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톱 탤런트 김희선의 당돌한 고백 “바람둥이가 좋아요”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4-11-17 11: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결혼 전 꼭 동거해보고 싶다
    • 첫사랑 배우 L, 그가 없으면 죽을 것 같았다
    • 재력가들, 행사장에서 인사 나눴을 뿐
    • 결혼 빨리 해 가정에 충실한 여자로 살고 싶어
    • 운 없고 불쌍한 황수정
    • 섹스 비디오, 찍으면 어떤가
    • 호감가는 정치인, 김윤환 박지원 정몽준 김한길
    ”요즘 게임을 해요, 인터넷으로. 새벽 서너 시까지 할 때가 많아요. 한번 하면 푹 빠지거든요. 밤 새우고 늦게 일어나니 점심이 아침이고 때로는 저녁이 아침이 돼요.”

    “주로 무슨 게임을 하세요?”

    “요즘 애들이 하는 것 다해요. 포트리스 아세요?”

    “모릅니다.”

    와하하하, 그것도 모르냐는 듯 그녀가 크게 웃었다.



    “단순한 게임이에요. 또 테트리스도 하고….”

    테트리스라면 기자도 알 만하다.

    “테트리스는 오래된 게임 아니에요?”

    “예. 그런데 아템이 있어요, 아이템.”

    두 단어를 혼용하는 걸 보면 아템이란 아이템의 준말쯤 되는 모양이다.

    “아템으로 남한테 무기를 보내기도 하고, 엇갈리게 하거나 한 줄씩 비틀기도 해요. 아이템이 없는 것은 노템이라 불러요. 알까기는 아시죠? 그것도 아템이 있어요. 파워 알까기라고. 본래 작은 알이 큰 알을 못 치잖아요. 그런데 파워업 아이템을 쓰면 힘이 두 배로 증가해 그것이 가능해요.”

    오후 4시. 약속장소인 청담동의 한 카페에 나타난 김희선(25)씨는 짐작대로 쾌활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일정에 쫓기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만함과 부산스러움이 느껴졌다. 눈동자에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먹을 것부터 챙긴다. 빡빡한 일정 탓에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매니지먼트 관계자에게 밖에 나가 김밥을 사다줄 것을 부탁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걸로.”

    김씨에게 ‘남편감’을 고르는 문제를 냈다. 그녀는 질문지를 받아들고선 와, 하며 즐거워했다. A, B, C 세 남자가 있다.

    세 사람은 다음의 10가지 점에서 서로 대조가 된다. 1)직업 2)나이 3)재력 4)사랑표현방식 5)여자관계 6)성격 7)‘김희선’의 일에 대한 간섭 여부 8)건강 9)취미 10)기타.

    먼저 A: 1)잘 생긴 배우 2)27세 3)돈은 많지 않음 4)애정 표현에 적극적임 5)과거에 여자친구가 많음 6)패기만만하고 독선적 성격 7)희선이 결혼 후에도 계속 일하길 바람 8)건강 좋음 9)춤추기를 즐김 10)혼자 있기를 싫어함.

    다음은 B: 1)대기업체 사장 2)42세 3)매우 부유함 4)사랑에 대해 결코 언급하지 않음 5)5년 전 이혼 6)야망이 크고 대가 센 성격 7)희선이 결혼 후엔 일을 그만두기를 원함 8)건강 좋으나 약간 비만 9)골프를 즐김 10)희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함.

    마지막으로 C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중소대학 영어교수 2)35세 3)돈보다 안락한 생활을 추구 4)연애시 써 보내기를 좋아함 5)7년간 지속된 여자관계를 지난해 끝냄 6)예민하고 신중한 성격 7)희선이 원하는 직업이라면 무엇이든 반대 안함 8)큰 키에 마르고 병약해 보임 9)고전음악을 좋아함 10)여행을 싫어함.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질문지를 한참 들여다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조금씩 어긋나요, 제가 좋아하는 게. 각자에게서 좋은 점만 고르면 안될까요?”

    “인생이 그렇듯 좋은 것만 택할 순 없는 노릇이지요. 차선을 고르세요.”

    “이거, 해답이 있나요?”

    “그런 것 없어요. 성격이나 가치관을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그녀가 고른 남편감 1순위는 A.

    “우선 사랑표현에 적극적이라는 점이 맘에 들어요. 또 과거에 여자친구가 많았다는 점도 그렇고요.”

    둘째 이유는 조금 뜻밖이다. “여자들이 싫어할 측면이 아닌가요?” 하고 묻자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왜요? 과거 여자친구가 많았다는 건 능력이 좋다는 것 아니에요? 사교성도 있고. 경험을 많이 했으니 여자 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태도도 좋겠죠. 오히려 여자 한번 안 사귀어본 사람이 나중에 더 무섭죠. 늦바람이라고….”

    그녀가 깔깔거렸다. 그렇지만 장난으로 대답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안 좋게 얘기하면 바람둥이인데.

