 제약이 없지만, 결혼한 후에는 죽을 때까지 일부일처제를 철저하게 지킨다. 만약 남자가 이혼을 하고 싶으면 위자료로 큰돈을 주거나 가장 값나가는 물건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혼할 마음을 먹지 못한다고 한다.

다약족 사람들은 귀를 크게 뚫어서 귀고리를 하거나 장식품을 끼워 넣는다. 그래서 그들은 금방 표가 난다. 또 여자들은 팔꿈치부터 손가락에 이르기까지 청동색 문신을 하는데, 아름답게 보이고 또 그렇게 하면 용기가 생긴다고 해서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먼 옛날 그들의 조상이 강이나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 때 몸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문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약족의 집은 우리네 이층집만큼이나 높은데, 밤에는 사다리를 치워버려서 외부 침입자가 접근할 수 없는 구조다.

중국의 와족이나 미얀마의 나가족처럼 사람의 머리를 즐겨 자르는 풍속이 있었던 이들에게는 자연 적이 많았을 것이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집에서 공동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신(神)은 ‘붕안’. 곧 전쟁의 신으로, 마을 회관의 넓은 벽면에 현대식 도안이 겹쳐 있는 것 같은 큰 그림을 그려놓고 그 중앙에 창과 방패를 쥐고 있는 붕안 신의 모습을 그려 떠받든다.

마을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나무로 만든 무수한 조각들. 대개 남녀의 성교와 수태 등을 묘사한 것인데 이는 다산을 비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그래서인지 다약족 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나와서 맞는 것이 와글거리는 아이들이다.

다약족은 칼리만탄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판 아메리카 인디언이라 할 수 있다. 하룻밤을 묵은 필자는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보호구역 안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문명사회로 귀환해야 했다.

신동아 200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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