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7일 저녁 서울 잠실체육관, 새천년민주당 지도부를 뽑는 경선이 한창이었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14명의 후보연설이 모두 끝나고 투표가 시작될 무렵, 몇 명의 중년 신사들이 투표인단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다녔다. 이들은 낯이 익은 대의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슬그머니 그들의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들이 건넨 것은 담뱃갑 크기의 메모용지였는데 거기에는 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광옥 김태랑 김옥두 김경천’
투표자 한 사람이 4명의 후보를 선택하는 연기명 투표이니, 이렇게 4명에게 표를 던지라는 메시지였다. 이 메모지를 돌린 사람들은 동교동 구파로 분류되는 당직자들이었다. 이들은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 이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돌렸던 것이다.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가 돌아다니는 모습은 과거 민주당 경선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날 지도부 선출 경선에서 쪽지를 돌린 쪽은 동교동계 구파가 유일했다고 한다.
개표결과 동교동 구파가 ‘응원했던’ 4명 중 한광옥 김태랑 두 사람만이 당선권에 들었고 김옥두 김경천 의원은 탈락했다.
당선자들의 성적도 시원치 않았다. 당초 한화갑 정대철 박상천 의원 등과 선두를 다툴 것으로 예상됐던 한광옥 최고위원은 이들 가운데서도 최하위인 4위에 그치고 말았다. 늘어난 영남 대의원에 힘입어 김태랑 최고위원은 8등으로 턱걸이에 성공한 반면, ‘믿었던’ 김옥두 의원의 탈락은 동교동 구파인사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4·27최고위원 경선은 정치세력으로서 동교동 구파의 몰락을 앞당긴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권 인사들이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4월30일, 동교동 구파를 향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인사의 전언.
“그날 오후 우리는 권노갑 전최고위원의 집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TV화면에 ‘권노갑 전의원 진승현 게이트 관련 검찰 소환조사’라는 자막이 뜨는 겁니다. 이를 본 권 전위원이 비서들에게 ‘저게 무슨 소리냐.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비서들이 여기저기 전화하고 부산을 떨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 관계자들이 권 전위원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출두요구서를 들고서요. 그제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를 겨우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출두요구서를 받아들고 권 전위원 진영에서는 설전이 벌어졌다. 검찰에 나가야 한다, 나가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조승형 이석형 노관규 변호사 등 권 전위원과 가까운 변호사들도 논의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권 전위원의 입에서 “나더러 장세동이가 되란 말이냐”는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설왕설래 끝에 결국 권 전위원이 “검찰에 가서 당당하게 무혐의를 밝히겠다”고 출두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대통령 향한 권노갑의 침묵
다음날인 5월1일 오전 10시 서울지방검찰청사에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모습을 나타냈다. 미리 도착해 권 전위원을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과 기자들이 우루루 모여들었다. 불꽃놀이의 폭죽처럼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기자들의 질문도 잇따랐다. 권 전위원은 검찰청사 현관에 서서 쏟아지는 질문에 꼬박꼬박 답변을 했다.
“그동안 모든 게이트에 내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나는 그러한 게이트 등에 관여한 일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더욱이 이번 진승현 게이트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진승현을 알지도 못합니다.”
“진승현을 만나본 일도 없습니다. 국정원 김은성 2차장이 금감원 조사를 무마해달라고 나에게 얘기했다는데 그 자체가 명백한 불법적 범죄사실입니다. 나는 그러한 범죄사실을 알고 동조할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가족, 명예를 걸고 국민에게 약속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허위 조작 날조된 것입니다. 진승현 일당이 저지른 허위날조입니다.”
권 전위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 자신은 무죄이며 검찰조사결과 무혐의임이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렇게 검찰청사 로비에서 언론 인터뷰가 진행중일 때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김대통령께 하실 말씀 없습니까?”
권 전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이 세 차례 이어졌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뒤 권 전위원은 자신의 무혐의를 주장하는 말만 되풀이한 채, 본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조사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권 전위원의 행동은 청사 입구의 혼란에 묻혀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평소 권 전위원을 아는 사람들은 대단히 이례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권 전위원 측근 인사의 전언이다.
“평소 권노갑 전위원이라면 ‘대통령께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사건의 진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대통령께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하지만 검찰에 출두하던 날 권 전위원은 기자들의 질문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같은 질문이 여러 차례 되풀이됐으니까 질문을 못 들은 게 아닙니다. 결국 권 전위원은 무응답으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신의 속내를 나타낸 셈이라고 볼 수 있죠.”
‘김대중과 권노갑’.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는 이는 없다. 40년 주군과 가신 사이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국 현대정치사의 단면이 되기에 충분하다. 김대중과 권노갑으로 대표되는 가신문화(家臣文化)는 엄혹한 군사독재시절을 이겨낸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세월이 흘러 ‘청산해야 할’ 구시대 정치행태의 대표로 개혁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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