    “저는 바람둥이가 좋아요. 너무 한 여자만 쳐다봐도 그렇잖아요. 또 여자에 대해 맺고 끊을 줄 아는 남자가 좋아요. 여자가 뭐 해달란다고 다해주거나 ‘오빠 빨리 와’ 하면 쪼르르 달려오는 남자는 싫어요. 여자가 ‘빨리 와줘’ 해도 ‘야, 나 바빠’ 하고 딱 끊을 수 있는 남자가 멋있지 않아요? 일할 때는 확실하게 일하는 남자 말이에요. 성격이 독선적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주관이 뚜렷하다는 얘기죠. 아닌가요? 고집이 있어야죠, 남자가.”

    -돈은 신경 안 씁니까.

    “건강이 좋으니 앞으로 일 많이 하면 돈 많이 벌겠지요.”

    그녀가 A 다음으로 꼽은 남자는 C.

    “편안함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맘에 들어요. 시 쓰는 건 좋은데, 여러 번 써서 보내면 짜증날 것 같아요. 표현에 한계가 있을 텐데, 한번 썼던 표현을 또 쓰면 좀 싫증날 것 같아요. 시보다는 편지 쓰기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시를 별로 안 좋아하나 봐요.

    “편지 속에 짧은 시 하나 넣는 건 좋은데, 시만 써 보내면 좀 지루할 것 같아요.”

    7년간 지속된 C의 여자관계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녀의 답변이 허를 찌른다.

    “7년 동안 한 여자를 사귀었다면 지조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요?”

    뜬금 없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봤다.

    -정치에 관심 있나요?

    “국민들이 뽑은 분들인데 잘하겠죠. 솔직히 관심은 없는데, TV 뉴스 첫머리에 나오니 보게 되지요.”

    -투표는 몇 번 해봤습니까.

    “한 번도 못해봤어요.”

    -몇 차례 기회가 있었을텐데.

    “늘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요. 또 그거 하려면 우리 동네에 가서 해야 되잖아요. 잠실까지 갈 시간이 없더라고요.”

    -김대중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청와대에서 두 번 정도 뵈었어요. 문화인 축제 때와 어린이날 행사 때. 참 따뜻한 분인 것 같아 좋아요.”

    -요즘 많이 두들겨 맞고 있죠.

    “앞으로 잘 되겠죠.”

    그녀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선 “똑부러지고 꼼꼼한 것 같다”고 평했다.

    -호감 가는 정치인이 있다면?

    “왜, 키 크고 멋있는 아저씨 있죠? 김윤환 아저씨. 최무룡같이 생기신 분 맞죠? 김한길 선생님과 박지원 장관님도 좋아하고요. 박장관님과는 ‘비천무’를 함께 봤어요. 아, 정몽준 위원장님도 있죠. 그 분은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가족들과 함께 타셨는데 저에게 다가와 ‘너무너무 좋아한다’며 사인을 부탁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비천무’ 꼭 보시겠다고.”

    -정몽준 의원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찍으시겠네요?

    “아직 누가 누군지 잘 몰라서요.”

    -요즘 연예인들은 선거 때 공개적으로 특정후보 후원활동이나 지지운동을 하잖아요. 김희선씨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생인 그녀는 한 해 휴학한 상태. 올봄 복학해 내년초엔 졸업할 예정이다. 향후 작품활동계획을 묻자 “딱히 정해진 건 없다”며 “좀 쉰 다음에 천천히 생각하겠다”고 말한다. 현재 그녀는 7건의 CF에 출연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벌었느냐”고 묻자 “많이 번 것 같은데, 왜 없죠?” 하고 큰 소리로 웃는다. 수입은 그녀의 부모가 관리한다고 한다. 용돈은 타 쓰고. 아무래도 옷값으로 가장 많이 지출된다.

    -언제 가장 외롭습니까.

    “늘 외롭죠. 어쩌면 외로움을 잘 타서 이런 직업을 택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항상 혼자 있고 혼자 자라다보니. 그래서 친구들과 강아지를 무척 좋아해요.”

    -절실히 느낄 때가 있을 것 아닙니까.

    “미래를 생각하는데 답이 안 나올 때…. 어느날 생각해보니 답이 없는 거예요. 잘 되든 안 되든 답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땐 막막해요.”

    -지금까지는 비교적 순탄하고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잖아요?

    “이 세계가 다른 직업에 비해 뚜렷하지 않잖아요, 미래가.”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저희는 늘 불안하죠. 이 직업을 가진 모든 분이 그럴 걸요. 일부 연예인을 빼곤 다들 힘든 생활을 하고 있죠. 또 여자라는 점도 그렇고. 가끔 혼자 이런 생각을 해요.”

    -언제 인기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겠고.

    “그렇죠.”

    그녀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는다. 생기발랄한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녀에게서 ‘와니’의 고독이 느껴진다.

