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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모르는 원칙주의자 母性 앞에 무너지다

‘정치인’ 이희호 영광과 좌절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타협 모르는 원칙주의자 母性 앞에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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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서울 수송동 외가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의전을 나온 부친 이용기씨는 우리나라 의사면허 4호로, 남원도립병원장과 포천도립병원장을 지냈다. 이여사는 그의 6남2녀 중 넷째다. 외가는 수표동 근처에서 대대로 한의원을 운영했다. 어머니 이순이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로 인해 이여사는 모태신앙인이 됐다.

1936년 이화고녀에 입학했다. 이여사와 기숙사 생활을 함께 한 수필가 이규임씨는 한 글에서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친구 중에는 이상한 냄새가 나든지, 이를 몹시 갈아 한 방 쓰기를 꺼려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도 그녀는 묵묵히 감싸주고 말없이 한 방을 써 주었다.”

어려서부터 이여사는 신앙심이 남달랐다. 1940년 졸업 때는 학교에서 주는 ‘종교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나의 사랑 나의 조국’(1992)에서, 여러 경력과 활동 중 여고 졸업 때 받은 ‘종교상’과 1972년부터 계속해 온 창천교회 주일학교 교사직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고백하고 있다.

1942년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이화여전 동기인 김봉자 씨는 당시의 이여사에 대해 “보기 좋게 살이 투실투실 오른 미끈한 몸매의 처녀였다. 살결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단단해 보였으며 건강미가 넘쳐흘러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1944년 일제의 교육긴급조치에 따라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졸업은 하지 못했다. 해방 후 집안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이여사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1946년 9월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했다. 전공은 영문학이었으나 2학년 때 교육학과로 적을 옮겼다.



이여사는 인기가 좋았다. 그보다 두세 살 나이많은 남학생들도 그를 ‘누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호국단 부대장으로 사범대생 800명 앞에서 호령을 하기도 했다. 총학생회에서는 사범대 대표를 맡았다.

‘내가 만난 이희호’(1997)라는 책에는 이여사의 대학 시절에 대한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인상기가 나온다. 서총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48년 여름. 우이동에서 한 달 간 진행된 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 제2기 여성반 훈련을 통해서였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훈련생들이 큰 밤나무 밑에 가설 무대를 만들어 놓고 ‘이수일과 심순애’ 연극 공연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이수일 역을 이희호씨가 맡았었는데 그 대사, 연기력이 놀라울 만큼 뛰어났었다 …알고보니 대본을 이희호씨가 손수 썼고, 그 활발명쾌했던 연기는 프로를 능가하는 것이어서 모두를 감탄케 하였다.”

강원룡 목사도 같은 책에서 “어느 대학에서 강연 후 학생들과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는데 그의 차례가 되자 “히히호호” 하며 크게 웃는 것으로 ‘희호’라는 이름을 소개해 신선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젊은 시절의 이여사는 재기발랄하고 활동적인 여성이었다. 글쓰기와 연설에 능했고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노래 솜씨가 뛰어나 찬송가를 부르면 앙코르 요청이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결혼 후 고난을 겪으면서 그의 성격은 차분하게 변해갔다. 이에 대해 서영훈 총재는 위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나름의 해석을 달아놓았다.

“…그렇게 볼 때 중년 후에도 계속 활동을 했으면 사회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을 터인데 풍상을 겪는 동안 성격이 변했나싶어 참으로 아깝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를 좀 쌀쌀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것은 이 여사가 정서적으로나 처세상 너절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며, 인생의 감고풍상(甘苦風霜)과 사회의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겪으면서 다소 냉소적인 면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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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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