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필로폰 원료 북한행 막아라”

국제범죄와 전쟁 벌이는 인터폴 24시

  • 이종화 < 경찰대 교관(경감), 전 인터폴 파견 경찰관 > chongwaleefr@hanmail.net

    입력2004-09-16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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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벨기에 경찰청에서 긴급 전문이 날아왔다. 거기에는 북한이 연간 소비량의 10배가 넘는 에페드린을 벨기에에서 수입해 가려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국경 안에서만 권한을 행사하는 경찰력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인터폴에 한국은 적극 협조하고 있는가.
    필자는 1998년 2월26일부터 최근까지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인터폴 본부 마약과에서 근무했다. 근무를 시작한 첫날 필자의 책상으로 벨기에 경찰청이 보낸 긴급전문이 도착했다. 전문에는 북한의 조선제약 총회사가 북한 보건부로부터 발부받은 추천장을 첨부해 벨기에의 한 화학회사에서 필로폰의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에페드린 20t을 구입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벨기에 경찰청은 인터폴에 북한의 주문에 응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에페드린은 통상 진통제의 제조에 쓰이나, 합성마약인 필로폰 제조에도 사용될 수 있다. 때문에 UN 마약통제기구에서는 에페드린의 제조와 판매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북한의 인구나 산업규모로 볼 때, 북한은 연간 2t의 에페드린을 수입하면 북한에서 소요되는 진통제 1년치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연간 필요량의 10배에 이르는 양을 주문했으니 벨기에 경찰청은 인터폴에 의견을 물어온 것이다.

    인터폴 마약과 직원들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북한의 주문량이 너무 많으므로 벨기에 경찰청에 관련회사의 수출을 중단하도록 요청키로 했다. 그러한 내용의 전문을 보내자, 벨기에 경찰청은 즉각 인터폴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벨기에 경찰청은 벨기에 보건부로 하여금 에페드린이 마약제조에 쓰일 수 있는 통제 화학품이니 북한으로의 수출을 금지한다는 공문을 보내게 했다.

    인터폴 근무 첫날 겪은 이 사건은 그후 필자가 경험하게 된 인터폴이 벌이는 국제범죄와의 전쟁 서막이었다. 인터폴과 전쟁을 벌이는 국제범죄 세력 중에는 북한도 유력한 후보로 올라와 있다.





    세계화와 국제범죄


    연간 한국의 국제공항과 항구를 통과하는 출입국자는 1000만명에 이른다. 그만큼 한국도 세계화했다는 이야기다. 세계화는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제화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경험한 후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세계화를 향한 부단한 노력으로 경제위기는 극복하였지만, 반대급부로 한국은 국제범죄의 유입이라는 부작용을 떠안게 되었다. 연간 국민 10명 중 1명꼴로 해외를 출입하는 지금 한국인은 국제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동남아에서 쇼핑하고 신용카드로 계산했는데, 귀국 후 국내에서 청구된 것을 보면 사용내역에 산 적이 없는 물품을 구입했다는 터무니없는 기록과 함께 엄청난 대금이 청구된 사례가 발견된다. 반대로 외국인이 위조 신용카드를 갖고 한국에 들어와 2, 3일간 최고급 물건을 다량 구입한 뒤 출국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한동안 연예인들의 마약복용이 사회문제가 됐는데, 마약범죄야 말로 국제범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국제범죄와 싸우는 사령탑이 인터폴이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인터폴의 속살을 파헤쳐보자.

    인터폴은 1914년에 창설됐는데, 창설 동기는 다소 엉뚱하다. 1914년 당시 61세이던 모나코의 알버트1세 왕자는 모나코 왕궁에서 독일 애인과 밀애를 즐겼다. 그런데 독일 애인이 변심해 몰래 모나코의 보물을 훔쳐 이탈리아로 도주했다.

    ‘늙은’ 모나코 왕자는 애인의 배신에 몹시 상심해, 즉각 이탈리아 경찰에 도주한 애인의 소재를 파악해 체포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경찰은 국제법학자로부터 독일 애인은 이탈리아 국내법을 어긴 사실이 없으니 체포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충고를 듣고 이를 알버트1세에게 통보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나라는 국제 공조 수사를 위한 장치 마련에 공감하게 되었다.