    -종교 안 갖고 있죠?

    “없어요. ‘나 자신교’라고, 나를 믿어요.”

    -신자 안 받아요?

    “자기 자신을 믿으면 돼요.”

    그녀가 다시 깔깔거렸다.

    그녀는 A와 달리 C에 대해선 구체적인 평을 늘어놓았다.

    “예민하고 사려 깊은 성격이야 문제될 것 없고, 키가 크고 마르고 약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여행하기 싫어하는 건 맘에 안 들어요. 클래식 음악 즐기는 건 좋아요. 저는 예전엔 주로 가요를 들었는데 요즘은 재즈를 즐겨 들어요. 혼자 차 타고 돌아다니는 걸 즐기는데, 차창을 열어놓고 재즈를 들으면 꼭 극장에서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나오는 기분이에요. 기분 좋으면 계속 달려요. 그래서 경부고속도로를 못 탄다니까요, 제가.”

    자신의 얘기를 덧붙이고는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희선이가 갖고 싶은 직업이라면 어떤 것이든 반대하지 않는다? 이건 좀 문제가 있어요. 자기 와이프가 하는 일인데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는 건 관심이 없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만큼 아내의 의사를 존중하고 자유를 주겠다는 뜻도 되겠지요?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면 괜찮지만, 부인의 일과 관련된 문제인데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는 건 무심한 태도로 보여요.”

    -B는 어떤 점이 가장 맘에 들지 않습니까.

    “사랑에 대해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이혼남이네요.”

    -현재 사랑하고 있다면 상관없지 않아요?

    “제가 초혼인데, 아깝잖아요. 전(前) 부인이 알게 되는 것도 신경 쓰이고. 뭣보다도 그 사람의 결혼대상으로 제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기분 나빠요.”

    자신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것도 감점요인이다. 나이가 많은 것도 불만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나이 차이가 문제가 되겠냐”고 떠보았으나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유부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유부남보다는 차라리 나이 많은 사람이 낫다고 했다.

    비록 3순위이긴 해도 B의 모든 것을 그녀가 싫어하는 건 아니다.

    “건강 좋지만 살이 쪘다? 살은 내가 빼주면 되고… 골프 즐기는 것, 좋아요. 와이프와 함께 즐기는 운동이 두 가지 이상 되면 관계가 훨씬 좋을 거예요.”

    개중엔 A, C와 안 맞고 오히려 B와 의기투합하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B는 그녀가 결혼하면 바깥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B의 생각이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바다.

    “그건 좋아요. 어차피 결혼하면 일을 그만둘 생각이니까요.”

    -결혼하면 진짜 연예활동을 중단할 생각입니까.

    “저는 접시 모으고 집 꾸미는 것을 참 좋아해요. 촬영 때도 집에 필요한 소품 따위를 구하러 다니는 걸 좋아해요.”

    -주된 이유가 가정에 충실하고 싶어서인가요?

    “예.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거든요. 그런데 참 보기 좋아요. 집안일만 해도 굉장히 바쁜 것 같아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주부 아니에요? 결혼하면 가정생활에 충실하고 아기 많이 낳고 싶어요. 아들 셋에 딸 하나쯤. 제가 워낙 아기를 좋아하거든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연예인 생활이라는 게 워낙 힘들고 불규칙하니 안정을 찾고 싶은 생각에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댈 수 있고 쉴 수 있는… 예전부터 결혼은 빨리 하고 싶었어요. 스물넷엔 결혼하고 싶었는데 이미 그 나이는 지나버렸죠.”

    얘기대로라면 그녀는 결혼하면 미련 없이 연예계를 떠날 듯싶다. 연기자로서 야무진 포부도 없고 연기에 대한 애착도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고 지금 주어진 일이기에 열심히 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부 여배우를 보면 결혼 후에도 연기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가꿔가지 않습니까.

    “결혼하면 결혼생활에 충실하고 싶어요.”

    -연기에 평생을 건다든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결혼하면 그때부터 여자의 삶을 살겠다?

    “그렇죠. 전형적인 한국 여자의 삶.”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눈빛은 진지하다. “조금 뜻밖이네요”라는 말로 가볍게 놀라움을 표시하고는, 지나가는 말처럼 특별히 사귀는 남자가 있는지 물어봤다. 없단다. “세상에 있는 모든 남자가 다 제 남자친구죠” 하고 까르르 웃는다. 그녀의 웃음은 무공해다. 부풀림과 꾸밈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비교적 투명하고 맑은 웃음소리다. 그리고 그 웃음은 그녀의 사슴 같은 눈망울과 잘 조화를 이룬다.

    -그런 말 하면 공주병 있다고 하죠.

    “공주병 없는 여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김희선씨의 미모를 두고 흔히들 ‘실물로 가장 예?연예인’이라고 말한다. 이는 연예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얘기다. 지난해 7월 KBS PD들에 대한 설문조사결과도 그런 얘기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KBS 2TV ‘야 한밤에’ 제작진이 KBS 예능국 PD 60명을 상대로 ‘화면보다 실물이 예쁜 연예인’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김희선씨가 11표로 최고 득표를 했던 것. 2위는 고소영씨(8표). 그 뒤를 박경림(7표), 박지윤(5표), 송혜교(4표)씨가 이었다.

    국내에서 열성 팬클럽을 갖고 있는 김희선씨는 최근 중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스포츠신문 ‘굿 데이’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높은 한국 연예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차이나리서치센터가 중국 네티즌 1만430명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에 관해 실시한 조사결과에서 드러났다. 응답자 중 37%가 김씨를 꼽았다. 다음이 안재욱(26%)씨, HOT(13%) 순이었다.

    김씨는 최근 중국에 갔다왔다. 중국의 이동통신업체인 TCL의 초청을 받아서다. 지난해 12월6∼10일까지 중국 시안과 광저우를 방문, TCL사의 휴대폰 홍보활동을 하는 한편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팬 사인회도 가졌다. 그녀는 TCL과 2년 전속모델 계약을 맺었다.

    한국 연예인이 중국 회사와 모델 계약을 맺은 건 안재욱씨에 이어 두번째다. 모델료는 애초 16억원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6억원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물론 국내 모델업계에서도 파격적인 액수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묻자 시안(西安)시에서의 환영행사를 꼽았다.

    “조그마한 도시인데요. 옛날 진시황이 살던 성이래요. 성곽 길이가 4㎞예요. 환영행사로 입성식이 있었는데 정말 화려했어요. 클린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도 똑같은 의식을 보여줬다고 하더라구요. 진시황 시대 복장을 한 중국인 남녀 무용수들이 부채를 들고 나와 춤을 추었는데, 한국인으로는 제가 처음으로 그런 대접을 받았데요.”

    현장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니 그녀의 말이 실감난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수천명의 중국인이 그녀를 보기 위해 환영행사장 주변에 몰려들었다. 질서유지를 위해 파견된 경찰 병력만 해도 100명이 넘는 듯싶다. 둘째날인 12월7일엔 사인회 취소소동이 벌어졌다. 사인회장인 백화점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자 중국 공안이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인회 행사를 만류한 탓이다. 팬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그녀는 시안 지역방송에 출연해 ‘사과 인터뷰’를 했다. 광저우에서는 바리케이드를 동원해 사인회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CF 촬영도 했다.

    중국 얘기는 이쯤 하고 연기 얘기로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보자. 그녀는 영화배우보다는 TV 탤런트로 더 알려져 있다. 첫 작품은 고등학생 시절인 1993년에 출연한 SBS 드라마 ‘공룡선생’. 지금까지 출연한 TV 드라마는 SBS 5편, KBS 7편, MBC 3편 등 모두 15편에 이른다. 영화는 최근작인 ‘와니와 준하’를 포함해 5편에 지나지 않는다.

    -김희선씨는 TV쪽에서는 그럭저럭 성공을 거뒀는데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거의 없고 연기력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게 연예계의 일반적 평인 듯싶은데요.

    “연기면 다 같은 연기지, 영화 연기 따로 있고 TV 연기 따로 있겠어요? 그렇지만 그런 얘기를 듣는 것도 제 복이라고 생각해요. TV에서 나름대로 잘 성장해 영화에서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게 다행이에요. 잘한다는 얘기만 들으면 나태해지기 쉽잖아요. 자만도 하게 되고.”

    -그런 평가가 억울하지는 않나요?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그런 얘기도 못 듣는 사람이 더 불행하지 않나 싶어요. 연기를 해도 아무런 평도 못 받는 사람보다는 잘했든 못했든 평을 듣는 사람이 더 낫지요. 그리고 항상 상위권에만 있으면 불안하잖아요. 시기와 질투도 받고. 그런데 보통 자리에 있으면 누가 그 자리 빼앗으려 하지 않잖아요. 그런 게 좋아요. 예전엔 늘 1위를 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비운의 고려 여인으로 나온 영화 ‘비천무’는 흥행에는 그럭저럭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환영받지 못했다.

    -‘비천무’ 시사회장에서 울었다면서요.

    “늘 울어요.”

    -자신의 연기에 실망해 울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자기 연기를 보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스스로 생각하기엔 모자라는 점이 많을 수밖에 없죠. 남들이 잘했다고 해도 자기 생각엔 부족한 거지요.”

    -혹시 배역이 감당하기 힘든 것 아니었나요.

    “그런 점도 있었죠. 사실 제 남동생 역을 하면 딱 맞을 아이의 엄마 노릇을 하려니 꽤 어색했어요. 키도 저보다 더 커요. 촬영기간 반년 동안 15㎝나 자랐어요. 애가 또 조숙해요. 중학생인데, 수염도 나고. 그런 아이를 두고 모성애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결혼이라도 해봤다면 연기의 감이 달랐을 수도 있겠죠.”