    알버트1세는 국가간의 경찰 협력을 위한 기구 창설을 주장하여, 1914년 4월14일 24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제 1회 국제경찰회의가 개최됐는데, 이것이 인터폴 창설의 기초가 되었다. 변심한 애인에 대한 복수심이 179개국 경찰을 회원국으로 한 인터폴의 창설 이유가 된 것이다. 인터폴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가 인터폴 본부에 보관되어 있던 범죄인 자료와 정보를 이용해 유태인과 반체제 인사를 색출해 체포한 사실이 알려졌다. 때문에 2차대전이 끝나자, 전승국인 프랑스는 인터폴 본부를 파리로 이전할 것을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파리의 인터폴 본부는 너무 협소했다. 이때 적극적인 국제기구 유치정책을 펼치던 리옹 시장이 인터폴을 유치함으로써, 인터폴은 프랑스 중심에 위치한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인터폴 본부는 50개 국가에서 파견된 120여 명의 경찰관과 200여 명의 행정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인터폴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총회다. 비상임기구로 집행위원회가 있는데, 집행위원회의 아시아 지역 부총재는 현재 충남 지방경찰청장인 김중겸 치안감이 맡고 있다. 그러나 총회와 집행위원회는 상설 기구가 아니므로 실질적으로는 사무총장이 인터폴을 이끌고 있다.

    현재 인터폴 사무총장은 미국 재무부 차관을 지낸 로널드 노블(Ronald Noble)이 맡고 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인터폴 사무총장이 되었다. 2001년 9월11일의 뉴욕 테러는 그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미국 정부가 벌이는 반(反)테러 전쟁에 동참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인터폴 조직을 개편했다.

    인터폴의 핵심 활동 부서는 범죄국과 지원국·지역협력국이다. 이중에서도 핵심은 범죄국인데, 범죄국은 마약 및 조직범죄과·재정경제범죄과·일반범죄 및 테러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바로 인터폴이 벌이는 ‘국제범죄와의 전쟁’의 첨병인 것이다.

    인터폴에서 가장 많은 수사관이 근무하는 곳이 마약 및 조직범죄과다. 인터폴이 마약범죄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마약범죄가 전지구적으로 가장 큰 범죄이기 때문이다.

    마약은 생산지의 가격과 소비지의 가격 차이가 엄청나다. 예를 들어 산지인 미얀마에서는 700g당 2500달러 하는 헤로인이 소비지인 뉴욕에서는 28만달러에 팔린다. 소비지 가격은 산지 가격의 100배가 넘다보니 국제 범죄조직은 눈에 불을 켜고 마약 거래에 뛰어드는 것이다.

    인터폴은 마약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의 FBI, 영국의 NCIS(경찰청 범죄정보국), 러시아 경찰청과 함께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인터폴 마약 및 조직범죄과의 과장은 미국 FBI 출신의 여성이다. 마약 거래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서 거래되는 마약 대금은 한 해에만 620억달러에 이른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짐에 따라 마약 역시 다양한 종류로 변해왔다. 마약의 대명사인 아편(헤로인)은 나름대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마약의 대표다. 미국의 반테러 전쟁의 무대가 된 아프가니스탄은 대표적인 아편 생산국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세계 헤로인의 70%가 생산된다. 한때 미얀마와 라오스·태국의 국경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도 세계적인 헤로인 생산지였으나 태국 군부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지금은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헤로인은 주변의 파키스탄과 인도-타지키스탄-이란을 거쳐 유럽의 관문인 발칸반도에 상륙한다. 반면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헤로인은 동남아 국가를 경유해 미국과 캐나다 시장으로 유입된다. 한국은 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헤로인의 중요 경유국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콜롬비아에서 주로 헤로인이 생산되는데, 콜롬비아산 헤로인도 대부분 미국으로 유입된다.

    콜롬비아는 ‘마약 생산의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로 온갖 종류의 마약이 생산된다. 콜롬비아에서 생산되는 주요 마약 중 하나가 코카인인데, 콜롬비아에서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코카인의 60%를 제조한다. 다른 남미국가에서도 코카인이 생산되는데, 남미는 세계 코카인의 80%를 제조한다.

    아프간을 중심으로 한 서남아 국가와 남미 국가들은 정정(政情)이 불안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나라의 군벌들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마약을 제조한다.

    카나비스는 대마초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마약이다. 워낙 재배가 쉽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소량 생산되고 있다. 대마초는 1960~70년대 한국에서 마약거래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좀더 강한 마약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한국에서는 생산과 거래가 많이 줄었다.