    그녀가 연예계에 진출한 것은 고1 때다. 첫 단추는 학생잡지 표지모델이었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 연기전문학원 ‘MTM’을 찾아갔다가 심사위원들의 추천으로 ‘주니어 고운 얼굴 선발대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학생잡지 ‘주니어’가 주최하고 ‘MTM’이 후원한 이 대회에서 그녀는 대상을 받았다.

    ‘주니어’ 표지에 얼굴이 실리자 CF 요청이 들어왔다. 가수 신해철씨가 이끄는 록그룹 ‘넥스트’와 함께 아이스크림 CF를 찍었다. CF를 통해 TV에 얼굴을 내민 그녀는 SBS ‘여러분의 인기가요’라는 프로그램의 MC를 맡았다. 이어 ‘공룡선생’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함으로써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MTM’ 김민성 사장은 “당시 학원에 많은 연기 지망생이 드나들었지만 김희선이 유난히 눈에 띈 것은 그의 순수한 이미지가 남다른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다. 김사장의 기억에 김희선씨는 ‘얼굴이 조그맣고 눈이 귀여운 말괄량이’로 남아 있다.

    “처음 보는 순간 눈에 쏙 들어왔어요. 그래서 ‘주니어’ 선발대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지요. 1년 가까이 연기교육을 받았는데 워낙 눈에 띄었어요. 붙임성이 있고 솔직 담백했지요. 그 성격과 기질이 지금껏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김사장에 따르면 김희선씨는 여자 연예인으로는 드물게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MTM’을 찾아올 당시의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란다.

    김희선씨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쾌활, 발랄, 솔직, 대담 등이다. 그녀의 거리낌없는 언행은 연예계 주변에서 종종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런 그녀가 최근 이른바 ‘누드화보집 사건’을 겪으면서 성숙해졌다느니 성격이 차분해졌다느니 하는 얘기가 들린다.

    지난 2년 가까이 연예가 핫이슈였던 이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간 상태.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데, 김희선씨는 혐의를 벗었다. 검찰은 김씨의 전 매니저 이아무개씨와 ‘김영사’ 대표 박아무개씨를 사문서 위조행사 및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반면 출판사측에서 명예훼손 및 계약 불이행 혐의로 고소한 김희선씨와 사진작가 조아무개씨는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위조계약서를 작성, 화보 촬영현장인 아프리카 탄자니아 현지에서 김씨에게 내밀어 강제로 누드사진을 찍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막상 연기자가 돼 보니 어때요? 사생활도 많이 제약되고 불편한 점이 많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후회는 없어요. 사생활 제약받는다고 할 일을 안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욕도 많이 먹지만. 연예인이 돼 좋은 점 중 하나가 음식점에 가면 아줌마가 너무 잘해주시는 거예요.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죠. 어차피 제 일 제가 하는 건데.”

    연기말고 해보고 싶었던 일을 묻자 대뜸 “선생님요” 한다.

    “애들을 좋아하거든요. 큰애들말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요. 애들과 함께 있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그 꿈은 아직 그녀의 가슴에 살아 있다. 가르치는 일보다는 애들과 함께 놀고 싶어서다. 엄격하게 가르쳐야 하는(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국·영·수는 싫다. 음악·미술이나 체육 또는 가사를 가르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생님이 되는 데 필요한 과정을 밟아 꿈을 이루고 싶다. 결혼이 변수다. “결혼을 일찍 한다면 (교사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최근작 ‘와니와 준하’는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김씨로서는 드물게 연기력을 인정받은 영화다. 평소 그녀의 연기를 평가절하해온 유명 영화평론가 J씨에게 의견을 물으니 “‘와니와 준하’는 영화 자체보다 김희선의 연기 때문에 볼 만한 영화”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차분하고 내성적이고 약간은 폐쇄적인 성격의 여주인공 ‘와니’ 역을 맡았다. ‘와니’는 만화영화의 밑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터이고 동거남 ‘준하’는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이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와니’의 어두운 기억─이복 남동생과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픈 기억 탓에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저도 ‘와니와 준하’를 봤는데, 상영한 지 얼마 안돼 극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보시니까 어때요?”

    -화면이 아름답고 상당히 정적이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던데요.

    “어두우면서도 밝고, 보는 동안엔 가슴 아픈데 보고 나서는 행복한 영화예요.”

    -그동안 출연한 영화 중에서는 가장 내면연기가 필요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요.

    “외국에서는 블록버스터에서도 배우들 연기가 돋보이는데 우리는 연기가 죽어요. ‘자귀모’나 ‘비천무’는 연기자의 연기력보다는 특수효과나 무협적 요소가 더 강조된 영화예요. 말하자면 연기 외 다른 요소들에 시선을 많이 빼앗기는 영화지요. 그에 비해 ‘와니와 준하’는 두 사람의 얘기가 중심이니까….”

    -‘와니’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지 않나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직업이다보니 실제 성격보다 약간 오버하는 부분이 있어요. 원래 제 성격은 차분해요. ‘와니’예요.”

    -그렇다면 연기가 자연스러웠겠군요.

    “중간중간 말투는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쓰는 말투로. 감독님이 꼼꼼하세요. 제 버릇이나 말투를 기억하고 계셨다가 ‘평소 네가 하던 대로 하라’ ‘네가 갖고 있는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면 그게 곧 와니’라고 말씀하셨어요. 특별히 예쁘게 보일 필요도 없고 꾸밀 필요도 없으니 오버할 이유가 없었지요.”

    그녀는 이 영화의 시사회장에서도 울었다.

    “신인 시절엔 오히려 겁이 없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부담되고 혼자 걱정도 돼요. ‘와니와 준하’는 한 1년 넘게 쉬었다가 촬영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남다른 각오로 열심히 했는데 내 스스로 기대가 지나쳤나 봐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잖아요. 너무 많이 울었어요.”

    짐작은 했지만 ‘와니와 준하’에 대한 애착이 무척 큰 듯싶다. 영화에 나오는 달팽이에 대해 묻자마자 그것이 갖는 상징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달팽이는 ‘와니’의 성격을 나타내요. 겉은 딱딱하죠. 굉장히 섬세해 조금만 낯선 환경과 마주치면 고개를 집어넣잖아요. ‘와니’는 겉보기엔 사람들한테 무심하고 차갑고 딱딱해도 속마음은 여리고 섬세하고 약해요. 상처도 쉽게 받고. 그런데 달팽이도 속은 그렇잖아요.”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달팽이=와니=김희선이다. ‘와니’의 사랑은 사회 통념에 비춰 금지된 사랑이다. 실제로 그런 사랑을 해봤는지 묻자 “금지된 사랑? 유부남요?” 하며 깔깔거린다.

    “없어요. 아무래도 첫사랑이 가장 기억에 남죠.”

    첫사랑 대상을 묻자 “그 사람 지금 잘 살고 있는데…” 하고 얼버무리려 한다. 고2 때 만난 네 살 연상의 남자. 3년 정도 연애를 하다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 지금도 그 남자 소식은 주변에서 듣고 있다. 결혼은 아직 안했는데 다른 여자와 잘 사귀고 있단다.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사귄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사람 덕분에 카페라는 데를 처음 가봤죠,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압구정동이에요. 지금도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기억이 나죠. 그게 힘들어요.”

    -깊이 사랑했나봐요?

    “예.”

    대답과 동시에 한숨을 내뱉는다. 슬쩍 넘겨 짚어봤다.

    -그 사람, 연예인이죠?

    “모르겠는데요.”

    -유명 연예인가봐요?

    “잘 모르겠어요.”

    -이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글쎄요. 알른지 모를는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며 쿡쿡 웃는다.

    -진심으로 사랑했나요?

    “지나고 나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고들 얘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어요. 이 사람 없으면 죽을 것 같고. 부모님이 반대하면 도망갈 생각까지 했어요. 헤어진 지 4년 됐어요.”

    사실 기자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첫사랑 남자가 누군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녹음을 풀며 정리하는 과정에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게 됐다. 우연히 관련자료도 찾았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단서를 제공한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연예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인가요?

    “예.”

    -언론에 보도도 됐나요?

    “예.”

    이쯤에서 알아챘어야 했다. 네 살 연상이고 데뷔 초 연예계에서 알게 된 사이이고, 그녀와 스캔들에 휩싸였던 사람은 영화배우 이아무개씨 말고는 없다. 그는 그녀와 한 드라마에 함께 출연했다. 그녀는 과거 스캔들의 진상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도 감을 못 잡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니 당황했을 법하다.

    -신현준씨인가요?

    “아니, 신현준씨 말고도 저는…”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남자 말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을 다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김희선씨는 자주 사랑을 하는 편인가 봅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 중엔 말도 안되는 것도 있어요. 그런 걸 다 사랑이라고 할 순 없겠죠.”

    -이른바 재력가들과 관련된 소문도 있는데요.

    그녀가 뜨악해 하는 표정으로 “누구요?” 하고 되묻는다.

    -혹시 소문에 빌미가 될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외국처럼 무슨 행사 때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그런 것 물으시는 것 아니에요? 그런 분들, 연예인 좋아하잖아요. 누가 와 있는데 인사하겠어요, 하고 제의하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죠. 그러면 그 자리에 가 나이 많은 분들이나 높은 분들께 인사도 드리고 같이 어울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는 정중해야 하잖아요. 그런 분위기가 싫어요.”

    세월은 그녀의 사랑방정식을 바꾸어 놓았다.