    네덜란드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중독성이 약한 대마초 거래를 합법화하기도 한다. 네덜란드는 대마초 복용자를 검거할 경우 범법자가 양산되고, 또 대마초 거래를 단속하면 대마초 가격이 올라, 대마초 구매 비용을 마련하려고 2차 범죄를 벌이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특별히 허가된 카페 등에서 소량의 카나비스 거래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카페 주변으로 중독성이 강한 헤로인과 코카인 딜러들까지 모여들고 그로 인해 그 지역이 우범지대가 되자, 지역 주민들이 대마초 거래 합법화에 반발하고 있어 네덜란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이 북한이 벨기에로부터 수입하려고 했던 합성마약 분야다. 진통 효과가 있는 의약품과 화학제품은 모두 마약 성분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마약에는 최근 연예인들 사이에서 복용한 사실이 밝혀져 주목을 끌었던 엑스터시와 메스암페타민 계열의 필로폰이 있다. 한국에서는 필로폰이 많이 팔리나 세계적으로는 엑스터시의 거래량이 많다.

    마약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수사기관은 마약거래 조직에 수사관과 정보원을 투입하거나, 수사관을 마약 거래자로 위장해 수사하는 이른바 ‘함정수사’를 합법화하고 있다. 선진국 수사기관들은 함정수사가 아니고는 마약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 이를 합법화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함정수사를 펴는 데 법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범죄조직의 상부는 검거하지 못하고, 하수인만 검거하는 실정에 머물고 있다. 인터폴에서는 한국도 함정수사를 합법화해 마약범죄를 미연에 단속하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의 전철을 피하는 길이라고 판단한다.

    마약 및 조직범죄과가 활동형 조직이라면 재정경제범죄과는 지능형 수사기관이다. 재정경제범죄과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위폐 분야 종사자와 돈세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몰려 있다. 필자가 근무할 당시 재정범죄과는 새로 출범하는 유로화의 위조를 막기 위해 고심했다.

    재정경제범죄과의 위폐 파트 책임자는 미국 대통령에 대한 경호 업무도 담당하는 미국 재무부 특수수사국(Secret Service) 출신이다. 미 재무부 특수수사국은 위폐범죄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곳인데 그곳 출신이 인터폴의 위폐 분야 책임자란 사실은 그만큼 위폐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위폐는 세계 화폐인 달러화에서 특히 심각하고 달러와 등가(等價)로 출범한 유로화에서도 문제가 일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달러 위조와 마약거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對)마약 정책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발전해 왔다. 첫째 흐름은 미국 내에서 마약 소비자를 검거하던 ‘소비자 억제 위주의 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마약을 막을 수 없어 1990년대 미국은 ‘공급자 억제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했다.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는 남미 국가 정부들도 마약을 제조하는 반군 세력이나 군벌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남미 국가를 지원해 마약을 제조하는 반군이나 군벌 세력들을 단속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공급자 억제 위주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세번째로 채택한 것이 뒤에 설명하게 될 돈세탁 차단이다.

    미국이 공급자 억제정책을 펼칠 때 남미의 마약 제조세력들은 미국의 억제조치에 대한 보복과 마약사업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업으로 위조달러 제조에 눈을 돌렸다. 마약 매매를 통해 번 돈으로 기술자를 양성하고 인쇄기계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위조달러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유통되는 위조달러의 70%가 코카인 생산 대국인 콜롬비아에서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는 정정(政情)이 불안한 체첸이나 코소보,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범죄조직이 위폐를 제조·유통시키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위폐 제조창’이다. 특히 중국의 남동부 해안 지방이 위폐 제작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2001년 중국은 주룽지(朱鎔基) 총리 주도로 6개월간 ‘위조지폐와의 전쟁’을 벌여 1만663건을 적발하고 1만3866명을 체포했다. 당시 중국 공안이 압수한 위조 달러의 액면가가 무려 26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북한도 위폐 제조를 의심받고 있다. 미 재무부 특수수사국에서는 가장 정교한 달러 위폐를 ‘슈퍼노트’로 부르고 있다. 슈퍼노트는 전문가들조차도 식별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한 달러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는 위폐를 막기 위해 아주 정밀한 인쇄기를 사용한다. 이러한 인쇄기는 프랑스의 드라뤼(De la rue)사에서만 제작해 전세계 중앙은행에 공급하고 있다. 한국의 조폐공사도 이 회사의 인쇄기를 도입해 지폐를 찍어내고 있다. 북한의 중앙은행 역시 이 회사의 인쇄기를 도입했다.