    “전에는 사랑 하나면 되고 아무것도 필요 없었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친구들 결혼하는 것도 보고 애 낳는 것도 보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축복하는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사랑도 중요하지만 부모도 그 못지않게 중요해요. 예전엔 무조건 사랑이 최고이고 길거리에 나앉더라도 오직 그 사람이어야 했는데, 현실은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그녀는 외동딸이다. 인기가 많으면 소문도 많은 법. 그녀를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소문 중 하나가 입양설이다. 이에 대해 묻자 생각보다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입양한 자식도 그렇게 혼내나요? 어릴 때 제가 굉장히 혼나면서 자라서요. 어머님이 유산을 세 번인가 했어요. 저를 뱄을 때는 몸이 아주 안 좋은 상태였데요. 안 낳으려다 낳은 거래요. 아빠는 엄마 생각해 하지 말자고 했는데, 엄마가 아기를 너무 좋아해 아빠한테 졸라 낳은 게 저예요. 서른다섯에. 그래서 어머님이 그런 소문 들으면 너무너무 가슴 아파하세요. 평범하게 낳은 것도 아니고 남편과 싸워가면서 낳은 애인데, 내 배 아파 내 배 찢어 낳은 애인데 왜 그렇게 말도 안되는 나쁜 소문을 내냐고.”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아버님 어머님 아빠 엄마를 가리지 않고 썼다.

    -왜 그런 소문이 났을까요?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전혀 안 닮았다고들 하던데요.

    “눈이 많이 닮았어요. 엄마 입으로도 그러는데,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은 소피아 로렌을 닮았어요. 옛날 사진 보면 정말 비슷해요. 엄마는 멋쟁이셨어요. 길이가 짧은 가죽점퍼에 가죽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 부츠 신고 핸드백도 조그마한 것 들고 다니셨어요. 자세히 보면 제가 엄마 얼굴을 닮았어요. 다만 얼굴형이 틀린 거죠. 엄마는 광대뼈가 좀 나왔거든요. 얼굴형은 아버님이 더 예쁘세요.”

    -어린 시절 얘기 좀 해줄래요.

    “평범해요. 아빠는 사업하셨는데, 너무 착하세요. 정이 많고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세요. 지금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선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세요. 그런데 가정에서는 무척 엄하세요.”

    -맞기도 했어요?

    “많이 맞았어요.”

    뜻밖이다. 겉으로 봐서는 금이야 옥이야 귀여움 받으며 매는커녕 꾸중 한번 안 듣고 자랐을 듯싶은데.

    -꽤나 말썽을 피웠던가 보네요.

    “아빠나 엄마나 제가 어디 가서 ‘혼자 자라 버릇없다’는 말 듣는 걸 아주 싫어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하게 키우셨어요.”

    -아버지를 미워했나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엄하게 키워주신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도 부모님이 저보다 더 제 몸을 챙겨주세요.”

    -연기자 되는 것, 부모가 반대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빠가 반대하셨어요. 남 앞에 나서는 걸 안 좋아하는 성격이신데, 딸이 대중 앞에 나서는 직업을 택한다니 좋아하실 리가 없었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어렸을 때 배우의 꿈을 가지셨던가 봐요. 성격이 아버님과 달라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명예교사도 하시고, 단체나 모임의 회장도 자주 맡으셨어요. 어머님의 적극 지지로 가능했어요.”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시키느라 했다는 얘기가 재미있다.

    “한다고 다 되는 것 아니에요. 안되는 쪽으로 생각하자고요. 희선이는 해도 안돼요. 그냥 재미로 한번 해보는 거예요. 저러다 말 거예요.”

    그녀의 아버지는 한동안 그녀가 나오는 잡지나 신문도 안 보고, TV에 나오면 TV를 끌 정도로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이기던가.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나오는 신문이나 잡지기사를 남몰래 챙기기 시작했다.

    -김희선씨에 대해 좋게 얘기하면 자유분방이고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라는 평이 있는데요. 촬영현장에 늦게 나타나고 촬영스케줄에 펑크도 잘 내고….

    “차가 막혀 늦는 건 불가항력이에요. 그거 외에는….”

    -성격 탓은 없어요?

    “늦게 가고 싶어 늦게 가겠어요?”

    -왜 그런 얘기가 나올까요?

    “저도 알면 좋겠어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는 않을텐데.

    “나기도 하더라고요. 속담 잘못된 거 많아요. 아직 모르시는구나, 우리나라 속담을.”

    농담을 건네지만 약간 뾰로통한 기색이다.

    -술을 그렇게 잘 하신다면서요.

    “저하고 술 한잔 안 해본 사람들이 꼭 그런 말을 해요.”