    인쇄기계는 지속적으로 수리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라뤼사의 기술팀이 그 나라를 방문해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데, 애프터서비스를 하다 보면 그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지폐를 찍었는지 알 수 있다. 드라뤼사의 기술담당 수석 이사에 따르면 북한은 이란과 더불어 애프터서비스를 거부한 유이(唯二)한 나라라고 한다. 드라뤼사의 수석이사는 인터폴과의 만남에서 “이란과 북한은 자력으로 기계를 보수하겠다며 소모품만 수입해 간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슈퍼노트 제작?


    슈퍼노트는 드라뤼사가 만든 인쇄기 수준의 정교한 인쇄기로 찍은 위폐를 말한다. 때문에 슈퍼노트 제작은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조폐공사 차원에서나 제작될 수 있는데, 미국과 인터폴은 북한과 이란이 정부 차원에서 슈퍼노트를 제작하지 않는가 의심하고 있다. 미 재무부 특수수사국은 인터폴과의 회의에서 과거 북한 외교관이 슈퍼노트를 소지하고 있었던 사례를 거론하며, “북한은 정부 차원에서 슈퍼노트를 제작하고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01년 유로화가 달러와 같은 가치로 출범하면서 새로운 위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로화는 미국 인구보다 많은 3억명이 사용하고, 세계 GDP의 19%를 생산하는 지역에서 사용된다. 때문에 달러와 더불어 세계 기축 통화로 떠오를 것이 자명하므로 국제 범죄조직이 유로화 위조에 나설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축구는 전형적인 유럽 스포츠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해 한국에는 많은 유럽인이 방문할 것이고 이들은 상당량의 유로화를 뿌리고 돌아갈 것이다. 월드컵을 전후한 시점에서의 갑작스런 유로화 유입은 한국을 위조 유로화 천국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위폐 범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다.

    재정경제범죄과에서 주력하는 두번째 업무는 돈세탁 단속이다. 돈세탁은 위폐 감별과는 다른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 모든 범죄인들은 불법으로 번 돈을 합법적인 자금으로 만들어 소비하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 돈세탁은 직접적인 범죄행위는 아니지만, 세탁된 합법자금이 또 다른 범죄에 투입된다는 점에서 돈세탁은 범죄를 낳는 온상이 되고 있다.

    특히 돈세탁에 진력하는 것이 마약거래 조직이다. 돈세탁은 돈을 씻으려 하는 수요자와 돈을 씻어줌으로써 돈을 벌고자 하는 공급자가 있음으로 인해 이뤄진다. 세계 여러 나라 중에는 자원과 산업이 미약해 돈세탁으로 돈을 버는 나라가 있다. 유럽에서는 리히텐슈타인·안도라·모나코 등 작은 나라들이 그 일을 한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인터폴은 돈세탁을 금지시키는 것이 마약거래를 비롯한 국제 범죄 조직을 드러나게 하는 첩경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각 나라에는 그 나라의 주권이 있어, 조세 수입 차원에서 돈세탁 해주는 것을 단속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틈새를 이용해 국제범죄조직은 돈세탁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돈세탁 규모는 세계총생산의 2∼5%로 추산되며, 액수로는 6000억∼1조5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6000억달러는 스페인의 GDP(국내총생산)와 맞먹는 금액이다. 이렇게 돈세탁 규모가 크다보니 돈세탁 자체가 중요한 국제범죄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9·11 미국 테러사건 이후 인터폴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서가 된 곳이 일반범죄 및 테러과다. 지금 갑자기 테러 분야가 중요해졌지만 이 과의 전통적인 임무는 국제 인신매매를 막는 것이었다. 인신매매를 막으려는 인터폴에게 여러 나라의 인권단체와 구호기관이 광범위하게 협력하고 있다.

    인신매매에는 불법적인 인력거래가 포함되는데, 이는 마약거래 이상으로 은밀히 이뤄진다. 미 국무부는 미국 내에서만 연간 5만명의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서유럽에서는 연간 50만명 가량의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는 연간 400만명 정도가 범죄조직에 의해 노동력 착취나 매춘을 위한 인신매매를 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신매매는 대륙별로 특성이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는 주로 노동력 착취를 위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매춘을 위한 인신매매도 적지 않다. 유럽에서는 매춘을 위한 러시아와 동유럽 여성들의 인신매매가 많다. 한국도 매춘을 위해 러시아 여성들을 들여오는 나라 중 하나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탈출한 북한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매춘으로 내모는 인신매매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 내에서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양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다. 한국의 NGO들은 이러한 현실에 주목해 탈북자들의 인권 보호를 외치고 있으나 아직 남북관계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것을 막는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내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간을 노예처럼 다루는 인신매매는 반드시 저개발국가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공무원들과 UN을 비롯한 국제기구 고급 공무원들도 불법입국자들을 가정부로 고용하고 있다. 인신매매는 경제적인 이유로 촉발되므로 대개 후진국에서 선진국을 향해 이루어진다.

    인신매매의 출발국은 아프가니스탄·알바니아·방글라데시·벨로루시·불가리아·캄보디아·중국·크로아티아·헝가리·인도·인도네시아·코소보·멕시코·미얀마·파키스탄·필리핀·폴란드·러시아·루마니아·태국·베트남 등 대부분이 후진국이다. 반면 목적지는 오스트리아·호주·벨기에·캐나다·중국의 홍콩과 마카오·두바이·유고·그리스·독일·이스라엘·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스위스·영국·미국 등 선진국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터폴의 대테러팀은 9·11 테러 이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호원으로 일한 재무부 특수수사국 요원이 팀장이 돼 안전 및 대터러 정보 수집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테러 부서가 주력하는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테러팀은 미국의 FBI, 재무부 특수수사국, CIA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외에도 각국의 대테러 전담 부서와도 협력하고 있다.

    대테러팀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안전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국의 김포공항에서 폭발물사고가 있었다(사상자는 없었다). 최근 일본은 동중국해에서 침몰한 괴선박(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됨) 인양을 추진하고 있어 북한과의 사이가 나빠졌다. 때문에 인터폴은 월드컵 기간을 전후해 한국과 일본에 대테러 요원을 파견, 북한 등으로부터의 테러 위협 등에 대처할 예정이다.

    범죄인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경찰은 국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의 형벌권은 그 나라의 주권 사항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경찰이 국경 안으로 들어와 사법권을 행사한다면 심각한 주권 대립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립을 줄이면서 범죄인을 잡기 위해서는 인터폴과 같은 국제경찰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터폴은 수사권이 없다. 범죄정보를 교환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범죄정보를 분석해 각국 경찰에 제공함으로써 범죄인 검거를 간접적으로 돕고 있을 뿐이다.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인터폴은 국경 밖으로 도주한 범죄인을 잡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적색수배서’다. 적색수배서는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 출국한 후 발동돼 유명해졌다. 적색수배서가 떨어지면, 인터폴 통신망을 통하여 2, 3분 내에 전세계 경찰에 도주한 사람에 대한 관련 정보가 배포되고, 그에 따라 각국 경찰은 해당자를 수배해 추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인터폴은 현재 7000명 정도의 적색수배자를 추적하고 있다.

    두번째로는 범죄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협조다. 인터폴은 1년에 250만건의 범죄정보를 받아 회원국에게 배포하고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20만명의 전세계 범죄인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그외에 도난 자동차와 미술품 목록도 있는데, 각 나라 경찰은 인터폴 통신망을 통해 24시간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인터폴의 통신망은 179개 회원국 경찰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네트워크다. 이 통신망 덕분에 적색수배가 내린 인물은 불과 2~3분 만에 전세계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국은 인터폴의 적색수배서를 체포영장과 같은 급으로 대우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폴의 적색수배자인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한국에서 체포된다 하더라도, 한국은 인터폴 적색 수배서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할 수 없다. 반면 국제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인터폴의 적색수배서 효력을 자국 법률에 명기하거나 범죄인 인도조약에 명시해, 국내법과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고 있다.



    인터폴 파견 인력 늘려야


    인터폴을 통한 수사 공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얼마전 영국에 놀러갔던 한국 유학생이 피살된 사건이 있다. 이러한 사건 추적은 영국경찰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데 영국경찰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인터폴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정부는 재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관을 영사로 파견하고 있지만, 경찰 영사 파견국은 몇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한국은 그 나라 경찰에 한국민 보호를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이럴수록 인터폴을 통한 협조가 절실하다.

    마약과 위폐 제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데다 세계화에 따라 국제범죄에 노출되는 한국인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우리 경찰을 세계와 네트워크화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이 세계화하는 만큼 한국경찰도 세계화해야 하며, 한국경찰을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요원을 인터폴에 파견해 인터폴과의 협조를 긴밀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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