    그녀의 일상에 관한 간단한 정보; 여가시간엔 주로 컴퓨터 게임. 게임 덕분에 예전보다 술을 덜 마심. 평균 수면량은 예닐곱 시간. 이동중 차에서 쉽게 잠드는 편. 식사는 불규칙적. 위가 탈 난 이후 식생활이 바뀜. 오렌지 주스와 과일을 챙겨 먹는다. 최근 본 영화 ‘무서운 영화2’. 책은 거의 읽지 못함. 이유는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이동중인 차에서 책을 읽으면 속이 메스껍기 때문. 차안에선 주로 뜨개질. 최근 읽은 책 ‘가시고기’. 최근 읽으려다 만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이유는 선배가 ‘좀더 나이가 든 후’에 읽을 것을 권유했기 때문.

    -최근 연예계에서 가장 큰 화제는 황수정씨 마약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사건을 어떻게 보세요.

    “같은 연예인 처지라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그래도 어제까지 남들한테 인정받는 연기자였는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누구나 한번은 실수할 수―아직 결론이 나지 않아 함부로 말할 순 없겠지만―있잖아요. 불쌍해요. 떠도는 소문에, 나라가 어지러우니 이 사건을 크게 키워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 한데요. 참 운이 나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지 않을까 싶어요. 잘 해결됐으면 좋겠고. 저도 성질은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아마도 ‘누드화보집 사건’을 말하는 듯)을 했는데,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마약수사의 베테랑인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기자에게 사견임을 전제로 황수정씨 사건에 유감을 나타냈다. 그에 따르면 마약 복용자 또는 투약자는 범죄자가 아니라 환자다. 처벌보다는 치료가 필요하다. 진짜 범죄자는 마약 제조업자와 유통업자, 판매업자다. 그러므로 감옥에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데 검찰은 황씨를 구속하면서 중한 범죄자 취급을 했고, 언론도 지나치게 그녀의 범죄성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취지는 다르지만 김희선씨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미국에서는 합법화된 지역도 있잖아요, 대마초 같은 것은. 내 돈 주고 내가 사는데 왜 잡아가냐는 거죠. 적어도 남한테 피해를 주지는 않잖아요. 호기심도 있을 수 있고.”

    -백지영·오현경씨의 비디오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하죠. 사생활 아니에요? 마약과는 또 다른 문제죠. 사생활 침해예요. 엄격히 따지면 그런 게 떠돌아다닌다고 기사화한 분들에게도 잘못이 있죠.”

    -뭐든지 공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죠.

    “화려하지만 약한 게 연예인이에요.”

    -그래도 두 사람, 꿋꿋하게 일어섰잖아요. 웬만한 사람은 자살하고 싶지 않겠어요.

    “두 사람이라고 자살 안하고 싶었겠어요? 언론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언론이 보도의 초점을 비디오의 내용보다 그걸 배포한 사람쪽에 맞췄다면 여론은 그 방향으로 갔을 겁니다. 그런데 누가 배포했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벗고 안 벗고 뭐 하고 안 하고, 이런 것을 더 중요하게 보도하니 사람들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쏠리는 거지요.”

    -섹스 비디오를 찍은 행위 자체는 어떻게 보십니까.

    “찍으면 어때요? 어머 저럴 수가 있어, 하면서 그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이 더 문제죠. 아마 집에 가서 더할 걸요.”

    평소 하는 얘기인지, 아니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얘기인지 몰라도 그녀의 답변이 사뭇 공격적이다.

    -여대생들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혼전성관계 찬성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순결에 대한 생각도 과거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다 좋다고 봐요. 혼전성관계, 찬성해요. 결혼하기 전─이런 걸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동거를 꼭 해봤으면 해요.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해 이혼이라는 더 큰 죄를 짓지 말고. 성이 결혼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성적인 문제로 이혼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경험하지 못한 채 결혼해 이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섹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그럼요.”

    -동거도 그 차원에서?

    “예.”

    -동거해봤습니까.

    “아직 못해봤어요. 대상이 생기면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께 ‘이 사람과 동거하고 싶다’고 말하고 허락을 받고 싶어요. 그런데 부모님들 인식이 문제예요. 동거를 해보고 서로 안 맞아 헤어지게 되면 여자쪽만 불리한 것 아니냐, 뭐 이런 생각 때문에 특히 여자쪽 부모들이 많이 반대해요. 그런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해요.”

    말해놓고 나서 조금 부담을 느낀 걸까. 토를 단다.

    “나중에 내 딸이 결혼하고 싶은 남자와 동거해보고 싶다고 얘기하면 어쩌면 반대할지도 몰라요. 엄마 입장에서. 그렇지만 지금 제 생각은 그래요.”

    -순결 개념도 남자들 시각이 많이 반영된 것이죠.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다고들 하는데, 제 생각엔 여자와 남자는 질적으로 다른 것 같아요. 여자는 축구경기를 보면서 그 과정을 중요시해요. 반면 남자들은 이겼어 졌어, 골 몇 개 넣었어, 누가 넣었어, 이런 걸 중요하게 여긴단 말이에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거예요. 남자는 결론이 중요하고 여자는 과정이 중요하죠. 누가 더 높고 낮고의 문제가 아니라 비교의 기준이 다른 거죠.”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